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2장: 영덕 위제의 파멸 三
반 시진이 지난 뒤, 방진은 그제야 제 분을 다 풀었는지 앤 공주를 놓아주었다.
앤 공주는 방진과 몸의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두 번이나 혼절했고,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앤 공주가 눈물이 다 마르지 않은 얼굴로 방진에게 입을 맞추면서 말했다.
“자기,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어요? 조금 전의 자기는 내가 알던 신사가 아니에요. 난 당신이 내게 욕정을 풀면서 기쁨과 안녕을 찾았으면 해요.”
소군 방진이 창백해진 앤 공주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내가 당장 로마에 사신을 보내겠소. 대제 폐하께 우리의 혼례를 청하고, 최대한 빨리 혼례를 치르는 게 좋겠소.”
“그럼 조금 전엔 야성적인 청혼이었나요?”
앤 공주가 물었다.
소군 방진이 앤 공주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린 뒤, 그녀의 남은 옷을 찬찬히 벗기고 따뜻한 욕조에 그녀의 몸을 담갔다.
그는 부드럽고 애정이 담긴 손길로 앤 공주의 몸을 씻겨주고, 상처가 난 곳에 약을 발라줬다.
“당신이 푹 잠들 수 있도록 와인에 좋은 약을 아주 조금 넣었소. 중독될 정도의 양은 아니니 안심하시오.”
소군 방진이 와인을 한 잔 건네면서 말했다.
앤 공주가 작은 입을 벌리더니 요염하게 말했다.
“자기가 먹여줘요.”
소군 방진이 와인을 입에 머금은 뒤, 천천히 앤 공주의 입 안으로 흘려주었다.
앤 공주의 볼이 발그레해지더니, 금세 단잠에 빠져들었다.
총독부 안.
초췌한 모습의 막한이 소군 방진의 앞에 나타났다.
“다친 곳은 괜찮소?”
소군 방진이 묻자 막한이 고개를 저었다.
“다친 곳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지만, 스스로 화를 누르지 못하면 부상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오. 앞으로 이틀 동안 당신에게 전담 의원을 붙여주겠소.”
막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변이 새로운 무기를 쓴다고?”
“정석 마포와 번개 검을 썼어요.”
막한이 대답했다.
소군 방진은 두변의 정석 마포와 전호검에 관해 상세하게 기술된 자료를 이미 손에 넣은 상태였다. 자료에는 정석 레이저 조준 장치는 물론이고, 포탄이 포당을 통과하는 시간까지 상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이건 그가 심어놓은 첩자가 제공해준 게 아니라, 전장에서 살아남은 병사가 제공해준 정보였다.
“알겠소. 막한, 내가 당신에게 약속한 일은 여전히 해낼 수 있소. 이번에 변고가 생기긴 했지만, 내가 다음에 두 배로 배상해주겠소. 당신은 안남 왕국 전체와 광서와 운남까지 가지게 될 것이오.”
방진이 말을 끝낸 뒤,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막한이 물었다.
“방진, 왜 내게 이렇게 잘해주는 거죠?”
방진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당신과 혼례를 올릴 거니까.”
“왜 나랑 혼례를 올리고 싶은 거죠? 날 한 번도 건드린 적도 없고, 나와 밤을 보낸 적도 없잖아요.”
“혼례를 올린 뒤에 가질 것이오.”
“에인젤과 당신은 혼례를 올리지 않았음에도 족히 천 번은 넘게 밤을 보냈잖아요. 그리고 앤 공주와는 정혼하기도 전에 잤잖아요. 조금 전에 어찌나 소리를 지르던지, 몇백 미터 밖에서도 소리가 다 들렸다고요.”
“당신의 체질과 혈맥이 무척 특수해서 그렇소. 당신은 백만 명 중 한 명 나오기도 힘든 그런 혈맥을 가졌소. 당신도 곧 자신의 특별함을 알게 될 것이오.”
“두변을 또 언제 죽이러 갈 수 있죠?”
“곧, 금방 갈 것이오.”
“직접 가는 건가요?”
“내가 직접 갈 것이오.”
“이길 수 있어요?”
방진은 막한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곧장 자리를 떠났다.
천진항의 한 저택 안.
이도진은 영덕 위제의 곁을 지키던 비밀스러운 대종사와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동창 대도독 풍보보는 칼을 영덕 위제의 목에 들이밀고 있었다.
영덕 위제는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동창 대도독은 영덕 위제가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최근에 두변을 누구보다 신랄하게 모욕하였고, 두변의 유취만년을 주도한 사람도 바로 풍보보였다.
그러니 풍보보를 전적으로 믿을 수밖에.
그런데 이렇게 절체절명의 시기에 풍보보가 자신을 배신하고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밀 줄이야.
“풍보보, 이 박쥐 같은 놈! 두변이 이겼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짐을 배신해? 최근에 네놈이 두변을 얼마나 치욕스럽게 만들었는지 밝혀져도 두변이 네놈을 받아줄까? 두변 그놈이 너를 용서할 것 같으냐?”
영덕 위제가 냉소를 지으면서 소리쳤다.
“영덕 위제, 내가 친히 네 잘못을 몇 가지 짚어주지. 첫째, 내가 황궁에서 미친 듯이 섭정왕을 모욕했던 건 네 신임을 얻기 위해서였다. 나는 내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섭정왕에게 보고했고, 섭정왕도 내 계획에 동의했다.
둘째, 난 한때 너에게 무조건적으로 충성했다. 하지만 네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모친을 시해한 대죄를 저지른 뒤부터 네놈은 나의 적이 되었다. 절대로 같은 하늘 아래 숨 쉴 수 없는 철천지원수가 되었단 말이다. 네게 충성하지도 않는데, 무슨 배신을 논하느냐? 나와 문회 형님은 계속 서로를 견제하고 경쟁하는 사이긴 했지만, 선황에 대한 충성만큼은 똑같았다. 네놈이 개라고 부르는 우리 환관당 사람들은 줏대 없는 문관들처럼 바람이 어디로 불면 어디로 기우는 사람들이 아니다. 네 말대로 우리는 개니까, 언제나 한 명의 주인만 섬긴다.
셋째, 나도 네놈을 몇 번이고 죽이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 의심이 워낙 많고, 대종사가 항상 네 곁을 지키고 있으니 너를 암살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군. 그런데 내가 알기론, 네놈의 곁을 지키는 대종사 고수는 원래는 방계가 네놈을 죽이려고 심어둔 첩자다.”
영덕 위제가 풍보보의 말을 듣더니 크게 놀라 소리쳤다.
“그럼 이문회 세력이 경성에서 판을 치고 다니고, 여론 공격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몇 개월 동안 아무리 경성을 뒤져도 이문회를 잡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네놈들이 함께 작당해서로구나!”
“그렇지. 섭정왕의 대군이 경성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데, 위제 잡놈이 도망칠 생각을 해? 네놈은 천하 대죄를 저질렀는데, 그렇게 쉽게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냐? 문회 형님을 미끼로 썼더니 졸졸 잘도 따라오더군.”
영덕 위제가 고개를 젖히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하면 짐을 잡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나? 짐의 곁에 얼마나 많은 대종사급 강자가 있는 줄 아느냐? 네놈들에겐 무림 고수가 이도진밖에 없을 텐데? 아, 이름이 이도진 맞나?”
영덕 위제가 이도진을 노골적으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저년이 두변의 여인이겠구나. 그 몸매에 그 얼굴이라니, 정말 절세 미물이구나. 이따 짐이 네년의 무공을 폐하고, 마음껏 유린하고 놀아서 두변에게 제대로 물을 먹여야겠다.”
슉, 슉, 슉, 슉.
그때 북명검파의 대종사급 고수 열 명이 순식간에 이 작은 방을 포위했다.
영덕 위제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이면서 말했다.
“짐은 대종사급 고수가 열 명 넘게 있는데, 네놈들은 고작 한 명이 다로구나. 풍보보, 이문회, 열심히 준비한 것치고는 참 허무하게 죽게 생겼군. 네놈들은 날개가 달려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지금 상황으로 봐선, 영덕 위제의 말대로 이곳은 이문회 등의 무덤이 될 운명이었다.
밖에 있는 북명검파의 대종사 열 명을 이도진 혼자서 상대하는 건 물론이고, 그 와중에 영덕 위제까지 데리고 가는 건 더욱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때, 동창 대도독 풍보보가 낮게 웃더니.
스릉!
풍보보가 영덕 위제의 아랫도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고, 영덕 위제는 순식간에 고자가 되었다. 게다가 영덕 위제의 남근이 땅에 떨어지기 무섭게 그것을 신발로 잘근잘근 밟아 으깨버렸다.
영덕 위제는 아랫도리가 갑자기 차가워지면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게 느껴졌다. 그는 색맹인지라 피가 붉게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이 거세당했다는 것과 남근이 짓밟히는 걸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아! 으아악!”
영덕 위제가 몸을 벌벌 떨면서 한 번도 낸 적 없는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자신이 거세당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동창 대도독 풍보보가 문밖을 향해 외쳤다.
“방탁! 내가 영덕 위제를 거세했으니, 이제 너희들에게 위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방청의를 위제에게 시집보냈던 건, 둘 사이에 낳은 아들에게 제위를 물려주기 위함이었지. 그 아들은 영도현의 핏줄이기도, 방씨 세력의 핏줄이기도 하니 말이지. 그런데 이를 어쩌나? 영덕 위제는 이제 후손을 만들 능력이 없는데? 내가 이자의 남근을 이미 피떡이 되도록 짓밟았는데?.”
영덕 위제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여봐라. 여봐라! 어서 풍보보, 이문회를 갈기갈기 찢어 죽여라. 그리고 두변의 여인인 이도진을 윤간하고 죽여버려라!”
그런데 이상하게도 밖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동창 대도독 풍보보가 말했다.
“방탁, 너도 환관은 황제가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지 않나. 영덕 위제의 장자를 황제로 세우거나, 남경의 연왕을 황제로 옹립해라. 어차피 그들도 영도현의 핏줄 아닌가? 교활한 영덕 위제에 비하면, 그들이 더 네 말을 잘 듣겠지.”
영덕 위제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짐의 어명이 들리지 않으냐. 여봐라. 어서 이문회와 풍보보를 죽이고, 이도진을 천 번이고 윤간한 뒤에 죽여라.”
동창 대도독 풍보보는 여유 있는 모습으로 밖을 향해 말했다.
“탁 옹! 섭정왕 두변 전하께서 내게 밀신으로 전하신 말씀이 있다. 섭정왕 전하께서 북명검파의 커다란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지. 일반적인 전투에서라면 모를까, 만약 북명검파의 고수들이 임의로 두변 전하의 측근을 죽인다면, 전하께서 아주 잔혹한 복수를 할 거라고 하시던데?”
방탁은 따지고 보면 북명검파 소속의 사람이 아닌지라, 두변이 북명검파의 치명적인 약점을 가졌다는 소식은 처음 들을 수밖에 없었다.
방탁이 북명검파의 장로를 쳐다보았다.
이 장로는 영도현이 영덕 위제 곁으로 보낸 사람 중 최고 장로로, 방탁의 눈빛을 본 장로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도현이 신경 쓰는 건 대녕 제국에서 자신이 가질 지위지, 영덕 위제가 아니지. 당시에도 영도현이 황제로 옹립하려던 사람은 영덕 위제가 아니라, 연왕이었고. 영덕 위제는 이제 고자가 되어서 더는 황제를 할 수 없소이다. 너희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단 말이다. 그러니 오늘은 그만들 돌아가는 게 어떻겠나?”
풍보보의 말에 방탁은 머릿속이 복잡해서 빠르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고자가 된 영덕 위제는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는 건 맞지만, 영도현의 명확한 지시나 소군 전하의 지시 없이는 영덕 위제를 포기할 수 없었다.
바로 이때, 북명검파의 대은구도 장로 희민지가 갑자기 천진항에 나타났다.
“종주령이다! 북명검파 장로회의 최고 명령이다. 북명검파의 구성원은 전부 하는 일을 멈추고 즉시 북명검파로 복귀한다. 매우 긴급한 사안이니 즉시 이동하도록.”
희민지가 말하면서 북명검파의 최고 소집령을 뜻하는 영패를 높이 치켜들었다.
몇 초 뒤, 또 한 사람이 희민지 옆에 나타났다.
북명검파 장로였다.
“종주령이다! 북명검파 장로회의 최고 명령이다. 북명검파의 구성원은 전부 하는 일을 멈추고 즉시 북명검파로 복귀한다. 매우 긴급한 사안이니, 즉시 이동하도록.”
장로도 똑같이 북명검파의 최고 소집령인 붉은 영패를 들고 있었다.
북명검파에 엄청난 일이 닥친 게 분명했다. 최고 소집령을 뜻하는 붉은 영패는 북명검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든 당장 하던 일을 멈추고 복귀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혼례를 치르면서 삼배를 올리는 와중이든, 아이를 낳는 와중이든, 전부 즉시 중단하고 북명으로 복귀해야 했다.
항시 영덕 위제 곁을 지키던 대종사는 이도진과 싸우는 와중에 최고 소집령을 듣자마자 곧바로 뒤로 물러난 뒤 영덕 위제를 버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저택을 포위하고 있던 북명검파 대종사들도 군말 없이 곧장 북명검파를 향해 달려갔다.
북명검파의 고수들이 모두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영덕 위제는 미칠 것만 같았다.
“다들 돌아오거라! 지금 어딜 가는 것이냐!
북명검파, 네놈들을 가만두지 않겠다. 영도현, 네놈은 절대 곱게 죽지 못할 것이야!”
영덕 위제가 악을 쓰면서 소리쳤다.
그때 이문회가 자신의 몸을 묶고 있던 밧줄을 가볍게 털어낸 뒤, 그 밧줄로 영덕 위제의 몸을 결박했다.
이문회가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파렴치한 놈. 우린 그만 황궁으로 돌아가서 기다리지. 두변이 네놈을 아주 많이 보고 싶어할 것이다.”
같은 시각, 남쪽의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어갔다. 곧 하늘이 바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