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04화 (504/648)

504장: 이문회의 통곡

백성들은 선동되기 쉬웠고, 무척 단순한 사람들이었다.

여론이 두변을 미친 듯이 공격할 때, 이들은 여론에 따라 두변을 욕하고 그를 국적 취급했다. 두변의 초상화에 침을 뱉고, 남의 집에 쳐들어가서 두변의 조각상을 부수고, 집에 걸린 초상화를 불태우는 등,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두변을 모욕했다.

평소에 두변을 누구보다 증오하기에 부른 것인데, 보지 말아야 할 걸 봐버렸다.

백성들은 자신이 창피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자신들이 그렇게 욕한 진서왕은 정의로운 사람이었고, 영덕제야말로 양심도 버린 파렴치한 불효자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황제에게 퇴위하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죽여라!”

영덕제가 이를 부득 갈면서 명령했다.

2만여 명의 무사가 칼을 쥐고 무고한 백성들을 향해 달려갔다.

대녕 제국의 황릉이 일순간 피바다가 되었고, 수천 명에 달하는 백성들이 눈 깜빡할 사이에 전부 목숨을 잃었다.

영덕제는 허울만 남은 황제가 되고 싶지 않았고 방계의 꼭두각시가 되기 싫어서 자리에 있던 대신과 공훈 귀족을 전부 죽이진 않았다.

하지만 잠시 고민하던 그는 자리에 있는 모두를 죽여야만 이 비밀을 지킬 수 있음을 깨달았다.

“안 됩니다.”

황제의 생각을 눈치챈 두회가 담담하게 그를 제지했다.

영덕제의 얼굴에 경련이 일더니 더욱 목청을 높여서 사람들에게 물었다.

“조금 전의 그 여인은 황태후가 아니라 두변이 보낸 요녀다. 맞느냐? 맞느냐 말이다!”

스릉, 스릉.

무사들이 검을 들고 대신과 공훈 귀족들을 향해 조금씩 다가갔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자리에 남은 대신들은 죽음 앞에서 타협을 선택했다. 기개가 있고 충직한 대신들은 조금 전에 이미 죽어버렸다.

대신들이 줄지어 무릎을 꿇고 큰소리로 외쳤다.

“맞습니다. 조금 전의 여인은 황태후가 아니라 요녀입니다. 요녀요!”

영덕제가 또 물었다.

“두변과 같은 편인 이문회가 경성에 잠입했고, 장례식에서 대학살을 저질렀다. 그는 수백 명 대신과 무고한 백성 수천 명을 죽였다. 짐의 말이 맞느냐?”

문무백관과 제국의 공훈 귀족들이 재빨리 머리를 조아리면서 외쳤다.

“맞습니다! 두변과 같은 편인 이문회가 장례식을 습격해서 대학살을 저질렀고 무구한 대신과 백성들을 죽였습니다!”

대신들과 공훈 귀족들은 무사들의 시퍼런 검 앞에서 힘없는 메추라기처럼 벌벌 떨었다. 이들의 마음속에서 영덕제는 이미 짐승보다도 못한 악귀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영덕제가 명령했다.

“동창 대도독 이문회, 진남공 송결이 두변과 작당하여 대녕 제국을 뒤엎으려고 했다. 이는 천벌 받을 죄에 해당하니, 송결, 이문회의 모든 작위와 관직을 박탈한다. 동창, 여경사, 대리시는 연합하여 죄인들을 잡아들이고, 이에 반하는 자가 있다면 즉시 처형하도록 하여라.

사례감 병필 태감 풍보보를 동창 대도독으로 새로이 임명한다.”

대환관 한 명이 앞으로 나서서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명, 받들겠습니다.”

영덕제가 큰소리로 외쳤다.

“양강 총독 두회는 명을 받들라.”

두회가 무릎을 꿇었다.

“광동, 복건, 절강, 강소, 강서, 안휘, 호북 등 모든 행성에 군대를 집결하여 평서(平西) 대군을 만들어라. 군대는 즉시 서남을 공격하여 두변을 죽이고 대녕 제국의 강산을 되찾아라. 양강 총독 두회를 평서 대군 주장군으로, 고정을 평서 대군 부장군으로, 광동 제독 원천조를 평서 대군 대장군으로 임명한다.”

두회가 머리를 조아리면서 대답했다.

“신 등, 명 받들겠나이다.”

동창 대도독부.

이문회는 황태후의 장례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황태후와 영설 공주의 죽음을 알게 된 뒤, 모든 게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제는 두변을 대녕 제국의 난신적자로 정식 발표하였다.

이문회는 두변에게 서신을 써서 지금이라도 철수하라고 했지만, 아무런 답신을 받을 수 없었다.

자신이 이처럼 대녕 제국에 충성을 다하려 하는데, 제 의자는 오히려 역모를 꾀하고 있으니 창자가 뒤틀리듯 분노하면서 슬펐다.

그래서 자신이 죽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제가 살아서 제 의자인 두변이 반역을 일으키고, 군대를 이끌고 경성을 공격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싶지 않았다.

이문회는 어젯밤에 황태후를 기리러 갈 때 황제와 대면해서, 황태후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으며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영덕제는 이문회가 자결을 결심했다는 걸 눈치챘지만, 제지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무것도 모른다는 모습으로 그를 위로했다.

“애경, 몸이 불편하다면 굳이 참석할 필요 없소.”

이문회는 이미 독주를 준비해뒀다.

황태후가 매장되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독주를 마시고 모든 고통을 끝내고 싶었다.

원래는 두변에게 남길 유서를 쓰긴 했지만, 어떤 말을 써도 신통치가 않아서 그 유서는 태워버렸다.

그리고 혼자 조용히 서재에 앉아 마지막 순간을 기다렸다.

그 기다리는 시간 내내 오장육부가 타들어가듯 아파왔다. 그저 당장이라도 독주를 마시고 모든 걸 끝내고 싶었다.

“두변, 왜 그래야만 했느냐? 선황께서 네게 얼마나 큰 은덕을 베푸셨는데. 이 아비는 저승에서도 선황을 뵐 면목이 없구나.”

이문회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독주가 든 잔을 들었다.

쨍그랑!

그가 막 독주를 마시려는 찰나, 날카로운 검기가 그가 쥔 잔을 깨트렸다. 영종오 대종사가 방 안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벼락처럼 호통쳤다.

“이 아둔한 사람 같으니! 이건 어리석은 충성이다!”

이문회가 화들짝 놀랐다.

“영사께선 여기 무슨 일이십니까?”

“자네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제 의자가 반역을 일으키겠다는데, 제가 이 세상에 살아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영종오가 답답하다는 듯이 언성을 높였다.

“반역을 일으킨 건 자네의 아들이 아니라 영덕 위제다. 그는 선황의 친자식이 아니라 영도현의 사생아란 말이다. 게다가 영덕 위제가 자기 친모인 태후를 시해했다.”

이문회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소리쳤다.

“그럴 리 없습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영사께서는 두변의 스승이시지만, 저는 두변의 의부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폐하를 욕보이는 말씀을 하시면 안 되지요. 영사께서도 반역을 일으키시려는 겁니까?”

영종오가 두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총명하고 과감하던 이문회는 어디로 간 것이냐? 교활하고 냉랭하던 이문회는 어디로 갔냔 말이다. 여씨를 상대할 때나, 방씨를 상대할 때는 그렇게 침착하고 영명하더니, 어찌 영덕 위제 앞에서는 바보가 되는 거냔 말이다. 자네는 스스로가 노비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일찍부터 자신을 노비로 취급했다. 그래서 황제를 무조건 신임하고 무조건 복종하는 거겠지. 나 영종오는 자네와 달라. 내가 선황께 충성했던 건, 그를 인자한 군주로 모시기 전에 그를 벗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덕 위제는 처음 봤을 때부터 영 마음에 안 들어서 군주로 모신 적 없어!”

이문회는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완전히 뒤엎어지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아, 아닐 겁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문회는 무슨 일이 있어도 황제가 최우선인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목숨과 영혼을 바쳐 대녕 제국에,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천윤제가 제위에 있을 때, 그는 천윤제에게 모든 충성을 바쳤고, 영덕제가 제위에 오른 뒤에는 영덕제에게 충성을 다했다.

이문회는 자신이 그토록 아끼는 두변에게 등을 돌릴 정도로 충효가 우선인 사람이었다.

이문회에게 황제는 신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영종오가 그런 신이 자신의 모친을 시해하고, 영도현의 사생아라고 말한다. 이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이토록 아둔하고 멍청한 놈을 보았나. 자네가 나를 믿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굳이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자네가 이렇게 독주를 마시기 직전에야 내가 나선 이유를 모르겠나? 조금만 기다려보아라. 내 말을 믿지 않아도, 그녀의 말은 믿을 테니.”

잠시 뒤, 한 여인이 이문회 앞에 나타났다. 여인이 두봉을 벗은 뒤, 아름다운 얼굴로 이문회를 쳐다보았다.

영설 공주였다.

이문회는 다시 경악하고 말았다.

‘영설 공주는 이미 자결했는데?’

“나는 자결한 게 아니라, 영덕 위제가 사람을 보내서 암살한 겁니다. 영덕 위제는 부황의 핏줄이 아니라, 영도현의 사생아예요.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모후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위제를 보호하기 위해서 모후께선 줄곧 입을 닫으셨어요. 하지만 위제가 나를 죽였다는 걸 알게 되자 모후께선 위제와 결별하려 하셨는데, 위제가 모후께 독약을 먹여서 모후를 시해하는 천륜 대죄를 저지른 겁니다.

사안이 급박합니다. 방계의 군대가 곧 경성 전체를 폐쇄할 거예요. 그러니 얼른 부군으로 하여금 새로운 군주를 세우게 해야 합니다.”

영설 공주의 말은 무척이나 빨랐다.

이문회는 영설 공주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지만, 영설 공주의 말이기에 믿어야만 했다.

이문회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영덕 천자가 영도현의 아들이라고요? 증거가 있습니까?”

영설 공주가 대답했다.

“아주 간단하고 명료한 증거지만, 모두가 주의하지 않은 게 있습니다. 영덕 위제는 이중턱이 있지만, 모후와 부황께는 이중턱이 없습니다. 하지만 영도현은 이중턱이 있어요.”

이문회는 두 다리에 힘이 풀려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두변이 사천과 호남에 출병한 뒤로 그의 머릿속은 계속 흐릿하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 이문회는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이 맑아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영덕제의 반응이 이상하긴 했다. 특히 어젯밤엔 자신이 자결할 것이라는 걸 분명히 눈치챘음에도 모른척했다.

드디어 모든 게 명료해졌다.

자신이 두변의 의부이니, 만약 자신이 자결하게 된다면 그 죄도 두변에게 뒤집어씌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문회가 두변과 선을 긋기 위해서, 의자 두변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자결했다고 말이다.

그때가 되면, 이문회의 죽음도 두변의 죄가 될 것이다. 두변은 반역을 위해서 부인의 죽음도, 의부의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문회가 친자식처럼 여기던 두변은 반역을 위해 자신의 의부를 죽음으로 몰고, 천륜을 어긴 짐승만도 못한 죄인이 될 것이다.

영덕제는 이문회가 충신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가 자결하려는 걸 좌시했다.

이게 과연 인자한 군주의 모습일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이문회 자신이 바로 이중턱이었고 그의 부친도 이중턱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을 모두 떠올렸다. 그리고 이중턱인 사람들은 부모 중 한 명이 꼭 이중턱이라는 사실도 떠올렸다.

누가 이런 사실을 유심히 관찰이나 했을까.

영종오의 말이 맞았다.

이문회는 황제를 향한 충성심이 극에 달해서 황제와 관련된 일은 옳고 그름을 아예 판단하지 않았다. 황제의 결정에 의심을 가지는 건, 황권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문회 자신은 황권의 죄수와도 같았다. 밖에서는 용맹하고 지혜롭다지만, 황권의 범위에 들어가기만 하면 갑자기 사람이 무지몽매해졌다.

다행히도 영설 공주가 직접 나서서 이문회의 혼탁한 정신을 깨워줬고, 실상을 마주하게 했다.

이문회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눈물에는 분노, 고통스러움, 그리고 두변에 대한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악독한 자가 있을까?

세상에 이렇게 파렴치한 자가 있을까?

자신이 영도현의 사생아를 위해서, 모친을 시해한 놈을 위해서 자기가 제일 아끼는 의자를 버리려 했다니.

그리고 제일 무서운 건, 자신의 죽음이 이 모든 것에 마침표를 찍을 도구가 되리라는 점이었다. 자신의 죽음은 영덕 위제가 두변을 공격할 치명적인 무기가 될 것이었다.

영종오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자신은 두변을 절망의 심연으로 밀어넣었을 것이고,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를 뻔했다.

이문회는 하마터면 영덕 위제의 협력자가 될 뻔했다.

“두변아, 이 아비가 너를 만날 면목이 없구나. 어찌 이리도 아둔했을까. 내가 정말 죽어 마땅하구나.”

이문회는 꼭 심장을 도려낸 듯한 아픔에 소리 내어 통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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