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94화 (494/648)

494장: 난신적자

같은 시각. 남양 여송성 총독부.

격렬하고 길었던 담판에 드디어 마침표가 찍혔다.

페르시아 제국과 유경 왕국 태자의 중재 하에 동방 연합 왕국과 성로마제국 연맹은 휴전을 선언했고, ‘여송 휴정 협정’을 체결했다.

3개월이나 이어졌던 대전투가 끝난 셈이었다.

시대에 한 획을 긋는 순간이었다.

이 지구의 모든 사서에는 오늘 이날이 기록될 것이다.

이번 대전은 만 리가 넘는 바다와 미주 대륙의 천 리 육지에서 벌어졌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성로마제국 연맹은 동방 연합 왕국이라는 거칠고 경솔한 졸부를 제대로 혼내주겠다고 맹세했었다.

성로마제국 연맹은 동방 연합 왕국에게 문명의 강대함이 뭔지 보여주겠다고 했고, 동방 연합 왕국을 낙후된 야만의 시대로 되돌려놓겠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동방 연합 왕국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대승을 거뒀다.

해상전에서는 동방 연합 왕국의 20여 척 신식 전함이 서방 연합군의 70척 전함을 격파했다. 격파된 전함 중에는 유경 왕국의 비밀 핵심 동력이 장착된 철갑전함도 2척도 포함되어 있었다.

육지에서는 동방 연합 왕국이 미주와 아프리카에서 서방 연합군 80만을 무찔렀다.

소군 방진은 전쟁의 양상을 아예 바꿔버렸다.

서방 세계의 전함들은 신식 유포탄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해상 전투가 아닌 해상 학살을 당했다.

아프리카에서는 5천 명의 곤륜노 무사가 서방 세계의 25만 연합군을 격퇴했고, 미주 대륙에서는 동방 연합 왕국의 신식 화총 군대가 서방의 구식 화창 군대를 압살했다.

성화교 세계는 이 대전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동방 연합 왕국의 무기 발전에는 오금이 저려왔다.

서방 세계는 과학 문명을 시작한 뒤로, 백 년 만에 처음 겪는 초특급 패배였다.

대영 제국의 왕세자 찰스 캐논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여송성의 총독부로 올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그가 체결한 건 치욕적인 휴전 협정일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남미주 대륙이 정식으로 동방 연합 왕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찰스 캐논은 지난번에 총독부에 왔을 때와 같은 품위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는 이 치욕적인 협정을 체결한 뒤, 소군 방진이 그를 위해 준비한 연회를 즐기지 않고 곧장 여송성을 떠났다.

두회가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경축드리옵니다, 전하. 전하께서 역사적인 대첩을 거두셨습니다.”

소군 방진이 지도 앞으로 다가가서 대녕 제국의 서남 3성을 바라보았다.

“두변의 서남 3성과 서방 세계를 비교해보아라.”

“두변의 서남 3성은 창해일속에 불과합니다. 서방 세계는 문명이라도 강대하지, 두변의 서남은 원시적이고 낙후되었습니다. 두변의 서남 군대를 대영 제국의 육군과 해군과 비교한다면, 아마 백 년 정도 차이 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방 세계의 연합군도 폐하께 패배하였으니, 두변의 서남 3성은 손가락으로 개미 눌러 죽이듯이 손쉬울 겁니다.”

두회의 말에 소군이 지시했다.

“그럼 가서 눌러 죽여버려라.”

“신, 명 받들겠나이다.”

두회가 크게 기뻐하며 대답했다.

“기억하거라. 이곳은 중원 제국이자, 미래 동방 연합 제국의 핵심 구역이다. 두변을 죽이는 건 상관없지만, 만백성의 마음속에는 우리가 정의로운 쪽, 두변은 난신적자여야 한다. 그러니 그를 여론으로 매장해버리는 것도 잊지 말아라.”

“알겠습니다.”

두회가 머리를 조아리면서 대답했다.

두변은 군대를 부홍빙과 이릉에게 맡기고 혼자 빠른 속도로 먼저 서남으로 돌아갔다.

“신, 진서왕을 뵙습니다. 천세, 천세, 천천세.”

서남의 군신들이 진서성 밖에서 두변을 마중나왔다.

두변은 새롭게 변모한 서남 왕부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 선자가 종복들을 거느리고 두변을 마중나왔다.

“신첩, 부군을 뵙습니다.”

예상 선자 배 속의 아이는 이미 6개월이 되었고, 그녀의 배도 눈에 띄게 불러있었다.

예상 선자의 분위기도 회임 전과 무척 달랐다. 원래의 예상 선자는 결의에 차 있었고 단호했다. 스스로는 동방 제일 미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환상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녀는 한 번도 스스로를 여인으로 취급한 적이 없었다. 예상 선자는 자신을 성이 없다고 생각했고, 전사로 여겼다.

그녀는 자신의 사명을 위해 영원히 투쟁 속에서 살길 원했다.

그런데 지금의 예상 선자는 모성애가 넘쳤고, 그녀의 눈빛도 예전과 달리 부드러웠다.

지금 예상 선자의 얼굴은 아름답다는 표현보다 사랑스럽고 곱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두변이 손을 뻗어서 그녀의 불러온 배를 쓰다듬자, 예상 선자가 얼굴을 붉히면서 조용히 말했다.

“부군, 미안해요. 딸이에요.”

두변이 흠칫 놀랐다.

“애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성별을 어찌 알아요?”

“북명검파는 모르는 게 없어요.”

“딸이면 더 좋죠. 더할 나위 없이 좋죠.”

두변이 예상 선자의 손을 잡고 방 안으로 들어가서는 의자에 앉아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부군, 요즘 분위기가 별로 안 좋네요.”

“벌써 소식이 서남까지 전해진 겁니까?”

“네, 사람들이 다 부군이 야심이 넘쳐서 세력을 확장하려고 하고, 반역을 도모하고, 영씨 황족을 대신하려고 한다고 하네요.”

“그럼 황제에 관한 얘기는요?”

“영덕제가 선황처럼 인자하고 어질다고 말해요. 선황께서 이영도를 총애하셨는데, 이영도가 배신해서 요동의 좋은 국면을 망쳤죠. 영덕제께서는 이원을 믿었는데, 그의 배신으로 인해서 요동 전투가 박살났고요. 두 황제가 영명한 군자는 아니지만, 신하에게는 최고의 황제라고 해요. 그리고 두 황제가 당신에게 태산과도 같은 은혜를 베풀었다고 말하고요. 선황께서는 혜안으로 당신의 능력을 높이 사서 작위까지 봉해줬고, 영덕제는 부군에게 갖출 수 있는 모든 예우를 갖추고, 왕에 봉하고 30리 성 밖까지 마중 나가고, 20리 성 밖까지 배웅을 했으니까요. 황제가 신하에게 이 정도 예우를 해주는 건 유래에 없는 일이라고요.”

“그러니까, 만약 내가 사천과 호남을 무력으로 빼앗는다면, 양심도 없는 난신적자가 된단 말이죠?”

예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세상에 이런 소문이 이미 파다해요. 부군이 야심이 넘쳐서, 여씨 왕국이 짰던 전략대로 사천과 호남을 빼앗은 뒤, 독립 왕국을 세울 거라고요.”

두변은 자신이 여론전에 휘말렸다는 걸 직감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예상, 지금의 폐하는 선황과 달라요. 그의 제왕적 계략이 정말 환상적이군요.”

“부군, 한 가지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있어요?”

“무슨 가능성이요?”

“영덕제가 방계와 손을 잡았을 가능성이요.”

두변이 흠칫 놀랐다.

“설마요. 폐하와 나는 의지를 다투고 이익을 다투는 것일 뿐이에요. 그리고 내가 여기 있는 한, 적어도 폐하께서는 북방을 쥐고 있는 것이고요. 하지만 만약 방계와 손을 잡는다면, 폐하께선 그들의 꼭두각시가 될 뿐이에요. 폐하께서 속이 좁은 건 맞지만, 그리 아둔한 사람은 아니에요.”

“부군, 난 늘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 게 습관이에요. 얼른 애를 낳고 싶어요. 그래야 부군과 함께 전장에 나설 수 있을 테니까요.”

두변이 갑자기 물었다.

“아 참, 예상, 당신이 예전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몸이라고 들었는데요.”

예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나랑 사부인 백화 선자가 연마한 무공은 무척 특수해서 아이를 회임할 수 없어요. 그런데 당신이…… 워낙 강력해서 그런지, 한 번 만에 회임했잖아요.”

“그럼 영도현과 백화 선자 기염염 사이에도 아이가 없나요?”

“맞아요.”

예상 선자가 고개를 끄덕인 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두변을 쳐다보았다.

“부군, 다리 위에 앉아도 돼요?”

두변은 깜짝 놀랐다.

예상이 먼저 이렇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건 처음인지라, 얼떨떨한 마음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의 부드럽고 향기로운 몸이 두변의 다리 위로 올라오더니, 그의 기운을 느끼면서 말했다.

“부군의 몸에는 어떤 기운이 있어요. 여인들에게 아주 치명적이고,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기운이요. 부군, 지금 하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그야 당연하죠. 그런데 이런 일을 꼭 이렇게 진지하게 요구해야만 해요? 꼭 무슨 서류 결재 요청하는 것 같잖아요.’

“지금은 태아가 안정적인 단계니까, 조심하면 괜찮아요.”

저녁, 옥진 군주가 두변을 찾아왔다.

그녀는 예전처럼 조금은 굳은 태도로 두변을 대하지 않았고, 수줍어하면서 말했다.

“두변, 지금 당신이 진서왕이긴 하지만, 내 앞에선 아직도 내 사제(師弟)인 거죠?”

“맞아요.”

두변이 대답했다.

“그럼 내가 지금 할 말은 사제에게 하는 거지, 진서왕에게 하는 말이 아니에요.”

“편하게 말하세요.”

“기억나세요? 대녕 제국을 위험에서 구하고, 대녕 제국의 중흥을 이루는 게 당신 꿈이었던 거요. 그리고 언제여도 대녕 제국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도 했죠. 역사적으로 세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을 많이 봤어요. 전진하고자 한다면, 피치 못할 갈림길에 서는 건 당연할 테죠. 하지만 난 당신이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해요. 내 마음속에 있는 당신은, 언제나 내게 짓궂은 장난을 치던 귀여운 동생이에요.”

두변이 쓴웃음을 지었다.

“세상 사람들이 내가 반역을 일으키고 황위를 찬탈할 거라고 하던데, 옥진 누님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요?”

“아니요. 난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아요. 난 내 엉덩이를 만지려고 애를 쓰던 그 엉뚱한 놈이 영원히 내가 알던 귀여운 동생이라는 것만 믿어요.”

“난 당연히 대녕 제국을 배신하지 않아요. 죽어도 반역을 일으켜서 황위를 찬탈할 일도 없고요.”

옥진 군주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럼 나랑 약속해요. 사천과 호남에 출병하지 않겠다고요.”

두변의 얼굴에 살짝 경련이 일었다.

“만약 동방 연합 왕국과의 대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면요?”

옥진 군주가 두변에게 다가가서 그의 손을 잡았다.

“두변, 내 눈을 바라봐요. 우리의 최신 정보에 의하면, 동방 연합 왕국과 서방 세계의 대전이 이미 끝났어요. 그들의 강대한 해군과 육군이 곧 서남으로 들이닥칠 것이고, 생사존망을 건 대전이 일어날 거예요. 그런데 이럴 때 당신이 사천과 호남에 출병한다면, 신법을 시행하는 것과 별개로 그 짧은 시간에 두 행성에서 병사를 모집하고 군마를 마련할 수 없어요. 적어도 이번 전투에서는 두 행성이 필요하지 않잖아요. 당신이 출병하는 이유가 충분하지 않아요.”

옥진 군주의 말이 옳았다.

당장 대전이 발발할 텐데, 무슨 신법이고, 무슨 모병인가.

옥진 군주가 이어서 말했다.

“당신이 말한 전략 종심(縱深: 전선에 배치된 부대의 최전선에서 후방 부대까지의 세로의 선) 지대도 그래요. 동방 연합 왕국 대군이 상륙했다고 쳐요. 만약 우리가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후퇴한다면, 폐하께서 과연 당신이 사천과 호남까지 후퇴하는 걸 막으실까요?

당신이 지금 출병해서 두 행성을 빼앗는다면, 모든 사람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만 남을 뿐이에요. 당신이 원하는 건 세력 확장이고, 자기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 적들이 통쾌할 일을 한다는 거죠.”

이때, 꿈속 시스템이 다급하게 말했다.

‘숙주, 절대로 그건 말하면 안 된다. 사천과 호남 행성에 우리가 원하는 물건이 있다고, 우리가 대승을 거둘 수 있는 핵심 물질이 있다는 것을 절대로 말하면 안 돼. 이건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면 안 돼. 아주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거니까. 그 물질은 아주 약해서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가 찾기도 전에 파괴될 수도 있다.’

옥진 군주의 눈빛이 갑자기 야릇해지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두변을 불렀다.

“두변, 예전에 영설 공주를 정부인으로 두고, 나를 소부인으로 두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계속 내 엉덩이를 만지고 싶어 했잖아요. 세상에서 제일 화끈한 마성의 몸매를 가졌다고 말이에요.”

두변이 눈썹을 으쓱했다.

“정확히는 폭발적인 몸매죠.”

옥진 군주가 두변의 손을 잡아끌어서 자신의 탄력 있는 엉덩이에 얹었다. 그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변, 사천과 호남에 출병하지 않는다고 약속해줘요. 세상 사람들이 당신을 난신적자라고 욕하지 못하게 해요.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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