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34화 (534/648)

534장: 기염염의 회임

여인이 각종 단추를 누르자, 주위의 정석 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샥, 샥, 샥, 샥.

정석에서 솟구친 빛이 우라늄 정석 상자에 모이더니, 우라늄이 점점 더 밝아지면서 눈부신 초록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우라늄은 몇 초 만에 사람이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정도의 조도가 되더니, 초록빛 한 줄기가 정석 탐침을 통해 막한의 몸에 쏘아졌다.

“끄아악.”

막한이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공포 어린 비명을 질렀다.

이 초록빛은 수백 종의 정석 에너지와 거대한 우라늄의 방사능이 혼합된 방사선이었다. 방사선이 막한의 몸 곳곳을 비추기 시작하자, 방사선이 닿은 곳마다 생기를 잃었다.

초강력 방사선이 1초 만에 막한의 온몸을 비추었다.

소군 방진이 재빨리 모든 정석 장치를 껐고, 방사선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막한의 호흡과 심장박동이 멈추고, 그녀의 온몸은 초록빛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밖으로 드러난 그녀의 피부는 전부 투명하게 변해서 너무나 기이해 보였다.

누가 봐도 막한은 죽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소군 방진이 또 다른 단추를 눌렀다.

쿵.

막한의 몸이 떨어지더니 관 안으로 들어갔다.

이 관 안은 황금빛 액체로 가득한데, 절세 지하성에서 두변이 보았던 우물 속의 물과 똑같았다.

관 속으로 떨어진 막한의 몸이 황금빛 액체에 잠겨 있었다.

“이제부터 성공 여부는 하늘에 달렸군.”

소군 방진이 작게 읊조린 뒤, 자리를 떠났다.

초록빛을 내뿜고 있는 막한은 정석으로 만든 관 속, 황금 액체에 잠긴 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북명검파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표묘봉 누각 안은 언제나 신선경이었다.

누각 안에는 선녀가 한 명 있는데, 선녀보다 더 아름다운 이 여인은 흡사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만 같고, 예상 선자보다 더욱 아름다웠다.

그 여인이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화폭에 담긴 사람은 두변이었다. 그의 모습은 꼭 거대한 전신사진처럼 생생했고, 동공까지 또렷하고 선명하게 보였다.

화폭 속의 두변은 신비롭고 패기가 넘쳤고, 사악한 매력을 풍기면서도 조금은 조급해하는 모습이었다.

두변의 살짝 올라간 한쪽 눈썹이 꼭 자신에겐 인내심이 없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화폭에 담긴 그림임에도 남성적인 매력이 흘러넘쳐서, 솔직히 말하면 여인들에겐 꼭 걸어 다니는 춘약이라 할 만했다.

두변을 다 그린 여인은 화폭에 거울을 그리기 시작했다. 두변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한 구도로, 거울 속에 비친 두변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었다. 온몸에 교룡의 용린이 돋아 있고, 머리에는 악마의 뿔이 나 있는 괴물.

무척 강하고 끔찍하게 생긴 괴물.

“윽.”

여인이 갑자기 작게 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배를 움켜쥐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여보자, 이미 회임 8개월 차로 배가 많이 불러 있었다.

배 속의 아이가 얼마나 튼튼한지, 아이가 발길질할 때마다 아플 정도였다.

그렇다. 이 여인은 당연히 북명종주의 부인 기염염이다.

그녀는 회임한 뒤로 더욱 젊고 아름다워져서, 지금은 예상 선자 옆에 있어도 더 아름답고, 두세 살 차이의 자매처럼 보일 정도였다.

“아가, 그렇게 빨리 나오고 싶어?”

기염염이 배를 쓰다듬으면서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북명종주 영도현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기염염의 등 뒤에 서서 조용히 그녀가 그린 작품을 바라보았다.

“정말 훌륭한 솜씨군.”

기염염은 살짝 미소를 짓고는 계속해서 괴물을 그려나갔다.

“결국 당신은 방진을 선택했네요.”

기염염이 말했다.

“당신은 두변을 선택했잖소.”

영도현이 말했다.

“두변은 날 임신시킬 수 있으니까요. 음. 결국엔 이 세상이 그 두 사람의 손에 달린 걸까요?”

“이 세계는 방진의 것이 될 것이오.”

기염염이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어떻게 알아요?”

“두변의 모든 것을 이미 다 파악했소. 방진은 그의 모든 걸 다 알고 있지. 하지만 두변은 방진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거대한 용의 작은 비늘 한 조각 수준이오.”

기염염은 더 말하지 않고 조용히 그림을 그렸다.

영도현도 조용히 기염염이 그림 그리는 걸 바라보았다.

한참이 지난 뒤, 기염염이 입을 열었다.

“두변과 방진 중에 누가 북명 선조 예언 중에 나오는 사명의 주인일까요? 당신은 이 문제에 대해서 판단한 적 있나요?”

영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 모두 북명 선조의 예언에 부합하는 사람인지라, 정확한 판단이 어렵소. 하지만 난 이미 방진을 선택했으니 더 판단할 게 없지.”

“두 사람의 결전이 다가오고 있어요.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가 바로 진정한 숙명의 주인, 천명의 주인이겠죠.”

“내 생각은 여전하오. 사람은 예언이나 숙명의 주인 같은 것에 의지하면 안 되지.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해.”

영도현이 탄식을 뱉으면서 말을 이었다.

“물론, 우리 대의 사람들에겐 희망이 없을 수도 있소. 우리의 희망은 당신의 배 속에 있을지도 모르지.”

기염염이 섬섬옥수를 앞으로 내밀자, 그녀의 손에서 금빛이 스쳐 지나갔다. 원래 가느다랗고 뽀얗던 그녀의 손에 기이한 문양이 나타났다.

이 문양은 누가 봐도 인간의 것이 아니었고, 아주 강력한 요수의 것 같았다. 두변의 교룡도 아니고 막한의 변색룡도 아니라, 그보다 더 강한 무언가의 것 말이다.

기염염이 말했다.

“그들이 곧 오겠네요.”

“맞소. 세계 대전이 곧 시작될 것이오.”

“당신은 두변이 성화교와 천계 십자회가 우리 북명검파를 공격할 걸 알고 있을 것 같나요?”

“아마 알고 있겠지. 여완완이 한동안 그의 곁에 머물렀으니.”

“근데 왜 제지하지 않았을까요?”

“그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두변은 북명검파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바다 위.

성화교와 천계 십자회의 대종사급 강자 천 명이 계속해서 파도를 밟으며 북명검파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이들이 파도를 밟으며 바다를 가로지르는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장관이었다.

이들은 마치 별들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것처럼, 한 줄기 한 줄기 빛이 되어 바다 위를 빠르게 활강했다.

이들은 북명검파와 점점 더 가까워졌다.

100리.

50리.

30리.

10리.

조금만 더 가면 북명검파의 경계선이었다.

만약 북명검파의 오성 진이 손상되지 않고 완벽하다면, 누구든 그 경계선에 닿기만 해도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대종사급 고수 천 명도 무척 막강하지만, 북명검파의 오성 진은 무려 11개의 이계 운석으로 만들어진 터라, 그 속에 내포된 에너지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계의 에너지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게 설령 대종사급 강자여도 말이다.

“가서 오성 진이 정말로 완전히 망가졌는지 살펴보거라.”

“알겠습니다.”

성화교 대장로의 명에 대종사급 강자가 명령을 받고 달려갔다.

그는 북명검파의 경계선 앞에 도착한 뒤, 눈을 감고 오성 진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꼈다.

한참이 지나자, 그가 눈을 뜨고 말했다.

“틀림없습니다. 북명검파 오성 진의 한 각이 부족해서 효과가 없는 상태입니다.”

“3분의 1 인원은 오성 진 경계 안으로 들어가거라!”

성화교 대장로가 외쳤다.

대종사 고수 333명이 명령을 듣고 곧바로 북명검파의 오성 진 경계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맞은편 바다 위에 무수히 많은 불빛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맞은편에서 가장 앞서서 달려오고 있는 사람은 북명검파 종주 영도현이었고, 그의 뒤로 수백 명 고수가 따라오고 있었다.

북명검파의 대종사급 고수 693명이 모두 출동했고, 그중엔 두변의 친모 희민지도 있었다.

하지만 북명종주의 부인 기염염은 자리에 없었다.

693명 대종사급 강자가 빠른 속도로 파도를 밟으며 달려와서, 두 세력은 10리의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영도현이 말했다.

“성화교와 천계 십자회 여러분, 우리 세 세력은 원래 균형을 이루면서 무도 세계의 조화를 추구했잖소. 모두 평안하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오늘 왜 갑자기 연합해서 우리 북명검파를 침범하는 것이오?”

성화총교 대장로가 말했다.

“동방 연합 왕국의 소군 방진이 그 균형을 깨트렸소. 만약 오늘 우리가 나서지 않는다면, 북명검파와 동방 연합 왕국이 분명히 연합해서 세계를 집어삼킬 것이오.”

영도현이 말했다.

“방진은 방진이고, 북명검파는 북명검파요. 우리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소.”

천계 십자회의 부종(副宗)이 말했다.

“영도현 각하, 무도 세계에서는 거짓이나 위선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지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우리에 대한 모욕이고, 일찍이 대화를 끝내고 싶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영도현이 한숨을 쉬었다.

“나 영도현이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하는 것이오. 무슨 일이든 다 대화로 풀 수 있잖소. 조금만 더 가까이 오면 우리 북명검파의 경계선에 닿을 것이오. 그리고 경계선을 넘는 그 순간, 세계 대전이 시작되는 것이오.”

성화총교 대장로가 말했다.

“그럼 세계 대전을 치르면 그만이지.”

천계 십자회 부종이 말했다.

“어차피 시작될 세계 대전인데,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성화교 대장로가 명령을 내렸다.

“전진하라.”

천계 십자회 부종도 명령을 내렸다.

“전진!”

1천 명 대종사급 강자가 북명검파의 경계선을 향해, 북명검파의 693명 대종사를 향해 돌격했다.

21세기 현대 지구.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이 아름답고 번영한 H시.

어느 주택 단지 안, 인형처럼 예쁘게 생긴 네다섯 살의 여자아이가 귀여운 책가방을 멘 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인형처럼 생긴 여자아이는 생김새가 너무 예뻐서 어디 있든, 누구와 함께 있든 항상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이 여자아이는 다른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좀 작았고, 체구도 왜소해 보였다.

“두효, 어머님은 어디 계셔? 오늘도 너를 데리러 오지 못하신대?”

유치원 선생님이 몸을 웅크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면서 물었다.

여자아이는 앙증맞은 분홍 입술을 움직이면서 대답했다.

“엄마 바빠요.”

유치원 선생님이 물었다.

“그럼 선생님이 두효를 집에 데려다주는 건 어때요?”

“아니요. 저도 집에 혼자 갈 수 있어요.”

여자아이가 대답했다.

이 유치원은 단지 안에 있는 유치원이라 집에 가는 길이 위험하진 않았다.

유치원 선생님이 애잔한 눈빛으로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이가 불쌍했다.

여자아이는 누구보다 똑똑하고 영리했지만, 성격이 내향적이고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매일 유치원이 끝나는 시간이면, 다른 아이들은 부모님이 데리러 오시거나,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함께 와서 아이를 데려가곤 했다. 하지만 이 여자아이는 데리러 오는 사람이 없어서 늘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여자아이는 항상 예쁜 외모로 주목받곤 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시기하기도 했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안 좋아서, 벌써 다섯 살인데도 네 살처럼 보이기도 했다.

평소엔 아이가 말을 하지 않아서 아이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줄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면 머릿속에 얼마나 풍부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영리한지 알 수 있었다.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마다 아이를 좋아했지만, 아이는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꺼려 했다.

여자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집을 향해 걸어갔다.

“두효! 두효. 쟤는 아빠도 없는 주워온 애래요.”

갑자기 어디선가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아이는 두효와 같은 유치원 반인 서강민으로, 두효보다 반 살이 많았다.

하지만 워낙 건강해서, 키는 두효보다 머리 하나가 차이 날 정도로 컸고, 몸무게도 두효의 2배였다.

같은 반 여자아이들이 항상 두효를 시기 질투했다면, 같은 반 남자애들은 두효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 자주 괴롭히곤 했다.

특히 서강민이 두효를 제일 많이 괴롭혔다.

두효는 서강민의 목소리에 입술을 비죽이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모른 척했지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짓궂은 서강민이 아예 두효 앞으로 달려와서 큰소리로 외쳤다.

“두효는 아빠도 없는 주워온 애래요! 두효는 아빠도 없는 막돼먹은 애래요!”

서강민이 아예 두 팔을 벌려서 두효의 앞길을 막아버렸다.

두효가 고개를 들고 소리쳤다.

“나도 아빠 있어. 나도 아빠 있다고. 우리 아빠 이름은 두변이야!”

두효가 자기보다 몸집이 큰 서강민을 향해 자그마한 몸을 날리더니, 두 손으로 서강민의 얼굴을 할퀴었다.

두효가 어찌나 세게 할퀸 건지, 서강민의 얼굴에 순식간에 새빨갛게 긁힌 자국이 열 개가 났다.

짓궂은 개구쟁이 서강민은 깜짝 놀라서는 잠시 멀뚱멀뚱 서 있다가 뒤늦게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앙. 엄마. 엄마!”

두효도 입을 벌리고 울음을 터트리더니, 두 손으로 눈물을 벅벅 닦으면서 집으로 달려갔다.

두효는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도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두효가 문을 열려고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으려고 애썼지만, 인형 같은 얼굴 위로 진주처럼 굵은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고, 숨이 차도록 우느라 열쇠를 제대로 넣지 못했다.

두효가 안간힘을 써서 문을 연 뒤, 책가방을 바닥에 던져놓고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두효는 침상에 누워있는 한 남자의 품에 안기면서 더욱 목놓아 울었다.

“아빠. 아빠. 누가 나 괴롭혀요. 자꾸 나한테 아빠 없대요. 으아앙! 효효도 아빠 있잖아요. 효효도 아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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