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01화 (501/648)

501장: 유전

시간은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변은 여완완에게 영덕제가 천윤제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정보를 들은 뒤, 곧바로 그게 사실인지 검증에 나섰다.

성화교의 최고기밀이라서 틀린 정보는 아니겠지만, 직접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야만 했다.

그리고 유전자 문제를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갑자기 기음음, 기염염, 그리고 영도현에 관한 일화가 떠올랐다.

기음음과 기염염은 쌍둥인지라, 겉으로는 완전히 똑같아서 다른 색의 치마를 입어야만 두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평소 기음음은 검정색 치마를, 기염염은 붉은색 치마를 입었다.

영도현이 좋아하던 사람은 기염염이었고, 기음음은 사람이 너무 차가워서 마음이 가지 않았다고.

기음음은 영도현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녹색 치마를 입었고, 일부러 영도현의 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그때 영도현이 기음음을 기염염이라고 불렀다나.

당시에 기음음은 왜 영도현이 자신을 기염염이라고 부르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화를 내면서 자리를 떠났다고 했다.

당시 두변도 이 이야기를 들을 때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영도현이 기음음을 기염염이라고 생각한 이유를 불현듯 알아냈다.

기음음이 검은색 치마를 입다가 녹색 치마를 입었더니, 영도현은 그녀를 기염염으로 착각했다.

그의 눈에는 녹색 치마와 붉은색 치마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영덕제도 적색맹(赤色盲)이 있는 걸까?

물론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영덕제가 색맹처럼 행동한 적이 없기도 했고, 영설이나 선황이 그가 색맹이라는 얘기를 한 적도 없었다.

물론, 영설 공주와 선황이 영덕제의 색맹증을 알고 있었다고 해도 일부러 그 이야기를 하진 않을 것이다.

두변이 동창 자료를 뒤져보았지만,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기록이 있는 것도 이상했다.

영덕제가 태자일 때 이미 동창의 주인이 되었으니, 동창이 주인의 기밀을 공식적으로 기록할 리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두변은 여여해의 부인 여황에게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여황은 오랫동안 회상하다가 두변에게 말했다.

“주군, 생각났어요. 영덕제의 눈에 문제가 있던 건 사실이에요. 당시에 제 부군이 반역을 일으키기 전에 저, 여담, 천천을 데리고 경성에서 태자와 태후를 뵌 적 있죠. 그때 우리 여씨가 생산한 납포(蠟布)를 태후마마께 바쳤었어요. 그러니까, 선황의 모친 말이에요. 당시에 태후마마께서 녹색 납포가 참 예쁘다고, 꼭 봄의 싱그러운 나뭇잎 같다고 하셨죠. 태후마마께서 태자에게 녹색 납포를 가까이 가져와 보라고 하셨었는데, 태자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붉은 납포를 향해 손을 뻗었어요. 그때 황후께서 태자에게 눈짓했고, 태자가 그제야 녹색 납포를 쥐고 태후마마께 가져다드렸죠.”

여황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당시에는 태자가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어요. 조금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죠. 그래도 기억에 남은 걸 보니, 꽤 인상 깊었나 봐요. 주군께서 물어보셔서 생각이 나서 말씀 드려요.”

확실한 증거였다.

적색맹은 유전으로, 선황은 적색맹이 없었다.

영도현이 적색맹이 있고 영덕제도 적색맹이 있다는 것은, 여완완의 말대로 영덕제가 선황의 친자가 아니라, 영도현의 자식이라는 말이었다.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낸 두변은 즉시 심복 사자를 경성과 안남 왕국으로 보냈다.

안남 왕국 순화부.

송결공은 두편의 친필 서신을 받았다. 두변은 서신에서 영덕제가 선황의 친자가 아니라 북명검파 종주 영도현의 사생아라는 놀라운 비밀을 알렸다.

게다가 영도현이 대녕 제국의 강산을 뒤집고, 대녕 제국의 황위를 되찾으려는 야욕이 있다고 말했다.

두변은 송결, 여창 국왕에게 장소를 정해서 같이 거사를 도모하자고 말했다. 영덕제의 출생의 비밀을 만천하에 알린 뒤, 그를 황위에서 끌어내리자는 말이었다.

송결공은 서신을 읽은 뒤, 몸을 부르르 떨면서 화를 냈다.

여창 국왕은 두변의 서신을 보고는 경악해서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창피함도 모르는 놈 같으니. 내가 눈이 제대로 삐었었구나. 두변, 이 자식을 제대로 잘못 봤어. 영덕 천자께서 그놈에게 하늘과도 같은 은덕을 베푸셨단 말이다. 폐하께서는 두변에게 열토봉왕하고, 몇 차례나 허리를 숙여 예를 올렸으며, 최고의 예우로 그를 대해주셨다. 두변이 사천과 호남에 출병을 했을 때도, 폐하께서는 두변을 질책하지 않고 두 성의 순무를 면직시키기까지 했다. 폐하께서 두변을 이리도 포용해주시는데, 두변 그 파렴치한 놈은 이런 더러운 수작으로 폐하를 욕보여?”

“의부, 제 부군은 절대로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송결공이 분노해서 소리치자 혈관음이 말했다.

“이게 거짓말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이냐? 영덕 천자는 누가 봐도 선황과 닮았다. 두변이 이런 식으로 폐하를 욕보이는 건, 지금의 폐하뿐만 아니라, 선황까지 욕보이는 짓이다. 정말 참을 수가 없구나. 그놈은 선황과 폐하의 은혜를 저버리고, 양심도 버린 놈이다. 나는 그가 사천과 호남에 출병한 건, 세력을 확장하려는 욕심 때문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놈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악질이고 위험한 놈이로구나.”

혈관음이 저도 모르게 눈물을 쏟으면서 말했다.

“의부, 제 부군을 그렇게 욕하지 마세요. 부군은 의부의 충정을 믿기에 이 비밀을 알려준 걸 거예요.”

진남공 송결이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혈관음을 쳐다보았다.

“이놈은 나를 바보로 아는 것이다. 관음, 너는 내 의녀이고, 내가 너를 키웠으니 내 친딸과 다름없다. 나는 네가 이런 난신적자와 어떠하게라도 관계가 있는 걸 허락할 수 없다. 그놈과 갈라서도록 해라.”

“안 돼요.”

혈관음이 소리치자, 진남공 송결이 냉랭한 눈빛으로 말했다.

“오늘부로 내겐 너 같은 의녀가 없다!”

진남공이 곧바로 두변의 서신을 불태워버렸다.

“혈관음, 가서 두변에게 말하거라. 정도껏 하라고. 만약 그가 정말로 경성에 출병한다면, 우리는 적이 되는 것이라고 알려라.”

옆에 있던 여창 국왕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창은 예민하고 세심한 사람이지만, 두변이 제기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말을 찾아내지 못했다.

“진남공, 그래도 두변과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어떻소? 어떤 일들은 얼굴을 봐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법이오.”

“난신적자와 나눌 이야기는 없습니다.”

여창 국왕의 말에 진남공이 격노하면서 대답했다.

며칠 전의 경성, 영덕제가 태후를 시해하기 전.

동창 대도독 이문회도 두변의 밀신을 받았다.

그는 두변의 서신을 읽자마자 안색이 급변했고, 눈을 지그시 감고는 두변의 말을 되새겼다.

이문회는 의자 두변이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그는 두변이 유경 왕국에서 돌아온 뒤로 사람이 철저하게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변은 키가 더 커지고, 온몸에서 패왕의 기개가 넘쳤다.

이문회로서는 두변이 패왕의 기개를 가지게 된 게 탐탁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문회는 영원히 대녕 제국에 충성을 다하고, 황제 폐하에게 충성을 다하는 신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신하에게 패왕의 기개가 있다? 그렇다면 그건 군자에 대한 불충인 것이다.

이문회는 황제에 대한 충심이 충만한 만큼, 두변에 대한 부자의 정도 컸다.

그래서 이문회는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어서 선황과 영덕제의 생김새를 비교했다.

‘두 사람은 누가 봐도 외모가 닮았는데, 영덕제가 선황의 친자가 아니라는 말을 누가 믿을까? 그런데 두변은 왜 이 밀신을 내게 보낸 걸까?’

이문회는 무척 속상하고 슬펐다.

이문회가 두변을 떠나 경성으로 돌아온 건, 두변이 황제의 성지를 무시하고 사천과 호남에 출병한 것 때문이었다.

두변이 황명을 거역하는 모습은 흡사 역적과도 같아서 이미 신하의 선을 넘은 것이라 생각했다.

이문회가 경성으로 온 또 다른 이유는 두변과 황제 사이의 긴장감을 완화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지금 보니, 모든 게 다 헛수고인 모양이었다.

두변이 영덕제의 혈맥 정통성을 확인하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무척이나 심각한 상태였다.

그날, 이문회는 영덕제를 찾아가 큰절을 올리면서 말했다.

“신, 동창 대도독직을 내려놓고 선황의 곁을 지키고자 합니다.”

영덕제가 물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든 것이오?”

“신은 두변의 의부로서, 당연히 의심받을 짓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신은 이미 심신이 지쳐서 동창 대도독직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짐은 자네가 두변이 대녕 제국과 점점 더 멀어져가는 걸 느끼고 절망에 빠졌다는 걸 알고 있소. 자네도 알고 있다시피, 두변은 짐의 은인이자, 대녕 제국의 은인이오. 짐은 대녕 제국의 기둥을 잃고 싶지 않소. 그러니 자네가 두변에게 군을 철수하라는 서신을 써보시오. 지금이라도 철수한다면, 짐이 그간의 죄를 묻지 않겠다고 말이오. 어떻소?”

이문회가 큰절을 올리면서 말했다.

“신, 폐하의 은덕에 감사드립니다.”

이문회는 두변에게 진심이 담긴, 피 끓는 열정이 담긴 서신을 썼다.

그는 두변에게 적에게만 좋은 일을 하지 말라고, 당장 철수하라고 타일렀다.

이문회는 서신에서 또 한 번 강조했다.

만약 두변이 북상해서 대녕 제국의 경성을 공격하는 날이 온다면, 그날이 바로 자신이 죽는 날이라고.

그때 제 머리를 잘라서, 경성 성밖에 걸어놓고는 두변의 군대가 경성을 공격하는 걸 지켜보겠다고.

다시 현재 시점.

태후와 영설 공주가 자결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문무백관은 경악했고, 경성의 백성들은 진노했다.

원래 경성에는 두변을 옹호하며 침묵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들은 두변이 사천과 호남에 출병한 건 잘못된 일이지만, 결코 용서받을 수 없을 정도의 난신적자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태후와 두변의 부인 영설 공주가 자결했다.

두 사람은 두변과 굉장히 가까운 사람들로, 이들이 정말 극한의 절망을 경험하지 않은 한 자결할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두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진서왕 두변은 정말로 반역을 일으키려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두변은 그렇게 진정한 난신적자가 되었다.

경성 백성들은 두변에게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그를 향해 분노의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다.

사람들은 진서왕부로 몰려가서 돌멩이를 던졌고, 어떤 사람들은 진서왕부에 불을 지르기까지 했다.

몇몇 이야기꾼들은 ‘대녕 제국 간신전’까지 펴낼 기세였다.

간신전에는 이영도, 이원, 두변의 이름이 있었고, 두변은 가장 큰 죄를 저지른 간신으로 기록되었다.

방계의 여론 세력은 이 분위기를 타서 더욱 거세게 여론을 조작했다.

불길 같은 분노와 여론이 들끓으면서 최후의 폭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무백관은 사흘 내내 황궁에서 통곡하며 영설 공주와 태후의 혼백을 기렸다.

두변을 탄핵하라는 상주서가 거센 눈발처럼 세차게 황궁으로 몰아쳤다.

어떤 상주서에서는 남경의 방계에게 출병을 요청해서 역적 두변을 토벌하라는 말까지 적혀있었다.

원래 영덕 조정에서는 방계는 금기와도 같았다. 선황 대에서 제일 큰 적이 바로 방계 세력이기 때문이었다.

조정의 관리들도 방계 세력이 전면 퇴각한 덕에 다시 원래 자리를 되찾고 조당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방계의 병사들로 두변을 진압하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음에도 큰 파장은 없었다.

도리어 여러 상주서에서 강남의 방계 세력이 출병해서 두변을 토벌하라는 글귀가 점점 더 많아졌고, 이 내용을 작성하는 관리의 직위도 점점 더 높아졌다.

상주서는 날이 지날수록 계속 쌓여만 갔다.

영덕제는 사흘 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고 태후의 관 옆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온몸이 초췌해지고 넋이 나간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눈물이 말라붙을 때까지 통곡하다가 마지막엔 피눈물까지 흘렸다.

상심이 너무 커서 피를 세 번이나 토하다가 혼절했고, 깨어나면 다시 태후의 관을 지켰다.

그러니 어느 군신이 황제의 효심에 크게 감동받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은 선황보다 지금의 황제가 더욱 효심이 지극하다고 말했다.

군신은 이마를 땅에 찧으면서 황제에게 제발 뭐라도 먹으라고, 물이라도 한 모금 마시라고 간청했다.

군신들의 이마에 피가 흐를 때쯤, 황제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울면서 죽을 반 그릇 먹었다. 하지만 채 다 먹기도 전에 다시 구토하고, 또 피를 토하면서 군신을 놀라게 했다.

사흘 뒤, 초상이 끝났다.

황제, 문무백관, 경성의 공훈 귀족들이 전부 흰색 상복을 입었다.

효자 황제는 인혼번(引魂幡: 혼백을 불러올 수 있다는 깃발)을 들고 가장 앞에서 애도 행렬을 이끌었다. 공훈 귀족 몇 명이 태후의 관을 들고 황제의 뒤를 따랐고, 태후의 혼백을 기리는 사람들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태후와 영설 공주는 능묘를 따로 짓지 않고 선황의 묘 옆에 함께 안장될 예정이었다.

“모후, 돌아오십시오!”

“모후, 돌아오십시오!”

황제의 목소리는 꼭 두견새가 피를 흘리며 우는 것처럼 처량하기만 해서, 듣는 이들도 황제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떨궜다.

초상 행렬은 꼬박 몇 시간을 걸어서 황릉에 도착했다.

영덕제가 마지막 조문을 읽었다. 피눈물이 날 정도로 서글프고 비통한 조문으로, 황제는 너무도 비통한 나머지 침에서까지 피가 섞여 나왔고, 그 피가 조문을 붉게 물들였다.

황제가 조문을 다 읽자, 신하들 중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난신적자 두변은 누구나 죽여도 된다!”

“간신 두변. 하늘을 노하게 하고, 만인의 원한을 샀다!”

“나라를 훔치려고 한 두변은 죽어서도 묻힐 곳이 없다!”

영덕제가 고개를 들고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두변이 경성에서 짐에게 무례함을 범한 건 그럴 수 있다. 그는 큰 공을 세운 공신이고, 짐이 그에게 은혜를 입었으니, 그를 열토봉왕을 해주며 유래에 없는 영예를 안겨줬다.

두변이 사천과 호남에 출병했을 때도 짐은 참았다. 그를 질책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성지을 내렸지.

짐은 두변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걸 해줬다.

대녕 제국은 두변에게 큰 은혜를 입었고, 짐도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줬다. 심지어 짐은 두변이 짐이라는 황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가 반역을 일으키지 않아도 되니, 그가 대녕 제국에 충성을 다할 수 있도록 짐이 죽어주겠다고도 말했다. 두변이 짐을 죽이고자 한다면, 짐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짐의 모후께서 승하하셨고, 짐의 누이도 죽었다. 그들은 두변이 철수했으면, 그가 반역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수차례 간언했지만, 두변에게 치욕적으로 거절을 당하였다. 태후마마와 영설 공주는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하여 죽음으로써 두변을 간언하기로 결심했고, 그래서 짐을 버리고 자결하였다.

두변, 너는 짐을 해칠 수 있고, 짐을 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왜 짐의 누이를 죽음으로 몰아야만 했느냐? 영설은 네 부인이었다. 네놈은 어째서 짐의 모후까지, 네놈을 아들로까지 생각했던 모후까지 죽음으로 몰아야만 했느냐.

짐은 더는 참을 수 없다.

짐이 천하에 알린다. 두변의 모든 작위와 관직을 박탈하고, 서민으로 좌천시켜라.

두변은 대녕 제국의 난신적자이니, 천하의 모든 정의로운 사람은 그를 보는 즉시 처형하도록 하라.

천하의 모든 군대는 서남을 공격하고, 대녕 제국의 땅을 수복하라.

두변에게 소속된 모든 관리와 장군, 그리고 제국의 관리들에게 말한다. 자네들이 두변과 얼마나 가까운 사이였든 간에, 즉시 두변과 명확하게 선을 긋고 두변 역적과 결렬하여라.

두변의 군대는 강하다. 하지만 짐은 득도다조(得道多助)의 이치를 믿고, 정의는 필승하리라 믿는다. 대녕 제국은 결국 승리할 것이다!”

황제가 말을 끝내자, 신하들이 큰소리로 외쳤다.

“대녕 제국 필승! 대녕 제국 필승!”

이때, 누군가가 대열 밖으로 나와서 흰색 두봉을 젖혀 태후의 관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양강 총독 두회, 태후마마께서 가시는 길을 배웅하고자 왔습니다. 태후마마, 부디 가시는 길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두회가 정중하게 큰절을 올렸다.

영덕제는 효자의 신분으로 두회에게 답례했다.

이어서 양강 총독 두회가 말했다.

“신, 폐하께 올릴 상주가 있습니다.”

“말하시오.”

“신, 민월 총독, 호북 순무, 안휘 순무와 연명하여 두변을 탄핵하고자 합니다.”

두회는 두변의 19가지 대죄를 읽은 뒤,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두변은 본조(本朝) 2백 년 이래, 갈기갈기 찢어죽이는 게 마땅할 희대의 역적입니다. 신 등은 복건, 광동, 강서, 강소, 절강, 호북, 안휘 등 성의 군대를 집결하여, 역적 두변을 토벌하고, 잃어버린 대녕 제국의 땅을 되찾아오고자 합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 숨을 죽였다.

엄청난 일이면서, 위험한 신호였다. 방계가 뜻밖에도 자발적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두변을 토벌하겠다고 하는 건가?

영덕제는 사람들의 표정을 모르는 척 분개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난신적자이니 누구든 죽일 수 있다. 짐이 말했듯이, 역적을 제거하는 데엔 입장을 가를 필요도 없고, 이전의 일들로 주저할 것이 없다. 두변을 제거하지 않는 한, 대녕 제국이 평온한 날이 없을 것이다.”

“국적(國賊) 두변을 제거하라.”

“난신적자는 누구나 죽일 수 있다.”

누군가가 먼저 외치기 시작하자, 많은 신하들이 따라 외치기 시작했다.

영덕제는 태후와 영설 공주의 장례식을 두변에 대한 토벌대회로 바꿔버렸다.

이제 만천하가 두변을 공격하는 형세가 시작되었다.

영덕제가 남쪽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말했다.

‘두변, 들리냐? 네놈은 이미 여지없이 참패했다. 네 제삿날이 코앞이구나. 짐은 네놈이 죽어도 묻힐 곳이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죽여주겠다.’

이때, 어디선가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쾅! 쾅! 쾅!

태후의 관에서 나는 소리였다.

처음엔 황제도 자신이 환청을 듣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신하들의 안색이 사색이 된 걸 보는 순간, 이게 환청이 아니라 태후의 관 안에서 실제로 나는 소리라는 걸 눈치챘다.

영덕제가 잠시 숨을 참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하관하라. 어서!”

그러자 몇몇 공훈 귀족들이 서둘러 태후의 관을 묘 안에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어디선가 몰려온 기이한 힘이 태후의 관 상판을 그대로 뜯어냈다.

태후는 힘이 없어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상판을 뜯어낼 수 없었다.

이어서 더욱 모골이 송연한 장면이 펼쳐졌다.

이미 죽은 태후가 관에서 몸을 일으킨 것이다.

‘태, 태후마마께서 이미 승하하신 게 아니었어?’

‘태후마마께서 다시 살아나셨어?’

태후가 영덕제를 가리키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이 불효자식, 감히 친어미를 시해하다니! 그 낯짝으로 어찌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 하는 것이냐!

대신들은 들으라. 영덕제는 선황의 친자가 아니다. 영덕제는 북명검파 종주 영도현이 강제로 애가를 간음하여 생긴 사생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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