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35화 (535/648)

535장: 북명검파의 결말

현대 지구, H시의 어느 단지 안.

두효가 침상에 누운 ‘아빠’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다 지쳐 잠들었다.

2시간 뒤, 현관문이 열리더니 환상적인 몸매가 드러나는 긴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들어왔다.

“효효 아가, 미안해. 엄마가 오늘 또 야근해서 늦었네.”

여인의 목소리는 무척 다정했지만, 피곤한 기색을 감추지는 못했다.

여인은 마치 작은 귀걸이가 몇 근 정도의 물건인 것처럼 힘겹게 귀걸이부터 빼고 허리를 숙여서 하이힐을 벗었다.

허리를 숙이는 순간, 여인의 힙라인은 정말 사람을 취하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여인이 하이힐을 벗고 발을 주무르더니 그대로 거실로 걸어가서 찬물을 따라서 소파에 앉아서 천천히 물을 마셨다.

피곤해서 졸릴 지경이지만, 그녀가 물을 마시는 동작은 너무나 우아하고 매혹적이었다.

여인은 이목구비가 오목조목 뚜렷했고, 무척 예쁜 동시에 지적인 미까지 겸비했다.

이 여인의 아름다움에는 지성과 예술혼이 깃들어 있었고, 섹시하면서도 매혹적이고, 우아하면서도 따뜻하고, 어딘가 고집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효효, 또 엄마한테 화가 난 거야? 미안해. 엄마가 돈을 벌려면 학교에서도 일해야 하고, 밖에 출강도 나가야 해서 효효를 못 데리러 갔어.”

하지만 그래도 딸아이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여인은 물잔을 내려놓은 뒤,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아이의 책가방을 들고 왼쪽 방에 들어갔다.

자그마한 딸아이는 침상에 누워있는 남자의 품에 쓰러진 채 잠들어 있었고, 아이의 눈가에는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여인은 딸아이의 얼굴을 보더니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침상에 앉아서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남자가 바로 두변이었다.

그는 식물인간이 된 뒤로 체격이 왜소해지고 근육 수축까지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 남자는 이 여인의 첫사랑이자, 첫 입맞춤이자, 첫날밤을 나눈 사람이었다.

그녀는 고독하고 신비롭고 해박하고 심지어 눈빛 하나하나에 예술혼이 가득한 것 같은 이 남자에게 마음이 끌리고 말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연애를 하게 되었고, 서로가 서로의 첫사랑이 되었다.

원래 두 사람은 평생 행복할 수 있었다.

남자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이 선남선녀를 부러워했고, 천상의 짝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많이 벌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궁핍하게 사는 건 아니었다.

둘 사이에 딱 하나의 위험 요인이 있다면, 이 남자는 언제나 호기심과 모험 욕구가 넘쳤고, 결국 남자는 알코올을 이기지 못하고 바람을 피웠다.

두변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임야소는 하늘이 무너진 것만 같았고, 온 세상이 색을 잃은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약혼자가 바람을 피웠다는 걸 듣자마자 자살을 결심했다.

자살은 결국 미수에 그쳤지만, 병원에서 깨어날 때 의사가 그녀에게 임신 2개월이라고 말했다.

임야소는 아이가 생겼으니 당연히 죽을 수 없었고, 유산은 아예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아이를 혼자서 낳고 키우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미혼모가 되었다.

반면, 한때 임야소가 모든 걸 쏟으며 사랑했던 남자는 매일 밤을 술과 여자에 의지하며 방탕한 생활을 보냈다.

두변은 대학 강사를 그만둔 뒤, 어느 그룹의 영업 총괄이 되었다.

두변은 박학다식했고, 다양한 내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1분 전에는 매너가 가득한 교수의 모습이었다가, 1분 뒤에는 누구보다 험악한 깡패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가 나섰다 하면, 성사되지 않는 거래가 없었다.

두변은 예전보다 상상 이상으로 돈을 많이 벌었고, 200평이 넘는 집에 포르쉐니 벤츠 등을 몰고 다녔다.

임야소는 그때 이후로 두변과 연락을 일절 끊고, 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면서 미혼모의 생활을 힘겹게 이어나갔다.

임야소의 보수적인 부모는 매일 두변을 저주했고, 양심도 없는 놈이라고 욕하면서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아이는 임야소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아이가 엄마의 품에 안겨서 외출하는 날이면, 온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누구나 귀여워하고 예뻐할 만큼 사랑스러웠다.

아이가 옹알이하다가 차차 말하는 걸 배울 무렵, 임야소는 아이가 아빠, 하고 외치는 걸 듣고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려서 통곡했다.

어쩌면 이건 업보일까 싶어서.

4년 전 어느 날, 특급 뉴스 하나가 떴었다.

어떤 대형 미디어 그룹의 미녀 회장이 한 남자와 호텔에서 밤을 보냈는데, 그 남자가 욕정을 지나치게 풀다가 식물인간이 됐다나.

뉴스 속의 남자가 바로 두변이었다.

두변은 병원에 이송되었고, 미녀 회장은 병원에 돈을 얼마간 던져놓고는 곧바로 사라져 버렸다.

병원에서는 규정대로 두변을 치료했고, 그 돈은 금세 바닥났다.

두변이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 그를 병문안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두변이 고아인 데다 가족 한 명 없는데 누가 올까.

의사가 두변의 핸드폰을 찾아서 충전한 뒤, 연락처에 유일하게 저장되어있는 ‘아내’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야소는 지금까지 자신이 저축해온 모든 돈을 털어서 두변을 치료했지만, 두변은 깨어나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두변과 같은 병례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뇌출혈도 없고, 심장병도 없는 사람이 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주치의가 임야소에게 희망을 버리라고, 두변은 이대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임야소는 어쩔 수 없이 두변을 집으로 데려와서 돌봤다. 그녀의 주위 사람들은 전부 임야소가 미쳤다면서 그녀를 말렸다.

두변은 짐승만도 못한 놈이고, 바람 핀 것도 모자라서 돈과 여자와 술에 빠져 사는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동안, 임야소는 혼자서 아이를 낳고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면서. 그녀가 고생하는 동안, 인간쓰레기 두변은 한 번도 그녀의 소식을 묻거나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면서.

임야소의 주위 사람들은 하늘이 무심하지 않아서 두변이 식물인간이 된 거라고 했다.

그녀의 친구들은 임야소가 개자식 두변과 헤어졌고, 이제 서로 아무런 관계가 아닌데도 임야소가 두변을 집에서 돌본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누가 봐도 너무나 아름다운 임야소이니, 딸아이가 한 명 있다고 해도 혼인을 못할 걱정은 아예 없으니까.

대학에서는 젊고 미혼인 남자 강사들이 줄을 서서 그녀에게 구애했고, 대학 밖에선 셀 수도 없는 남자들의 구애를 받았다.

심지어 두변의 주치의조차도 그녀에게 노골적으로 호감을 표했다.

하지만 임야소는 짐승만도 못한 개자식을 집으로 데려가서 평생의 짐으로 안고 가기로 한 것이다.

임야소의 부모는 입이 닳도록 그녀를 만류했고, 결국엔 대판 싸우기까지 했다.

부모는 똑똑하고 아름다운 딸이 뭔가에 씌었다고 믿었고, 단도직입적으로 두변을 버리거나, 부녀지간의 연을 끊거나 둘 중 하나를 하라고 말했다.

임야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정하고 말을 잘 듣는 딸이면서도, 무척 고집스러운 면이 있었다.

이 일은 그녀의 직장인 대학에도 소문이 났고, 누구나 이 일을 입방아에 올려대서 결국 대학을 떠나야 했다.

임야소는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식물인간이 된 두변과 자신의 아이 두효를 데리고 H시로 와서 집을 임대했다.

비록 두변이 식물인간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기만 하지만, 매달 적지 않은 비용을 써야 했다.

임야소는 두변의 병간호를 하면서 세 식구의 의식주까지 해결해야 했다.

그녀는 낮엔 학교로 출근하고, 퇴근하면 학원에서 알바를 했다. 이렇게 돈을 벌어야만 가까스로 생활이 가능했다.

두효는 2살부터 어린이집을 다녀야 했고, 4살부터는 집에 혼자 가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생활 환경이 좋지 못한 터라, 두효는 또래 아이들보다 체구가 왜소했고, 몸도 좋지 않았다. 감기에 한 번 걸렸다 하면 최소 한 달 이상 감기를 달고 살 정도였다.

이런 생활을 3년째 하고 있는 임야소는 정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피곤한 기색으로 침대에 누웠다.

그녀는 한 손으로는 두변을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 딸아이를 안은 채 눈을 감았다.

원래는 잠시만 누워있을 계획이었는데, 너무 피곤했는지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세 사람은 저녁도 먹지 않은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북명검파.

성화총교 부교주와 십자회 부종이 대종사급 강자 천 명을 이끌고 우수수 떨어지는 별처럼 북명검파에 달려들었다.

일순간, 하늘과 땅의 색이 바뀌었다.

이 전쟁은 무도의 대전이 아니라, 하늘의 별들이 격돌하는 수준의 대전이었다. 어떤 초식을 쓰는 게 아니라, 두 거대한 행성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것처럼 말이다.

쿠구구구궁.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두 세력이 마치 거울처럼 서로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눈부신 별 무리 두 개가 서로 충돌했다.

두 별 무리 중 하나는 빛을 잃거나 와해할 것이고, 살아남은 별 무리가 승자가 될 것이다.

조금 낮은 수준의 무도 전쟁이라면, 오히려 좀더 자극적인 장면이 연출될 것이다. 하늘을 울리는 굉음이 들리고, 산과 바다가 뒤엎어지는 광경이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북명검파 경계지역에서 펼쳐지는 전쟁은 급이 달랐다.

무도 고수들은 한치의 기운도 낭비하지 않고, 공격에만 모든 걸 쏟아붓기 위해 자신의 내력을 최대치로 올리면서 달렸다.

이런 전쟁은 조용하고, 유려하고, 잔인했다.

서로 격렬하게 충돌한 별들은 하나둘씩 빛을 잃거나 떨어지기 시작했다.

반각이 지나자, 북명검파의 대종사 중 수십 명이 바닷속으로 떨어졌다.

영도현이 남은 대종사들을 데리고 재빨리 후퇴했다.

성화총교 부교주, 십자회 부종이 천 명에 가까운 대종사들을 이끌고 영도현 등을 미친 듯이 추격했다.

전투는 점점 더 격해졌고, 양측의 대종사들이 쉴 새 없이 바다로 떨어졌다.

같은 시각.

소군 방진이 지옥의 갈라진 균열 속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는 무척 복잡한 죽음의 동굴 속에서 두변이 남기고 간 지옥불을 찾고 있었다.

‘찾았다!’

지옥불은 1미터 크기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지옥불이 계속 불타오를 수 있는 이유는 북명검파의 운석 덕분으로, 지옥불 때문에 북명검파의 운석은 균형을 잃었고, 더 나아가 오성 진을 송두리째 망가뜨렸다.

소군 방진이 앞으로 다가가더니, 손바닥으로 지옥불을 흡수했다.

3초도 안 되어 지옥불이 점점 더 작아지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옥불이 있던 곳, 세계의 갈라진 균열의 벽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샥.

소군 방진이 그 구멍을 통해 세계의 갈라진 균열을 빠져나와 해저로 돌아왔다.

방진의 눈앞에 거대한 운석이 보였다. 이 운석이 바로 북명검파 오성 진의 11번째 운석이었다.

지옥불이 사라진 뒤, 11번째 운석은 다시 정상적으로 회복되었고, 1초 뒤, 북명검파의 오성 진이 순식간에 정상으로 회복되면서, 뒤이어 눈부신 광경이 펼쳐졌다.

영도현은 5백 명 정도의 대종사 강자들과 함께 미친 듯이 후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돌연 멈춰 서더니 몸을 돌렸다.

영도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고막이 뚫릴 듯한 굉음이 들려오더니, 무형의 둥근 천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큰일 났다. 함정이다!”

성화총교 부교주가 경악하면서 소리쳤다.

“어서 후퇴해라. 후퇴, 후퇴.”

천계 십자회 부종이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왔다. 도망치기엔 늦었다고. 아주 탐욕스러운 음모로군. 서방 세계가, 성화교 세계가 무너지겠어.”

성화교와 천계 십자회의 대종사들이 재빨리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속력이 붙은 유성처럼, 오성 진이 완성되기 전에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천계 십자회의 부종이 말한 것처럼, 도망치기엔 이미 늦었다.

“수백 년 동안 한 번 보기 힘든 파멸의 장관을 보게 되는군. 이렇게 한 번 구경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네.”

천계 십자회 부종이 탄식하더니, 제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자세로 눈을 지그시 감더니, 두 팔을 벌렸다.

슉, 슉, 슉, 슉.

하늘에서 푸른 빛이 비처럼 쏟아졌다.

성화총교와 천계 십자회 대종사 중, 십자회 부종처럼 제자리에 멈춰선 사람이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질주하는 사람이든, 하나도 빠짐없이 하늘에서 꽂히는 푸른 빛에 맞았다.

그리고 푸른 빛에 맞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계의 강력한 에너지 진 앞에선 아무리 무공이 고강하다 하더라도 한없이 나약할 뿐이었다.

여완완도 도망치길 포기하고 제자리에 우뚝 멈춰선 채 창공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두변이 자신에게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두변이 그녀에게 가지 말라고 했던 건, 그가 이미 오늘 벌어질 일을 알고 있어서일까?

하지만 두변은 여완완이 떠나는 걸 막지 못했다.

물론, 만약 두변이 여완완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다면 그녀를 붙잡아둘 수 있었을 것이다.

“부군, 그래도 나를 조금 좋아하긴 했나 봐요. 아주 조금은.”

여완완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슈욱.

눈부시게 찬란한 빛이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그 빛이 여완완의 머리를 향해 매섭게 내려올 때, 여완완은 다 포기한 것처럼 말했다.

“그래. 나도 나름 포부는 원대했지만, 결국 이루지 못하고 죽는 거야. 아직 이 세상의 진실을 알아보지도 못했는데, 아직 부군의 최후가 어떻게 될지 알아내지도 못했는데 죽다니. 조금 아쉽긴 하지만, 뭐 아무렴 상관없지.”

샤악.

한 줄기 빛이 여완완의 몸을 집어삼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완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고,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만 했다.

자리에 있던 성화총교와 천계 십자회의 수백 명 대종사도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무도 세계의 전쟁이 순식간에 끝났다.

북명검파와 소군 방진이 완벽한 승리를 거뒀고, 성화총교와 천계 십자회는 정상급 무도의 힘을 7할이나 잃었다.

이제 북명검파는 이번 전쟁으로 천하제일의 무도 세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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