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43화 (543/648)

543장: 용의 혈맥

두변은 무도 수준이 일정 수준을 돌파할 때마다 꼭 뇌가 터지는 것처럼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동시에 자신의 단전과 기해에서 현기의 움직임이 그대로 느껴졌다. 단전의 기해가 폭발한 뒤, 혼탁한 상태가 되었다가 완전히 새로운 단전으로 태어나는 듯한 느낌.

혼란스럽고 어두운 세상에서 하늘과 땅이 분리되는 순간처럼, 두변의 단전은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개조되었다.

무도인에게 있어서 대종사는 무도인의 최고 표식이라 할 수 있다.

두변은 드디어 상상도 못할 방식으로 대종사를 돌파하게 되었다.

“하늘에서 정말로 떡이 떨어졌네. 떡이 떨어졌어.”

글랜시스 교황이 꼭 손자 놀리는 말투로 껄껄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세상이 변했고, 시대가 변했지. 내가 400년 넘게 쌓아온 무공은 전부 수련을 통해서 얻은 것이지, 남의 무공을 빼앗아서 얻은 게 아니야. 그건 부도덕한 일이지. 그 사람이 죽기 직전이 아닌 이상, 현기 능력을 더 이상 쓸 수 없는 몸이 된 게 아닌 이상, 남의 현기를 흡수하는 짓은 하면 안 돼. 설령 그 사람이 죽는다고 해도, 그 사람의 현기는 자연에게, 이 세상에게 되돌려줘야지. 그게 바로 천도 순환의 이치다.”

두변은 글랜시스 교황의 말을 조용히 경청했다.

글랜시스 교황이 말했다.

“하지만 소군 방진은 무도인들을 열매로 취급하지. 나무에서 따다 먹을 수 있는 열매처럼, 그들의 현기를 빼앗고 흡입해. 이 얼마나 부도덕한 짓이냐?”

글랜시스 교황이 말하는 동안에도 두변은 그의 현기를 끊임없이 흡수하고 있었다.

글랜시스 교황의 단전은 꼭 드넓은 바다처럼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만 같았다.

강력한 현기가 두변의 단전으로 무한히 들어가면서 그의 단전을 개조했다.

2계 대종사, 3계 대종사, 4계 대종사, 5계 대종사, 7계 대종사, 8계 대종사, 9계 대종사.

시야가 점점 흐려지는 걸 느낀 글랜시스 교황이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두변, 이거 참 미안하게 됐네. 내가 곧 죽을 것 같아. 두변,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일이 뭔지 아나?”

두변이 대답했다.

“곧 죽을 텐데, 돈을 다 쓰지 못하고 떠나는 일이죠.”

“하하, 맞네. 사람은 역시 유머 감각이 있어야 해. 세상이 이토록 잔인한데, 농담할 여유도 없다면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지. 내가 평생 모은 현기를 아직 다 주지 못했는데, 내가 먼저 떠날 것 같으니. 미안하네.”

글랜시스 교황이 담담하고 재치있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걸 보자, 두변은 마음이 아려왔다.

“아 참, 내가 너를 탈사할 게 아직도 걱정된다면 지금이라도 공격해도 되지.”

글랜시스 교황의 말에 두변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젊은이, 내가 너에게 무공을 전수해주는 일을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피라미드에서 일어난 일은 꼭 기억하고 살길 바라.

어이쿠, 내가 바로 참 성인이로군.”

글랜시스 교황이 인자한 미소를 띤 채로 눈을 감고 숨을 거뒀다.

두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수석 술사가 두변과 글랜시스 교황의 몸에 꽂혀 있던 정석관을 조심스럽게 제거했다.

두변은 몸을 일으키고는 옆 침상에 누워있는 글랜시스 교황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신은 조금씩 조금씩 딱딱해지더니, 마지막엔 석상이 된 것처럼 굳었다.

두변이 글랜시스 교황을 만지려고 손을 뻗는 찰나, 그의 몸은 으스러지더니 순식간에 가루가 되었다.

교황은 꼭 이 세상에 자신의 시신조차 남기고 싶지 않은 것처럼 삶에 미련이 없어 보였고, 결국 가루가 되길 선택한 것 같았다.

두변은 넋을 놓은 채 침상 위에 남은 하얀 가루만 바라보았다.

글랜시스와의 만남은 너무나 짧았지만, 그는 두변이 만났던 사람 중 가장 지혜롭고, 재치있으며, 동시에 고상한 사람이었다.

두변은 여완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성화총교의 교황이 무척 고상한 사람이라고 한 적이 있었다.

여완완이 죽었다 살아나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 떄, 두변은 여완완이 다른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예전의 여완완은 아름다운 외모에 그렇지 못한 심성을 가진, 사악한 악마의 기운이 가득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여완완은 여전히 절세 미모를 자랑했지만, 더 이상 악마의 기운이 아닌, 선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게다가 여완완은 두변에게 품었던 원한과 집착도 말끔하게 지운 듯했다.

두변은 여완완이 하루아침에 변한 이유가 대염 왕국의 멸망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여완완은 이 천하지존 글랜시스 교황을 만난 뒤에 심령의 세례를 받았고, 덕분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이때, 실험실의 문이 다시 열렸다.

실험실 안으로 늑대 머리에 사람 몸인 아누비스가 들어왔다.

두변이 깜짝 놀라자 아누비스가 물었다.

“왜요? 제가 피라미드 안에만 살 것 같았나요?”

두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 역대 교황의 혼백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글랜시스 교황이 별세했으니 그의 영혼을 거두러 왔습니다.”

“옆에서 봐도 됩니까?”

두변이 다소 천진난만한 질문을 했다.

“당연하죠.”

아누비스가 대답하고는 허리를 숙이고 거대한 몸집을 낮췄다.

두변은 숨을 죽인 채 신성한 의식을 기다렸다.

두변은 사신이 교황의 영혼을 거두는 의식이니, 그 의식은 무척 장엄하고 엄숙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했다.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도 역대 파라오가 죽게 되면 수천, 수만 명 사람을 순장할 정도로 장엄한 장례식을 치르지 않나.

글랜시스 교황은 고대 이집트 파라오에 못지 않을 정도로 지위가 높고 권력이 어마어마하니, 사신이 그의 영혼을 거두는 과정은 대단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데 사신 아누비스가 늑대 머리를 침상 쪽으로 굽히더니 코로 힘껏 숨을 들이마셨다.

슈우욱.

가루가 된 글랜시스 교황이 순식간에 아누비스의 콧속으로 들어갔다.

엥? 이게 뭐야?

두변이 다소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아누비스를 쳐다보았다.

이게 교황의 영혼을 수거하는 의식이라고?

무슨 가루 흡입하듯이 영혼을 흡입해?

신성하고 장엄한 의식은 어디 간 거야?

두변은 눈빛으로 아누비스에게 욕이라도 할 기세였다.

텅 빈 침상 위, 글랜시스 교황의 가루는 한 톨도 없이 아누비스에게 흡수되었고, 아누비스의 코끝에는 가루가 조금 남아 있었다.

“이게 끝입니까?”

두변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묻자, 아누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게 끝이죠.”

두변이 눈을 끔뻑이면서 물었다.

“항상 이런 식으로 교황의 영혼을 거둬갑니까?”

“그건 아닙니다. 교황의 영혼 수거 방식은 그들이 바라는 대로 정해집니다. 전 교황의 영혼 수거 의식은 아주 신성하고 장엄했지요. 지금 제가 한 방식은 글랜시스 교황이 원했던 방식입니다.”

두변은 할 말을 잃은 채 한참 동안 텅 빈 침상 위를 바라보았다.

‘493세의 교황 폐하는 정말 살아 있을 때나, 죽을 때나, 죽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군.’

아무래도 글랜시스 교황은 평생 그의 기억에 남을 듯했다.

두변은 제1 관문에서 아누비스에게서 얻은 병을 꺼냈다.

“이게 뭐죠?”

두변이 물었다.

“성화교의 지극히 고귀한 보물, 상고 시대 용의 혈맥입니다.”

사신 아누비스가 대답했다.

두변은 경악해서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병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진짜 용이요? 변색룡이나, 교룡 같은 위룡(僞龍)이 아니라요?”

아누비스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예. 진정한 용의 혈맥이지요.”

“이걸 왜 저한테 줍니까? 왜 글랜시스 교황이나 다른 교황이 이걸 쓰지 않은 겁니까?”

두변이 저도 모르게 따지는 투로 물었다.

“이전에는 세계 종말이 오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이젠 세계 종말이 닥칠 것이고, 앞으로 130일이 남았습니다.”

두변이 병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

“용과 교룡은 완전히 다릅니다.”

아누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다르지요. 교룡은 영원히 뱀이고, 영원히 용으로 변하지 못합니다. 교룡과 변색룡은 영원히 지면에서 살지만, 진정한 용은 하늘을 날 수 있고, 교룡이나 변색룡보다 훨씬 더 강합니다.”

“진정한 용을 본 적 있습니까?”

“당연히 없죠.”

아누비스가 당연한 걸 물었다는 듯 대답하자, 두변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용이 어떤 모습인지 아는 겁니까?”

“용이 어떻게 생긴지 아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생각하는 용의 모습은 똑같죠.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고귀하고, 교룡과는 천지 차이입니다.”

“만약 상고 시대 용의 피를 내 몸에 넣는다면 어떻게 됩니까?”

“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상고 시대 용의 피를 주입한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두변은 이런 거래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교룡의 황금 혈맥을 내어준 대신, 상고 시대 용의 혈맥을 얻다니.

“아, 물론 원하시지 않는다면, 상고 시대 용의 혈맥을 주사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신 아누비스가 말에 두변이 입꼬리를 올리면서 대답했다.

“우린 스스로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애초에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권이란 없는 겁니다.”

“그럼 시작할까요?”

“시작하죠.”

두변이 대답한 뒤, 다시 정석 침상에 누웠다.

수십 명 술사가 다시 두변에게 다가가서 수십 종의 정석 장치를 가지고 두변을 둘러쌌다.

정석 장치에서 쏘아져 나온 빛이 두변의 몸을 환하게 비췄다.

“침상에 몸을 엎드리셔야 합니다.”

사신 아누비스의 말에 두변이 몸을 엎드리자, 아누비스가 손톱으로 두변의 등 피부를 살짝 찢어서 그의 척추가 보이게 했다.

“이제 상고 시대 용의 혈맥을 당신의 몸에 주입하겠습니다. 이 혈맥은 몹시 신비롭고 강한 혈맥입니다. 당신이 이 혈맥을 몸에 받은 후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신 아누비스가 병뚜껑을 열은 뒤, 두변의 찢어진 피부에 병 입구를 갖다 댔다.

그때 갑자기 실험실 안이 어두워지더니, 두변 주위에 있던 정석 장치가 전부 산산조각이 났다.

스으윽!

병 안에서 신비로운 황금빛 한 줄기가 피어올랐다. 황금빛에는 신비롭고 강대하고 상고 시대의 고고한 기운이 섞여 있었다.

이게 바로 상고 시대 용의 혈맥인가?

두변이 생각하던 찰나, 황금빛이 쏜살처럼 빠르게 두변의 몸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상고 시대 용의 혈맥이 두변의 몸에 들어간 뒤에 무슨 반응이 일어날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천지가 흔들리고, 산이 무너지고 세상이 파멸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두변의 몸이 진화하고 또 진화해서 아예 황금 몸통의 금룡이 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경천동지의 반응이 일어나는 건 지극히 정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상고 시대 용의 혈맥은 다른 혈맥과 달리, 주사하거나 흡입하는 과정이 필요 없었다.

아누비스가 병 뚜껑을 열자, 상고 시대 용의 혈맥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두변의 척추 안으로 스스로 들어갔다.

하지만 상고 시대 용의 혈맥이 두변의 몸속으로 들어간 뒤로는 두변과 주위 환경은 잠잠하기만 했다.

두변의 몸이 갈라지거나 불꽃을 뿜어내지도 않았고, 용린이나 용각이 돋아나지도 않았다.

상고 시대 용의 혈맥은 마치 깊은 바닷속으로 빠진 것처럼 감감무소식이었다.

두변은 침상에 누운 채로 일각을 기다렸다.

“변화가 생기지 않은 겁니까?”

“오늘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 같군요.”

두변의 물음에 사신 아누비스가 대답했다.

“이런 상황이 정상적이긴 한 겁니까?”

“제가 말했다시피, 상고 시대 용의 혈맥을 주입한 뒤에는 무슨 반응이 일어나도 정상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는 건 좀 의외군요. 정상 가능성 중에서 제일 비정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지요.”

두변이 눈을 감고 정신력으로 자신의 혈맥, 단전, 대뇌를 내시했지만, 상고 시대 용의 혈맥이 주입된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내 몸속에서 사라진 것 같은데요?”

“음. 그럼 진짜 이상한 건데요.”

아누비스도 의아한 표정이었다.

“이건 뭘 뜻하는 겁니까?”

“상고 시대 용의 혈맥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신비롭고 강합니다. 오늘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건, 언젠가 경천동지의 반응을 일으킬 거라는 뜻입니다. 그날이 될 때, 상고 시대 용의 혈맥이 건곤을 뒤바꿀 정도의 변화가 있겠죠.”

“그러니까, 오늘은 볼일이 끝났다는 건가요?”

“맞습니다. 끝났습니다.”

“한 가지 이해하지 못한 점이 있는데요.”

두변의 물음에 아누비스가 이렇게 반문했다.

“글랜시스 교황께서 그렇게 고상하신데, 수백 년 동안 환두술을 진행하면서 무고한 생명을 얼마나 많이 빼앗아갔냐는 거지요? 이거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부도덕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이고요.”

“맞습니다.”

“절 따라오십시오.”

아누비스가 두변을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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