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5장: 두변의 아기
쿠루룽, 쿠루룽.
성벽 위의 병사들이 성벽 아래로 돌덩이와 나무통을 던졌지만, 곤륜노 무사들에게 주는 타격은 미미했다.
만약 다른 병사들이 백 근이 넘는 돌덩이 등에 맞는다면, 바로 몸이 짓눌려서 죽은 채로 바닥에 떨어졌겠지만, 곤륜노 무사들은 돌덩이를 맞고도 살짝 휘청이기만 했다.
거대한 나무통도 이들의 앞을 막을 수 없었고, 곤륜노 무사들은 꼭 사다리에 못으로 몸이 고정된 듯 한 명도 떨어지지 않고 성벽을 올랐다.
두변은 이 광경을 보고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곤륜노 무사들이 정말 대단하긴 하네. 동방 연합 왕국이 전쟁에서 번번이 승리한 이유를 알겠어.’
곤륜노 무사들은 냉병기 전투에서도 무적 수준으로 강했다.
전호검을 장착했으니 다행이지, 만약 전호검도 없었다면 3만 곤륜노 무사들이 이번 전투의 판을 뒤집었을 것이다.
“우우우!”
곤륜노 무사들이 포효하면서 성벽을 올랐다.
한 명, 두 명, 세 명, 수십 명, 수백 명.
곤륜노 무사들이 성벽을 올라선 걸 보는 순간, 막한이 뛸 듯이 기뻐하면서 외쳤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소목지와 동방 연합 왕국의 상장 방천명도 환호했다.
오늘의 전투는 그 어느 때보다 사상자가 많았고, 성벽을 오르기까지 많은 역경이 있었지만, 곤륜노 무사들이 대규모로 성벽을 올랐으니 이제 전투는 끝났다고 보았다.
곤륜노 무사는 무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두변의 마혈 무사도 무적이긴 하지만, 마혈 무사는 2천 5백 명이 전부여서, 곤륜노 무사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하하, 두변! 네놈이 죽는 건 하늘이 점지한 일이다! 넌 이 사실을 바꿀 수 없다!”
“절망을 만끽해라. 곤륜노 무사들이 얼마나 강한지 직접 겪어봐!”
“곤륜노 무사들이 네놈의 화포를 박살 낼 것이고, 네놈의 군대를 파괴할 것이다. 1당 10, 1당 20, 30을 할 만큼 강한 무사들이니까.”
성벽 위로 올라간 곤륜노 무사들을 맞이한 것은, 자신들만큼 몸집이 거대하고 강해 보이는 마혈 무사와 왜소하고(그래도 1.8미터 이상이지만) 평범해 보이는 병사들이었다
“흐흐, 이제 죽음을 맞이해라! 잔혹한 죽음을!”
동방 연합 왕국의 곤륜노 무사들이 백 근이 넘는 검을 뽑아 들고 곧바로 두변의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흐흐흐.”
두변의 병사들은 전호검을 쥐고 곤륜노 무사들이 휘두르는 칼과 갑옷을 향해 휘둘렀다. 검을 휘두르는 동시에 검 손잡이에 있는 단추를 빠르게 눌렀다.
파바바박.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전류가 전호검에서 뿜어져 나왔다.
몇만 볼트가 넘는 전기가 금속 갑옷을 뚫고, 검을 통해 곤륜노 무사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곤륜노 무사들이 순간 전기 충격으로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순간, 두변의 병사들은 그 틈을 타서 곤륜노 무사들을 죽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곤륜노 무사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전호검을 휘두를 때마다 화려한 푸른 빛이 쉴 새 없이 반짝였다.
아무리 강력한 곤륜노 무사여도, 전호검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성벽 위에서 또 한 번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천하무적이던 곤륜노 무사들은 성벽을 오르자마자 죽임을 당하고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안 돼. 안 돼!”
막한과 소목지가 경악했다.
이들은 더 이상의 충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곤륜노 무사들이 성벽을 오르는 걸 보고 승리의 희망을 보았는데, 지금 광경을 보니 또다시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심정이었다.
막한은 가슴팍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는, 더는 참지 못해 피를 울컥 토해냈다.
“아악. 아아!”
예상 선자가 고통스럽게 신음을 내뱉었다.
같은 시각, 성 밖에서는 두변의 정석 마포가 굉음을 내면서 발포되고 있었다.
발포할 때는 소리가 나지 않지만, 포탄이 포당에서 쏘아져 나갈 때 초음속으로 인한 폭발음과 목표물을 명중했을 때 굉음이 난다.
이런 소리가 예상 선자 배 속의 아이를 자극했는지, 진통의 속도가 빨라졌다.
예상 선자의 진통은 벌써 반 시진이나 이어졌고, 그녀는 얼굴과 온몸이 땀 범벅인 데다 너무 소리를 질러서 목이 잠겨 버렸다.
영신 왕후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상, 당신의 능력으로는 무통이 가능할 텐데요. 내력으로 진통을 진정시키든, 현기로 이 영역의 신경 반응을 차단시키든 해봐요.”
예상 선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프지 않고 이 감정을 생생하게 느낄 순 없잖아요. 아프지 않으면, 어머니가 되는 행복을 못 느끼잖아요. 내가 원래도 남들과는 조금 다른 여인이잖아요.”
예상 선자는 한 시진 가까이 어머니가 되는 행복을 느꼈고, 그후 아이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기는 세상 밖으로 나온 직후에 울음을 터트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아기와 달리 태어날 때부터 아주 하얗고 포동포동했다.
영신 황후가 아기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무게를 가늠해보았다.
“우와, 적어도 8근 이상은 되겠는걸요? 딸이에요. 아주 예쁜 딸이요.”
여황도 가까이 다가와서 아기를 구경했다.
예상 선자가 낳은 아이는 다른 신생아들처럼 태어나자마자 붉고 쭈글쭈글하지 않고 이미 무척이나 예뻤다.
아기의 얼굴은 절반은 예상을, 절반은 두변을 닮아서 이보다 더 예쁠 수가 없었다.
아기가 조그마한 입을 벌리더니 소리를 내면서 양수를 토해냈다.
“그런데 아기가 왜 울지를 않죠?”
영신 왕후가 의아한 모습으로 물었다.
여황이 부드러운 수건으로 아기의 몸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자, 아기는 그녀의 손길이 싫진 않은 듯 나른하게 눈을 떴다.
정말 커다랗고 새카만 눈동자는 맑고 투명한 것이 보석처럼 반짝였고 영리함이 묻어났다.
“왜 애가 울지를 않죠?”
영신 왕후가 조금 조급해진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말했다.
영신 왕후 스스로는 이미 네 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와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영신 왕후가 저도 모르게 손으로 아이의 엉덩이를 살짝 때렸다. 그랬더니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기는커녕 오히려 활짝 웃었다.
영신 왕후는 깜짝 놀라더니, 이내 더없이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저도 한 번 안아볼래요.”
예상 선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영신 왕후가 예상에게 아이를 건네주자, 예상은 가장 먼저 아이의 냄새를 맡았다.
예상은 살면서 처음으로 느끼는 무한한 행복감을 느꼈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예상 선자는 고아였다.
영도현의 부인인 백화 선자를 의모로 모셨지만, 가족애를 느끼면서 자란 건 아니었다.
예상 선자가 두변과 혼례를 올린 후, 두변이 뿜어내는 강한 남성성이 그녀를 자극했고, 후대를 번식하고 싶다는 욕망이 차올랐다.
하지만 두변과 이심전심으로 서로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남들은 두변을 제대로 볼 수 없다지만, 예상은 두변에게서 무언가를 느꼈다.
예상이 보기엔, 두변은 뭔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고 이 세상과 동떨어져 있었다.
두변에겐 의부 이문회가 있고 아내도 여럿이지만, 마치 이 세상에 완전히 속하지 않은 것만 같았다. 꼭 어떤 임무를 수행하러 이 세상에 온 것처럼 말이다.
두변은 여러 부인을 두었고, 그녀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두변이 정말로 진심으로, 뼈저리게 좋아하는 여인이 있을까?
예상이 보기에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예상은 두변이 있음에도 항상 외로웠다.
하지만 이제 자신의 아이를 품에 안고 있으니, 평생 동안 느껴왔던 외로움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혈맥이 이어진 느낌이란 게 이런 거구나, 정말 신기하다.’
예전의 예상은 드넓은 우주에서 홀로 떠다니는 행성이었다. 잠시 두변이라는 행성에 이끌려서 서로 끌어당기고 마찰했지만, 그래도 두 행성이 하나로 합쳐지는 게 아니라 여전히 각각의 행성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아이를 낳으니, 어떤 보이지 않는 끈이 세 사람을 한 가족으로 끈끈하게 묶은 기분이 들었다.
한편, 백색성 전장.
백색성 전장에서도 정석 마포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났고, 1대가 아니라 2대가 폭발했다.
여담이 곧바로 발포 빈도를 낮추라고 명령했고, 5초에 한 번을 20초에 한 번 발포로 바꿨다.
이 광경을 본 두강과 원천조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 3만 6천 곤륜노 무사에게 총공격을 명령했다.
돌격하면서 일부 병사와 곤륜노 무사들을 잃었지만, 여전히 3만 명이 넘는 곤륜노 무사가 성벽에 올랐다.
“하하! 이겼군. 우리가 이겼어!”
원천조는 기뻐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가 두강에게 말했다.
“총독 대인, 우리가 이겼소이다.”
두강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래, 우리가 이겼소이다.”
만약 곤륜노 무사들이 성벽을 오르게 된다면, 두변의 부대는 학살 수준으로 죽임을 당할 것이다. 두변의 마포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3만 곤륜노 무사는 4, 50만 병사들을 무찌를 수 있으니까.
게다가 지금 백색성을 지키는 두변의 병력은 불과 15만 명이었다.
원천조가 말했다.
“우리는 백색성의 두변 군대를 몰살할 것이고, 그놈의 마포를 전부 빼앗을 것이오. 그럼 우리도 나름대로 공로를 세워 죄를 씻는 게 되는 거지. 저 마포만 손에 넣으면, 우리 동방 연합 왕국은 성화교 세계와의 전투에서도 우위를 점할 게요.”
“공로로 죄를 씻는 수준이 아니라, 아주 엄청난 대공을 세우는 것일세. 백색성에 있는 두변의 군대를 몰살하고, 저 탐나는 마포를 손에 넣고, 마포를 만든 자들을 포로로 잡아들여야 하오. 나중에 자네는 원사(元師)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고, 나 또한 내각에 들어가겠지. 대녕 제국의 내각이 아니라, 동방 연합 왕국의 내각 말일세.”
두강이 말했다.
“하늘은 역시 우리 동방 연합 왕국의 편이로군. 두변 저놈은 애초에 멸망할 운명인 게지. 하하하, 곤륜노 무사들이여. 죽여라, 죽여! 두변 놈의 손과 발을 다 잘라버려!”
원천조가 웃음을 터트리면서 말했다.
곤륜노 무사들이 떼거리로 백색성 성벽을 오르는 걸 보고 있자니, 원천조는 흥분과 감격스러움을 주체하지 못했다.
“총독 대인, 듣기로는 두변이 이제 더는 환관이 아니라던데, 이 얘기는 다 소문이겠지? 진무 위제 영설이 그놈에게 시집간 건 산 과부가 되는 게지. 진무 위제가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답다고 하더군. 환관에게 조금 더럽혀진 터라, 결벽이 있는 소군 전하께선 싫어하시겠지만, 내 마음엔 쏙 드는데 말이지. 영설을 포로로 잡으면, 소군 전하께서 그 여인을 네게 하사해주셨으면 하는데. 내가 영설에게 무엇이 진정한 남자의 힘인지 보여주고 싶거든. 하하하!”
원천조가 신난 목소리로 크게 웃다가, 무언가를 보더니 말문이 딱 막히고 말았다.
성벽 위에서는 그가 상상했던 장면이 아닌, 정반대의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곤륜노 무사들은 성벽에 오르자마자 학살을 시작해야 했다.
두변의 마혈 무사 외에, 그 어떤 병사도 곤륜노 무사를 막지 못할 것이고, 건장하고 용감한 여진 무사도 기본 3, 40명이 달라붙어야 곤륜노 무사 1명을 간신히 죽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 백색성 성벽 위에서는 두변의 병사들이 아닌, 곤륜노 무사들이 학살을 당하고 있었다.
거의 초당 한 명의 꼴로 곤륜노 무사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세상에, 이게 어찌 된 일이야?’
백색성 성벽에 있던 마혈 무사와 절세 지하성의 무사들은 요상하게 생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들이 휘두른 검이 곤륜노 무사에게 조금이라도 닿으면, 갑자기 푸른 빛이 번쩍이면서 곤륜노 무사들이 마비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곤륜노 무사들은 그대로 힘없이 십여 미터 아래의 땅바닥으로 떨어져서 고꾸라졌다.
곤륜노 무사들은 한 명당 천금의 값을 자랑했다.
동방 연합 왕국에서는 매년 곤륜노 무사를 5천 명이나 수출하는데, 이들은 전부 성화교 세계의 귀족이나 서방 세계의 귀족의 밀착 호위무사가 된다.
수출용 곤륜노 무사들은 사실 최상급의 곤륜노는 아니었다.
진정한 최상급 곤륜노 무사들은 전부 동방 연합 왕국의 전사로 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곤륜노 무사가 지금 1초에 한 명꼴로 죽고 있다?
하필 곤륜노 무사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아서 앞선 동료들이 죽는 걸 보고도 불나방처럼 계속해서 성벽 위를 올랐다.
곤륜노 무사들은 성벽 위를 올라가자마자 곧바로 전호검에 맞아서 죽었고, 힘겹게 올라온 성벽 아래로 그대로 떨어졌다.
그걸 멀리서 보고 있자니 곤륜노 무사들이 성벽에 오르자마자 다시 우수수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두강과 원천조는 눈앞이 컴컴해지고 몸이 차게 식어가는 걸 느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웁, 우욱!”
양강 총독 두강은 속이 울렁거려서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철수하라. 어서 철수해!”
원천조가 있는 힘껏 소리쳤다.
동방 연합 왕국의 3대 비장의 패는 신식 화포, 화총 신군, 곤륜노 무사였다.
그런데 신식 화포는 전부 파괴됐고, 화총 신군도 거의 죽었다. 그나마 곤륜노 무사가 이들의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이젠 이들마저 죄다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원천조가 명령을 내리자, 퇴각하라는 호각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위만 보며 성벽을 오르던 곤륜노 무사들은 호각 소리를 듣자마자 성벽을 오르다 말고 빠른 속도로 퇴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