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22화 (522/648)

522장: 이제 시작일 뿐

사실 요 며칠은 예상 선자의 출산 예정일이었다. 두변은 전투 준비를 하면서도 예상 선자의 곁을 지키는 걸 잊지 않았다.

참담한 오주 전투가 끝난 뒤, 완안영도는 1만여 잔군을 이끌고 힘겹게 백색성으로 돌아왔다.

여황은 진서성으로 돌아왔고, 영신 황후도 내상을 입은 터라 두 사람이 예상의 출산을 위해서 그녀의 곁을 지켰다.

동방 연합 왕국의 30만 넘는 병력이 동이 트기도 전에 진서성을 포위했다.

그리고 태양이 떠오를 때쯤, 예상의 첫 진통이 시작되었다.

성벽 위의 정석 마포 180대가 첫 발포를 끝냈다. 포탄은 5배 음속이 넘는 속도로 1초 만에 적군의 화포진에 떨어졌고, 2초 뒤, 수십 발 포탄이 동방 연합 왕국의 초특급 중포를 명중했다.

초특급 중포는 구경이 크고, 포관이 6, 7미터가 될 정도로 길었다.

조준을 완료한 중포들은 전부 포관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있었는데, 만에 하나 그중에라도 한 발이 발포됐다면 벌써 성벽에 구멍이 났을 것이다.

실심 탄환들이 5배 음속으로 만 근이 넘는 중포를 명중하는 순간, 중포들이 순식간에 뒤집히더니 포관과 포체가 완전히 구겨지거나 부서졌다.

막한, 소목지, 그리고 이 군대의 지휘관 동방 연합 왕국 상장 방천명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들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두변이 설치한 화포는 전부 골동품에 가까운 활강포로, 유효 발포 거리가 고작 4, 5백 미터였다. 게다가 이들이 쓴 포탄은 실심 쇠구슬이며, 유탄이 아니라서 폭발을 일으키지 못 한다.

제일 중요한 건, 이런 활강포로는 절대로 이런 명중률을 보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건 달랐다.

낙후된 활강포의 발포 속도가 동방 연합 왕국의 유탄포보다 훨씬 빨랐다. 명중률 또한 유탄포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았다.

‘도대체 저게 뭐지?’

‘두변은 무슨 괴물인 거야?’

‘저 화포들은 백 년이 넘게 낙후되었는데, 어째서 저렇게 강력한 거지?’

두변은 첫 발포만에 동방 연합 왕국의 초특급 중포를 전부 파괴했고, 화포진에 있던 다른 화포도 백 대 넘게 부서졌다.

막한, 소목지, 방천명 상장뿐만 아니라, 모든 병사도 입을 벌린 채 제자리에 넋을 놓고 서 있었다.

이때, 막한이 소리쳤다.

“남은 화포를 전부 발포하라. 어서!”

소목지가 다급하게 말했다.

“맞습니다. 두변의 화포는 발포하는 데 강력한 화력이 필요할 겁니다. 재장전하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릴 테니, 이 틈을 타서 우리 화포로 성벽을 무너트려야 합니다. 여봐라. 어서 발포하라. 당장 발포해!”

상장 방천명이 외쳤다.

“남은 화포를 전부 장전하고, 조준되는 대로 발포를 준비하라.”

백색성.

두강, 원천조, 방천조 상장이 이끈 32만 대군의 속도는 막한 여왕의 군대보다 행군 속도가 조금 느렸고, 백색성을 포위하는 시간도 막한 등보다 조금 느렸다.

“고생했습니다.”

여담이 완안영도에게 차를 한 잔 따라줬고, 완안영도는 단숨에 찻잔을 비웠다. 그는 상처투성이였지만 거동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완안영도가 말했다.

“동방 연합 왕국의 군대가 너무 강력합니다. 오주성에서 우리 8만 대군이 거리에 숨어서 시가전을 치렀는데,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아군을 6만 명이나 잃었는데, 적군의 사상자는 불과 1만이었죠.”

여담이 말했다.

“그 전투가 잔혹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승패는 사상자 수로 판가름 되는 게 아니라, 전략 목표를 달성했는지가 관건이지요. 이 점으로 보았을 땐, 장군이 이긴 겁니다. 만약 장군께서 13일을 버티지 못했다면, 우리 동쪽 전장은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했을 겁니다.”

완안영도가 말했다.

“우리는 속죄를 하는 겁니다. 여진 무사가 이제 1만 명도 안 남았지만, 이번 기회 덕분에 주군께서 우리를 진심으로 받아주신 거지요. 덕분에 우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게 된 거고요.”

“오주 전장에서 그토록 절망적이었는데, 장군과 여진 무사들이 끝까지 투항하지 않고 싸웠다는 것을 듣고 진심으로 탄복했습니다.”

여담이 감탄하며 말했다.

“투항하려던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내 기세로 그 마음을 누를 수 있었는데, 나중에는 떼로 항복하려는 자들을 막을 수 없었지요. 그런데 동방 연합 왕국이 투항을 받아주지 않아서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끝까지 싸웠던 겁니다. 그래서 6만 명이나 죽은 거고요.”

완안영도가 말하다가 잠시 뜸을 들인 뒤, 이어서 말했다.

“우리 여진인은 아직 주군의 신뢰를 얻지 못했습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우리 6만 명의 희생이 가치 있는 것일까요? 이번 전투에서 정말로 우리가 승리할 수 있습니까?”

완안영도가 막연하게 묻자, 여담이 자신 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갑시다. 나가서 한 번 봅시다. 6만 명의 희생으로 맞바꾼 시간이 가치 있었는지, 우리 주군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지 확인해드리지요.”

여담과 완안영도가 백색성 성벽 위에 올랐다.

이 성은 2년 동안 여러 번 확장되었고, 그 덕에 성벽은 거의 새로 지어진 상태였다.

백색성은 그 짧은 몇 년 동안 이미 여러 차례 대전을 치렀었다. 대전 때마다 백색성의 성벽은 상처투성이가 됐지만, 한 번도 함락된 적은 없었다.

지난번 대전이 끝난 뒤, 2년이 지났다.

그 사이 백색성은 많은 변화를 거쳐서 완전히 새로운 곳이 되었다.

완안영도로서는 처음으로 정석 마포를 보는 것이었다. 정석 마포는 겉으로 보았을 때는 낙후된 활강포일 뿐이고, 다른 점이 있다면 붉은색 정석 장치가 추가됐다는 점 정도였다.

완안영도가 외성벽 밖을 쳐다보았다.

동방 연합 왕국의 군대를 제대로 보는 건 처음인지라, 신식 화총병 부대와 질서정연하게 끝도 없이 늘어선 대군 대열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완전무장한 냉병기 병사들도 반듯하게 대열을 갖추고 서 있었다.

무엇보다 더 완안영도를 놀라게 했던 건 곤륜노 무사 부대였다.

완안영도는 오주 전장에서 겪었던 곤륜노 무사와의 전투 때문에 밤마다 악몽을 꿀 정도였다. 수십 명 여진 무사가 곤륜노 무사 한 명을 간신히 상대하던 게 눈앞에 선했다.

동방 연합 왕국의 곤륜노 무사들은 마약(魔藥)으로 개조된 터라, 그 전투력은 마혈 무사와 똑같은 수준이었다.

곤륜노 무사의 체형과 체중은 일반 병사의 2배여서, 곤륜노 무사 4만 대군은 평범한 10만, 20만 대군보다 훨씬 더 압도적일 수밖에 없었다. 대열을 맞춰서 있으니 마치 철옹성처럼 단단해 보였다.

30만이 넘는 병력이 백색성을 사방으로 포위했다.

백색성은 금방이라도 강철 홍수처럼 보이는 동방 연합 왕국의 대군에 휩쓸려 사라질 것만 같았다.

완안영도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동방 연합 왕국이 오주 전장에서 곤륜노 무사를 천 명도 채 쓰지 않았는데 우리의 몇만 명을 학살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눈앞에 보이는 곤륜노 무사의 수가 무려 4만입니다.”

여담이 말했다.

“적군에겐 4만 명 곤륜노 무사가 있지만, 우리에겐 마혈 기병이 고작 2천 5백 명입니다. 저들은 총 32만 병력이지만, 우리는 15만 대군밖에 없고, 적군은 화포 6백 대인데, 우리는 190대밖에 없죠.”

동방 연합 왕국의 화포는 여진 무사들의 또 다른 악몽이었다.

원천조와 두강이 백색성 성벽을 올려다보았다.

원천조가 이를 부득 갈면서 말했다.

“내가 백색성을 두 번이나 포위했었는데, 두 번 다 백색성을 공격하지 못했지. 정말 죽을 만큼 분했던 기억이오. 드디어 오늘 이 백색성을 폐허로 만들 수 있게 되었소이다.”

두강이 말했다.

“자네 속에 차오른 울분을 위해서라도 오늘의 폭격은 특별히 한 시진 동안 진행하겠네.”

“하하, 반 시진이면 성벽이 허물어지고, 저 위에 있는 사람도 전부 죽을 거요. 한 시진 폭격이라면, 성 절반이 폐허가 될 것이고.”

원천조가 만족스럽게 웃자, 두강이 말했다.

“이곳은 두변 그놈이 흥하기 시작한 곳이니, 이 성에 있는 모든 집을 때려 부수고,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여야 하네. 그래야만 그놈의 기세가 팍 꺾일 테니.”

원천조가 큰소리로 명령했다.

“폭격을 준비하라. 한 시진 동안 두변 놈의 백색성을 때려 부술 것이다. 두변 저놈의 운명은 포화 속에서 완전히 끝장날 것이다!

포병 수천 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포병들은 포진을 정렬하고, 포구를 돌려서 백색성을 조준했다.

동서남북 외성벽 밖 1천 5백 미터 거리에 동방 연합 왕국의 화포 진영이 새까맣게 깔렸고, 화포 수백 대 진영이 수십 리나 펼쳐졌다.

초특급 중포 15대는 성벽에서 3천 미터 떨어진 곳에 설치되었고, 전부 동쪽 정면 성벽을 조준했다.

아직 폭격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원천조는 벌써 성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백색성 성벽에 설치된 낡고 오래된 활강포로 향했다.

원천조가 두강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두변이 확실히 시대에 도태된 게 맞군. 우리보다 백 년은 더 낙후된 화포를 쓰다니.”

두강이 맞장구쳤다.

“우리 동방 연합 왕국은 역사의 거대한 굴레와도 같지만, 두변은 길가에 있는 보잘것없는 사마귀에 불과하지. 저놈이 제아무리 날뛰어도 우리의 굴레를 막을 수 없을 것이고, 우리의 굴레에 짓밟혀서 죽을 것이오.”

원천조가 말했다.

“예전에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동방 연합 왕국의 절대적인 세력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 내는 쥐새끼로군.”

“그렇지. 소군 전하께서는 한동안 인도양, 미주에 집중하신 터라, 두변을 상대하기도 귀찮아하셨지. 덕분에 두변 저놈이 광대처럼 날뛰고 다닐 수 있었던 게지. 사실 지금도 소군 전하께서 직접 나서신 건 아니지. 소군 전하께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만 해도 두변 저놈을 으깰 수 있으니.”

“백색성, 두변 그놈의 근거지였던 이곳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주지.”

이때, 백색성 성벽에서 갑자기 붉은 빛줄기 수십 개가 쏘아졌다.

일반 병사들은 붉은 빛줄기를 보지 못했지만, 두강과 원천조는 정신력으로 단번에 붉은 빛줄기를 발견했다.

붉은 빛줄기는 일제히 화포 진영을 향하고 있었다.

‘저건 또 뭐지?’

원천조와 두강이 흠칫 놀라면서 불안감이 온몸을 엄습해왔다.

성벽 위의 주술사 사제들은 화포에 불을 붙일 필요도 없이 단추 하나를 눌렀을 뿐이고, 불꽃이 터지는 것도 없이 눈부신 파란빛만 터져 나왔다.

슉, 슉, 슉, 슉.

190대 화포에서 실심 탄환 190발이 번개처럼 쏘아져 나갔다.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이 터지고, 실심 포탄들이 휙휙 소리를 내면서 하늘을 갈랐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포탄의 모습은 꼭 하늘에서 쏟아지는 유성우와도 같았다.

정말 아름답고도 놀라운 광경이었다.

바로 다음 순간, 지면이 흔들리더니 쿠과과광!

더욱 화려한 장면이 외성벽 밖에서 펼쳐졌다.

원천조와 두강의 화포들이 일제히 부서지고 찢어지면서, 파편들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쿠과과광.

이어서 원천조가 제일 아끼는 초특급 중포 15대가 거대한 장난감이 된 것처럼 불가항력에 의해 뒤집히면서 병사들이 있는 대열에 내리꽂혔다.

동방 연합 왕국의 대군 대열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고, 수백 명 병사들이 순식간에 으깬 살덩이가 되어버렸다.

두강과 원천조는 경악을 넘어 머리가 굳어 버렸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두변 저놈의 화포는 우리보다 백 년은 뒤처진 활강포인데, 어째서 저렇게 강력한 거지?’

아직 놀라긴 일렀다.

두변의 전투는 이제 막 시작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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