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3장: 방씨 군단의 절망
진서성 전장.
막한이 악을 쓰면서 발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동방 연합 왕국에 아직 화포 수백 대가 있으니, 너무도 강력해서 장전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 두변의 화포를 이 틈에 없애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어서 펼쳐진 광경은 막한과 소목지를 완전히 절망케 했다.
이제 막 발포가 끝난 두변의 포병들이 재빨리 정석 마포 안으로 실심 포탄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격광 조준 장치로 조준한 뒤, 몇 초 만에 두 번째 발포를 시작했다.
‘포당 안을 정리할 필요도 없이, 화약을 넣을 필요도 없이, 바로 다음 발포가 가능하다고?’
‘이 세상에 천리(天理)가 있긴 한 건가? 발포 거리, 명중률이 이렇게 뛰어난 화포가 장전 속도까지 이렇게 빠르다고?’
‘우리 화포가 이렇게 허무하게 역사의 뒤편으로 없어지는 거야?’
슉, 슉, 슉, 슉.
실심 탄환 백여 발이 초음속에 의해 붉고 뜨겁게 달아올라서, 여기서도 하늘에서 유성우가 쏟아지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화려한 유성우가 또 한 번 막한과 소목지의 화포진에 떨어졌다.
콰과과과광!
파멸의 유성우가 화포진을 박살내 버리고, 화포 백여 대가 종잇장처럼 찢기면서 화포 파편들이 사방으로 솟구쳤다.
막한과 소목지의 두피가 저릿해졌다.
‘저게 도대체 무슨 화포야?’
‘화약도 안 쓰고, 발포 과정이 이렇게나 단순하다고?’
‘단추 하나만 누르면 발포가 되고, 몇 초 만에 재발포가 가능해?’
이들이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뜬 사이, 세 번째 발포가 시작되었다.
뒤이어 네 번째, 다섯 번째.
찬란한 파멸의 유성우가 인정사정없이 막한과 소목지의 진영을 파괴했다.
포구에서 파란빛이 번쩍이면, 붉게 달아오른 실심 포탄들이 파멸의 유성우가 되어 적진을 파괴했다.
그 파멸의 유성우는 꼭 염라대왕이 죽을 사람을 호명하듯 정확하기만 해서, 1천 5백 미터 거리에서 명중률이 8할 이상이었다. 이 정도면 완전히 가리키는 대로 명중하는 수준이었다.
막한과 소목지는 온몸이 싸늘해지면서 절망 가득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멸의 유성우는 두변의 성벽 위에서 쉼 없이 쏟아졌고, 막한과 소목지의 군대는 반항 한 번 못하고 죄다 파괴되었다.
막한, 소목지뿐만 아니라, 백색성 전장에 있던 두강과 원천조도 같은 상황이었다.
그들은 그저 넋을 놓은 채 파멸의 유성우가 하늘을 가르는 것을 바라보았고, 유성우가 정확히 자신들의 화포를 박살 내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두변은 두 전장에 정석 마포 총 370대를 투입했고, 총 아홉 번을 발포했다.
그렇게, 두 전장에 있던 동방 연합 왕국의 화포는 전부 파괴되었다.
초특급 중포, 일반 화포 할 것 없이 한 대도 남기지 않고 파괴되었고, 그렇게 동방 연합 왕국의 화포진은 전멸했다.
순식간에 폐기물이 되어버린 화포를 바라보던 막한과 소목지는 온몸이 떨려왔다.
이 화포들은 그들의 최강 무기요 최강 살기였다. 그런데 이렇게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파괴되어버리다니.
두변 쪽에서 폭격이 진행되는 사이, 화포 수십 대가 발포를 하긴 했지만, 정확한 조준을 할 겨를도 없이 난사한 터라 두변의 성벽에는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우리 동방 연합 왕국의 화포가 세상에서 제일 기술이 앞섰고, 제일 강한데. 어째서 반격할 기회도 없이 이렇게 한 번에 파괴된 거지? ’
“계속 발포하라. 적군을 조준해서 계속 발포하라!”
두변의 명령에 백여 명 주술사 사제가 격광 조준 장치를 동방 연합 왕국의 군사 대열에 맞추었다.
“조준 완료!”
“발포하라! 발포하라!”
슉, 슉, 슉, 슉.
붉게 달아오른 실심 포탄이 또 한 번 화려한 장면을 만들어 냈다.
5배 음속으로 발포된 포탄들은 눈 깜빡할 사이에 동방 연합 왕국의 진영에 쏟아졌다.
그러자 더욱 끔찍하고 화려한 광경이 펼쳐졌다.
실심 포탄은 사실상 불이 붙은 쇳덩이나 다름없어서 사람의 몸에 닿기만 해도 그 사람의 몸을 뚫을 정도로 강력했다. 포탄에 맞은 병사들은 피를 보일 틈도 없이 몸이 녹아버렸고, 실심 포탄은 그렇게 병사들을 관통하고도 속도가 줄어들지 않았다.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 다섯 명.
포탄 한 알은 대열 한 줄을 통째로 관통할 정도로 사악했다.
포탄이 지나간 자리에는 몸이 녹아버리고 뼈가 으스러진 병사들의 시신만 가득했다.
동방 연합 왕국의 질서정연한 대열이 이럴 때 이렇게 도움이 되다니.
포탄 한 발이면 한 줄을 쓸어버릴 수 있다니.
슉, 슉, 슉, 슉.
한 번, 또 한 번 발포가 진행되면서, 두변은 거의 학살 수준으로 동방 연합 왕국의 병사들을 죽이고 있었다.
사실 두변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정석 마포가 폭발력이 없으니, 병사를 공격하기보다는 고정된 커다란 목표를 제거하는 데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초음속 실심 포탄의 위력은 한 번에 백 명을 뚫어버릴 정도로 막강했던 것이다.
두변은 정석 마포 10대로 소목지를, 다른 10대로 막한 여왕을 조준하고 발포하라고 명령했다.
잠시 뒤, 소목지와 막한은 자신의 몸에 붉은 점 10개가 박혔음을 깨달았다.
슉, 슉, 슉, 슉.
파란빛이 터져 나오고, 각각 10발의 포탄이 막한과 소목지를 향해 날아갔다.
포탄의 속도는 1초에 1천 5백 미터를 날아갈 수 있을 정도로 빨랐다.
소목지가 경공을 이용해서 재빨리 수십 미터 뒤로 도망쳤다.
하지만 막한 여왕은 이를 부득 갈더니, 제자리에 서서 도망치지 않았다.
슈우우웅.
실심 포탄 10발이 순식간에 막한을 향해 날아왔다.
“으아악!”
막한이 주먹에 힘을 주고 포효했다.
그녀는 실심 포탄을 전부 튕겨내기 위해서 현기 내력을 충격파처럼 터트렸다.
그런데 놀라운 건, 실심 포탄의 위력이 너무 강해서 비행 궤도를 살짝 바꿨을 뿐, 충격파에 의해 튕겨 나가지 않았다.
막한이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카드득, 쾅.
막한은 제 무공을 극치로 끌어올려서 자신을 향해 날아온 실심 포탄 10발을 전부 쪼개버렸다.
이 여인의 무공 수준은 도대체 얼마나 높은 걸까.
하지만 붉게 달아오른 실심 포탄의 파편 일부가 막한의 옷에 튀어서, 화려한 금색 왕포에 새까만 구멍이 몇 개 생기고 말았다.
막한이 갑자기 휘청이더니, 목구멍까지 올라온 피를 토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금색 왕포를 휘날리던 막한 여왕은 여왕의 위풍은 조금도 보이지 않고 순식간에 추레한 꼴이 되어버렸다.
막한이 원한이 가득한 눈빛으로 성벽 위의 두변을 노려보면서 소리쳤다.
“두변, 아직 자만하긴 이르다! 우리에겐 30만 대군이 있고, 모든 걸 파괴할 수 있는 곤륜노 무사가 있다!
화포가 없으면, 근접전을 치르면 된다!
네놈의 마혈 무사가 얼마나 강한지는 네놈이 제일 잘 알겠지. 하지만 우리의 곤륜노 무사들은 네놈의 마혈 무사만큼 강하다. 저들도 마약으로 개조된 무사들이기 때문이지!
우리의 힘은 여전히 네놈의 열 배, 이십 배다!
우리의 화총 부대와 곤륜노 무사들이 네놈들을 전부 찢어 죽일 것이다!”
막한은 외치다가 또 한 번 피를 토하더니,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공성하라. 대군은 전부 공성을 시작하라. 성벽까지만 가면 승리다. 성벽까지만 가면, 두변 저놈을 죽일 수 있다!”
소목지가 동방 연합 왕국의 상장 방천명을 바라보았다.
방천명과 소목지는 서로의 시선을 마주치자마자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퇴각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이대로 제자리에서 폭격을 맞고 있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하나.
공성이다!
이들은 자기네 병사들이 성벽까지만 돌진할 수 있다면, 저 괴상한 화포들을 전부 때려 부수거나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4만 곤륜노 무사로 45만 대군도 무찌를 수 있는데, 두변이 가진 병력은 15만이니, 곤륜노 무사들만 출전해도 두변의 군대를 네 번이나 전멸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동방 연합 왕국은 결국 승리를 쟁취할 것이고, 화포 부대가 없다고 해도 두변을 죽이는 데엔 전혀 문제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공성하라. 총공격이다!”
상장 방천명이 명령했다.
동방 연합 왕국의 30만 대군이 두변의 진서성을 향해 홍수처럼 몰아쳤다.
한편, 다른 전장에서도 원천조의 명령을 받고 백색성을 향해 전군이 달려갔다.
두변이 냉소를 지었다.
“화포가 없으니까 공성전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냉병기 싸움을 하고 싶다면, 내 전호검 맛 좀 봐라.”
두변의 군대는 5천 자루가 아닌, 전호검 1만 자루로 무장한 상태였다.
정석 마포의 위력을 보여줬으니, 이젠 천하무적 전호검의 위력을 보여줄 차례였다.
운남성 차리주(車里州).
차리주는 두변의 영토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주로, 원래는 차리 선위사(宣慰司) 소속으로 서남 토사 연맹의 일원이었는데, 나중에 대염 왕국에 귀속되었다.
두변이 대염 왕국을 제거한 뒤, 모든 토사를 없애고 차리주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지금 차리주는 이미 영창제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
두변이 백색성과 진서성 결전을 앞두고 있는 터라, 서남의 모든 군대가 백색성과 진서성으로 집결했고, 다른 주부는 어쩔 수 없이 턱없이 부족한 병력으로 성을 지키는 수준이었다.
차리주는 2선 민병대까지 다 합해봐도 병력이 수천 명에 불과했다.
수천 명의 병력으로 영창제의 수만 대군을 상대할 수는 없으니, 차리주는 불과 하루 만에 함락되었다.
차리주는 절세 지하성에서 온 관리 기암이 지주(知州: 주州의 장관)로 있었는데,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도 겉모습은 스물 몇 살처럼 보였다.
“황당하군. 참으로 황당해.”
“완전히 난정(亂政)이로군!”
차리주의 지주가 진사 출신도 아니고 수재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자, 영창제를 따르는 관리들은 치욕스러움을 느끼면서 울분을 토했다.
관리들의 눈에는 두변의 이런 행동이 역모보다도 더 파렴치했다.
“두변 그놈은 세상의 이치를 역행하고 있고, 스스로 망하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두변 그 개 같은 놈과는 도저히 같은 땅을 밟을 수가 없소. 그놈을 가만둘 수 없소이다!”
영창제가 차리주 지주 기암을 둘러싼 관리들 사이를 지나, 기암 앞에 서서 담담하게 물었다.
“짐은 대녕 제국의 유일한 정통 황제다. 짐은 군대를 이끌고 북상하여 잃어버린 강산을 되찾고 하는데, 짐에게 투항하겠는가?”
지주 기암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대녕 제국의 유일한 정통 황제는 진무제입니다. 당신이 이렇게 군대를 이끌고 대녕 제국의 영토, 특히 섭정왕의 봉토에 들어온 것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영창제가 냉소를 지었다.
“자네의 주군은 곧 끝장날 텐데? 아, 이미 죽었나?”
차리 지주 기암이 말했다.
“좌정관천(坐井觀天: 우물 안 개구리)이 따로 없군요.”
영창제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말했다.
“두변 놈에게 세뇌당한 어리석은 자가 여기 또 있었군. 상궤를 벗어나 도리를 어긴 놈이니, 즉각 처형하라.”
무사 한 명이 곧바로 기암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차리 지주 기암은 마지막 숨이 끊기기 전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위제, 이 판은 네가 낄 수 있는 판이 아니다!”
영창제는 부아가 치밀어 올라서, 이미 죽은 기암을 몇백 번이고 더 죽이고 싶었다.
이때, 영창제의 사부 대종사가 안으로 들어와서 그에게 밀서를 전해줬다.
밀서의 내용은 무척 간단했다.
두강, 원천조, 방천조의 32만 대군이 백색성을 포위했고, 막한, 소목지, 방천명이 이끈 32만 대군이 진서성을 포위했고, 결전이 곧 시작될 거라는 내용이었다.
‘쯧쯧, 아쉽군.’
영창제가 내심 탄식했다.
자신의 세력이 충분히 강하지 못해서 두변이 동방 연합 왕국의 손에 죽게 되는 게 무척이나 아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거대한 볼거리를 떠들썩하게 구경할 셈이었다.
그저 어부지리를 꾀하면서, 두변이 전멸하기 전에 그의 살덩이를 한 점 물어뜯으면 그만이었다.
그는 동방 연합 왕국의 사자와 두 번 정도 대면했는데, 영창제의 욕심이 너무 크지만 않다면, 두변의 주부 몇 개만 집어삼키는 정도라면 동방 연합 왕국도 개의치 않을 거라는 점을 파악했다.
그리고 영창제는 동방 연합 왕국과 아주 중요한 협상을 시작했다.
사실상 그는 이미 원칙적으로 이 협상에 동의했다. 서남에 있는 백성들을 강압해서 대규모로 악마의 열매를 재배하게 해고, 저가로 동방 연합 왕국에 판매하기로 한 협상 말이다.
물론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또 하나의 조건은, 그에게 두 가지 선택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영창제가 지도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지금 북상해서 두변의 경동부(景東府)를 공격할지, 아니면 동쪽의 홍하부를 점령할지 결정해야 했다.
경동부는 지리적으로 지금 영창제와 좀 더 가깝지만, 홍하부는 여씨의 중요 성 중 하나였고, 경동부보다 훨씬 더 번화했다.
지금도 홍하부는 두변의 핵심 성 중 하나로, 그곳엔 무수히 많은 공방이 있는데 그것도 납포(蠟布)의 핵심 생산지였다. 성 전체가 금산은해이니, 이 성을 점령하면 순식간에 부유해질 것이다.
게다가 홍하부가 두변의 진서 왕성과 가까운 만큼, 홍하부를 점령하면 두변에게 주는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두변이 완전히 몰락하기 전에 빠르게 홍하부를 점령해야만 했다.
영창제는 그래도 불안했는지, 또 동방 연합 왕국의 사자와 밀담을 나눴다.
“만약 짐이 홍하부를 공격한다고 해도, 막한 여왕이 짐을 공격하진 않겠지?”
영창제가 물음에 동방 연합 왕국의 사자가 말했다.
“막한 여왕의 영토는 충분히 큽니다. 이제 막한 여왕도 자신의 욕망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지요. 그 점은 폐하도 같습니다. 폐하께서 중원 지역을 노리고 계시지만, 사실 면 왕국에 더 초점을 맞추고 계신 게 맞지요?”
영창제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당연하지.”
영창제는 동방 연합 왕국이 자신을 이용해서 면 왕국을 점령하려는 걸 알고 있었다.
면 왕국은 동방 연합에 들어오겠다고 약속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성화교 세계와도 왕래가 있었다.
그래서 동방 연합 왕국은 영창제를 가림막으로 쓸 생각이었다.
영창제는 자신이 동방 연합 왕국의 유용한 도구가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런 각박한 틈새에서 생존할 수 있어야만 자신의 가치가 증명되기 때문이다.
동방 연합 왕국은 너무도 막강해서 그들의 도구가 되는 것 자체가 이미 큰 권력이었다.
“대군은 출정하여 홍하부를 탈환하라!”
영창제가 명령했다.
영창제의 수만 대군은 두변에게 제일 중요한 남부 요충지를 점령하기 위해 홍하부를 향해 빠르게 행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