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08화 (508/648)

508장: 황제가 된 영설 공주 一

서남 전체가 두 진영으로 대립했다.

두변 쪽에서는 영설 공주를 꼭 대녕 제국의 황제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서남 전체가 들썩이면서, 사람들은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느낌이 들 정도로 경악했다.

‘여인이 황제라니, 건곤이 뒤바뀌는 것 아닌가?’

‘망국의 징조 수준이 아니라, 하늘과 땅이 바뀌는 것이지!’

진남공 송결과 장선조 무리는 촉왕 세자 영충삭을 새로운 황제로 모시자는 주의였다.

6월 9일.

진남공 송결, 전 내각 대신 장선조가 수백 명 남하한 대신들과 함께 영설 공주의 앞길을 막았다.

수백 명 문무 대신이 영설 공주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송결과 장선조도 그녀에게 무릎을 꿇었고, 두 사람은 이마를 땅에 찧다가 피까지 났다.

“공주 전하, 강산의 사직(社稷)을 위하여, 대녕 제국을 위하여, 부디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진서왕이 큰 잘못을 저지를 것입니다.”

서남으로 도망온 문관 대신들도 머리를 조아리면서 청을 올렸다.

“대녕 제국의 사직을 위해서, 공주 전하께서는 부디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영설 공주는 화가 치밀어서 온몸이 떨려왔다.

그녀 자신은 황제가 되려는 욕심이 전혀 없었고, 지금도 두변의 생각이 무척 황당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두변이 자신을 새로운 황제로 모시겠다는 걸 들었을 때, 무척 불안하면서도 황공했다. 하지만 두변에게 자신은 결코 황제가 될 생각이 없다고 수차례 말했었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비구니가 되라고 하니, 어이가 없다 못해 격노할 지경이었다.

지금 내게 부군과 결별하라는 것인가?

“지금 나와 진서왕을 갈라놓겠다는 것인가요?”

영설 공주의 분노에 찬 말에 장선조가 대답했다.

“공주 전하께서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는 게 싫다면, 여기 모두의 앞에서 성명해주십시오. 촉왕 세자가 대녕 제국의 새로운 황제가 되는 걸 지지하신다고요.”

영설 공주는 당연히 그들이 원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황제가 될 마음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변의 의견에 반대되는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쿵, 쿵, 쿵, 쿵.

이때, 서남의 철갑 기병 부대가 홍수처럼 밀려오더니, 영설 공주를 겁박하고 있던 관리들을 일제히 포위했다.

두변이 마랑왕을 탄 채 나타나서 호통쳤다.

“나는 선황의 유일한 혈맥인 영설 공주를 대녕 제국의 새로운 황제로 모시고자 합니다. 누가 찬성하고, 누가 반대하는 겁니까?”

남쪽으로 도망온 관리들의 우두머리이자, 전 내각 대신 장선조가 격노하면서 호통쳤다.

“진서왕, 영설 공주는 여인이고, 당신의 부인입니다. 그녀를 황제로 모시겠다니, 사심이 너무 훤히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다시 한번 왕망(王莽: 전한前漢 말의 정치가이며 ‘신新’ 왕조의 건국자. 갖가지 권모술수를 써서 전한의 황제 권력을 찬탈했다.)의 난을 일으키고 싶어서 그러는 것 아닙니까?”

두변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사심이요? 내게 사심이 있는 건 당연하죠. 내가 상대할 자는 세상에서 제일 강한 적이고, 유래 없는 과학 발전을 한 동방 연합 왕국이니까요. 내 사심은 이 전투에서 이기고 싶고, 서남을 지켜내고 싶고, 잃어버린 대녕 제국의 강산을 수복하고 싶고, 영덕 위제를 처치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나는 그 어떤 정치적 싸움이나 내정에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 누구도 서남의 발전을 방해할 순 없습니다.”

진남공 송결이 말했다.

“까놓고 말하자면, 당신은 서남 대권을 독식하겠다는 뜻이로군. 진서왕, 내가 일전에 영덕 위제를 잘못 보아서 스스로 왼쪽 눈을 파냈고, 당신에게 사과도 했소. 하지만 난 당신과 재결합하겠다는 뜻은 추호도 없소. 당신도 그건 잘 알고 있겠지?”

“당연합니다. 진남공이 나와 할포단의까지 했는데, 굳이 그 인연을 붙잡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영덕 위제는 영도현의 사생아이고, 모친을 시해한 대죄를 지은 죄인이오. 그자는 짐승보다도 못한 놈이니, 천도만과(千刀萬剮)를 당해도 싸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사천과 호남에 출병한 게 옳다는 건 아니오.”

송결의 말에 장선조가 말을 이었다.

“진남공의 말씀이 맞습니다. 진서왕, 선황께 충성을 바치던 대신들이 다 이곳에 있으니, 왜 진서왕이 사천과 호남에 출병해야만 했는지 설명해주시지요. 이건 영덕 위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입니다.”

영설 공주가 끼어들었다.

“내 부군이 사천과 호남에 출병한 건, 당연히 동방 연합 왕국과의 전투에서 이기기 위함이고, 대녕 제국의 강산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영설 공주는 두변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녀는 사천에서 두변을 만났고, 당시 두변은 꼭 땅속에서 막 올라온 듯 온몸이 흙투성이였다.

이건 무얼 증명하는가?

사천과 호남의 지하에 두변이 원하는 물건이 있고, 두변이 출병한 이유도 그의 개인적인 세력 확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얻기 위함이라는 걸 증명했다.

두변은 사천을 점령한 뒤에 군대를 추가로 확장하지 않았고, 곧바로 신법을 펼치지도, 백성들에게 곡식이나 세금을 거두지도 않았다.

진남공 송결이 영설 공주에게 말했다.

“공주 전하께서 말씀하신 이유로는 두변의 행동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대전이 코앞인데, 진서왕이 이럴 때 사천과 호남을 빼앗았습니다. 지금 와서 결백을 증명하는 것도 불가능하겠지요. 동방 연합 왕국과의 대전에선, 사천과 호남의 중요도가 높지 않습니다. 만약 진서왕의 대군이 패배했을 때, 그의 군대가 사천으로 후퇴하는 걸 막을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군사적으로 보았을 때, 진서왕이 사천과 호남을 빼앗을 이유를 전혀 찾을 수 없단 말입니다.”

장선조가 말했다.

“진서왕, 그러니 이제 말해보시지요. 사천과 호남을 빼앗은 진정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변이 냉랭하게 대답했다.

“말할 수 없습니다.”

두변의 오만한 태도에 사람들은 경악했고, 이윽고 화가 났다.

두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영설 공주를 대녕 제국의 새로운 황제로 모시고자 합니다. 누가 찬성하고, 누가 반대합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천하에 여인이 황제가 되는 도리가 어디 있습니까!”

“이건 하늘의 섭리를 위배하는 일입니다. 대녕 제국의 선조들께서 이 사실을 알게 되신다면, 지하에서도 편히 쉬지 못하실 것입니다.”

“건곤이 뒤바뀌는 소리입니다!”

의분이 치밀어 오른 수백 명의 대신들이 제각각 소리쳤다.

이때, 촉왕 세자가 말을 타고 도착했다.

그는 두변을 향해 허리 숙여 예를 갖춘 후 말했다.

“진서왕, 부디 제 말을 한 번 들어봐 주십시오. 현재 영덕 위제가 천하 만인에게 손가락질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서왕께서 영설 공주를 여제로 모신다면, 천하의 여론은 모두 진서왕과 영설 공주에게 향할 것입니다. 진서왕께서 천신만고하여 얻어낸 정의로운 여론이 순식간에 사라질 거란 말입니다. 영덕 위제는 진서왕 덕분에 여론의 압박에서 벗어나겠지요. 그땐, 진서왕께서 천하 만인에게, 온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을 겁니다. 왜냐면, 사람들의 눈에는 영덕 위제가 대역무도한 죄를 저지르긴 했어도, 영씨 황족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모친을 시해한 천륜 대죄를 저질렀고, 선황의 핏줄이 아니긴 해도, 세상 사람들은 영설 공주보다 영덕 위제를 받아들일 겁니다. 사람들은 하늘이 발칵 뒤집히는 날이 와도 여황제를 받아들이지 못할 겁니다.”

두변이 담담하게 말했다.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적응하면 될 일입니다.”

촉왕 세자가 말했다.

“진서왕께서 제가 성에 차지 않으신다면, 괜찮습니다. 서남으로 온 번왕의 세자들이 저 말고도 많으니, 그중에서 현명한 자를 고르십시오. 저는 물러나겠습니다.”

촉왕 세자의 말에 장선조와 송결은 더욱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능력 있는 세자가 마음까지 넓으니, 정말로 인자한 군주의 재목 아닌가.

자리에 있던 수백 명 관리들도 새로운 황제는 기필코 촉왕 세자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영설 공주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품에서 얇은 수정관 하나를 꺼내서 소리쳤다.

“이건, 선황의 밀지입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두변이 경성에서 영설 공주와 혼례를 치르기 전, 선황이 비밀리에 영설 공주를 불러 밀지를 주었었다.

영설 공주가 수정관에서 밀지를 꺼내 두변에게 건넸다.

“만약 태자가 제위에 오른 뒤 불초(不肖: 자녀의 품행이 현명하지 않다.)하여 방계와 결탁할 경우, 태후와 두변은 황제를 폐립(廢立)하라.”

밀지의 뜻은 무척 단순명료했다.

두변이 밀지를 다 읽자, 현장에 묵직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가슴이 아팠고, 장선조 등은 눈물까지 보였다.

두변도 무척 속상했다.

이 밀지의 의미는 무엇일까.

천윤제가 단 한 번도 언급한 적 없지만, 그는 영덕제의 출생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하면서 태자의 출생에 대해 추궁하지 않았다.

태자를 이십여 년 동안 키웠으니, 태자와는 끊을 수 없는 부자의 정이 있었을 테고, 태자를 폐위하기에는 태자 자리를 대신할 사람이 없었다.

천윤제는 태자가 제위에 오르게 되면,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관해서 걱정이 많았다.

한편으로는 모든 게 다 순조롭길 바라고, 태자가 영명한 군주가 되길 바라지만, 만에 하나 태자가 불초할 경우 태후와 두변이 황제를 폐립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군주의 측면에서 본다면, 천윤제가 훌륭한 황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었다.

천윤제는 밀지에서 태후와 두변만이 황제 폐립의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밀지에는 장선조, 고순창, 송결의 언급이 없었다.

천윤제가 태후와 두변만 언급한 건, 두변을 무척 신뢰하기도 하고, 두변의 손에는 병권이 있기 때문이다. 차후에 일어날 정치 싸움과 내정 내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병권이 있는 두변에게 폐립의 권한을 준 것이다.

그는 두변의 서남 신법이 서남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보았고, 동방 연합 왕국이 어느 정도로 강대한지도 알았다.

그는 세상이 변했고,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걸 너무나 뚜렷이 체감했다.

그는 자신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갈 순 없지만, 자신 때문에 시대의 발걸음을 늦추고 싶지는 않았다.

장선조와 송결 등은 조그마한 밀지를 받아와서 꼼꼼하게 밀지 전체를 살폈다. 밀지에 쓰인 글씨는 선황의 필적이 분명했다.

먹을 갈아서 붓으로 쓴 글씨와 황궁에서 쓰는 종이까지. 모든 게 다 진짜였다.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선황의 밀지도 위조할 수 있는 때긴 하지만, 그들은 이게 선황의 밀지가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선황!”

장선조, 송결 등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통곡했다.

영설 공주가 말했다.

“부황의 밀지에는 똑똑히 적혀 있습니다. 태후와 두변만이 폐립의 권한이 있다는 걸요. 그러니 내 부군은 새로운 황제를 옹립할 권한이 있습니다.”

진남공 송결이 말했다.

“맞습니다. 선황의 밀지에는 진서왕이 확실히 황제 폐립의 권한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인을 황제로 옹립할 권한이 없고, 자신의 부인을 황제로 만들 권한이 없습니다.”

장선조가 말했다.

“정말 솔직하게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만에 하나 영설 공주를 황제로 모신다면, 대녕 제국은 두씨입니까, 영씨입니까? 미래에 제위를 선양(禪讓: 선위)하면 어떡하고요?”

“맞습니다. 진서왕에겐 폐립의 권력이 있지만, 여인을 황제로 만들 권력은 없습니다.”

“여인이 황제라니, 차라리 영덕 위제가 제위에 있는 게 낫겠습니다.”

사람들이 또 아우성쳤다.

두변이 말했다.

“그러니까, 다들 영설 공주를 대녕 제국의 새로운 황제로 모시기 싫다는 뜻입니까?”

“당연한 소리지요!”

“절대 안 됩니다!”

진남공 송결이 말했다.

“진서왕, 만약 우리가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대살육을 벌여서 우리를 전부 죽이려는 것이오? 그럼 얼른 하시오. 이번에 내가 계림부에서 데려온 사람이 열 명이 채 안 되오. 내가 이곳에 올 배짱이 있다는 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오.”

장선조가 말했다.

“진서왕, 대살육을 하시겠다고요? 그럼 제 머리부터 가져가시지요.”

촉왕 세자 영충삭이 말했다.

“진서왕께선 수십만 대군을 거느리고 있으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겠군요. 사람을 죽이려거든 저부터 죽이십시오.”

두변이 목청을 높였다.

“사람을 죽이다뇨? 당신들이 서남의 신법을 파괴하거나, 서남에서 허튼짓을 한다면, 난 당신들 전부를 죽일 때까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정견(政見)이 다르다는 이유로 당신들을 죽일 것이라 생각했다면, 너무 나를 과소평가 한 것 아닙니까.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는 반 마디 말도 하지 말라 했으니, 우리 서로 의견이 같지 않다면, 각자 갈 길을 가는 게 좋겠습니다. 당신들이 영설 공주를 대녕 제국의 새로운 황제로 모시지 않겠다면, 당장 나의 서남에서 꺼지십시오.”

그러자, 젊은 관리들 몇 명이 소리를 높였다.

“서남은 대녕 제국의 서남이지, 당신 두변의 서남이 아닙니다. 당신이 무슨 권력으로 우리를 내쫓습니까? 이렇게 기고만장하고, 겁도 없이 우리를 급하게 내쫓다니, 도둑이 제 발 저려서 그러는 것 아닙니까? 당신이 난신적자가 아니고서야 설명이 되지 않잖습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