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29화 (529/648)

529장: 두변의 첫사랑

“두변, 네놈은 인간도 아니다! 그래, 짐이 진남공 송결을 죽였다. 그놈이 병사들을 이끌고 승룡부로 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 병사들의 목숨을 희생할 게 뻔한데, 짐이 어찌 수수방관할 수 있겠나. 막한 여왕은 짐에게는 관심이 없고, 오직 안남 왕국의 강산을 되찾으려고 했다. 짐은 살아남기 위해서, 이 군대의 대권을 빼앗기 위해서 그를 죽여야만 했다.”

영창제가 악에 받쳐서 소리쳤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경악했다.

당시 영창제는 무척 장렬하게 연설했었다. 적군은 영덕 위제의 앞잡이고, 그들의 목적은 자신을 죽이는 것이라고, 자신이 어딜 가든 적군과 전쟁의 포화가 따를 것이라고.

안남 왕국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서쪽으로 가야 한다면서 납발랍방 왕국에 들어갔었다.

영창제는 가는 길 내내 희생과 공헌을 떠벌렸다.

그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장군과 병사들 사이에 섞여서 마음을 나눴다.

심지어 한 번은 사람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어느 병사의 상처에 고인 농을 직접 입으로 빨기도 했었다.

그때 자리에 있던 병사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영창제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성군이라고 믿게 되었다.

수만 대군이 영창제를 따라 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행군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었다.

영창 위제가 모든 걸 포기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짐은 동방 연합 왕국과 손을 잡고 네놈을 앞뒤로 협공하려고 했지. 밀약을 체결할 때, 짐은 동방 연합 왕국의 개가 되었고, 너희들은 전부 동방 연합 왕국의 개 발톱이 된 거라고.”

수만 대군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영창 위제가 두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두변, 짐이 졌다. 네놈이 인간이 아니기에 졌지. 이제 만족하나? 그만 짐에게 깔끔한 끝을 다오.”

두변이 옥진 군주에게 말했다.

“당신이 해. 부친의 복수를 위해서.”

옥진 군주가 검을 뽑아 들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영창 위제의 심장을 찔렀다.

푸욱.

죽기 직전, 영창 위제가 탄식하면서 말했다.

“내가 아름다운 꿈을 꾸었구나.”

서걱.

옥진 군주가 검을 휘두르자, 영창 위제의 머리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영충삭도 대단한 사람이긴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가 빛을 보이기도 전에 시대가 변했고 세상이 변했다.

변한 세상에는 영충삭이라는 작은 영웅이 설 자리는 없었다.

“이 군대는 이제 쓸모가 없다. 영창 위제의 말 때문에 이미 쓸모가 없어.”

두변의 목소리는 무척 담담하고 조용했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을 똑똑히 들었다.

총병 도삼사는 몸이 흔들릴 정도로 따귀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사실 이 병사들과 군대에는 잘못이 없었다.

군의 병사들이 충심을 갖고 명령에 복종하는 게 잘못인가?

두변이 명령했다.

“부홍빙 장군, 5백 명을 이끌고 차리주로 가라. 영창 위제를 따르던 문무 관리를 전부 잡아들이고 광산으로 보내서 노역을 시켜라.”

두변은 냉랭한 눈빛으로 도삼사와 수만 대군을 스윽 쳐다보고는 곧바로 마랑왕을 타고 자리를 떠났다.

옥진 군주가 덩그러니 자리에 남겨진 수만 대군의 앞으로 다가갔다.

총병 도삼사가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군주,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우리가 폐하께 충성을 바친 것도 잘못입니까? 이 폐하는 진남공께서 고르신 사람이고, 우리가 고른 사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똑똑하지 못해서 그의 진상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우리의 잘못입니까?”

옥진 군주가 말했다.

“잘못한 건 아니지. 두변 친왕에게 미안할 것도 없고. 당신들이 한 건 전부 대녕 제국을 위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당신들이 미안해야 할 사람은 바로 안남 국왕입니다. 영창 위제의 연기에 속아 넘어간 것이긴 하지만, 결국엔 안남 왕국에서 탈영한 것이니까요. 상황을 만회하고 싶거나, 잘못을 뉘우치고 싶다면, 알아서들 하세요.”

진서 왕성.

자신의 딸을 안아보는 순간, 두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세상에 정말로 자신의 피붙이가 생겼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오늘부터 이 세상에서 자신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갓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뽀얗고 예쁜 아이는 나른하게 두 눈을 뜨고 두변을 쳐다보더니, 다시 스르륵 눈을 감고는 두변의 손가락 하나를 제 손으로 꼬옥 쥐었다.

아이의 몸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으니, 온 마음이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부군, 딸아이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요?”

예상 선자가 물었다.

“두효(杜曉: 새벽 효, 알리다 효).”

두변이 본능적으로 대답했다.

“좋네요. 좋은 이름이네요.”

예상 선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너무 생소하거나 너무 튀는 이름을 지어주는 걸 꺼리기 마련이다. 듣기에도 좋고, 평범하고, 좋은 뜻이 있는 이름을 선호하기도 하고.

너무 생소하거나 튀는 이름은 간혹 고독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상 선자가 물었다.

“이 이름은 부군이 예전부터 생각했던 이름인가요?”

그랬다.

두효라는 이름은 그가 현대 지구에서 약혼녀와 사랑을 나눌 때, 사전을 몇 날 며칠 뒤져가며 정한 이름이었다. 이 이름은 사내아이에게도, 여자아이에게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예상 선자가 두변을 뒤에서 껴안으면서 따듯하게 말했다.

“부군, 여자는 자신의 첫 남자를 잊지 못한대요. 남자들은 어때요? 남자들도 첫 여인을 뼛속 깊이 기억하나요?”

두변의 첫 여인은 현대 지구에 있는 약혼녀 임야소였다. 그의 첫사랑, 첫 입맞춤, 그리고 여자와 함께 보내는 밤도 모두 그녀가 처음이었다.

물론, 그녀의 첫사랑, 첫 입맞춤, 첫 남자도 두변이었다. 그녀는 사랑이 영원히 티 없이 맑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는 언제나 두변의 생일을 살뜰히 챙겼고, 두변과의 기념일도 매년 빠지지 않고 챙겼다.

임야소는 애교가 많고 어리광부리길 좋아했다.

하지만 두변은 인간쓰레기였다.

그는 약혼녀를 무척 사랑하긴 했지만, 항상 다른 부류의 미인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천진난만하고 순진했던 임야소는 두변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다행히도 미수에 그쳤지만, 두변은 더 이상 임야소를 볼 면목이 없었다. 두변의 방탕한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진 괜찮았었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진 몰라도 스스로 성숙해지면 성숙해질수록 첫사랑 임야소가 더욱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예상 선자가 물었다.

“그 여인은 부군이 제일 사랑하는 여인이겠죠?”

두변이 화제를 돌렸다.

“산후조리를 안 해도 되겠어요?”

예상 선자가 다정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필요 없죠. 열흘이면 평소의 몸으로 돌아올 거예요.”

머저리 막한 여왕이 도망쳤다.

동방 연합 왕국의 대종사 두 명이 그녀를 호위했고, 세 사람의 경공 속도는 마랑의 시속보다도 빨랐다.

막한은 바닷가에 정박해있던 동방 연합 왕국 전함에 올라탄 뒤, 함대와 함께 여송도로 도망쳤다.

두변이 말했다.

‘시스템, 이전에 막한의 노선은 여전히 마찬가지라고 했는데, 지금도 그런가요?’

꿈속 시스템이 대답했다.

‘그 노선은 여전히 정상적이다.’

‘도대체 뭔데 그래요?’

‘나중에 다 알게 돼 있다. 그녀의 몸에서 엄청나게 놀랍고 기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녀의 운명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불가사의한 거니까.’

‘무척 비참할 것 같은데요?’

‘비참하다고 할 순 없다. 숙주, 막한은 정말 중요한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 막한이 가는 길은 무척 순조롭다.’

막한은 도망쳤지만, 두강, 원천조는 도망치지 못하고 완안영도, 여담, 영종오 등에게 생포되었다.

두강과 원천조 대군이 막한의 대군보다 조금 늦게 전투를 개시했지만, 두 전투가 마무리되는 시간은 비슷했고, 여담은 두강과 원천조를 곧장 진서 왕성으로 압송했다.

두강과 원천조가 두변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고, 두변은 두강을 빤히 바라보았다.

참 오랜만이었다.

이들은 광서 순무 장양명을 죽이고, 계왕을 불구로 만든 자들로, 진정 뼈에 사무치는 깊은 원한이었다.

“넷째 숙부?”

두변이 부르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두강의 몸이 흠칫 떨렸다.

두강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두강은 지금까지도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동방 연합 왕국의 66만 대군 중, 최소 40만이 죽었고, 포로가 된 자는 10만, 도망친 자는 10만 명도 안 되니, 동방 연합 왕국의 전군이 전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변 군대의 사상자는 얼마나 될까?

염주와 오주 전투에서 두변의 군대는 십만 명이 넘는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백색과 진서 왕성에서 치러진 대결전에선 두변의 군대는 거의 손실이 없었다.

이게 바로 비대칭전쟁인 것이다.

두강과 원천조는 이번 전투는 필승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저 개미 한 마리 꾹 눌러 죽이는 것처럼 쉽다고 말이다.

하지만 개미처럼 눌러진 건 자신이었다.

두강이 두변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두변이 여여해를 죽이고 여진 제국을 멸망시켰을 때, 조카 두변이 정말 하늘의 점지를 받은 자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기적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게 말이 안 되니 말이다.

하지만 동방 연합 왕국의 강대함을 본 뒤, 소군 방진이야말로 하늘의 점지를 받은 자라고 고쳐 생각했고, 그야말로 미래에 전 세계를 통치할 패주라고 생각했다.

두변은 그저 소군 방진이 밟고 올라갈 디딤돌일 뿐이고, 그나마 값어치가 있는 디딤돌조차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번엔 동방 연합 왕국이 대패하면서, 두변이야말로 정말로 하늘이 점지해준 천명지자가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서로를 응시했다.

두강이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두변, 내가 투항을 하겠다고 하면 아직 할 수 있겠나?”

그의 목소리는 무척 평온했다.

원천조는 두강의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두강, 미쳤소?”

두강은 원천조를 신경 쓰지 않은 채 두변을 빤히 바라보면서 다시 물었다.

“지금 투항하면, 아직 투항할 수 있겠나?”

원천조가 버럭 소리쳤다.

“두강! 어찌 이리 어리석은 게요! 아무 보잘 것도 없는 두변에게 투항하겠다는 거요? 소군 전하에 비하면 두변은 아무것도 아니오. 두변이 이번 전투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이놈이 시골 촌뜨기이고, 소군 전하께서 거룡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소. 소군 전하야말로 세계 패주란 말이요!”

두변이 두강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너무 늦었습니다. 번거롭기도 하고요.”

양강 총독 두강의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여봐라. 두강을 단두형에 처하고, 원천조를 능지처참하라.”

두변이 명령했다.

반 시진 뒤, 양강 총독 두강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죽음을 기다렸다.

사형 집행자가 칼을 휘두르자, 한때 야심이 넘쳤던 두강은 목이 잘린 채 숨을 거뒀다.

죽기 직전, 그는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않았고, 그저 복잡한 심경이 담긴 듯 길게 한숨을 쉴 뿐이었다.

같은 시각, 능지처참을 받는 원천조는 미친 듯이 울부짖고 있었다.

대전이 끝나고 며칠 뒤.

동방 연합 왕국이 대패하고 두변이 승리를 거뒀다는 소식이 각지에 폭발적으로 전해졌다.

광동에, 여송도에, 동방 연합 왕국에, 대녕 제국 경성에 차례로 이 소식이 전해졌다.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지역은 전장과 가장 가까운 광동이었다.

전보는 불과 이틀 만에 광동 정서(征西) 대영에 도착했다.

“난 전세가 궁금하지 않으니, 두변이 어느 정도로 패망했는지 보고할 필요 없다.”

대녕 제국 내각 차보, 정서 대군의 주장군 두회가 붓을 들고 글씨를 쓰고 있었다. 그는 서예에 조예가 꽤 깊었다.

“두변을 언제 잡았는지만 보고하거라. 그리고 두강과 원천조에게 경고해라. 두변을 괴롭히고 그자의 사지를 자르고, 다시 거세해도 되지만, 절대로 죽이진 말라고. 두변 그놈을 꼭 경성으로 압송해서 능지처참을 시켜야 한다고 말이다.”

두회가 허세를 부리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이번 전투가 어떻게 치러졌는지 궁금하지가 않았다. 이번 대전에서 두변의 군대는 무척 무능력해 보였다. 이미 이길 걸 아는 싸움의 전시 상황까지 보고 받기엔 자신의 시간이 아깝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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