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0장: 교황의 시험 一
두변은 피라미드 폐허 앞에 도착했다.
거대하고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피라미드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피라미드 앞쪽에는 커다란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시커멓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인지, 왠지 악마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두변의 말이 맞다.
이런 일은 그 누가 돼도 영원히 준비되지 않을 것이다.
두변이 피라미드의 입구 안으로 들어갔다.
시야를 회복하자, 두변의 눈앞에 누군가 그의 앞을 막고 있었다. 이 사람은 입구 중앙에 홀로 앉아서 꼭 조각상처럼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거대한 뱀 한 마리가 벽을 타고 내려오더니 정신력을 통해 말을 건넸다.
“이자는 지난번에 성화교 교황 자리를 도전했던 사람입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이 사람은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지요.”
두변은 화들짝 놀랐다.
이 사람이 바로 전 숙주, 여완완의 사부라니.
두변은 그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 사람은 혼혈이었다. 동양인의 피와 페르시아인의 피가 섞인 혼혈인인지라, 준수함과 요염함이 공존하는 외모였고, 신비롭고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다.
두변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전 숙주를 마주치게 되니 무척이나 흥분했다.
거대한 뱀이 말했다.
“이자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습니까? 제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데, 당신은 이 사람과 동족이지요?”
두변은 전 숙주의 외모를 빤히 들여다보다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정확히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처음 봤을 땐 무척 준수한 외모의 사내라고 생각했지만, 계속 보다 보니 매혹적이고 요염한 페르시안 미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두변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향하다가, 무언가를 보고는 흠칫 놀랐다.
두변의 시야에 들어온 건, 전 숙주의 봉긋한 가슴이었다. 전 숙주의 가슴은 평범한 여인들보다 더 풍만했다.
반음양인(半陰陽人)인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이자는 반음양인입니다. 이자의 모습을 잘 보았습니까?”
두변이 계속해서 전 숙주를 관찰했다.
거대한 뱀이 입을 벌리더니 후, 하고 바람을 불었다. 그러자 전 숙주의 몸을 가리고 있던 옷이 찢기면서 그녀의 나체가 두변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 사람은 정말 반음양인이었다.
아랫도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전 숙주는 거대한 뱀이 옷을 찢든 말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 사람은 이미 시스템에 의해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신체의 활력 징후는 남아 있지만 혼백이 없었다.
거대한 뱀이 다시 물었다.
“정말로 자세히 보았습니까? 이 사람을 자세히 보는 건 당신에게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어쩌면 당신의 운명과도 연관이 있죠. 이 사람은 걸어 다니는 시체가 되는 순간부터 이 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그 이후로도 계속 이 자세였습니다.”
두변은 전 숙주의 자세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전 숙주는 바닥에 가부좌를 튼 자세로 앉아 요상한 손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왼손은 새끼손가락과 검지를 들고 있고, 오른손은 새끼손가락과 엄지를 치켜들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
거대한 뱀이 말했다.
“이제 다 보았습니까?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에게 무슨 신호를 보내려는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알아보길 바랍니다. 이 신호는 당신에게만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르니까요.”
두변은 전 숙주의 자세와 손동작을 여러 번 따라 하면서 모든 세세한 부분을 기억했다.
“제대로 봤습니다. 잘 기억했고요.”
두변이 말했다.
“이제 죽이십시오.”
거대한 뱀의 말에 두변은 경악했다.
‘이 사람을 죽이라고? 이 사람은 전 숙주이자, 나와 동족이자, 내 선배인데?’
“성화교의 교황 후계자는 한 명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피라미드 안에 들어가서 성화교의 시험을 치르고 싶다면, 무조건 이 사람을 죽여야 합니다. 이 사람이 죽어야, 당신이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지도 죽지도 못한 채 있는 건, 이 사람에게도 무척 치욕스러운 일입니다. 이 사람에겐 죽는 게 해방일 겁니다.”
두변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두변이 검을 뽑은 뒤, 곧바로 전 숙주의 심장을 찔렀다. 전 숙주의 호흡이 멈추고, 맥박이 사라졌다.
전 숙주는 혼백을 잃은 육체에서, 이제 완전한 시체가 되었다.
“자, 이제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성화교 교황의 시험에 참여한 걸 환영합니다.”
거대한 뱀은 이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전 숙주의 시체가 옆으로 고꾸라졌고, 두변은 전 숙주의 시체를 향해 깊이 허리를 숙여서 예를 올린 뒤 걸음을 뗐다.
피라미드의 첫 번째 칸에서 첫 번째 시험이 시작되었다.
온통 암흑이었던 공간 안에 한 줄기, 두 줄기 정석의 빛이 나타났다.
무수히 많은 정석의 빛이 피라미드의 첫 번째 칸을 낮보다 더 환하게 밝혔다.
그 빛줄기 사이에 괴수 한 마리가 나타났다. 괴수는 늑대의 머리에 인간의 신체로, 키가 건물 2층 정도 높이인 게 6미터가 넘어 보였다.
괴수를 보는 순간, 이집트 신화 속의 사후 세계의 신, 아누비스가 떠올랐다.
“아누비스?”
두변이 저도 모르게 물었다.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습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날 아누비스라고 부르시지요.”
괴수의 말에 두변이 인사를 건넸다.
“아누비스, 반갑습니다. 난 두변이라고 합니다.”
“두변, 만나서 반갑습니다. 난 아누비스라고 합니다. 지금 막 얻은 이름이긴 하지만 말이죠. 난 성화교의 신수(神獸)입니다.”
“올해 나이가?”
“1,400살입니다. 난 성화 교황들의 혼백을 관리합니다.”
“그리고 교황 시험의 제1 관문의 사자이기도 하고요?”
“예. 내 생김새에 실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우, 아닙니다. 사신이 제 첫 번째 관문의 시험관이라니, 정말 영광입니다.”
“그건 당신의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내 인상일 뿐입니다. 하지만 내가 사신 같다면, 사신 하죠, 뭐.”
괴수가 이어서 말했다.
“두변, 준비됐다면, 첫 번째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시험이 많이 어려울까요?”
“음,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어렵지 않았다면, 지금의 글랜시스 각하가 400년 넘게 교황을 하고 있지 않았겠지요. 400년이라니. 너무 잔인하지 않습니까? 글랜시스 각하는 아주 오래전부터 해탈하고 싶었을 겁니다.”
글랜시스 교황이 400년이 넘도록 교황을 한 건 후계자를 찾지 못해서일까?
후계자 중 한 명도 교황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서일까?
아누비스가 말했다.
“준비됐다면, 이제 첫 번째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런 건 영원히 준비가 안 되는 겁니다. 뭐 어쨌든, 시작은 해야겠죠.”
“두변, 지금 당신의 체내에는 원래는 당신의 것이 아닌, 무척 강대한 기운이 몇 종류 있죠.
첫 번째는 비범한 남성의 기운으로, 이 기운 덕분에 당신은 후손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딱히 이걸 뭔가 기운이라고 말하기엔 좀 이상하지만, 두변이 이 기운을 따로 얻은 입장인 건 맞았다.
“두 번째 기운은 교룡의 황금 혈맥입니다. 이 혈맥 덕분에 당신은 칼과 창도 들지 않는 몸이 됐고, 계속 진화를 할 수 있게 됐지요. 그리고 아무리 심각한 부상을 입어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능력도 생겼고요.
세 번째는 지옥불의 기운입니다. 지옥불은 모든 것을 파멸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지옥불을 흡수할 수도 있고, 내뿜을 수도 있지요.
네 번째는 매마의 기운입니다. 매마의 기운은 당신이 언제든 다른 사람의 얼굴로 바뀔 수 있게 해줍니다.
물론, 이외에도 다른 기운이 있겠지만, 이 네 가지 기운이 가장 강력하고, 당신을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아누비스가 말을 마치자,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제 당신과 거래를 하나 할 겁니다.”
아누비스가 무척 평범해 보이는 도자기 병 하나를 꺼냈다. 병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지만, 아누비스가 병을 천칭의 왼쪽에 올려놓자마자 천칭이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아누비스가 말했다.
“두변, 당신에게는 네 개의 강력한 기운이 있는데 그중 하나를 꺼내서 이 병과 교환해야 합니다. 그 기운은 이 병 안에 든 것과 무게가 같아야 하고, 천칭이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두변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누비스가 말했다.
“사실상 그 네 가지 기운 중, 천칭이 균형을 이루고, 내 병과 균등한 무게를 가진 기운은 단 한 가지입니다. 만약 잘못된 선택을 하신다면, 거래는 성사되지 않을 것이고, 천칭 또한 균형을 찾지 못할 겁니다. 당신은 내놓은 기운을 영원히 잃게 되고, 시험에서도 탈락하여 이 피라미드에서 나가야 합니다.”
“내가 맞는 기운을 고르더라도, 그 기운을 영원히 잃는 건가요?”
“맞습니다. 난 당신에게서 그 기운을 완전히 빼낼 겁니다.”
“하지만 저 병 안에 든 게 뭔지 난 모르는걸요.”
“맞습니다. 사실 이 거래는 당신 마음속의 거래입니다. 당신이 가진 네 개의 기운 중 한 개만 고를 수 있고, 천칭의 균형을 찾지 못한다면 첫 번째 시험에서 탈락합니다.”
두변은 고민에 빠졌다.
아누비스에게 어떤 힘을 내줘야 하지?
남성의 기운? 아니야. 다시 환관이 될 수 없어.
교룡의 황금 혈맥? 지옥불? 매마의 기운?
이 세 가지 중에 어떤 걸 골라야 할까.
지금 두변에게 제일 쓸모가 없는 걸 고르라면 매마의 기운이었다.
그는 사실상 한 번도 매마의 기운을 쓴 적이 없었고, 설령 매마의 기운을 잃는다고 해도 큰 지장이 없을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의 얼굴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매마의 기운으로 천칭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자신이 내놓은 가치가 아누비스의 병보다 무거워서도 안 되고, 가벼워서도 안 되고, 딱 동등해야 한다는 건데.
두변은 심호흡을 한 뒤, 눈을 감고 고뇌에 빠졌다.
그렇게 3분 동안 신중한 고민을 한 뒤, 눈을 뜨고 말했다.
“선택했습니다. 교룡의 황금 혈맥으로 거래하겠습니다.”
아누비스가 물었다.
“두변, 확실합니까?”
“확실합니다.”
두변이 대답했다.
아누비스가 두변의 단전 안으로 손을 넣었다.
아누비스는 실체가 아니라 에너지체였던 것이다.
“끄아아.”
두변이 비명을 질렀다.
아누비스는 두변의 몸속에 있던 교룡의 황금 혈맥을 뽑아서 뜯어냈다.
두변은 제 몸에서 칼과 창도 들지 않는 용린이 사라지는 걸 느끼면서, 동시에 무궁무진한 힘과 빠른 자가치료 능력도 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누비스가 일렁거리는 교룡의 황금 혈맥을 천칭의 오른쪽에 올려놓았다.
천칭이 흔들리더니, 몇 초 뒤에 절대 균형을 찾았다.
거래가 성사되었다.
아누비스가 말했다.
“두변, 축하드립니다. 거래가 성사되었으니, 이 병은 각하의 것입니다. 피라미드를 떠난 뒤에 이 병을 열 수 있습니다. 교황의 시험 제1 관문을 통과하신 걸 축하합니다.”
아누비스는 두변에게서 뽑은 교룡의 혈맥을 가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두변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병을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병을 열어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이 안에 도대체 뭐가 들었길래 내 황금 혈맥과 맞바꿀 수 있던 거지?
사신 아누비스의 거래품이 뭐였을까.
아누비스는 정말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사신이 맞을까? 그건 아무도 모르겠지.
하지만 저 신수는 역대 성화 교황의 혼백을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했어. 그러니까 그가 내놓은 물건은 무척 놀라운 물건이겠지.
아누비스의 말대로 여기서 이 병을 열 순 없어.
두변은 마음을 다잡고 병을 품 안에 보관했다.
피라미드 안쪽으로 들어가자, 제2 관문의 입구로 보이는 문이 하나 있었다.
전 숙주는 제2 관문에서 탈락했다고 했다. 그만큼 제 2관문은 더 어려울 것이다.
두변은 심호흡을 한 뒤, 천천히 문을 열었다.
두변은 제2 관문의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방 안에는 화려한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앉아 있었다. 섹시하고, 고고하고, 매혹적이고, 우아한 이 여인은 두변의 첫사랑이었다.
임야소는 현대 지구에 있는 그의 전 약혼녀이자,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미안해하고, 뼈저리게 그리워하는 사람이었다.
이 모든 게 환각일까. 예전처럼 천기도주나 견사 대사가 만들어낸 정신 환각일까. 하지만 볼 수도 있고 만질 수 있어 보이는 게, 정말로 현실 같았다.
그런데 이 여인이 왜 여기 있는 걸까?
“내 사랑, 내가 자기를 위해서 딸을 낳았어. 우리 딸은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천사야. 딸아이의 이름은 우리가 아주 오래전부터 같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한 이름인데, 두효, 기억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