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8장: 죽은 사람만이 말이 없고 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두변에 대한 여론의 공격은 더욱 광적으로 변해갔다.
두변은 죄인이 아니라, 악귀로 매도되었다. 그의 현재 죄는 병사를 일으켜 모반을 획책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대죄가 10개 넘게 추가되었다.
예를 들면, 도성(屠城: 성을 점령한 후 그 성의 백성을 모두 죽이다.)의 죄였다.
두변이 성을 함락시키고, 무구한 백성 백만 명을 학살했다는 소문.
또 예를 들면, 선황을 위협했다는 죄. 선황을 위협해서 영설 공주와의 사혼을 얻어냈다는 소문이었다.
두변은 일개 환관인데, 선황이 끔찍하게 아끼는 딸을 어떻게 환관에게 시집보낼 수 있었을까.
두변이 선황을 위협하지 않았다면, 선황은 절대로 이런 결정을 내렸을 리 없다고 떠드는 것이었다.
아무튼, 두변의 죄목은 점점 더 크고 많아졌다.
영덕제는 사람들에게 냉정함을 되찾자고 하면서 좋은 사람이 억울함을 당하지 않도록 매도하지 말라는 조서를 내렸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대녕 제국의 모든 행성과 주부의 순무, 총독, 지부 등은 두변을 탄핵하라는 상주서를 무지막지하게 보내왔다.
황제에게 두변을 천하의 반적으로 공표하고, 그를 척결하는 명령을 내리라는 내용이었다.
황제는 두변이 그럴 리 없다며 조당에서 수차례 그를 위해 변호했고, 눈물을 보였다.
하지만 황제는 암암리에 영설 공주의 모든 병권을 몰수했고,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녀를 철저하게 감금했다.
두변을 향한 황제의 총공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지하 밀실 안.
황제와 두회 두 사람이 독대하고 있었다.
“폐하, 이 세상에선 저, 소군, 탁 옹, 그리고 영도현 외에 또 한 사람이 폐하께서 천윤제의 친자가 아니라는 걸 압니다. 바로 폐하의 친모, 태후지요.”
두회가 말했다.
“모후는 짐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오. 모후께서 짐을 배신할 리 없소. 그분은 죽는 한이 있어도 짐의 비밀을 지킬 것이오.”
영덕제가 단호하게 말했지만, 두회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폐하께서 선황의 친자가 아니라는 말을 누가 해도 안 믿을 겁니다. 다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로 취급하겠지요. 하지만 딱 한 사람만 예외입니다. 태후께서 진실을 밝히신다면, 폐하의 앞날은 이제 없습니다.”
“짐의 말이 들리지 않소? 모후께서는 절대로 짐을 배신할 리 없소.”
두회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이 세상에선 죽은 사람만이 말이 없습니다. 폐하.”
“부군, 왜 동방 연합 왕국이 서방 성로마 제국연맹과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신대륙 남부를 가지려고 안달 난 줄 알아요? 성화교 세계와의 전투를 막 끝냈는데, 또 곧바로 서방 세계와 싸우잖아요. 소군의 성격대로라면 계속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린다는 뜻)할 만도 한데, 그러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아요?”
여완완이 물었다.
“남미 대륙에 그가 원하는 물건이 있나 보군.”
“맞아요. 정확히 그 대륙에 뭐가 숨겨져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 생각엔 이 세계의 궁극적인 기밀, 궁극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심지어 성화교, 천계십자회, 북명검파가 관장하는 3대 이계 장소와 세계의 갈라진 균열보다 더 놀라운 무언가가 있겠죠.”
여완완이 말하면서 두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왠지, 당신의 최종 사명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꿈이요. 내가 당신한테 우리가 부부인 꿈을 매일 꾼다고 했잖아요. 언제는 당신이 나를 죽이는 꿈을 꾸기도 하고, 더 기이하고 끔찍한 꿈을 꾸기도 하고, 세계 전체가 찢어 갈라지는 꿈도 꾸고, 엄청난 소용돌이가 억만 명을 집어삼키는 꿈도 꿔요. 그 소용돌이의 중심엔 당신이 있더군요.”
“왜 그런 꿈을 꾸는 것 같지?”
여완완의 아름다운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봤어요. 대부분 꿈에서 당신과 내가 부부이지만, 어떨 땐 또 나를 죽이기도 하니까요. 아무튼, 꿈에서는 당신이 영원히 내 곁에 있어요. 나를 죽이거나, 나와 함께 밤을 보내거나. 그러다 나중에 한 가지 답을 떠올렸어요.”
“뭘?”
“우리가 전생에 부부였거나, 다른 세계에서 우리가 부부였을 수도 있겠다는 답이요.”
두변은 할 말을 잃었다.
여완완이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술만 달싹일 뿐, 두변을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두변이 먼저 물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부군, 북명검파에서 당신을 죽이러 오지 않은 지 꽤 됐어요. 좀 이상한데요?”
두변의 눈빛이 경계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이 요망한 여인은 너무 똑똑해서 문제야. 아주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군.’
여완완이 두변이 무슨 말을 해주길 기다리는 듯 그를 빤히 바라봤지만, 두변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왠지 자신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겠지만, 뭔가 아주 위험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여완완이 대녕 제국으로 돌아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분명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한 나라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세계적인, 이 세상의 운명이 걸린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하지만 여완완이 먼저 입을 열지 않는 한, 두변은 절대로 먼저 화두를 던질 생각이 없었다.
“다른 일이 없다면 먼저 갈게.”
두변이 말했다.
두변은 곧 사천과 호남을 완전히 장악하게 될 것이다.
파란 정석과 붉은 정석의 광맥을 캐는 것도 비밀리에 진행해야 하고, 에너지 무기의 연구 개발도 계속 진행해야 했다.
지금 시급한 일은 영덕제를 파멸시키는 것이고, 영도현의 사생아를 제위에서 끌어내리는 것이었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인물은 태후였다. 태후가 진실을 말해야만 하고, 그녀만이 영덕제를 파멸할 수 있었다.
여완완이 밀실에 남아서 혼잣말했다.
“부군, 이제 내가 얼마나 대단한 요녀인지 보여줄게요.”
경성 안.
두회의 말에도 영덕제가 단호한 모습으로 말했다.
“두 애경, 짐이 딱 한 번만 더 말하겠소. 짐을 향한 모후의 사랑은 그 누구보다 크고, 죽는 한이 있어도 짐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오.”
“태후가 죽지 않는다면, 여론으로 두변을 확실히 매장할 치명타가 없잖습니까. 계속 불쌍한 연기를 하고 계신 건 압니다. 두변에게 마음을 돌리라고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서 세상의 동정을 사긴 했지만, 아직 화력이 부족합니다. 두변이 사천과 호남에 출병한 건 반역으로 볼 수 있지만, 그가 확실히 반기를 들었다는 행동을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가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난신적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지만, 그건 여론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사람들은 두변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건 알지만, 그가 여태 쌓아온 업적을 무시하지 못합니다. 두변을 확실히 매장하려면, 선황처럼 인자한 황제의 모습을 보이면서, 돌발적이고 치명적인 사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폐하께서 두변과 확실히 결렬할, 그의 모든 작위를 거두고 그를 명명백백하게 역적으로 만들, 천하가 그를 토벌할 만한 사건 말입니다.”
황제는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두회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 두변의 모습은 확실히 여론이 과장한 게 컸다. 두변이 여태 쌓은 공로가 너무 커서 사천과 호남에 출병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아직 두변의 영웅적인 모습이 남아 있었다.
두변을 향한 여론전이 거세지자, 두변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두변을 위해 대변하진 못하고 대신 그를 위해 침묵했다.
두회가 말했다.
“태후만 죽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는 태후가 친필 유지를 남기고 자결한 것으로 꾸미면 됩니다. 태후는 두변이 철수하길 바라서 자결한 거라고요. 이렇게 되면 천하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고, 폐하께서도 두변과 결렬할 충분한 이유가 생깁니다.”
황제가 눈을 감고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다시 천천히 눈을 떴다.
“아니, 짐의 생각엔 영설이 그 역할을 하면 되겠다 싶소. 영설을 죽이고 영설이 자결한 것처럼 위장하면 되오. 부군 두변이 철수하길 바라는 마음에 자결한 거라고 유서를 남기면 된단 말이오. 두변은 당연히 영설의 죽음 때문에 철수하진 않겠지만, 충분히 사람들의 공분을 살 것이오. 태후만큼의 영향력은 아니겠지만, 짐의 누이니 짐이 이성을 잃고 격노하기엔 충분하오. 영설이 죽으면, 짐은 역적 두변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그의 명성을 지옥까지 끌어내릴 것이오.”
두회는 영설이 두변의 부인이긴 하지만, 태후보다 영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이 얘기는 이렇게 끝내도록 하시오. 이건 짐의 지의요. 영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고, 모든 사람이 영설이 자결한 것이라 믿게 하시오.”
영설 공주는 총독 자리에서 물러난 뒤, 바깥세상과 격리된 채 진서왕부 안에서 감금당하고 있었다.
며칠 뒤, 한 사람이 소리 없이 진서왕부 안으로 들어와서 영설 공주와 서재에서 비밀스러운 만남을 가졌다.
비밀스러운 사람은 영종오 대종사였다.
“대종사, 원인을 찾으셨나요?”
영설 공주가 물었다.
영종오가 오늘 밤 비밀리 영설 공주를 보러 온 건 우연이었다.
두변과 영덕제가 결렬하기 전, 영종오 대종사는 태후의 부탁을 받아 영설의 몸조리를 해주고 있었다.
영설 공주의 몸은 무척 건강한데, 무슨 몸조리가 필요할까?
영설 공주는 두변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거의 매일같이 뜨거운 시간을 가졌건만, 몇 개월이 지났는데도 회임 소식이 없었다.
그런데 예상 선자는 두변과 한 번 만에 아이를 가지지 않았나.
이도진도 두변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지만, 그녀는 두변을 항상 호위해야 하기에 일부러 피임했다.
두변의 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정상 이상으로 보이니, 영설 공주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영종오 대종사도 영설의 맥을 짚어봤지만, 아무런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다 성화교의 험혈술(驗血術)을 통해서 영설의 피에 아주 이상한 게 있다는 걸 발견했다.
영설의 혈액 속에서 발견된 건 맹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기운이었고, 게다가 전체 혈액에 비해선 아주 미미했다.
그런데 그 극소량의 기운이 영설 공주의 회임을 막고 있었다.
배아가 막 만들어졌을 땐 극도로 연약하고 무방비한 상태인지라, 극소량의 기운으로도 배아를 없앨 수 있다.
누군가가 영설이 회임하지 않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탁몽(濁夢)이라고 하는데, 회임을 피하는 약으로 쓰이는 무척 희귀한 정석입니다. 입자가 무척 고운 게 특징이라, 혈액에 녹으면 거의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영종오 대종사가 분향을 하나 꺼내면서 말을 이었다.
“누군가가 탁몽 분말을 분향에 섞었습니다. 그런데 명상하실 때마다 분향을 피우시니, 그게 점차 쌓여서 회임 능력을 잃게 되신 겁니다. 제가 정신력을 극대화했음에도 분향에 이 탁몽 기운이 있는 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제가 분향을 열 개 넘게 으깬 뒤에야 탁몽 정석 분말을 추출할 수 있었고, 제 의심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영설 공주의 안색이 급변했다.
도대체 누가 영설 공주의 회임을 원치 않은 것이고, 그녀가 두변의 아이를 가지기 바라지 않는 것일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누구나 1초 만에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영설 공주가 물었다.
“그럼 만회할 수가 있나요? 저 정말 아이를 가지고 싶어요.”
“만회할 수 있습니다. 이제 더는 이 분향을 쓰지 말고, 매일 신진대사를 통해 신체 밖으로 배출하면 됩니다. 그렇게 몇 달을 요양하면,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몸이 됩니다. 신진대사라는 단어는 두변이 제게 알려준 것이고, 꽤 믿을 만합니다.”
영설 공주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녀의 미간은 통 펴지지 않았다.
여인이 회임하지 못한다는 건, 이 시대에선 굉장히 큰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지금 부군 두변이 난신적자가 되었고, 대녕 제국이 위급한 상황이니, 그녀가 몸을 잘 요양한다고 해도 두변과의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고마워요, 대종사.”
영설 공주가 말했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몸조심하십시오.”
영종오가 예를 갖춘 뒤, 다시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