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30화 (530/648)

530장: 영덕 위제의 파멸 一

두회는 두변이 끝장난 뒤의 상황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서남 5성을 어떻게 통치해야 할지, 호광 총독을 누구로 임명할지, 운귀 총독과 사천 총독으로 또 누가 적당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두강과 원천조에게 서신을 보내라. 두변을 잡은 뒤에 곧바로 경성으로 압송하지 말고, 광동에 잠깐 들러서 내게 보여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를 바닷길로 곧장 경성까지 압송하라고 해라.”

두회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변을 한 번 보겠다고는 했지만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아들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주어서 파멸적인 타격을 가하고 싶었다.

‘내가 네놈을 버린 뒤에 네놈이 겁도 없이 급부상했고,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대단했으니 내가 후회막심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겠지. 하지만 난 그런 마음이 추호도 없다. 네놈이 아무리 날뛰어봤자 넌 하찮은 개미일 뿐이다. 내가 원하면 언제든 눌러 죽일 수 있는 개미 말이다.

나 두회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네놈을 버린 일을 후회하지 않았다. 네놈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비참한 운명을 바꿀 순 없어.

네놈의 인생은 끝이 보이는 아주 비참한 비극이니까.’

두회가 글씨를 다 쓴 뒤, 꽤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붓을 거뒀다.

두회가 고개를 들자, 보고하러 들어왔던 심복 사자가 몸을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고 있었다.

“왜 그러느냐? 설마 두강과 원천조가 실수로 두변을 죽인 것이냐?”

두회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심복 사자가 머리를 조아리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대장군, 우리가 졌습니다. 백색성 전장에서도, 진서 왕성 전장에서도 대패로 전투가 끝났습니다. 66만 대군이 전멸하였고, 두강 대인, 원천조 대인, 소목지 대인, 방천명 대인, 그리고 방천조 대인께서 전부 포로로 잡혔습니다.”

두회가 깜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꼭 척추가 뽑혀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말도 안 된다. 그건 다 헛소문일 게다.”

두회가 비명을 지르면서 소리쳤다.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오.”

고정이 방 안으로 들어오면서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두 대인, 내 심복이 직접 전장에서 보았다는군. 동방 연합 왕국 군대는 전부 시신이 되어 전장에 나뒹굴고 있다고 하오. 이번 전투는 우리가 졌소.

그리고 광동이 두변의 전장과 가까우니, 그의 대군이 곧 이곳을 치러 올 것이오.

광동, 복건, 양강이 함락될 위기에 처했소.

두회, 우린 지금 서둘러 계획을 짜야 하오. 안 그러면 모두가 두변의 칼에 죽게 생겼소.”

두회는 머리가 웅웅 울렸고, 가슴팍이 뜨거워졌다. 그는 격렬한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오장육부의 내력이 좌충우돌하면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아니 이럴 수 없다! 하늘이 왜 이리 무심한 거냐!”

두회는 이 말을 남기고 피를 뿜으면서 혼절해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두회는 서서히 정신을 차리면서 눈을 떴다.

그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여인을 보고 한참 동안 넋을 놓았다가 뒤늦게야 정신을 차렸다.

두회의 침상 옆에 서 있는 사람은 그의 부인 희민지였다.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는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지난번에 두 사람이 서로를 본 게 벌써 3년 전이었다.

두 사람이 혼인의 인연을 맺은 지 20년이 넘지만, 두회 부부가 함께 보낸 시간은 반년이나 되었을까?

두 사람은 몇 년은 물론, 십여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했다.

이 방 안에는 거울이 하나 있었는데, 두회는 거울을 통해서 자신과 희민지의 얼굴을 확인했다. 두 사람의 외모는 부부라기보다는 부녀지간과도 같았다.

두회는 올해 마흔 몇 살이고 원래도 검고 빽빽한 머리 덕분에 꽤 젊어 보였다. 그런데 한 번 혼절하고 다시 깨어나니, 어느새 흰 머리카락이 보이면서 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희민지는 겉으로 보기에 기껏해야 서른도 넘지 않는 모습이었고, 이목구비며 몸매며 전부 상대할 자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녀는 한 달 전에 드디어 대종사 무도 수준을 돌파했다.

“아주 대단한 아들을 낳았소. 동방 연합 왕국의 66만 대군도 두변을 무찌르지 못하다니. 동방 연합 왕국이 처참하게 패배했소.”

희민지가 흠칫 놀라더니 다시 침착하게 말했다.

“나는 당신과 화리(和離: 합의 이혼)하러 왔어요. 아, 화리가 아니라 휴처(休妻: 아내를 내쫓음)를 해도 괜찮아요.”

“꼭 지금 이래야 하오?”

“난 이미 대은구도 장로회에 들어갔어요. 이젠 배우자가 있을 수 없는 몸이에요.”

두회가 잠시 침묵하다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더니, 휴서(休書: 이혼 증서)를 작성해서 희민지에게 건넸다.

“오늘부터 당신은 자유의 몸이오.”

“고마워요.”

희민지는 휴서를 받자마자 두말하지 않고 떠났다.

고정이 방 안으로 다급하게 들어오면서 말했다.

“두 대인, 우리도 어서 철수해야 하오. 두변 대군이 벌써 광동으로 들어왔다고 하오.”

두회는 물건을 정리할 새도 없이 심복 몇 명만 데리고 허둥지둥 광주항으로 달려간 뒤, 항구에 있던 군함을 타고 멀리 도망쳤다.

반 시진 뒤, 여담이 대군을 이끌고 총독부와 정서 대영으로 쳐들어 왔다. 하지만 총독부와 대영 안에는 사람 한 명 없었고, 고정과 두회도 이미 도망친 뒤였다.

두회는 시야에서 점점 사라지는 대륙을 내다보면서 있는 힘껏 소리쳤다.

“두변 저 개자식은 왜 죽지도 않는 거냐? 정말 무슨 대가를 치러도 좋으니, 제발 누가 저놈 좀 죽여줬으면 좋겠구나!”

영설이 두효를 품에 안은 채 꿀이 떨어질 것 같은 눈빛으로 아기를 바라보았다.

영설은 예상 선자와 한 지붕 아래서 지냈지만, 한 번도 직접적인 소통이나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난 뒤로, 영설은 문턱이 닳도록 예상 선자의 방으로 와서 아이를 품에 안았다.

예상이 말했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너무 오래 손 타면 안 돼요.”

영설이 그제야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아이를 작은 침대에 눕혔다.

“난 언제쯤 회임할 수 있을까요? 아이가 정말 너무 귀엽고 예뻐요.”

“곧이요.”

영설이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예상 선자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니까 알죠.”

영설이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예상, 요즘에 부군이 부쩍 하늘을 많이 올려다보는 것 같아요. 뭔가에 쫓기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듯이요.”

예상 선자도 영설의 말에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같은 시각, 두변이 시스템에게 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죠?’

‘139일 남았다.’

경성.

최근에 경성에 엄청 큰 일이 일어났다.

영덕제의 부인이 죽은 것이다. 영덕제가 영도현의 사생아라는 게 밝혀지고, 모친을 시해했다는 대죄를 저지른 뒤부터 그의 부인은 병상에 앓아누웠다.

그녀는 한동안 힘겹게 버티나 싶었지만, 병세가 호전되지 못하고 결국 며칠 뒤에 목숨을 잃었다.

영덕제는 그녀를 위해서 장엄하되, 너무 요란하지 않은 장례식을 치렀고, 그녀에게 단정(端凈) 황후라는 시호를 내렸다.

장례식을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는 곧바로 새로운 황후를 맞이했다. 새로운 황후는 방탁의 여식 방청의였다.

방청의는 두변의 전 정혼녀이자 두염과 혼례를 올린 적이 있던 여인으로, 혼례를 한 번 치르긴 했지만 지금까지 처녀였다.

이 시점은 남방 결전의 결과가 아직 경성까지는 전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율법에 의하면, 선황이 붕어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고, 태후가 별세한 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은 터라, 원래대로라면 영덕제는 황후를 맞이할 수 없고 조용히 상을 지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이렇게 된 판국에 영덕제의 눈에 조칙 따위가 들어올 리 있나.

영덕제는 요란스럽지는 않되 장중하고 깔끔한 혼례를 올려서 방청의를 황후로 맞이했다.

사실 혼례 자체도 이 시대의 상식적인 관례에 벗어난 것이었다.

지금 시대는 여인이 이혼하거나 과부가 되었다가 재혼을 하는 게 크게 이상하지 않은 한나라가 아니다. 심지어 한경제(韓景帝)의 왕황후는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까지 낳았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여인들은 과부가 되거나 이혼한 뒤, 혼례에 있어서 수동적인 위치가 되고, 기존보다 더 신분이 낮은 집안에 시집을 가는 게 관례였다.

방청의만 빼고 말이다.

천윤제가 아직 죽기 전, 방씨 세력과 황제가 담판할 때 태자가 방청의와 혼례를 올려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사실 영덕제는 방청의를 부인으로 맞이하는 게 무척 기뻤다. 방청의는 자신의 부인보다 훨씬 아름다웠고, 이전엔 두변의 정혼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왠지 자신이 방청의와 혼례를 올리는 게 두변을 물 먹이는 행동 같은 기분이었다.

경사스러운 분위기가 넘치는 동방(洞房) 안.

방청의가 아름다운 조각상처럼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앉아 있었다. 만약 몇 년 전이었다면, 방청의도 자신이 황후가 된다는 사실에 종일 기뻐했을 것이다.

그때의 그녀는 천하지존에게 시집가는 게 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예전과 달리 꽤 성숙해졌다.

방청의는 두염과 혼례를 올린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순진하고 유치한 서생이었던 두염은 방청의와 어떠한 신체적 접촉도 하기 전에 죽어버렸다.

그녀는 두염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도 바보는 아니기에 두염이 정확히 누구에게 죽었는지 추측하기만 했다.

그녀는 두염에게 깊은 감정이 없었고, 특히 남녀 간의 애정은 더더욱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두 사람은 혼례를 올린 사이고, 두염도 늘 조신하게 방청의의 말을 잘 따랐기에 방청의는 그의 죽음에 대해 완전히 무정한 건 아니었다.

과거의 방청의는 무척이나 오만했다. 마치 시야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 언제나 고고하게 세상을 내려다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두변이 북명검파의 대은구도에서 그녀의 우월감을 완전히 짓밟았다.

그는 상상도 하지 못할 방법으로 그녀에게 치욕을 줬고, 그녀에게 지울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금의 방청의는 기쁘기는커녕 슬펐다. 자신이 결국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곧 혼례를 올릴 영덕제는 고집불통인 데다 모친을 시해한 짐승보다 못한 놈이었다.

“황후, 짐은 당신이 두변을 얼마나 뼈저리게 증오하는지 알고 있소. 아, 두변이 아니라 두견이지.”

두변은 조정 문서를 비롯한 모든 공식 문서에서 ‘두견’이라는 이름으로 기록하게 했고, 관리들도 그를 두견이라고 불렀다.

“지금 짐의 66만 신식 대군이 두견과 대전을 치르고 있소. 두견 그놈은 한 달 만에 주요 성을 전부 잃었고, 시간을 보아하니 이제 대전의 결과가 나왔을 것 같소. 아마 사흘만 더 지나면 두변의 대군은 전멸할 것이고, 그놈도 경성으로 압송될 것이오. 그놈이 경성에 도착하면, 짐은 그놈을 능지처참해서 죽일 생각이오. 황후도 짐과 함께 두변을 제일 먼저 칼로 찌르는 게 어떻겠소?”

영덕제가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좋습니다.”

방청의가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영덕제의 손에는 붓이 들려있었고, 마지막 한 획을 그었다. 생동감 넘치는 두변의 얼굴이 화폭에 담겨 있었다.

영덕제는 두변의 초상화를 바라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두견, 짐이 고대하던 날이 드디어 왔구나.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 짐이 네놈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아느냐? 짐은 매일 네놈과 만나는 상상을 하고, 네놈을 한 번, 또 한 번 칼로 찌르는 상상을 했다.’

“가져가거라.”

영덕제가 말하자, 환관 한 명이 방 안으로 들어와서 머리를 조아렸다.

“폐하의 단청술(丹靑術)은 정말 날이 갈수록 훌륭해지십니다.”

환관은 두변의 초상화를 들고 환관 전용 뒷간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환관 한 무리가 뒷간으로 우르르 따라가서 두변의 초상화에 똥오줌을 쌌다.

이게 바로 유취만년(遺臭萬年: 냄새를 만년토록 남긴다는 뜻으로, 후세에 오래도록 전해질 만한 나쁜 평판)이 아니고 무엇일까.

이건 황궁의 환관들이 영덕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만든 오물 세례 기념식이었다. 보통 때에는 환관들이 직접 두변의 초상화를 그렸고, 영덕제는 웬만해서 두변의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혼례를 올린 뒤, 술기운이 오른 영덕제가 오늘도 두변의 오물 세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친히 붓을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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