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장: 두 성만 지킨다.
두변은 구체적인 사상자 숫자를 보고 받은 후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아무리 시가전을 치렀다고 해도, 아무리 동방 연합 왕국의 화포 부대와 정면 전투를 치르지 않았다고 해도, 16만 병력 중 11만을 잃었다.
유래에 없는 최다 사상자를 낸 셈이었다. 총 병력이 40만 대군인데, 이번 전투로 무려 3분의 1을 잃다니.
이제 두변은 어디서 다음 전투를 치를지 결정해야 했다.
계림에서 전투를 치르는 건 어떨까?
계림은 두변에게 무척 의미가 깊은 곳이었다. 영설 공주가 제위에 오른 뒤, 그녀의 임시 수도가 계림성이었고, 계림을 계경으로 이름을 바꿨다.
여담이 말했다.
“계경에서 전투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적군과는 거리가 가깝지만, 우리와는 멀어서 시간이 부족할 겁니다. 게다가 계경은 우리 임시 수도라서, 수도가 함락되면 사기가 크게 떨어지고, 여론의 압박도 더욱 거세질 겁니다.”
여담의 생각은 모두의 생각이었다.
수도도 지키지 못하는 나라는 사실상 망국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여씨의 대염 왕성이 함락된 뒤에 곧바로 대염 제국이 망국했고, 여진 제국의 성도가 함락하자 여진 제국도 망국했다.
마지막으로 두변이 최종 결정을 내렸다.
그는 계경과 모든 성을 포기하고, 두 성만 지키자고 말했다. 두 성은 백색성과 진서 왕성(예전의 대염 왕국의 왕도)이었다.
막한과 소목지의 남부군, 그리고 두강과 원천조의 동부군은 파죽지세로 두변의 영토를 공격했다.
대녕 제국 진무 원년 9월 5일.
유주성이 함락했고, 다음날엔 유림성까지 함락했다.
9월 9일, 빈주성이 함락.
9월 13일, 심주성, 그리고 9월 14일 흠주성이 함락했다.
9월 15일.
두강과 원천조에겐 오늘이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날이었다.
오늘, 두변 영토의 중심지이자, 남방 대녕 제국의 수도인 계림이 함락되었다.
두강과 원천조는 즉시 광동, 남경, 북방의 경성에 희보를 알렸다.
광동에서 전투를 감독하고 있던 두회는 희보를 받고 크게 기뻐했다.
전세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순조로웠다.
초반 오주와 염주 전투만 힘겨웠지, 남은 성들은 전부 아무런 저항 없이 손쉽게 함락되었다.
두변의 군대는 동방 연합 왕국의 강대한 군대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고, 오주와 염주 전투 때만 유혈 사태가 있었지 남은 성들은 전부 때리기도 전에 항복했다.
동방 연합 왕국의 군대가 차례차례 두변의 영토를 함락시켰다고 하기보다는, 산이 무너지듯 우르르 쓰러졌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이제 진무 위제의 수도까지 함락되었으니, 두변과 진무 위제의 멸망이 코앞이겠군.’
양광 총독 고정이 말했다.
“변수가 없다면, 한 달 뒤에 모든 전투가 끝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두회가 말했다.
“드디어 이날이 왔군. 두변 그 독뱀 같은 놈을 짓밟아 죽이는 날이.”
“군의 보고에 의하면, 남부군과 동부군의 전공(戰功) 다툼이 무척 치열하다고 합니다. 심지어 마찰을 빚은 사례도 있다고 하고요.”
고정의 말에 두회가 대답했다.
“막한 그 여인은 신경 쓸 필요 없소. 우리가 상대할 순 없지만, 피할 순 있으니. 두강에게 백색부를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리시오. 공로를 평등하게 나누기 위해서 두변의 근거지인 진서 왕성은 막한, 소목지와 방천명 군대에게 넘기라고도 전하고.”
낭발랍방 왕국.
영창제는 10만 잔군을 이끌고 이 왕국을 철저히 소탕하고 완전히 점령해 버렸다.
그는 침상에 누워서 조심스럽게 아랫도리의 상처를 쳐다보았다.
신비한 술사가 그의 곁에서 말했다.
“폐하, 상처가 아무는 속도가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하지만 사내 구실을 다시 하게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릅니다.”
영창제의 사부이자, 신비한 여인 대종사가 말했다.
“성화총교에서는 잘린 손도 이어붙인다고 들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손을 말이지. 그런데 왜 당신들에게는 그런 술법이 없는 것이지?”
신비한 술사가 대답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성화교는 그런 비술에 있어서 아주 뛰어나지요.”
영창제가 물었다.
“짐이 사내 구실을 다시 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되나?”
“6할 정도 됩니다. 다행히도 상대방이 아주 깔끔하게 뿌리까지 자른 터라, 잘린 단면이 울퉁불퉁하지 않고 깔끔한 편입니다. 그리고 두 알이 으깨지지도 않았고요. 원래대로 이어붙였으니, 다시 제 기능을 할 확률이 무척 높습니다. 다만, 우리의 비술은 성화교만 못하다는 걸 꼭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알겠다. 그만 나가보거라. 짐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이 일을 한 글자라도 누설했다가는 너희 구족이 멸족당할 것이다.”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반 글자라도 누설하려고 할 때, 표령 도주가 제일 먼저 제 목숨을 앗아갈 테니까요.”
영창제의 협박에 술사는 예를 올리고 조용히 물러났다.
술사가 나간 뒤, 전서구가 영창제 사부의 손 위에 앉았다.
사부가 밀신을 펼쳐서 영창제에게 건넸다.
영창제는 밀신의 내용을 보자마자 얼굴이 상기되면서 크게 기뻐했다.
“진무 위제가 계경까지 잃었다고 합니다. 전투를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두변은 벌써 요충지를 전부 잃었습니다. 광서를 통틀어서 백색성 하나가 남았군요. 두변의 군대가 동방 연합 왕국의 대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소식입니다. 두변이 죽을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이건 우리에게 떨어진 천재난봉의 기회입니다. 당장 대군에게 북상하라고 명령해서 운남 행성 남부를 점령하라고 해야겠습니다. 두변이 동방 연합 왕국의 60만 대군을 상대하느라 운남을 지킬 여력이 없을 겁니다. 우리가 어부지리로 운남을 손에 넣어야겠군요.”
영창제가 명령하자, 수만 대군이 곧바로 북상했다.
이들은 두변의 후방이 빈 틈을 타서 두변의 남부 영토를 빼앗고, 두변의 등에 칼을 꽂을 작정이었다.
영창제는 대녕 제국의 강산을 되찾겠다는 떳떳한 명분으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할 계획이었다.
대녕 제국 진무 원년 10월 5일.
벌써 전투가 시작된 지 한 달 반이 지났고, 계경이 함락된 지 20일이 가까이 지났다.
사공엽과 주술사 국사 군단이 미친 듯이 일한 덕에 두변은 예상보다 더 많은 양의 정석 마포를 갖게 되었다.
두변이 예상했던 수량은 300대였지만, 실제로는 이들이 370대를 개조해냈다.
사공엽 등은 정석 마포를 한 대 개조할 때마다 마혈 무사에게 그것을 옮기게 했고, 마혈 무사들은 정석 마포를 부지런히 백색성과 진서성으로 옮겼다.
마지막 대결전은 백색성과 진서성에서 치러질 것이고, 두변이 진서성에서 마지막 결전을 직접 지휘할 예정이었다.
그는 백색성의 전투 지휘를 누구에게 맡길지 고심했다. 부홍빙, 기세, 여담 모두 훌륭한 인선이라 오랫동안 고민해야 했다.
결국 두변은 백색성 지휘권을 여담에게 주기로 했다.
여담은 백색성에서 정석 마포 190대, 대군 15만, 마혈 기병 2천 5백 명을 이끌고 두강과 원천조의 32만 대군과 결전을 치를 것이다.
두변은 진서 왕성에서 정석 마포 180대, 대군 15만, 마혈 무사 2천 5백 명과 함께 막한 여왕, 소목지, 방천명의 32만 대군과 전투를 치를 것이다.
대녕 제국 진무 원년 10월 6일.
막한 여왕, 소목지, 방천명이 이끈 32만 대군이 진서성을 포위했다.
반 시진 뒤, 두강, 원천조가 이끈 32만 대군이 백색성을 포위했다.
막한 여왕이 진서 왕성의 웅장한 성벽을 바라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사실 나는 백색성을 공격하고 싶었다. 어쨌든 이곳은 내 고향이니까. 하지만 이제 여긴 두변의 근거지가 됐지. 내 말이 맞지?”
소목지가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럼 백색부보다 두변의 근거지를 없애는 게 더 성취감이 들겠군. 성벽이 정말 크고 으리으리하네.”
“이 성벽은 과거 여여해가 보수했던 겁니다. 두변이 이 왕성을 점령했을 때는 전투가 없었던 터라, 성벽 훼손이 전혀 없었지요. 하지만 아무리 견고한 성벽이어도 우리 대포 앞에선 종잇장에 불과합니다.”
소목지의 말이 맞았다.
염주부의 성벽도, 오주부의 성벽도, 그리고 계경성의 성벽도 무척 견고하고 높았지만, 동방 연합 왕국의 화포가 이 성벽들을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었다. 성벽이 아무리 길고 웅장해도, 화포의 폭격을 맞으면 애초에 성벽이 없었던 것처럼 평지가 돼버린다.
“성벽의 시대는 이미 지났어. 두변도 시대에 뒤떨어졌고.”
막한 여왕이 냉소를 짓다가 감탄했다.
“두변이 참 많은 기적을 만들어 냈지만, 결국엔 시대에 뒤떨어지는 결말을 맞았군.”
“그렇죠. 두변은 이미 낙후해서, 곧 쓰레기로 버려질 겁니다.”
“화포를 준비해라. 두변의 마지막 성을, 마지막 희망을 산산조각 내버려야겠다.”
사실 이 군대의 실제 지휘자는 동방 연합 왕국의 방천명 상장과 소군의 심복 소목지이지만, 두 사람은 막한 여왕이 나서서 으스대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기에 그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뒀다.
어차피 이번 전투에는 전략 같은 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필승의 전투일 뿐이었다.
우선 화포로 성벽을 모조리 부숴버린 뒤, 가차 없이 폭격 세례를 퍼부어서 진서 왕성을 폐허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는 보병에게 진격을 명령해서 그곳에 남은 두변의 잔군을 쓰레기 치우듯이 깨끗이 죽여버릴 것이다.
동방 연합 왕국의 두 군대는 한 달 반 동안 여러 전투를 치렀지만, 한 번도 최선을 다한 적이 없었다.
특히 곤륜노 무사는 8만 명 중 단 몇천 명만 전투에 투입되었을 정도였다.
곤륜노 무사 부대는 오늘의 마지막 전투를 위해서, 두변의 전군을 전멸시키기 위해서 지금껏 힘을 아껴놓은 셈이었다.
발포 명령이 떨어지자, 동방 연합 왕국의 초특급 중포 10여 대가 3천 미터 밖의 성벽을 조준했다.
다른 화포 수백 대도 성벽 1천 5백 미터 앞에 진을 치고 성벽을 조준했다.
초특급 중포는 하나당 만 근이 넘어서 마차와 우차(牛車)로도 빠른 이동이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동방 연합 왕국군의 행군 속도가 무척 빨랐던 것은, 곤륜노 무사들이 어깨에 밧줄을 두르고 힘으로 화포를 옮겼기 때문이었다.
쿠구궁, 쿠구궁.
거대한 바퀴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수백 개의 시커먼 포구가 진서 왕성의 성벽을 조준했다.
몇 리까지 이어지는 화포진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막한은 진서 성벽 위에 가득한 병사들을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말했다.
“성벽에 저렇게 많은 병사를 세워놓다니. 두변이 제정신이래? 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대?”
소목지가 말했다.
“두변은 이미 낙후된 놈이잖습니까. 무슨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때, 소목지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젖히면서 웃더니 이내 아예 배까지 잡고 크게 웃었다.
두변의 화포진이 나타나서 동방 연합 왕국의 화포진을 조준하는데, 누가 봐도 전부 원시적인 활강포였다.
이어서 소목지와 막한은 더욱 웃긴 장면을 목격했다. 포병들이 화포 안으로 쇠구슬을 넣고 있지 않은가.
“정말 웃겨 죽겠습니다. 두변이 활강포로 우리를 공격하려나 봅니다. 그것도 실심 쇠구슬로요.”
“두변 저놈이 미친 게 분명해. 제정신이 아니야. 저놈의 화포는 우리보다 백 년은 더 뒤처졌을 텐데, 아직도 안 버리고 뭐 하는 거야?”
“저 포탄이 얼마나 날아올까요? 5백 미터요? 아니 3백 미터는 될까요?”
소목지와 막한 여왕이 웃는 사이, 동방 연합 왕국의 상장 방천명이 명령을 내렸다.
“모든 화포 조준!”
“초특급 중포, 장전!”
이때, 성벽 위에 있던 두변도 큰소리로 명령했다.
“조준!”
그러자, 수백 명 주술사가 조준 계산을 하더니, 격광 조준 장치의 단추를 눌렀다.
격광 백여 개가 동방 연합 왕국의 초특급 중포와 화포진의 화포를 나누어 조준했다. 격광의 붉은 점들이 전부 목표물을 정확히 조준했다.
“조준 완료했습니다!”
주술사 사제들이 보고했다.
“발포!”
두변이 명령했다.
슉, 슉, 슉, 슉.
정석 마포 백여 대에서 파란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실심 포탄들이 번개처럼 쏘아져 나갔다.
펑, 펑, 펑.
정석 마포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누가 봐도 경악할 만한 발포 속도여서, 사람들은 귀를 막을 새도 없었다.
1초 뒤, 백 발이 넘는 실심 포탄이 동방 연합 왕국의 화포진에 떨어졌다.
콰과과광!
폭발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동방 연합 왕국의 화포진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화포진에 놓여 있던 화포 백여 대가 나무로 만든 장난감처럼 산산조각이 나서 깨지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순간, 막한 등은 너무 놀라 얼간이처럼 그저 멍하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