소설리스트

환관무제-493화 (493/648)

493장: 담판

두 사람은 어느새 차 주전자 하나를 비웠다.

이어서 두 사람이 진행할 담판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했다.

영덕제가 웃으면서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애경, 또 다른 요구 사항이 있소?”

두변이 대답했다.

“서남에서 펼친 신법이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신은 신법의 시행 구역을 좀 더 넓히고자 합니다.”

영덕제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애경은 어느 성까지 확대하고 싶소?”

“사천과 호남까지 확대하고자 합니다.”

황제의 안색이 급변하더니 한참이 지난 뒤에야 애써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애경, 그건 좀 곤란하오. 이미 서남 3성을 가졌고 왕의 작위까지 내렸으니 포상은 충분했을 것이라 생각하오. 영씨 왕족 번왕들의 영지도 기껏해야 주 혹은 현 하나 정도요.”

두변이 허리를 숙이고 예를 갖췄다.

“폐하께 아뢰옵니다. 신이 사천과 호남 두 성에 신법을 펼치려는 이유는 사리사욕 때문이 아니라, 대녕 제국을 위해서입니다. 대녕 제국은 곧 동방 연합 왕국과 대결전을 펼치게 될 겁니다.”

황제가 침묵했다.

두변이 이어서 말했다.

“방계의 계획에 따르면, 그들은 여진 제국을 이용해서 대녕 제국 북방 전체를 파괴하고, 금태극이 자금성에서 황좌를 차지할 때까지 기다리려 했습니다. 그후 동방 연합 왕국은 건로를 소탕하고, 정통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여진 제국을 무너뜨리고, 남경의 연왕을 제위에 올리려 했습니다. 대의를 위한 명목으로 대녕 제국 정권을 찬탈하는 것이죠.”

영덕제는 잠자코 두변의 말을 듣고 있었다.

두변이 계속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방계의 이 음모는 실패했습니다. 신이 이미 여진 제국을 멸망시켰으니까요. 남방 몇 성의 세금과 양식은 더 이상 경성으로 운송되지 않을 것입니다. 조운이 중단되는 비극도 다시 재연될 것이고요. 신이 사천과 호남으로 들어간다면, 육로를 이용해서 대량의 식량을 경성과 북방으로 운반할 수 있습니다.”

황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올해 날씨가 좋았으니, 산동, 하남, 하북, 산서, 협서 등에서 대풍년을 이룰 것이오.”

황제의 말의 숨겨진 뜻은 이제 서남의 식량 수요가 크지 않으니, 두변이 말한 이유는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두변이 말했다.

“동방 연합 왕국은 정치적 수단으로 대녕 제국을 해결하려 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예상과 달리 대승을 거둬버렸으니, 분명 서남으로 군사 공격을 해올 것입니다. 육지, 해상, 전방위 공격을요.

그때까지 우리에겐 몇 개월, 혹은 그보다 더 짧은 시간이 남았습니다. 동방 연합 왕국과의 결전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빠를 수도 있습니다. 동방 연합 왕국이 얼마나 강한지는 신이 설명하지 않아도 폐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요. 여진 제국은 동방 연합 왕국에 비하면 수준 낮은 야만인들에 불과합니다. 오직 사천과 호남을 장악해야만 신의 서남이 완벽한 한 구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배복수적(背腹受敵: 앞뒤로 적에게 공격당하다.)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두변은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솔직하게 말했다.

호남을 손에 쥐게 되면 곡식 걱정이 없어지는 건 차치하고, 공격하고자 하면 방계의 강남 기지를 공격할 수 있고, 후퇴하고자 하면 서남에서 수비하면 된다.

사천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사천은 분지여서 지형이 유리한 데다, 엄청난 면적의 토지와 방대한 인구를 갖고 있었다.

그러니 호남과 사천을 손에 넣어야만 완벽한 공방 체계를 세울 수 있고, 동방 연합 왕국에 대적할 충분한 인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사천과 호남은 이미 영덕제가 파견한 관료가 그곳을 장악하고 있었다.

황제의 마음속에 그 두 성은 자신의 근거지나 마찬가지였다.

황제가 말했다.

“사천과 호남은 이제 대녕 제국에 충성을 다하고 있으니, 진서왕은 배복수적을 걱정할 필요가 없소.”

“폐하, 지방 관리들의 도덕성이 어떤지 아직도 모르십니까? 정말로 전쟁이 일어나면, 각지의 순무, 총병들은 앞뒤를 다퉈가며 신의 등에 칼을 꽂을 것입니다. 대녕 제국의 강산을 지키려면, 대녕 제국이 결전에서 이기려면, 신은 정말로 직접 사천과 호남 두 성을 관리해야 합니다.”

두변이 재차 설명했지만 영덕제는 담담하기만 했다.

“진서왕, 만약 짐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여씨 대염 왕국의 전략도 사천과 호남을 먼저 빼앗는 것이었소. 여여해는 이 두 성을 가져야만 여씨의 왕국이 완전해진다고 말했지. 애경의 전략이 어째 여씨 대염 왕국과 일치하는 것 같소?”

황제가 기어코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내뱉고 말았다.

두변의 안색이 변했다.

“폐하, 설마 제가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짐은 그런 말 한 적 없소.”

영덕제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흥분한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두변, 자네가 엄청난 공로를 세웠다는 건 인정하오. 하지만 짐 또한 자네에게 그만한 포상을 내렸소. 대녕 제국 율법에선 성이 다른 자는 왕이 될 수 없는데, 짐이 율법까지 깨면서 자네를 진서왕으로 봉했소. 그리고 짐은 자네에게 전무후무한 영예를 안겨줬지. 계요 변진의 병권도 자네에게 줬고, 경성, 그리고 황궁 전체, 심지어 짐의 목숨도 다 자네의 손에 있소. 도대체 뭐가 더 부족하냔 말이오.”

“폐하, 잊지 마십시오. 영설 공주는 제 부인이나 폐하의 누이입니다. 저를 믿지 못하실 순 있지만, 영설 공주도 믿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황제도 목청을 높였다.

“진서왕, 가서 지도를 보시오. 요동도 자네 것이고, 원래 와나간국의 것이었던 몇천 리 초원도 자네 것이고, 계요 변진의 군사 대권도 자네 것이고, 서남 3성도 자네 것이오. 자네의 영토는 방계보다 더 넓고, 대녕 제국의 절반을 차지했소. 그런데 왜 짐에게서 사천과 호남까지 빼앗아가려는 것이오? 너무 욕심이 과하다고 생각되지 않소?”

두변은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

요동을 탈환한 뒤, 그는 민정(民政)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심지어 북방의 경제, 정치 쪽에도 손대지 않았다.

두변은 동방 연합 왕국이 상륙할 가능성이 있는 북방에만 주둔군을 배치했을 뿐이다.

두변이 단호하게 말했다.

“폐하, 보십시오. 지금 북방 전체가 비었습니다. 제가 그곳에 군대를 배치하지 않길 원하신다면, 요동 전체를 남에게 거저 주길 원하시는 건지요? 동방 연합 왕국이나 와나간국이 요동을 차지하게 놔두실 겁니까?”

황제는 두변의 말을 듣고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두변은 지금 황제인 자신의 체면을 깎아내리고 있었고, 황제인데도 제대로 된 병사 하나 없다는 걸 비웃는 것 같았다.

“진서왕, 자네는 스스로가 충신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이 세상에 군주에게 성 두 곳을 영지로 달라는 충신이 어디 있나? 이미 대녕 제국의 절반 강역을 차지해놓고도 군주를 협박하는 충신이 어디 있냔 말이오!”

황제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진서왕, 만약 사천과 호남을 원한다면, 직접 가져가시오. 짐은 자네에게 두 성을 줄 수 없소.

아, 짐의 목숨도 여기 있으니, 원한다면 언제든 와서 가져가게.”

황제가 고집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황제의 수척해진 얼굴에는 집요한 의지가 담겨 있었고, 눈빛에는 아집이 섞인 단호함이 어려 있었다.

문득 숭정(崇禎: 명나라의 16대이자 마지막 황제) 황제가 떠올랐다.

영덕제와 숭정 황제는 사람은 총명하지만, 속이 좁고 고집불통이었다.

두 사람은 생각이 깊지만, 아집에 가까운 고집이 있고, 자신의 성질을 주체하지 못하며,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두 황제는 정말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영덕제는 포상이며, 영광이며, 자기가 두변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걸 해줬다고 생각했고, 선황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두변이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사천과 호남까지 달라고 하니, 두변의 탐욕스러움에 기가 찰 수밖에.

영덕제가 모르는 게 하나 있다면, 두변은 왕작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

두변이 중요시하는 건 오직 동방 연합 왕국과의 대전이고, 지금 그가 필요한 건 왕작이 아닌 사천과 호남을 합한 완벽한 방어 체계라는 것.

이를 모르는 영덕제는 그저 두변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변과 영덕제의 가치관 차이가 너무도 커서, 그 격차를 도저히 메울 수가 없었다.

“신, 물러가겠습니다.”

두변이 예를 표한 뒤, 곧장 자리를 떠서 궁문으로 향했다.

영덕제가 두변의 뒷모습에 대고 말했다.

“진서왕,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선황께서 자네에게 베푸신 은덕을 잘 생각하시오. 사람이 물 한 모금을 마셔도 그 물이 어디서부터 흘러왔는지를 생각하란 말이오.”

황제는 그다음 말을 속으로만 생각하고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두변, 자네가 정말로 사천과 호남을 무력으로 빼앗는다면, 자네는 대녕 제국의 난신적자가 되는 것이오. 제국의 난신적자는 무조건 주살해야 하오.’

이때, 비밀스러운 사람의 그림자가 황제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이 사람은 두변도 보지 못한 사람이고, 심지어 아무도 그를 만난 사람이 없었다.

이 사람은 대외적으로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대종사급 무도 강자였다.

비밀스러운 사내가 목소리를 낮추고 황제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지금 두변 곁에 아무도 없습니다. 천재일우의 기회니, 이참에 두변을 잡아들여서 후환을 없애심이 어떠십니까?”

“짐은 토사구팽을 일삼는 혼군이 아니다. 만천하의 사람이 짐을 배신한다 해도, 짐은 내 사람들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영덕제가 말하자, 그의 곁에 있던 비밀스러운 대종사가 자취를 감췄다.

두변이 돌연 걸음을 멈추고 황제에게 돌아가서 무릎을 꿇었다.

“폐하, 신은 정말로 사천과 호남이 필요합니다. 신은 그 두 성을 요동 전체와 교환을 해도 좋습니다.”

황제가 두변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짐의 강산이오. 교환 따위는 하지 않소. 진서왕,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해보시오. 당시에 이원의 일 때문에 우리가 유쾌하지 않았을 때도 짐은 자네의 영예를 훼손하지 않았소. 자네가 만약 사천과 호남을 무력으로 차지한다면, 세상 사람들의 입을 어찌 막을 수 있겠소?”

“폐하, 사천과 호남이 없다면, 신은 동방 연합 왕국을 이길 수 없습니다.”

황제가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이기지 못하는 게 기정사실이라면, 자네에게 사천과 호남을 준다고 해도 이기지 못할 것이오. 그러니 진서왕, 세력을 더 확장하고 싶다면 더는 변명거리를 찾지 마시오. 짐도 궁금하오. 나중에 과연 자네의 곁에 몇 명의 사람이 남을지. 득도다조, 실도과조(得道多助, 失道寡助: 도에 들어맞으면 도와주는 사람이 많고, 도에 어긋나면 도와주는 사람이 적다.)의 이치를 잊지 마시오.”

더는 견해를 좁힐 여지가 없자, 두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한 시진 뒤, 영덕제가 영설 공주를 불러왔다.

“영설, 이번에 짐이 두변을 진서왕에 봉한 결정을 어떻게 보느냐?”

황제가 물었다.

“열토봉왕은 정말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에요. 조금 전에 모후께서도 폐하를 칭찬하셨고, 만민 백성도 폐하께서 신하에게 예우를 다하신다고 칭송하고요.”

영설 공주가 대답했다.

“조금 전에 진서왕 두변이 짐에게 사천과 호남을 달라고 하더군. 짐은 그의 청을 거절했다.”

영설 공주의 아름다운 얼굴에 살짝 경련이 일었다.

“짐은 이미 그를 열토봉왕했다. 그가 서남으로 돌아가서 무력으로 그 두 성을 가져가겠다고 한다면, 짐은 그를 모반자로 볼 것이다.”

황제가 영설 공주의 어여쁜 얼굴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영설, 너는 두변의 부인이기 전에 대녕 제국의 장공주다. 만약 두변이 반역을 일으킨다면, 너는 어찌할 것이냐?”

영설 공주가 단호하게 말했다.

“제 부군은 절대로 반역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영설 공주는 대화가 끝났다는 듯이 곧바로 작별을 고했다.

“신매(臣妹),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밤이 되자, 두변과 영설 공주는 열정적으로 서로를 탐했다.

격한 운동이 끝난 뒤, 영설 공주가 두변의 품에 안겨서 물었다.

“부군, 오늘 폐하와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방 연합 왕국과의 대전을 준비하려면, 내겐 사천과 호남이 있어야만 해요. 하지만 폐하께서 이를 거절하셨죠.”

“부군, 내 생각엔 이번 일은 조심해야 해요. 폐하께서 오늘 당신에게 열토봉왕 하셨는데, 당신이 군대를 이끌고 사천과 호남을 점령하면, 천하 여론은 당신의 편이 아닐 거예요.”

“만천하 사람들이 나를 난신적자로 볼 거라는 말이죠?”

영설 공주가 두변을 꼭 끌어안았다.

“난 부군이 반역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부군은 절대로 대녕 제국을 배신하지 않을 거잖아요.”

두변은 영설 공주가 사천과 호남을 무력으로 빼앗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걸 알아챘다.

세상 사람들은 두변이 멸국의 공을 세웠고, 황제가 그에게 열토봉왕을 해주고 유래에 없는 영예를 안겨줬고, 백성들의 앞에서 두변에게 수차례 허리 숙여 예를 표했으니, 영덕제가 두변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전부 해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 이럴 때 두변이 사천과 호남을 무력으로 진압한다면, 그는 빼도 박도 못하게 난신적자로 몰릴 것이다.

다음날, 두변은 진서왕의 신분으로 조정의 조회에 참석했다.

어젯밤에 그는 이미 황제에게 부홍빙이 산해관의 총병을 맡기로, 이릉이 요동 총병을 맡기로 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두변은 조회에서 부홍빙과 이릉은 자신을 따라 군대를 이끌고 서남으로 돌아갈 것이고, 4만 직속 군대까지 데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황제는 군말 없이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로써 북방에는 두변의 군대 세력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북방에 남은 십여만 대군은 전부 투항한 한군과 몽골군이었다.

다음날, 두변이 5천 마혈 기병, 4만 여진 무사, 5만 서남 군대를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경성을 떠나 서남의 영지로 돌아갔다.

황제는 두변을 배웅할 때도 그에게 최고의 예우를 보여줬다. 황제는 황자들과 문무백관을 데리고 두변을 성 밖 20리까지 배웅했다.

두변이 떠나자, 황제는 그가 떠난 곳을 향해 허리 숙여 예를 올렸고, 오랫동안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진서왕, 절대 아군에게 불리하게 하고, 적군에게 유리한 짓은 저지르지 마시오.”

황제가 붉어진 눈시울로 두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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