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15화 (515/648)

515장: 레이저

시간은 하루하루 흘러갔다.

산소가 없는 깊은 땅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두변뿐이었기에, 그는 혼자서 파란 정석을 지상으로 옮겨야 했다.

그렇게 며칠을 올린 결과, 두변은 수백 톤의 파란 정석을 지상으로 옮겼다. 이와 동시에, 동방 연합 왕국과의 대전 날짜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왔다.

여담이 보고했다.

“주군, 가장 새로운 정보에 의하면, 동방 연합 왕국이 안남 왕국에 33만 대군을 집결했고, 곧 북상하여 우리를 공격한다고 합니다.

광동성에도 33만 대군을 상륙시켰다고 합니다.

정보에 의하면, 신식 화총 군대가 25만이 넘고, 신식 화포는 셀 수 없이 많다고 합니다. 그중 초특급 중포 수십 대가 있다고 들었는데, 화포 한 대로 10리 넘는 거리를 쏠 수 있고, 성벽을 단번에 무너트릴 수 있다고 합니다. 곤륜노 무사는 8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회의실 안은 여담의 보고를 듣고 침묵에 빠졌다.

여담이 계속해서 보고했다.

“우리가 모의 전쟁을 했을 때, 동방 연합 왕국 8만 대군이 우리 30만 대군을 파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동방 연합 왕국이 66만 대군을 이끌고 두변의 서남을 공격할 예정인 것이다.

“적군 66만 대군이 두 방향에서 우리를 공격할 겁니다. 제일 먼저 공격당할 곳은 오주성, 염주성, 백색성입니다. 우리는 곧 5천 자루 전호검을 가지게 될 것이니, 근접전에서는 큰 우세를 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거리 전투에서는 화포의 극심한 기술적 차이가 있어서 승산이 전혀 없습니다.”

동방 연합 왕국은 이미 세상을 바꿨고 이제 화포와 총이 전쟁의 주류가 되었다.

두변의 화포는 뒤처져도 한참 뒤처져서 승산이 없는 수준이라 이번 전투는 필패의 싸움이었다. 동방 연합 왕국의 막강한 포화가 두변의 서남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다.

부홍빙 장군이 말했다.

“제가 제안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저와 기세 장군이 뒤를 끊을 테니, 주군께서는 폐하, 주력 대군, 그리고 우리의 실험실과 함께 절세 지하성으로 대피하십시오.”

기세 장군이 말했다.

“저도 부홍빙 장군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제가 군대를 이끌고 남쪽에서 동방 연합 왕국의 발을 묶어 두고, 부홍빙 장군은 동쪽에서 발을 묶어두겠습니다. 주군과 폐하께서는 우리의 대군과 중요 물자, 중요 구성원을 데리고 절세 지하성으로 피하십시오.”

저번에 두변이 여씨의 대군에 맞설 때도 절세 지하성으로 대피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두변이 절세 지하성으로 대피할까?

서남 5성을 완전히 포기하고?

그가 과연 어렵게 성공한 신법의 결과물을 전부 버릴 수 있을까?

여황이 말했다.

“저도 절세 지하성으로 대피하는 계획에 동의합니다. 푸른 산이 있는 한, 땔감 걱정은 할 필요 없으니까요.”

부홍빙이 말했다.

“주군, 우리는 이미 파란 정석 백만 근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문명을 열 열쇠를 찾은 거죠.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강대하고 새로운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번 전투에선 우리에게 선진 원거리 화포가 없으니,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에 이기면 됩니다. 동방 연합 왕국의 군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절세 지하성을 함락시킬 순 없을 테니까요.”

기세가 말했다.

“땅을 지키고 사람을 잃으면, 사람과 땅을 모두 잃는 것이지만, 사람을 살린 대신 땅을 잃었을 땐, 결국 사람이 다시 땅을 되찾을 것입니다.”

기세가 말한 것은 두변도 아는 이치였다.

하지만 두변은 과연 또다시 거북이처럼 절세 지하성으로 도망칠까?

백만 제곱킬로미터가 넘는 서남 5성을, 수천만 인구를 전부 포기하고?

신법의 2년 성과를 전부 내던지고?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전투에선 동방 연합 왕국과 원거리 화력 차이가 천지 차이였다.

두변에게 강력한 마혈 기병이 있고, 전호검까지 장착해서 근거리 전투에선 무적에 가까웠지만, 동방 연합 왕국의 원거리 화력을 생각하면 근거리 전투를 치르기도 전에 싸움이 끝날 것이다.

게다가 두변의 마혈 무사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

고작 5천 명 마혈 무사로 동방 연합 왕국의 8만 곤륜노 무사를 상대할 수 있을까?

사실 전호검을 빼면, 곤륜노 무사의 전투력은 마혈 무사와 거의 비슷했다.

“주군, 청산이 있는 한, 땔감 걱정은 하지 않는 법입니다.”

사람들이 두변에게 절세 지하성으로 대피하라고 다시 한 번 설득했다.

두변은 붉은색 정석에 큰 기대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아무런 연구 성과가 없었다. 붉은색 정석의 무기화는커녕, 정석의 에너지 속성조차 제대로 알아내지 못했다.

이번에도 겁쟁이처럼 절세 지하성으로 도망쳐야 할까?

지금 대피하지 않으면, 나중엔 대피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

그런데 바로 이때.

사공엽이 방 안으로 뛰어들어와서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주군, 어서 와보십시오. 우리, 우리가 성공했습니다. 절대로 믿기지 않으실 겁니다. 정말로요. 붉은색 정석은 단독으로 쓸 수 있는 물질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실험실에서 엄청난 대살기(大殺器)를 만들어 냈습니다.

대살기의 이름을 정석 마포(魔砲)라고 지었습니다. 정석 마포의 위력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실험실에 있던 모두가 경악할 정도라고요.”

사공엽이 두변을 다짜고짜 실험실로 잡아끌었다.

그는 잰걸음으로 걸으면서 계속 말을 했다.

“주군, 전에 제게 말씀하신 적 있죠. 천재는 99퍼센트의 피땀과 1퍼센트의 영감으로 탄생한다고요. 이 말은 정말 진리입니다. 99번의 실험이 전부 실패했고, 999번째 실험도 실패했는데, 갑자기 어느 순간 주군께서 주신 영감이 떠올라서 실험을 성공시켰습니다.”

사실 이건 자연스러운 시행착오였다.

과학 실험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닌가. 무수히 많은 실패를 거듭하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한 우연에 의해서 답을 찾는 것.

그래서 과학이든 에너지학이든, 다 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과학자, 에너지학자는 정답을 찾기 위해서 반복적으로 하는 백 번, 천 번, 만 번의 실험이 지루하기만 할 것이다. 특히 어떨 때는 자신이 제대로 하는 건지도 확실치 않고, 이게 맞나 싶을 때가 있을 것이고.

두변이 고른 지하 실험실은 에너지가 풍부한 천연 지하 동굴로, 무척 거대한 공간이었다.

사공엽은 가는 길 내내 쉬지 않고 말을 했는데, 다행히도 두변이 거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두 사람은 지하 실험실의 제일 깊은 곳에 도착했다.

사공엽이 붉은색 정석 장치를 먼저 꺼냈다.

“이 장치가 작긴 해도, 내부가 무척 복잡합니다. 이건 소형 에너지 진이나 다름없어요. 에너지 진에는 한 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안 그러면 붉은색 정석의 에너지 반응을 끌어낼 수 없거든요.”

사공엽이 주먹 크기의 붉은색 정석 장치를 두변에게 건넸다.

“주군, 이 위에 있는 게 바로 장치를 켜고 끌 수 있는 수단입니다. 이 단추를 한 번 눌러보세요.”

두변은 내부 구조가 무척 복잡한 붉은색 정석을 손에 쥐고, 빈 공터를 향해 조준하고 단추를 눌렀다.

슈웅.

붉은 불빛이 순식간에 격렬하게 발산되었다. 아주 먼 곳까지 쏘아져서는 붉은 점이 몇천 미터 밖의 동굴 벽에 그대로 비쳤다.

이건 격광(激光: 레이저)이다!

특히나 응집력이 상당히 강한 격광으로, 수천 미터 거리가 넘는데도 빛이 발산하면서 흩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격광은 살상력이 없었다.

영화 속에서 보는 레이저처럼 철을 깎거나 녹여버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두변이 말했다.

“만약 붉은 장치를 수십 배, 수백 배의 크기로 만든다면, 장치에서 쏘아내는 격광이 살상력을 가질 수 있습니까?”

사공엽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럴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붉은색 정석의 속성을 알아냈을 뿐입니다. 붉은 광선을 쏘아낸다는 특징이요. 정석 장치가 작든 크든, 장치에서 쏘아내는 격광의 속성은 똑같습니다. 이 격광이 살상력이 있으려면, 최소 격광 1만 개가 응집되어야 합니다. 양으로 승부하는 아주 어리석은 사고이긴 하지만, 지금 우리가 생각해낸 유일한 방법입니다.

아, 그래도 몇 개월의 노력 끝에 붉은색 정석의 속성을 알아냈잖습니까. 그리고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제 주군께 진정한 대살기, 정석 마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사공엽이 흥분한 모습으로 두변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두 사람은 금방이라도 웅장한 의식을 치를 듯한 검은 천이 덮인 무언가의 앞에 도착했다.

정석 마포라는 것은 겉보기에는 평범한, 아니, 낙후된 활강포의 모습이었다. 다만 이 화포는 개조를 통해서 포체의 뒤쪽에 단추가 하나 있었다.

주술사 사제가 실심 포탄을 하나 가져와서 포당 안에 넣었다.

“주군, 발포해보시지요. 화포 뒤쪽에 있는 단추를 누르시면 됩니다.”

사공엽의 말에 두변이 심호흡을 한 뒤 단추를 눌렀다.

화포에서 파란빛이 번쩍이더니, 검은 그림자가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쾅!

땅굴 속에서 굉음이 울렸다.

이건 포탄이 포당을 나갈 때 내는 폭발음인데, 놀랍게도 초음속이었다.

두변이 더욱 놀란 건, 포탄의 발사 궤적이 중력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직선이라는 점이었다.

음속의 5배에 달하는 빠른 속도라서 발포 궤적마저 직선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 속도라면 21세기 최신식 화포의 속도와 맞먹는 속도였다.

원래 활강포의 발포 속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빨랐고, 심지어 동방 연합 왕국의 유탄포보다도 훨씬 빨랐다.

쾅!

2초 뒤, 포탄이 3천 미터 밖에 있던 목표점을 맞혔다.

정말 엄청난 위력이었다.

실심 포탄이라 폭발하진 않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살상력은 질량과 속도의 곱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고속 비행중인 비행기가 아주 작은 새 한 마리와 부딪혀도 기체에 금이 갈 수 있다.

그러니 몇 배 음속인 포탄의 위력은 견고한 동굴 암벽에 구멍을 낼 만큼 강력했다.

두변이 놀라워하기도 전에, 사공엽이 말했다.

“주군, 한 번 더 해보십시오.”

그리고는 포당 안에 실심 포탄 하나를 또 집어넣었다.

이번에는 두변이 정신력을 두 눈에 집중한 뒤, 화포를 빤히 바라보면서 단추를 눌렀다.

슈우웅.

화포에서 파란 불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은, 불빛이 아니라 전광이었다.

그리고 발사 과정 전체에서 화약이 쓰이지 않아서 화포는 아무런 반동력 없이 안정적이었다.

슈우웅.

실심 포탄은 5배가 넘는 음속으로 거의 직선에 가까운 궤적으로 날아갔다.

2초 뒤.

콰광!

동굴 안에 또 한 번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이번에도 포탄이 암벽의 그 자리에 그대로 박혔는데, 조금 전에 났던 구멍의 크기가 배는 넘게 커졌다.

두변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두 번의 발포가 전부 한 지점을 명중했다는 점이었다.

이건 아주 무서운 일이라 할 만했다. 화포의 정확도가 무시무시한 수준에 다다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전의 화포는 반동력이나 매번 화약 양의 차이로 인해서 연속 발포 시에도 같은 지점을 명중시킬 수 없었다.

두변이 능파미보를 시전해서 암벽 앞으로 달려갔다.

실심 포탄 두 발로 깊이 1미터, 직경 7미터에 달하는 구멍을 만들어 냈다.

이 위력이면 성벽을 찢고도 남을 위력이었다.

“주군, 기적을 하나 더 보여드리지요.”

사공엽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사공엽이 붉은색 정석 장치의 단추를 누르자, 붉은 격광이 수천 미터 밖의 암벽에 붉은 점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포당에 실심 포탄을 넣은 뒤, 두변을 향해 말했다.

“주군, 발포하시지요.”

두변이 단추를 누르자, 파란빛이 뿜어져나오면서 실심 포탄이 5배 음속에 달하는 속도로 발포되었다.

실심 포탄은 이번에도 중력의 영향을 받고도 직선에 가까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쾅!

굉음이 터지고, 포탄은 정확하게 3천 미터 밖 암벽의 붉은 점을 명중시켰다.

이건, 정말 미쳤다고 할 만하지 않은가.

현대 영화에서, 혹은 게임에서 총에 레이저 조준 장치가 달려있긴 하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아무리 정석 마포라고 하지만 레이저 조준 장치를 달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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