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장: 전기 에너지
경성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중요하긴 했지만, 두변은 경성으로 가지 않고 에너지 문명의 근원지에 있었다.
두변의 군대가 사천과 호남에 도착한 지 아직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는 꿈속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전략 물자인 파란 정석 광맥을 찾고 있었다.
주술사 국사와 사공엽이 진행한 파란 정석에 관한 실험은 큰 진전을 보이면서 놀라운 정보를 얻게 되었다.
파란 정석 한 냥으로 전기 에너지 10만 와트시(watt hour, Wh)를 방출할 수 있다는 정보였다. 10만 와트시는 100킬로와트시로, 파란 정석의 한 냥이 방출할 수 있는 에너지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게다가 정석 장치는 초고전압 출력, 초고전류 출력, 혹은 대량의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방출시키거나 수차례에 걸쳐서 에너지를 방출시키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기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었다.
파란 정석의 전기 에너지 방출을 촉진하는 건 아주 소량의 매마 혈정체였다.
매마 혈정체는 파란 정석의 촉진제이긴 하지만, 혈정체 자체는 전혀 소모되지 않았다.
실험실에서 파란 정석을 이용한 첫 번째 무기를 내놓았다. 두변은 무기의 이름을 전호(電弧: 전기불꽃, 아크)검이라고 지었다.
파란 정석 장치는 검의 손잡이 부분 안에 설치되어 있었고, 전투가 시작되면 전원을 누르면 된다. 전원을 켜면 매마의 혈정체 조각이 파란 정석 장치 안에 들어가게 되고, 검에서 전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전호검의 전투력은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검을 한 번 휘두르는 즉시 놀라운 수준의 전류와 전압이 흘러서 여기에 닿는 누구든 곧바로 전기 쇼크 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쇼크 상태에 빠진 상대를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만큼 쉽게 된다.
두변은 전호검의 전류와 전압을 잠시 낮춘 뒤, 마혈 무사 1명이 마혈 무사 10명을 상대하는 실험을 했다.
전호검을 들고 있던 마혈 무사가 조금 다치긴 했지만, 같은 급의 마혈 무사 10명을 모두 쓰러트렸다. 마혈 무사들의 갑옷은 검 열 번을 맞아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견고하지만, 전호검에 한 번 맞은 무사는 곧바로 전투력을 잃게 되고, 전기 때문에 온몸이 마비되기 때문이었다.
만약 전호검을 마혈 무사 5천 명에게 전부 지급해준다면, 이 마혈 부대의 전투력은 정말 재앙 수준일 것이다.
전호검 하나를 제작할 때 파란 정석 3냥이 필요하니, 전호검 5천 자루를 만들려면 파란 정석이 최소 1천 5백 근은 있어야 했다.
하지만 두변이 현재 가지고 있는 파란 정석은 2근이 전부였고, 그것도 실험하는 데 거의 다 써버렸다.
동방 연합 왕국의 함대는 위풍당당하게 서남을 향해 오고 있었고, 무수히 많은 군대가 광동과 복건을 통해 집결하고 있었다.
세상을 놀라게 할 대전이 한 발자국, 두 발자국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니 두변은 촌각을 다투면서 파란 정석 광맥을 찾아낸 뒤, 파란 정석을 대량으로 채굴한 뒤에 전호검을 만들어야 했다.
마혈 부대를 전호검으로 무장한 무적의 군단으로 만들려면, 단 하루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이제 파란 정석은 동방 연합 왕국 전쟁과의 승패를 가르는 존재가 되었다.
물론, 파란 정석뿐만 아니라, 붉은 정석 또한 그만큼 중요한 존재다.
두 정석은 두변이 에너지 문명을 열 수 있는 근간이며, 동방 연합 왕국의 과학 문명을 추월할 보증수표였다.
그런 파란 정석 광맥이 땅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기 때문에 두변은 꿈속 시스템의 도움을 받으면서 더욱 깊은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광맥을 찾아야 했다.
다른 사람은 광맥을 찾을 수도 없지만 광맥을 찾을 수 있다고 해도, 광맥이 있는 지하까지 내려갈 방법이 없었다.
파란 정석은 이계에서 떨어진 거대한 운석으로, 땅속 깊은 곳에 묻히면서 그 주위의 지리 환경을 바꿔버렸다. 운석이 박힌 주위는 무시무시한 천연 에너지 진이 둘러싸게 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깊은 지하에 사람이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없다는 점이었다.
두변은 교룡의 혈맥, 악마의 혈맥을 가진 사람이라 지하 몇만 미터 아래에서도 무사할 수 있었다. 계청주 같은 대종사도 이렇게 깊은 지하에선 오래 버티지 못한다.
두변은 도룡검을 이용해서 필사적으로 땅을 파헤치고 또 파헤쳤다.
5천 미터, 8천 미터, 1만 미터, 1만 2천 미터, 1만 3천 미터.
‘곧 나옵니까?’
두변이 물었다.
‘아마도.’
꿈속 시스템이 대답했다.
‘아마도라뇨!’
‘숙주, 나도 만능은 아니다. 나도 계산을 통해서 알아내는 거라고.’
‘파란 정석은 동방 연합 왕국을 이길 수 있는 막강한 무기를 만들어내는 원재료이고, 지금껏 겪어왔던 것과 완전히 다른, 온 세상을 압살할 에너지 문명을 열 수 있는 열쇠라고 했죠?’
‘그렇다.’
두변이 이계의 정석을 발견한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것인가?
두변이 증기 시대를 뛰어넘어 곧바로 전기 시대로 넘어간다는 의미였다.
두변은 파란 정석을 이용해서 전호검을 만들 수 있고, 언젠가 파란 정석을 전함 동력, 심지어 전차 동력으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건 먼 미래의 이야기였다.
아무튼, 파란 정석과 붉은색 정석은 현재 두변이 가질 수 있는 최고 전략 물자였다.
두변이 물었다.
‘이곳에 파란 정석이 얼마나 있나요?’
꿈속 시스템이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사,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두변이 버럭 화를 냈다.
‘뭐라고요? 모르다니요? 당시에 이계에서 운석이 얼마나 많이 떨어졌는데요?’
‘당시에 이 지구에 떨어진 전기 운석이 꽤 많긴 한데, 정석이 워낙 약한 탓에 주위 환경이 조금이라도 복잡하면 정석이 파괴된다. 그래서 우리가 이번에 얼마나 많은 양의 파란 정석을 채굴할 수 있는지는 운명에 달렸다.’
꿈속 시스템의 대답에 두변은 대화를 포기하고 묵묵히 땅을 계속 팠다.
그저 이 땅속에 충분한 양의 파란 정석이 있길 기도할 뿐이었다.
적어도 1만 근 정도.
최소 1만 근은 있어야 동방 연합 왕국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물론,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이고, 아예 이참에 강대한 에너지 문명을 시작할 수 있는 양이었으면 좋겠다고는 생각했다.
이때, 두변의 귓가에 계청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야, 영설 공주께서 경성에서 오셨습니다.”
두변은 온몸이 흙투성이였지만, 영설 공주는 전혀 거리낌 없이 두변의 품에 와락 안겼다.
영설 공주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부군.”
그녀의 목소리에는 고통스러움과 어리광이 섞여 있었다.
영설 공주는 경성에서, 그리고 경성에서 서남으로 오는 길 내내 단호하고 용감했다. 하지만 두변의 품에 안긴 그 순간, 그녀는 순식간에 천진난만한 소녀가 되고 말았다.
“모후께서 돌아가셨어요. 모후께서.”
영설 공주가 두변의 품에 안긴 채 숨을 헐떡거릴 정도로 오열했다.
두변의 안색이 변하더니, 매서운 눈빛으로 여완완을 노려보았다.
두변이 여완완에게 내린 명령은 간단했다. 태후, 영설 공주, 그리고 이문회를 구하라는 명령이었다.
아름다운 여완완은 두변에게 아양을 떠는 눈빛을 한 번 보낸 뒤,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울상을 지었다.
여완완은 두변의 명령을 일부러 위배했다. 두변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만 했다.
두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의부께서는?”
영설 공주가 대답했다.
“이 공공은 무척 고통스러워하면서 위제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 경성에 잠복하겠다고 하셨어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니, 꼭 그 잘못을 만회하겠다고도 말씀하셨고요.”
두변의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여완완이 말했다.
“이수피 가면을 의부께 드렸으니까, 부군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의부께서는 늘 황제에게 경외감과 충성심을 가지고 있어서 잠시 정신이 없었나 봅니다. 다행히도 지금은 영덕 황제의 진상을 알게 되셨고, 그를 무척 증오해요. 의부께서는 누군가를 증오할 때 가장 똑똑하고 교활하잖아요. 그러니까 의부 걱정은 말아요.”
영설 공주도 말했다.
“모후께서 장례식에서 영덕 위제를 폐하라는 지의를 내리셨고, 부군, 진남공 송결, 내각 수보 고순창, 동창 대도독 이문회 대인을 고명대신으로 임명하셨어요. 네 분이 황족 중에서 현명한 사람을 골라 새로운 황제로 모시라고 하셨고요. 고순창 대인께서는 장례식에서 목숨을 잃으셨고, 의부는 경성에 계시긴 하지만, 뭐든 부군의 의지를 따른다고 하셨어요. 부군께서 정하신 사람을 대녕 제국의 황제로 모시고, 그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요. 그러니까 이제 새로운 황제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부군과 송결 대인밖에 없어요. 얼른 진남공을 서남으로 모셔와서 새로운 군주 후보를 정해야 해요.”
두변이 작게 읊조렸다.
“새로운 군주 후보라.”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다시 뜨더니, 말없이 영설 공주를 바라보았다.
두변은 본능적으로 영설 공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선황의 유일한 혈맥이자, 자신의 부인이니, 영설 공주가 황제가 되는 것이 가장 자신에게 이득이었다.
하지만 영설 공주를 제위에 앉히게 되면, 얼마나 많은 저항이 있을지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다른 지구의 중국 역사에는 무측천(武則天)이라는 여황제가 있었지만, 이 지구에는 아직 여황제가 한 명도 없었다.
영덕 위제의 악명은 말할 필요도 없는지라, 두변이 황족 중에서 현명한 번왕의 자제를 골라 제위에 올린다면 누구나 새로운 군주를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영설 공주를 제위에 올린다면, 두변의 명성은 또 한 번 나락으로 추락할 것이다.
서생들과 제국의 공훈 귀족들에게 여인을 황제로 섬긴다는 건 나라가 망하는 것보다 더욱 끔찍한 일이었고, 음양과 건곤이 뒤바뀌는 일이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많은 이들은 영덕 황제가 비록 선황의 혈맥이 아니고 모친을 시해한 죄가 있지만, 여인이 황제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영덕 황제를 계속 황제로 모시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여인 황제라니, 가당키나 한가.
여완완이 두변의 생각을 읽었는지, 넌지시 말했다.
“영설 언니는 선황의 유일한 혈맥이니, 황위를 이어받기에 딱 맞겠는데요? 그리고 서방 세계에도 여인이 국가 군주가 된 적이 있어요.”
이 말을 듣자, 영설 공주가 화들짝 놀라면서 두변을 향해 연신 손사래를 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요. 세상에 여인이 황제가 되는 경우가 어디 있다고. 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역시, 당사자인 영설 공주조차도 여인이 황제가 되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어서 벌어진 상황은 두변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북방의 몇몇 행성의 관리, 경성의 조정 관리 등 다수의 관리들이 두변의 서남으로 들어왔다.
이들이 영덕제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기도 했지만, 방계 대신들이 다시 조당으로 돌아와 조당의 중심을 장악하면서 선황에게 충성을 바치던 대신들이 또다시 탄압을 받고 쫓겨난 것이다.
두변은 황태후가 죽기 전에 책봉한 고명대신인지라, 태후의 지의에 따라 새로운 황제를 고를 수 있는 사람이니, 이들은 자연스럽게 서남에서 나올 새로운 황제에게 희망을 걸었다.
서남으로 온 관리 중, 가장 고위직 관리는 전 내각 대신 겸 예부상서였던 장선조였다.
선황이 붕어한 뒤 영덕제가 이원을 중용할 때, 장선조는 격하게 반대하면서 수차례 상주서를 올려서 이원의 진급을 막기까지 했다.
영덕제는 장선조의 마음을 달래주는 시늉을 하다가 결국 자기 뜻대로 이원을 진급시켰다.
장선조는 이 일로 영덕제에게 무척 실망한 상태였다.
심양 대전 때 영덕제가 기어코 이원에게 작위까지 하사하자, 장선조는 아예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버렸다.
고향에 있던 장선조는 이원이 배신하여 심양 대전이 패배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곧이어 두변이 산해관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뒤, 북벌을 시작해서 대녕 제국을 위험에서 구해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장선조는 노파심에 영덕제에게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으면 된다고, 여정도치(勵精圖治: 온 정성을 다해 정치에 힘쓰다.)하여 대녕 제국의 중흥으로 이끌어 달라고 서신을 썼다.
그는 영덕제가 자신을 다시 조정으로 부르기를 기다렸고, 언제나 조정의 중심으로 돌아갈 준비를 끝내놨다. 그저 영덕제가 잘못을 뉘우칠 줄만 알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덕제는 장선조의 서신에 일일이 답신은 해주면서도 그를 다시 조정으로 부르지 않았고, 경성으로 부르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영덕제 덕분에 장선조가 죽지 않은 셈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황태후의 장례식에서 가장 먼저 뛰쳐나와서 영덕제를 욕했을 것이고, 그 칼에 가장 먼저 목이 떨어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