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장: 영덕 위제의 파멸 二
두변의 유취만년 세례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선황의 양성제 입구에는 두변이 무릎을 꿇고 있는 조각상이 있었다.
두변이 아무것도 입지 않고, 생식기가 아예 없는 모습을 조각으로 만든 것으로, 조각상의 등에는 ‘천고죄인, 유취만년’이라는 글자가 각인돼있었다.
이 조각상은 동창 대도독 풍보보의 걸작이었다.
당시 영덕제는 연기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풍보보에게 체통을 지키라며 화를 내는 연기를 했었다.
그때 동창 대도독 풍보보가 아주 울분에 찬 모습으로 외쳤었다.
“폐하! 선황께서 두변에게 태산과도 같은 은혜를 베푸셨는데, 결국 두변 그놈 때문에 선황께서 붕어하셨잖습니까.”
그때부터 두변의 치욕스러운 조각상이 선황의 양성제 문 앞에 자리하게 되었다.
“밤이 깊었소. 이제 쉬어야 하지 않겠소? 아마 오늘 밤에는 아무런 소식이 없을 것이오.”
영덕제가 말했다.
방청의는 싫다고 하고 싶었다. 영덕제와 동방 화촉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내는 그녀가 거절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영덕제가 꼭두각시 황제라서가 아니라, 영도현의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이 신분이 탄로 난 뒤로, 방계 세력은 영덕제를 단순한 꼭두각시 황제로 취급할 수 없었다.
두변을 제거하면, 영덕제는 대녕 제국의 강산을 하나로 통일하는 황제가 될 것이고, 실권이 어떻든 간 그는 동방 세계의 제2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
방청의의 거짓말은 두염에게나 먹히지 영덕제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을 것이다.
“두변을 죽이면, 짐의 대녕 제국은 동방 연합왕국의 제1 제국이 될 테니, 황후 당신도 모의(母議) 천하를 할 수 있소.”
영덕제가 말하면서 방청의의 붉은 천을 걷었다.
영덕제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방청의, 참으로 미인이로구나.’
“폐하, 아무래도 신첩은 오늘 밤에 폐하의 시중을 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방청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영덕제의 목소리가 급격히 냉랭해졌다.
“신첩이 곧 달거리를 합니다.”
방청의가 난색을 표하면서 말하는데, 영덕제가 음흉한 미소를 보이면서 말했다.
“괜찮소. 뒤로 하면 색다른 재미를 볼 수 있소.”
방청의의 안색이 급변했다.
“폐하, 어, 어찌 그런 말씀을.”
영덕제가 차가운 표정으로 방청의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어명을 거역하려는 것이오?”
“폐하, 며칠만 기다려주시지요. 신첩의 몸이 깨끗해진 뒤에 폐하의 시중을 드는 게 어떻겠습니까?”
방청의가 애원했지만 영덕제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니, 두견이 곧 죽을 거라서 지금 짐의 흥이 오를 대로 올랐소. 괜히 짐의 흥을 깨트리지 마시오. 달거리가 곧 시작된다는 건, 두견의 핏빛이 곧 보일 거라는 길조요.”
영덕제는 자신이 모친을 시해했다는 것과 자신이 영도현의 사생아라는 게 세상에 알려진 뒤, 성격이 많이 변했다.
원래 영덕제는 사람들의 눈치를 잘 살피고 인내심이 있고 연기를 잘했지만, 지금의 그는 안하무인이고 괴팍하기 그지없었다.
방청의가 다시 한번 애원했다.
“폐하, 신첩은 폐하께서 정식으로 맞이한 황후이지, 청루에서 술을 파는 계집이 아닙니다. 정말 송구하오나, 신첩은 폐하의 청을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방청의는 자신의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방을 나가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여봐라.”
영덕제가 큰소리로 외치자, 방 안으로 궁녀 네 명이 들어왔다. 이 궁녀들은 무공 수준이 굉장히 높은 데다 황궁이 아닌 방계 소속의 궁녀들인지라 평소에는 방청의의 최측근 시녀이자 호위 역할을 하는 자들이었다.
“황후를 잡아 눌러라.”
영덕제가 명령했다.
궁녀 네 명이 방청의에게 한꺼번에 달려들어서 방청의의 무릎을 꿇리고, 네발로 기어 다니는 개 자세로 만들었다.
너무도 수치스러운 자세에 방청의가 비명을 질렀다.
“안 됩니다! 안 돼요!”
방청의는 항상 자신을 호위하고 방계에 충성을 다하는 궁녀들이 이런 짓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런 빌어먹을 노비들! 감히 나를 이렇게 대해? 죽는 게 무섭지도 않으냐!”
방청의가 미친 듯이 발버둥 쳤지만, 자신보다 무공 수준이 월등히 뛰어난 궁녀들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궁녀 한 명이 말했다.
“소저, 정말 죄송합니다. 이건 노야의 명이세요. 노야께서 오늘 밤에 꼭 폐하께서 마음껏 흥을 풀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녀 자신도 그저 물건이었던 것이다!
방청의는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처절하게 깨달으면서 처참하고 비통한 심정이었다.
두회는 권력을 위해서라면 서자 두염의 죽음에도 무덤덤한 사람이었다.
당시에 방청의는 자신은 두염과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자신도 결국 두염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가족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희생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소모품.
“네년들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궁녀 한 명이 방청의가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그녀의 입 안에 비단 뭉텅이를 쑤셔 넣었다.
영덕제가 명령했다.
“옷을 다 찢어버려라.”
궁녀 한 명이 가까이 다가가서 방청의의 옷을 찢으려던 찰나,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폐하.”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동창 대도독 풍보보가 문밖에 나타났다.
방청의가 아직 옷을 입은 상태이긴 하나, 그 자세가 너무 노골적이어서 아랫도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던 영덕제는 풍보보의 외침에 버럭 화를 냈다.
“무슨 일이냐! 너 때문에 흥이 다 깨져버렸으니 네 죄를 네가 알렷다!”
동창 대도독 풍보보가 문밖에서 무릎을 꿇은 채 미친 듯이 머리를 조아렸다. 몸을 벌벌 떨면서도 쉽게 입술을 떼지 못했다.
영덕제가 눈빛을 반짝이면서 물었다.
“남방에서 벌써 소식을 전해온 것이냐? 대전이 끝났다고?”
동창 대도독 풍보보가 머리를 조아린 채 대답했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영덕제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두견 그놈이 드디어 죽었구나. 역시 하늘이 혜안을 가지셨어. 오늘은 짐이 기뻐할 일이 두 개나 되는구나. 하하하.”
동창 대도독 풍보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두변은 죽지 않고 대승을 거뒀습니다. 동방 연합왕국의 66만 대군이 전멸 수준으로 패배했습니다.”
일순간 동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영덕제는 한참이 지난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말도 안 된다. 절대 그럴 리 없어!”
동창 대도독 풍보보가 이마에 피가 날 정도로 머리를 찧으면서 말했다.
“폐하, 진정 사실이옵니다.”
“아니다. 사실이 아니야. 죽어도 그럴 리가 없지. 두견 그놈이 어떻게 이길 수가 있어? 그놈은 한 달도 안 돼서 광서를 통째로 잃었다. 분명히 파멸의 길로 가고 있던 놈이 어째서 이 전투에서 이겼다는 것이냐?”
몇 분 뒤, 내각 수보 방탁도 문밖 회랑에 나타났다.
“폐하,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서남 대전에서 두변이 대승을 거뒀고, 대녕 제국에 그를 막을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폐하께서도 어서 서둘러 동방 연합 왕국으로 도망치셔야 합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확인 사살이 있을까.
영덕제는 온몸이 저릿해지면서 무감각해졌다. 그는 이 청천벽력의 소식을 듣고도 피를 토하지는 않았다. 대신 가슴 가득 절망할 뿐이었다.
“아아, 짐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이럴 순 없어!”
영덕제가 한 마리 개처럼 울부짖었다.
“폐하, 지금 당장 해상으로 피하셔야 합니다. 이러다간 도망치지도 못합니다.”
방탁의 말에 영덕제가 움찔하더니,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그래. 빨리 바다로 가야 한다. 어서.”
두변의 군대는 아직 경성까지 몇천 리의 거리가 있었지만, 영덕제는 허둥대면서 망명길에 올랐다.
그는 황궁 안에 있던 모든 보물과 아들들, 그리고 황후 방청의를 데리고 황궁을 떠났고, 동방 연합 왕국의 군함을 탈 생각으로 부리나케 천진항으로 달려갔다.
동방 연합 왕국의 절정 고수와 경성에서 주둔하고 있던 동방 연합 왕국 3만 대군이 영덕제를 호위했다.
천진항에 도착한 영덕제가 군함에 오르기 직전에 동창 대도독 풍보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영덕제에게 조용히 다가가서 말했다.
“폐하, 이문회를 잡았습니다.”
영덕제가 흠칫 놀라면서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정, 정말이냐?”
풍보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입니다. 두견이 승리했다는 소식이 경성에 전해지자마자 이문회가 나타났습니다. 덕분에 소인이 이문회를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그는 어디 있느냐?”
“항구 근처의 가택에 가둬놨습니다.”
“가자. 짐이 직접 이문회를 갈기갈기 찢어야겠으니.”
이때, 영덕제의 곁을 지키던 비밀스러운 대종사가 나섰다.
“폐하, 당장 군함에 오르셔야 합니다.”
영덕제가 냉랭한 표정으로 대종사를 나무랐다.
“짐에게 일각의 시간도 없단 말이오?”
영덕제가 풍보보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앞장서라.”
“예, 알겠습니다.”
풍보보가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비밀스러운 대종사도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을 바짝 따라갔다.
항구 근처의 작은 가택 안에 들어가자, 영덕제의 시야에 이문회가 들어왔다. 이문회는 머리카락이 전부 하얗게 셌고, 누가 봐도 야위었다고 할 정도로 몰골이 피폐했다. 그는 밧줄에 꽁꽁 묶인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영덕제가 사악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문회, 자네에게도 오늘 같은 날이 있게 되었군.
두견, 보고 있느냐? 네 의부가 짐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짐이 친히 저놈을 갈기갈기 찢은 뒤에, 머리를 잘라서 네게 보내주마. 그리고 네 의부의 시신은 들개들에게 먹이로 던져줄 것이다.”
영덕제가 검을 뽑아 들고 이문회를 향해 걸어갔다.
이때, 갑자기 어디선가 이도진과 계청주가 나타나서 영덕제의 곁을 지키던 비밀스러운 대종사를 향해 공격했다.
동시에 동창 대도독 풍보보가 검을 영덕제의 목에 겨누었다.
“폐하, 참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여송성 총독부 안.
소군 방진이 자신의 천부적인 예술 재능을 뽐내고 있었고, 성로마 제국의 앤 공주는 방진의 감미로운 연주에 흠뻑 빠져 있었다.
앤 공주는 신비로운 동방 사내 방진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소군 방진은 앤 공주가 그러든 말든, 만 리 밖의 서남 대전이 어찌 되든,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무아지경의 경지로 연주에 몰입했다.
방진은 자신에게 대적할 만한 적은 성화교 세계와 서방 성로마 연맹뿐이라고 생각했다.
방진에게 두변은 언제든 지르밟아 죽일 수 있는 개미였고, 자신의 존귀한 시선이 닿기도 아까운 하찮은 존재였다.
방진이 자신의 연주에 한창 집중하고 있을 때, 그의 심복이 조금은 무례하게 방진 곁으로 달려오더니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 보고했다.
“전하, 서남 대전이 끝났는데, 두변이 대승을 거뒀다고 합니다. 우리 동방 연합 왕국의 66만 대군이 거의 전멸했다고 합니다.”
일순간, 소군 방진의 연주 소리가 뚝 끊기고, 그의 목에 난 솜털이 삐쭉 섰다.
심복은 소군 방진의 목에 삐쭉 일어선 솜털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목에 난 솜털뿐만 아니라, 그의 목 근육이 살짝 경련하면서 튀어나오기까지 했다.
연주 소리가 끊기자, 앤 공주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 사랑, 무슨 일이에요?”
소군 방진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대답했다.
“별일 아니오. 연주법을 조금 바꾸고 싶어서.”
방진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연주를 이어갔다. 다만 원래 부드럽고 서정적이던 연주가 갑자기 격앙되고 살기가 가득해졌다.
그러나저러나 앤 공주는 그 연주에 매혹되어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상할 뿐이었다.
연주가 끝나자, 앤 공주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내 사랑, 당신은 내가 봤던 남자 중에 가장 매력적인 데다, 가장 천재적인 예술가예요.”
앤 공주가 빠르게 쳄발로(16~18세기에 널리 쓰인 건반 악기) 옆으로 걸어가서는, 짓궂은 의도로 허리를 숙이면서 방진에게 애교를 부렸다.
“새로운 연주법이 참 신기하네요. 나도 가르쳐줄래요? 자기?”
소군 방진의 시선이 앤 공주의 매혹적인 몸매로 향하자 앤 공주가 콧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우리 성로마 제국의 옷은 정말 너무 번거로워요. 그래서 이번에 자기가 내게 선물해준 비단으로 동서의 미를 결합한 치마를 제작해봤는데, 어때요?”
앤이 입고 있는 치마는 꽤나 현대적이었다.
마치 지방시가 특별히 오드리 햅번을 위해 만들어 준 치마처럼 몸에 딱 맞으면서도 신비롭고 섹시하면서도 귀티가 났다.
치마가 분홍빛이어서 그런지, 그녀의 피부가 뽀얀 우유처럼 새하얗게 보였고 그녀의 몸매 곡선을 더욱 과장되게 드러냈다.
소군 방진의 시선을 느낀 앤 공주는 행복해하면서 부끄러운 듯 눈을 감고 방진의 입맞춤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가 기대하던 입맞춤 대신, 방진은 앤 공주를 쳄발로 위로 거칠게 눕힌 뒤, 그녀의 오만한 허리를 높이 치켜 올렸다.
그리고 앤 공주가 무슨 반응을 할 새도 없이 곧바로 그녀의 치마를 치켜들고 그 안에 있던 여인의 속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앤 공주가 놀라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는 사이, 소군 방진은 폭력적인 모습으로 서방 세계의 보물을 점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