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13화 (513/648)

513장: 정복의 과정

오늘 옥진 군주는 보기 드물게 붉은 치마를 입었고, 얼굴에는 연지까지 발랐다. 이 여인이 치마를 입는 일은 극히 드물었고, 화장까지 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는 일이었다.

이 여인은 웬만하면 몸을 꽉 조이는 뱀 가죽옷을 입은 뒤, 그 위에 단단한 갑옷을 걸쳤다.

옥진 군주가 붉은 치마에 화장까지 한 모습을 보니, 영창제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화려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니, 정말 시선을 뗄 수가 없구나!’

영창제가 속으로 감탄했다.

붉은 치마는 특별히 몸매를 부각시키는 것은 아니었지만, 옥진 군주가 입으니 더없이 색정적이었다. 잘록한 허리 위아래로 이어진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는 꼭 터질 것만 같았다.

어느 사내가 이런 몸매를 보고 침을 흘리지 않을 수가 있을까.

‘옥진 군주가 왜 이렇게 아름답게 하고 짐을 보러 온 거지? 여인들은 자기를 기쁘게 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는 말이 있는데?’

사뭇 긴장되어 보이는 옥진 군주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폐하, 저를 찾으셨다고요.”

“그래. 영존께서 별세하신 뒤에 짐도 군무 때문에 바빠서 군주와 긴 얘기를 할 시간이 없었구나. 지금도 짐이 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은 슬픔을 거두라는 말밖에 없군.”

옥진 군주가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다급하게 말했다.

“폐하의 보살핌에 감사드립니다.”

영창제가 옥진 군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앉아라.”

옥진 군주는 영창제와 마주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옥진 군주가 탁자 맞은편에 앉으니 허리와 엉덩이 선이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영창제의 눈알이 튀어나와서 지금이라도 치마 속을 비집고 들어갈 지경이었다.

영창제는 거칠어지는 숨을 애써 가라앉혔다.

그는 옥진 군주의 맞은편에 엉거주춤 앉아서는, 술주전자를 들어서 옥진 군주에게 한 잔, 자신에게 한 잔 술을 따랐다.

“옥진, 내가 군대를 이끌고 낭발랍방 왕국으로 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창제가 물었다.

“신첩은 별다른 생각이 없습니다. 신첩은 그저 폐하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옥진 군주가 대답했다.

영창제가 옥진 군주를 향해 술잔을 치켜든 뒤 단숨에 술잔을 비우자, 옥진 군주도 허둥대면서 서둘러 술잔을 치켜든 뒤에 술을 마셨다.

옥진 군주가 술을 마시는 걸 본 영창제는 속으로 무척 기뻤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술잔을 채운 뒤, 옥진 군주의 술잔도 채웠다.

“이 잔은 인자하고 위대한 여창 국왕을 위한 술이다.”

영창제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고개를 젖혀서 술을 마셨다.

옥진 군주가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영창제를 따라서 술잔을 비웠다.

영창제가 세 번째 잔을 채웠다.

“이번엔 용감 무적하고, 충성 무쌍했던 진남공을 위해 한 잔 올리지.”

영창제가 또 술잔을 비웠다.

옥진 군주는 눈가가 발그레해지기 시작했지만, 별말 없이 자신의 술잔을 비웠다.

술 석 잔을 연거푸 들이킨 옥진 군주는 뺨이 발그레 상기되었다.

발그레한 얼굴, 눈물이 고인 눈가, 술 때문에 몸에 열이 나서 은은하게 퍼지는 옥진 군주의 체향까지.

옥진 군주의 모든 게 영창제를 자극했고, 그는 더 이상 참기가 힘들었다.

영창제가 자신을 위해 술을 한 잔 더 따른 뒤, 옥진 군주의 술잔도 채웠다.

“옥진, 이틀 전에 영신 왕후가 함께 승룡부로 가자고 했는데, 왜 왕후를 따르지 않고 짐을 따르는 거지?”

영창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영신 왕후께서는 여인이시지만, 신첩은 군인입니다.”

옥진 군주가 대답했다.

“그렇지. 우리가 군대를 이끌고 안남 왕국에서 멀어져야만 승룡부가, 영신 왕후가 안전하지. 짐은 황제로서 천하 만민을 위해 희생해야 하니까. 군인인 그대도 그렇겠지. 천하 만민을 위해 희생하는 정신 말이야. 우리 그 정신을 위해 건배하지.”

영창제가 술잔을 비우자, 옥진 군주도 술잔을 비웠다.

참 웃긴 말이었다.

영창제가 10만 대군을 빼앗고 서쪽에 있는 낭발랍방 왕국으로 향하자, 막한 여왕은 즉시 그들을 추격하는 걸 멈췄다.

막한 여왕과 그녀의 대군은 곧장 방향을 틀어서 승룡부로 향했다.

영창제의 눈빛이 그윽해지더니, 나긋한 목소리로 옥진 군주에게 말했다.

“옥진, 그대는 군인일 뿐만 아니라 여인이기도 하다.”

옥진 군주가 움찔하더니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영창제가 말을 이었다.

“진남공이 임종 전에 그대를 짐에게 부탁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

옥진 군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첩, 알고 있습니다.”

옥진 군주는 영창제의 시선을 피해서 애꿎은 탁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긴장해서인지 불안해서인지, 그녀의 모든 행동이 어색하기만 했다.

“무서워할 것 없다. 짐은 홍수처럼 밀어붙이는 맹수가 아니다. 진남공이 별세했고, 그대의 모친도 승룡부에 계시니, 짐이 당신의 유일한 가족이 되어주마. 짐은 그대를 황후로 맞이하고 싶은데, 어떠하냐?”

옥진 군주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이 없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고개를 살짝 들어서 조용히 물었다.

“폐하, 손을 다치셨네요. 부상이 나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그사이에 또 다치신 겁니까?”

영창제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 당당하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아, 별것 아니지. 짐도 전투에 참여한 몸이니 이런 작은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지.”

영창제는 어차피 자신이 진남공 송결의 가슴팍에 있던 정석 호심경을 버렸으니, 그가 송결을 죽였다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영창제는 아름다운 옥진 군주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그녀의 폭발적인 몸매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영창제가 옥진 군주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옥진, 짐이 오늘부터 그대를 보살펴주고 싶은데 어떠하냐?”

옥진 군주가 두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영창제가 속으로 웃었다.

대답이 없다는 건, 묵인이나 다름없지!

영창제는 술기운이 오르기도 했고, 옥진 군주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극도로 흥분하고 말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말했다.

“옥진, 당장 오늘 밤에 짐의 승은을 입는 게 어떠하냐? 우리가 하루빨리 아이를 낳아야 한다. 대녕 제국의 후대가 생기는 게 중요하기도 하고, 하늘에 계신 진남공도 무척 기뻐하실 것이다.”

영창제는 이 말을 뱉자마자 후회했다.

‘내가 너무 직설적이었나?’

영창제는 술과 아름다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생각도 거치지 않고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옥진 군주는 아직도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몸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영창제는 옥진 군주의 모습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

이건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제 몸은 이미 생쌀로 밥을 지을 수 있는 정도로 달아올라 있었다.

옥진 군주 같은 여인은 한 번 누구에게 몸을 주면, 평생을 그 사내를 위해 살 여인이 아닌가!

오늘부터 이 절세미인이, 이 폭발적인 몸매가 나의 것이 되는구나. 군대와 미인을 한 번에 얻게 되다니!

진남공, 정말 고맙소. 천하에 자네 같은 충신이 없을 것이오. 하하하!

영창제가 득의양양하게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옥진 군주를 빤히 바라보면서 자신의 옷을 훌렁훌렁 벗기 시작했다.

이건 여인을 정복하는 과정의 하나로, 우선은 자신의 조각 같은 몸매를 과시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었다.

만약 상대방이 제지하지 않는다면, 그건 거사를 치르는 걸 묵인한다는 뜻이었다.

옥진 군주는 영창제가 옷을 벗는 동안에도 시선을 바닥에서 떼지 않았고, 영창제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옥진 군주는 몸을 점점 더 거세게 떨더니, 이윽고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사이 영창제는 아무것도 개의치 않고 금세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당당하게 여인의 앞에 섰다.

그는 옥진 군주가 제지하지 않은 걸 동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는 그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욕정에 휩싸인 눈빛으로 옥진을 바라보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옥진, 무서워할 것 없다. 짐이 아주 부드럽게 대해주마.”

영창제가 손을 뻗어서 옥진 군주를 안으려는 찰나.

샤악!

영창제의 손이 옥진 군주의 어깨에 닿기도 전에 눈앞에 서늘한 빛이 번쩍이더니 갑자기 허벅지 사이가 허전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영창제는 완전히 거세당하고 말았다.

옥진 군주가 그제야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증오가 가득했다.

이때, 계림부에 있던 두변은 전서(戰書) 한 통을 받았다.

이 전서는 머저리 여왕 막한에게서 온 것이었다.

‘나, 안남 왕국 막씨 왕조의 여왕 막한이 명령한다. 당장 백색, 문산 두 부를 무조건으로 나 막씨 안남 왕국에 넘겨라. 그렇지 않으면 내 해군이 너의 해안가를 파괴할 것이고, 내 육군이 너의 서남을 폐허로 만들 것이다.’

“왕야, 막한 여왕의 함대가 북상하여 우리 서남으로 오고 있습니다. 함대는 증기 철갑 전함 3척과 증기 철갑 순양함 4척입니다.”

수하가 말했다.

머저리 여왕 막한이 쓴 나름의 국서(國書)를 본 두변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올랐다.

지난번에 이 여자와 교류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기억은 불쾌하기만 했다.

물론, 아주 찰나의 좋은 기억이 있긴 했다. 예를 들면, 두변이 막한의 엉덩이를 때려서 그녀를 부끄럽게 만들었던 적이나, 막한이 두변을 도와 계청주의 목숨을 구했던 적이나.

당시에 방계가 광서에 있던 대녕 제국의 충신들을 죽였었다.

방계 세력이 장양명을 죽였고, 계왕과 진남공 세자를 폐인으로 만들었었다.

두변은 백색부에 있던 3, 4천 명의 병력으로 여씨의 수십만 대군을 상대했었는데, 그 급박한 상황에 천윤제가 두변에게 처음으로 사혼을 내렸었다.

천윤제는 막한을 토사 겸 제국 후작으로 봉하고, 두변과 혼례를 올리라는 성지를 내렸다. 천윤제는 두변이 막씨의 구세력 몇만 명을 손에 넣고, 막한과 협심하여 여여해의 수십만 대군을 대적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만한 막한이 사혼을 거절했다.

그녀는 자신이 여왕이 될 사람인데, 어떻게 후작이 될 수 있냐며 역정을 냈다.

당시 두변은 막한이 거의 미칠 정도로 여왕 놀이에 빠졌다고 생각했고, 막씨 왕조가 멸망한 지 수백 년이나 지났는데 어떻게 왕조를 다시 일으켜 세울까 싶었다.

그런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건, 막한이 정말로 안남 왕국을 되찾았고, 이젠 두변에게 당당하게 백색부와 문산부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과거의 막씨 왕조가 여씨에 패배한 뒤, 막씨는 광서로 도망쳐서 대녕 제국의 토사가 되었고, 그들의 세력이 가장 막강할 때 문산부를 점령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머저리 막한은 안남 왕국의 북쪽을 점령한 것도 모자라서 두변의 근거지까지 넘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건 머저리 여왕 막한이 두변에게 선전포고를 할 핑계에 불과했다.

막한은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동방 연합 왕국 소군 방진의 도움을 받아 복국에 성공했다. 하긴 막한이 두변이 성에 차지 않아서 사혼을 거절할 만했다. 두변과 비교했을 때, 소군 방진은 돈도 많고 잘생기고 막강한 권력까지 있는 사내 아닌가.

막한은 오직 방진만이 자신에게 여왕 왕관을 씌워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소군 방진도 이 여자의 환심을 사는 데 꽤 큰 투자를 한 편이었다. 막한이 여왕이 되고 싶다고 하니, 정말로 그녀에게 왕국 하나를 통째로 내어주다니.

두변은 지금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에 이를 부득 갈았다.

머저리 여왕 막한의 함대가 너무 막강하다 보니, 두변의 교룡호로는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교룡호 동력의 핵심이 선진기술이라는 것과 항해 속도가 빠르다는 강점이 있긴 하지만, 막한의 함대와는 화포의 격차가 너무 컸다.

만약 두 함대가 싸운다면, 두변의 교룡호는 정말 바다 위의 철로 만든 이동 관짝에 불과할 것이다.

“교룡호를 항구에 정박하고, 염주부 포대(砲臺)에서 잘 보호해라. 절대로 교룡호를 출항시켜선 안 돼.”

두변이 명령했다.

“알겠습니다.”

리아나 군주와 혈관음은 치욕스러워서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적이 온다는데, 자신들의 전함은 파괴되지 않기 위해서 항구에 정박해있어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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