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장: 왜 그렇게 생각해?
북명검파.
대장로 십여 명이 마치 부모라도 돌아가신 것처럼 절망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종주, 이미 모든 방법을 강구해 보았지만, 오성 방어진을 회복할 수 없었습니다.”
북명검파 종주의 얼굴에 살짝 경련이 일었지만,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대장로들이 계속해서 말했다.
“종주,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에게 들이닥칠 위험은 점점 더 커질 것입니다. 두변이 누설하지 않았다고 해도, 성화총교에서는 이 비밀을 눈치챌 겁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 북명검파는 멸망의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십자회와 성화총교가 최정상의 무도인들을 이끌고 북명검파를 공격하러 오겠지요. 두 세력이 동시에 우리를 공격한다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맙니다.”
“두변, 그놈은 역시 재앙을 불러오는 액운이었습니다!”
“북명 선조께서 북명검파는 두변에 의해 멸망할 거라고 하셨는데, 그 예언이 진짜였나 봅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런 방식으로 파괴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종주, 아니면 두변과 담판을 지으시지요. 두변이 원하는 게 뭔지 물어본 뒤에, 일단 오성진을 회복시켜달라고요.”
북명검파 종주가 말했다.
“급할 것 없다. 동방 연합 왕국의 60만 대군이 두변의 영토를 공격할 것이니 그자의 제삿날이 머지않았다. 그가 완전히 패배한 뒤에, 모든 걸 잃은 뒤에 협상을 한다면, 잡초 한 줄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협상에 임할 것이다.”
사천성, 어느 무인 지역.
두변은 마포 10대로 실탄 공격 훈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적군의 화포 모형이 3천 미터 밖에 있다.”
이번 훈련 사격의 표적은 나무로 만든 화포 모형으로, 동방 연합 왕국의 유탄포와 거의 같은 외형이었다.
화포 모형 총 10개가 3천 미터 밖에 놓여 있었다.
이 거리는 정말 까마득히 먼 수준이라 할 것이다.
평범한 병사는 육안으로도 표적을 보기도 힘든 정도인지라, 훈련에 참여한 포수는 모두 정신력 각성이 된 주술사 사제였다. 주술사 사제들은 정신력을 두 눈에 집중하면, 3천 미터 밖의 격광 붉은 점에 초점을 맞힐 수 있었다.
“격광 조준 장치를 조절하라.”
십여 명 주술사 사제가 계산한 값에 근거하여 붉은색 정석 조준 장치를 조절했다.
“조준 시작!”
격광 조준 장치의 단추를 누르자 격광이 발사되었다.
3천 미터 밖에 놓인 화포 모형에 붉은 점이 닿도록 화포의 위치를 조절했다.
“조준 완료!”
“발포.”
십여 명 주술사 사제가 동시에 정석 마포의 단추를 눌렀다.
슉, 슉, 슉, 슉.
포탄 열 발이 파란빛과 함께 순식간에 쏘아져 나갔고, 포탄은 거의 일직선으로 목표물을 향해 날아갔다.
2초 뒤.
쾅, 쾅, 쾅, 쾅!
고막이 울릴 정도의 굉음이 터지고, 곧이어 결과가 나왔다.
마포 10대 중 8대가 목표물을 명중했고, 화포 모형을 완전히 파괴했다.
첫 번째 발포에 벌써 70퍼센트의 명중률이라니, 정말 화포계의 혁명이라 할 만했다.
이어서 두변은 사격 목표물을 4천 미터 밖으로 옮기라고 명령했다.
쾅, 쾅, 쾅, 쾅!
두 번째 발포가 끝났다.
4천 미터 거리의 명중률은 43퍼센트로 떨어졌지만, 거리를 생각하면 43퍼센트 명중률도 정말 놀라운 수준이었다.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섭정왕 만세, 만세, 만만세.”
진무 황제가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부군,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뜻이죠?”
두변이 대답했다.
“맞습니다. 우리가 이길 수 있습니다.”
쾅, 쾅, 쾅!
고막이 울리는 굉음이 터지고, 산이 흔들리고 땅이 흔들렸다.
초특급 중포 10대가 일제히 발포되고, 몇 초 후.
콰과과광!
경천동지의 폭발이 일어났고, 2천 5백 미터 밖에 있던 집이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견고한 돌기둥으로 지어진 저택은 꼭 거대한 힘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는 것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실전 훈련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전 광서 제독, 현 광동 제독이자, 평서 대장군 원천조가 웃음을 터트리며 웃었다.
“대장군, 우리의 초특급 중포가 어떻습니까?”
영덕 위제가 방계와 손을 잡은 뒤, 방계 관원들이 다시 조정의 중심을 쥐락펴락하기 시작했다. 방탁은 다시 내각 수보가 되었고, 두회는 내각 차보가 되었다.
원래의 광서 순무, 후에 광동 순무였던 사람은 새로운 양강 총독이 되었다.
이번에 동방 연합 왕국의 두 군대는 총 66만 명이었고, 동쪽과 남쪽에서 두변의 영토를 공격할 것이다.
두회는 평서 대군의 주장군을 맡았고, 양강 총독 두강, 양광 총독 고정이 부장군을 맡았다.
원천조는 지금 대신들 앞에서 초특급 중포 실전 훈련을 하고 있었다.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중포의 구경이 너무 큰 것 아니야? 족히 10촌은 되어 보이는데?’
‘포탄 하나만 해도 몇백 근은 되어 보이는군.’
‘저 화포는 만 근이 넘지 않나? 포관 길이만 해도 2장이 넘으니.’
‘정말 대단한 초특급 중포로군.’
‘위력이 정말 어마어마해.’
‘견고한 돌기둥으로 세워진 집이 포탄 한 발에 폐허가 되다니.’
관리들이 침을 꿀꺽 삼키면서 속으로 감탄했다.
원천조가 말했다.
“제아무리 견고한 성벽이라고 해도, 우리 포탄 한 발만 맞으면 바로 금이 생길 겁니다. 아무리 강한 군대라고 해도, 우리 포탄에 맞으면 백 미터 이내에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거고요. 두변의 오주성, 남녕성, 계림성, 백색성은 우리 초특급 중포 앞에서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찢어질 겁니다.”
양광 총독 고정이 말했다.
“정말 파멸적인 대살기로군. 두 옹의 아들 두변이 이번엔 정말로 목숨을 잃겠습니다.”
두강이 말했다.
“그놈을 이제야 죽이는군.”
원천조가 말했다.
“수보 대인께서도 말씀하셨고, 폐하께서도 말씀하신 게 있습니다. 한 달 이내에 서남 5성을 짓밟은 뒤, 두변의 수십만 대군을 전멸시키되, 두변은 죽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놈을 산 채로 잡은 뒤, 경성 사람들 앞에서 능지처참해서 죽일 거라고 하셨습니다.”
“안전하게 하는 차원에서, 그놈의 사지를 다 자른 뒤에 경성으로 압송할 겁니다. 어차피 그놈은 목숨이 워낙 질겨서 그렇게 해도 안 죽을 테니까요.”
두강이 말했다.
“두변 그놈은 끝장이로군요.”
“두변을 드디어 죽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리에 있던 관리들이 웃으면서 같은 말을 했다.
이들에겐 두변이 죽는 건 이제 시간 문제였다.
열흘 뒤.
막한 여왕, 소목지는 동방 연합 왕국의 상장(上將: 중장보다 높고 대장보다 낮음) 방천명(方天命)이 이끈 33만 대군과 함께 두변의 영토인 광서로 진입했다.
항구 도시 염주성이 동방 연합 왕국 대군에게 완전히 포위당했다.
같은 시각.
양강 총독 두강, 광동 제독, 평서 대장군 원천조, 동방 연합 왕국 상장 방천조(方天潮)가 이끄는 33만 대군이 동부의 대성 오주성을 포위했다.
“발포하라!”
원천조가 명령했다.
“발포하라!”
막한 여왕이 명령했다.
콰과과과광.
두 전장에서 수천 대의 화포가 맹렬한 기세로 발포하기 시작했다.
두변과 동방 연합 왕국의 역사적인 대결전이 시작되었다.
“부군, 당신은 영창제가 문제 있다는 걸 일찍부터 알았죠?”
옥진이 물었다.
두변은 침상에 엎드려 있었고, 옥진 군주는 폭발적인 몸매를 드러낸 채로 두변의 등 위에 앉아 그의 어깨를 안마해주고 있었다.
“그가 촉왕 세자일 때부터 그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나요?”
옥진 군주가 묻자, 두변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옥진 군주가 흠칫 놀랐다.
“그런데 왜 당시에 그를 황제로 옹립하는 걸 반대했어요?”
“내겐 시간이 없었고, 다른 사람을 이해할 정신도 없었죠. 오직 영설만을 믿었고, 다른 사람을 신경 쓸 겨를이 전혀 없었어요.”
옥진 군주는 순간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두변의 등 위로 살며시 엎드렸다.
옥진 군주는 사실 두변이 왜 영설을 황제로 옹립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지금까지도 여인이 황제가 된다는 것에 완전히 동의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 송결의 죽음과 영창제의 진상을 보게 된 뒤, 군주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에 더는 자신이 없었고, 그 덕에 충군의 족쇄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옥진 군주는 드디어 당당하게 자기 마음속의 감정을 따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아도 되고, 사랑하는 이의 품에 마음껏 안기고, 아이를 낳고 현모양처의 삶을 살면 되는 걸까?
옥진 군주는 한동안 영설을 피했다.
영설이 그녀의 제일 친한 벗지만, 영설이 황제가 된 뒤로는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옥진 군주가 두변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면서 말했다.
“두변, 여인들은 집안에서 아이를 낳고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두변이 되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예상을 봐요. 과거엔 정말 막강한 존재였잖아요. 그녀가 천도맹의 주인이자 북명검파의 예상 선자였을 때, 그녀는 북명검파를 대표해서 천하 무도의 정의를 주도했어요.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매일 전투에 임했으며, 매일 자신의 이상과 신념을 위해서 분투했었죠.
하지만 예상이 당신과 혼례를 치른 뒤에는 매일 집에서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칠현금 켜는 걸 배우거나, 요리를 배우고 있어요. 회임한 뒤에도 부군과 친밀한 시간을 보내려고 하고, 아주 다양한 방법을 써서 당신과 친밀한 시간을 보내죠. 예상은 계림부의 청루에 있는 여인들보다 훨씬 더 대담하면서도 다정하고 애틋한 표정이에요. 예상이 그런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내가 직접 봤으면서도, 그녀가 한때 북명검파의 선자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니까요. 부군과 혼례를 올리기 전까지만 해도, 예상은 다른 사내와 손도 스치지 않는 고결한 여인이었다고요.
아, 그리고 혈관음도요. 혈관음은 계속 집에서 아이를 낳고, 밥을 짓는 생각만 하고 있어요. 교룡호 전함이 자기를 마지못해 묶어두기라도 한 사람처럼 보인다니까요?
영설도 그래요. 예전엔 영설의 머릿속엔 오직 제국 생각밖에 없었어요. 백성들을 위해서 싸우다가 유배를 당했고, 나중엔 다행히도 산해관 총병이 되었죠. 그런데 부군에게 시집온 뒤로는 매일 책만 읽어요. 심지어 병서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아들을 낳는지에 대한 책들이에요.
이도진은 더 심해요. 그녀는 당신의 모든 시간을 독차지하려고 해요. 그녀가 방에서는 거의 옷을 입은 적이 없다면서요.”
송옥진은 혼란스러운 마음에 하고 싶은 말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딱 부홍빙 장군만 모든 정신을 제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혼례에는 전혀 관심도 없어 보이고요. 그런데 나도 당신의 부인이 되었으니까 집에 남아서 당신을 위해 아이를 낳고 밥을 짓게 되는 건가요?”
두변이 말했다.
“당신이 잘못 짚은 거예요. 혈관음 누님 외에, 당신이 말한 여인들 전부 제 일에 자긍심과 신념이 굉장한 여인들이에요.
예상은 지금 모든 힘과 정신을 아이 낳는 데 쓰고 있지만,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다시 전투로 복귀할 거예요.
영설이 여황제로서 아직 천하의 인정을 받지 못해서 그런지, 지금 자신의 제일 임무가 빨리 아이를 낳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나중에는 민심을 끌어모으는 일에 몰두하겠죠.
나는 사람을 너무 냉혹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죠. 특히 백성들에게 더욱 그러하고. 그래서 영설이 황제로서 대녕 제국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중화 역할을 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도진은 무도에 심취해있고 젊음에 심취해 있는 거예요. 난 그녀에게 자주 임무를 주고 있고, 그녀 또한 임무를 수행하는 걸 몹시 즐기고 있죠.
그리고 당신 또한 자신의 일에 신념이 높은 여인이에요. 전장에서 제국을 위해 많은 것을 했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당신이 충심을 바치던 영창제가 당신의 충심을 망가뜨린 탓에, 당신 스스로 당신에게 신념이 있는지 의문이 생긴 거죠.”
옥진 군주가 두변의 등에 엎드린 채 물었다.
“그럼 당신 생각에는 내가 아이를 낳아야 할까요, 아니면 전장에 나가야 할까요?”
“당신 마음에 먼저 물어봐요.”
옥진 군주의 숨결이 거칠어지더니, 두변에게 입맞춤하면서 말했다.
“난 아이를 먼저 낳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