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4장: 두견(杜犬)
경성.
영덕제는 여전히 대녕 제국의 구오지존이었다.
진무제가 가진 영토는 서남 5성이 전부였고, 영창제는 주부 몇 개를 가진 게 전부였다.
하지만 영덕제의 조정은 대녕 제국의 대부분 종횡 만리의 강산을 관장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 천하가 두변을 포위해서 공격하는 것도, 동방 연합 왕국이 두변을 공격하기 위해 출병하는 것도 사실 다 영덕제의 의도였다.
두회가 보낸 밀서를 받은 영덕제가 크게 기뻐하면서 말했다.
“참으로 잘 됐군. 두강과 원천조는 잘 싸워줬어. 이제 전쟁이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광서를 점령했으니. 진무 위제의 임시 수도까지 말이야.”
방탁이 말했다.
“두변의 병력이 집중된 곳을 생각해보면, 결전은 백색성과 진서성에서 치러질 것입니다. 신이 예상한 게 맞다면, 대전은 이미 시작되었을 겁니다. 그곳은 두변의 마지막 병력이 있는 곳이니, 두 성만 점령한다면 전쟁이 끝난다는 뜻이고, 두변은 멸망할 겁니다.”
영덕제는 마음이 조금 복잡했다.
‘동방 연합 왕국이 이렇게나 강할 줄이야. 두변 그놈은 대녕 제국에서 버르장머리 없이 날뛰기도 했고, 여씨와 대금 대국까지 멸망시켰는데, 동방 연합 왕국이 출정하자마자 한 달 만에 두변이 멸망을 앞두고 있으니.
어쨌든, 두변이 죽는다는 건 세상에서 제일 기쁜 일이지.’
“두회에게 명해라. 두변을 고문하고 괴롭혀도 되지만, 꼭 생포해서 경성으로 압송하라고 말이다. 짐이 직접 그놈을 갈래갈래 찢어서 능지처참할 것이다.”
“명 받들겠습니다, 폐하.”
수보 방탁이 허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동창의 풍보보는 들으라.”
대태감 풍보보가 영덕제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영덕제가 물었다.
“두변이 경성에 남겨둔 패거리는 다 잡았느냐?”
동창 대도독 풍보보가 대답했다.
“이미 수십 명을 잡았지만, 아직 이문회를 찾지 못했습니다.”
“체포한 수십 명을 당장 능지처참해라. 수색을 더 강화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문회를 잡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폐하.”
영덕제가 독기 품은 눈빛으로 생각했다.
‘두변, 네놈이 짐 앞에서 무릎을 꿇을 날이 머지않았구나. 이원에게 했던 것처럼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서 짐의 원한을 풀어야겠다.’
영덕제가 바깥의 하늘을 내다보다가 갑자기 명령했다.
“오늘부터 두변의 이름을 바꾸거라. 그놈은 환관 주제에 감히 선황을 위협하여 영설 공주와 혼례를 올렸고, 그 일 때문에 선황께서 중풍이 와서 붕어하셨다. 개돼지도 못한 놈, 양심도 없는 놈을 인간으로 취급할 수 없다. 오늘부터 모든 서적과 사서, 그리고 문서와 상주서에는 두변이 아니라, 두견(杜犬)이라는 이름만 쓰게 하라.”
수보 방탁과 관리들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대답했다.
“명 받들겠나이다.”
영덕제 옆에서 조정의 모든 것을 기록하던 사관이 곧바로 두변의 이름을 두견으로 고쳐 썼다.
여송성.
소군 방진이 존귀한 손님인 성로마 제국의 앤 공주를 맞이했다.
성로마 제국 연맹은 미주 대전에서 패배한 뒤, 방진과 치욕적인 정전(停戰) 협정을 맺어야 했다.
그리고 서방 제일 미인이라 불리는 앤 공주를 동방 연합 왕국에 보냈다.
앤 공주는 동방 연합 왕국을 방문하는 내내 방진에게 추파를 던졌고, 뜻밖에도 그와 혼례를 올리려는 마음까지 품었다.
소군 방진에게는 첩이 많았고, 정인 에인젤도 있었지만, 아직 정실 부인을 맞이하진 않았다.
성로마 연맹은 뜻밖에도 앤 공주를 소군 방진에게 시집 보낼 생각이었다.
앤 공주는 지금 방진 앞에서 하프시코드를 연주하고 있었다.
천부적인 예술 재능과 천사와도 같은 얼굴, 매혹적인 몸매까지, 그야말로 사람을 도취시킬 정도였다.
소군 방진은 옆에서 조용히 그녀의 연주를 감상하고 있었다.
이때, 심복 한 명이 조용히 방진에게 다가가서 밀서를 전달했다.
밀서의 필적은 두회의 것이었다.
‘두회가 지고무상의 전하께 아룁니다. 전쟁이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두변의 요충지가 전부 함락되었고, 아군은 지금 백색성과 진서성을 포위했습니다. 두변은 마지막 발버둥을 치고 있고, 그의 멸망이 머지않았습니다.’
소군 방진은 밀서를 읽은 후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밀서를 찢고서 계속해서 앤 공주의 연주를 감상했다.
60만이 넘는 대군을 동원했는데 개미 한 마리 죽이는 게 뭐가 어려워서.
그는 이번 전투에 아무런 불안함이 없었고, 승리는 당연했다.
심지어 방진은 두변이 죽었다고 해도 그의 시신에 눈길 한 번 안 줄 사람이었다.
두변은 자신을 따라오려면 아직도 먼, 급이 한참이나 떨어지는 물건인 것을.
진서 왕성.
동방 연합 왕국의 화포가 전부 파괴되었지만, 막한 등은 자신들에게 남은 힘이 아직도 두변의 10배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건 차지하고, 4만 곤륜노 무사면 두변의 군대를 말살할 거라고 확신했다.
곤륜노 무사가 성벽에 올라가기만 하면, 이 전투는 끝나게 된다.
“죽여라!”
“성벽을 올라라! 두변의 군대를 몰살해버려!”
32만 대군이 진서 왕성의 사방에서 미친 듯이 돌격하기 시작했다.
“발포하라!.”
“발포하라!”
“발포하라!”
성벽에 있던 정석 마포 180대가 쉬지 않고 포격을 가했다.
돌격해오는 수십만 대군을 상대로 발포하는 것이다 보니, 주술사 사제들이 조준할 필요도 없이 눈 감고 쏴도 모두 명중이었다.
정석 마포는 정말 놀라운 장전 속도를 자랑했다.
다른 지구의 전자포는 1분에 1발 나가는 것도 힘든데, 5초에 1발이 나가는 정도라니.
전자포는 재충전 시간이 길지만, 정석 마포는 포탄을 넣고 단추 하나만 넣으면 끝이었다.
슉, 슉, 슉, 슉.
정석 마포 180대가 미친 듯이 발포되었다.
파멸의 유성우가 성벽 위에서 한 번, 또 한 번 솟구쳤다.
발포를 쉬지 않고 한 탓에 정석 마포의 포관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포관도 이계의 특수한 금속으로 만들어서 다행이지, 만약 지구의 합금으로 포관을 만들었다면 이런 고밀도 발사를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두변은 성벽 위에 서서 그 화려한 살육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실심 포탄에 맞은 병사들은 그 자리에서 몸이 녹아버렸고, 멀쩡한 사지도 남기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정석 마포에서 한 번 발포될 때마다 쟁기로 죽음의 길을 여는 수준이었다.
포탄 한 발에 수백 미터를 막힘 없이 관통했고, 순식간에 죽음의 지대를 만들어 냈다.
동방 연합 왕국의 30만 대군이 돌격하는 이 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할까.
슉, 슉, 슉, 슉.
사신의 비에 가까운 포탄을 맞느라 동방 연합 대군이 아주 어렵게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가장 앞에서 돌격하는 부대는 화총병이었는데, 마침내 성벽 3백 미터 지점까지 도착했다.
이제 화총병의 위력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화총병들이 총을 장전하고 성벽 위의 목표물을 조준하기 시작했다.
펑, 콰과과광!
하지만 이내 그들의 눈앞이 화끈 달아오르고 온몸이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산탄이었다.
정석 마포의 포탄을 전부 실심 포탄에서 산탄으로 바꿨다.
평범한 활강포의 산탄은 유효 발포 거리가 2, 3백 미터인데, 정석 마포의 산탄 발포 거리는 1천 미터가 넘었다.
성벽에서 산탄을 발포할 때마다 하늘에서는 천사가 꽃잎을 흩뿌리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더 광적인 살육이 시작되었다.
파바방팡!
정석 마포는 산탄으로 바꿔도 5초에 1발 발포가 가능했다.
구식 활강포는 산탄을 장전하는 과정이 무척 번거로웠고, 발포하는 과정도 복잡했다. 하지만 개조한 산탄은 장전과 발포가 실심 포탄과 똑같았다.
정석 마포는 그저 포탄을 포당에 넣기만 하면 장전이 끝나고, 단추를 누르면 발포가 가능했다.
산탄이 발포되면, 얇은 탄피가 공기의 고속 마찰로 인해서 갈라지고, 산탄에 들어있는 탄환이 폭우처럼 사방에 쏟아진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산탄 한 발이 터지면 커다란 부채꼴 모양이 되면서 그 범위 안의 모든 생명체가 깨끗하게 몰살되었다.
동방 연합 왕국의 10만 화총병은 엄청난 전투력을 자랑했다. 마혈 기병들도 화총병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는데, 이제는 화총병들이 제자리에서 조준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정석 마포 발포 속도가 정말 빨라도 너무 빨랐다.
5초에 1발 속도로 일제 발포를 하니, 5초에 한 번씩 십만 발이 넘는 탄환이 적진에 쏟아지는 것이다.
간신히 성벽 앞 몇백 미터까지 돌진한 화총 부대는 대열 정렬을 하기도 전에 온몸에 구멍이 뚫린 채 처참하게 죽었다.
동방 연합 왕국의 상장 방천명은 이 광경을 보면서 숨이 막혀왔다.
그는 막한이나 소목지가 입만 놀리는 것과 달리, 동방 연합 왕국 군대를 이끌고 천하를 호령하는 실질적인 지휘자였다.
그는 동영 제국을 멸망시켰고, 최근에는 미주에서 서방 세계의 식민지 연합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다.
동방 연합 왕국은 전장에 나섰다 하면 압살 수준으로 승리를 거뒀기에, 오늘 같은 장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귀하게 여기고 아끼는 정예 화총병 부대가 떼죽음을 당하고 있었다. 화총병 부대뿐만 아니라, 완전무장한 무사들, 곤륜노 무사들도 정석 마포 앞에서 처참히 목숨을 잃었다.
막한, 소목지가 두변의 정석 마포 때문에 이대로 자신들이 전멸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성벽 위에서 굉음이 터져나왔다.
정석 마포 하나의 포관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스스로 폭발해버린 것이다. 정석 마포 주위에 있던 주술사 사제들과 수십 명 병사가 폭발로 인해 죽어버렸다.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발포를 해댔으니, 비금으로 제련한 포관도 이젠 버티기 힘든 것이다.
5초에 1발을 발포하는 건 발포 빈도가 너무 높았고, 차가운 물로 포관을 식히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사공엽이 말했다.
“주군, 정석 마포의 발포를 잠시 멈춰야 합니다. 안 그러면 포관이 터지는 정석 마포가 더 많아질 겁니다.”
두변은 터져버린 정석 마포와 주위에 널브러진 시신들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미친 듯이 발포를 계속하다가는 정석 마포가 대대적으로 폭발할 것이고, 적군과 근접전을 치르기도 전에 병력에 손실이 클 것이다.
“발포 빈도를 낮추세요. 20초에 1발 발포하라고 하고.”
두변이 명령했다.
진서 성벽에 있던 정석 마포가 갑자기 발포를 중단하더니, 발포 빈도가 4배나 늦춰졌다.
막한과 소목지가 크게 기뻐했다.
“두변의 화포가 버티지 못하나 보군.”
“하늘이 우리를 보살펴주고 있는 겁니다.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곤륜노 무사들이여, 돌격하라.”
“성벽을 올라서 두변 놈의 군대를 몰살하라!”
드디어 동방 연합 왕국의 주요 패가 출격할 차례였다. 정석 마포가 잠시 멈춘 사이를 틈타 성벽을 올라야만 했다.
4만여 명의 곤륜노 무사들이 다른 부대의 뒤에서 몸을 숨기면서 돌진했다.
두변의 정석 마포 폭격 탓에 곤륜노 무사 부대가 3만 7천 명으로 줄어들었지만, 번개처럼 빠르게 성벽을 향해 돌진했다.
역시 마혈 무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무적 부대답고, 역시 마약으로 개조된 곤륜노 무사다웠다.
미친 듯이 돌진하는 곤륜노 무사들의 속도는 가히 경이로울 정도였다.
황소보다 힘이 세고, 표범보다 민첩한 곤륜노 무사들은 금속제 공성용 사다리를 들고도 준마보다 빠른 속도로 달렸다.
동방 연합 왕국은 이번 전투에서 한 번도 공성 사다리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어떤 전투를 치르든, 전투를 시작하기도 전에 화포로 성벽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공성제는 항상 상비용으로만 들고 다녔는데, 이걸 오늘 쓰게 될 줄은 몰랐다.
3만 명이 넘는 곤륜노 무사가 초속 10미터 속도로 미친 듯이 질주했다.
곤륜노 무사들의 움직임은 마치 강철의 만리장성이 움직이는 듯했고 대지를 흔들 정도였다.
20초 뒤, 두변의 정석 마포가 다시 발포되었다.
슉, 슉, 슉.
곤륜노 무사들이 다시금 쓰러졌지만, 남은 무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질주했다.
20초가 지나자, 정석 마포가 다시 일제히 발포되었다.
쾅, 쾅, 쾅, 쾅.
곤륜노 무사들은 굉음을 뚫고 수백 개의 금속제 공성 사다리를 성벽에 걸쳤다. 이들은 사다리가 걸쳐지기도 전에 이미 몸을 날려서 엄청난 속도로 성벽을 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