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46화 (546/648)

546장: 기염염의 아기

두변은 온갖 방법을 생각해내서 실행에 옮겼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용을 부활시키기는커녕, 용과 정신적 연결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용의 골격은 아무런 미동도,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골격은 그저 묵묵히 화 속성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골격만으로도 이렇게 강한데, 부활하면 얼마나 더 강할까?

“이미 죽은 것 같습니다.”

두변이 포기한 듯 말했다.

안젤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용의 두개골에 앉아 있었다.

“별로 속상하지 않나 봐요?”

“이런 결과를 예상하긴 했으니까요.”

두변이 묻자 성녀 안젤라가 작게 탄식한 뒤, 이어서 말했다.

“글랜시스 교황 폐하께서 종종 하시던 말씀이 있어요. 세상을 구하는 게 그렇게 쉽다면, 세상의 종말은 오지 않을 거라고요. 세상을 구하는 걸 실패하는 게 정상이지, 성공하는 게 이상한 거라고 하셨어요.”

“그분의 생각과 말씀은 언제나 그렇게 석연치 않으시군요.”

상고 시대 용이 없다면, 두변은 소군의 무적 함대를 상대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동방 연합 왕국의 대군이 정석 무기를 이용해서 두변의 전군을 전멸시킬 것이고, 대녕 제국도 멸망하고, 성화교 세계도 멸망할 것이다.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그때가 되면 그 누구도 세계의 종말을 막을 수 없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간단명료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 용을 부활시키지 못한다면, 세계 종말이 찾아올 것이고, 두변도 종말의 날에 죽을 것이다.

두변이 갑자기 말했다.

“아니면, 1천 6백 년 전에도 세상의 종말이 찾아올 뻔했는데, 이 용이 바로 세상을 구했던 익명의 영웅 아닐까요?”

성녀 안젤라가 말했다.

“역대 성화 교황들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화신을 세상을 구하고, 지고무상한 신성한 존재로 섬기는 거죠.”

두변이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꿈속 시스템은 시종일관 침묵 상태였다.

태양이 서서히 저물었다가 다시 뜨고, 다음날의 태양이 저물 무렵, 두변이 눈을 떴다.

“꼬박 하루를 생각했네요.”

성녀 안젤라가 말했다.

두변이 깜짝 놀랐다.

“시간이 그렇게나 지난 겁니까?”

성녀 안젤라가 물었다.

“생각해낸 거 있나요?”

“사실 계속 한 가지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생각하고 있었다기보다는 멍을 때리고 있었죠.”

“한번 말해 봐요.”

“이 용은 이미 죽었습니다. 어쩌면 1천 6백 년 전에 세상의 종말을 막고 죽은 거죠.

이계의 갈라진 균열 사이에 있지 않은 한, 이 세계의 사람들은 죽은 뒤에 혼백이 사라집니다. 인간의 정신력은 너무도 약해서, 죽는 그 순간 정신이 소멸하고, 혼비백산하는 거죠.

하지만 이 용은 다릅니다. 무척 강한 존재니까요. 용이 죽은 뒤에도 혼백은 남아 있을 것이고, 혼백임에도 무척 강한 힘을 갖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그 혼백이 바로 명계(冥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세계의 사람들은 죽은 뒤에 혼백이 사라지니, 우리의 세계에는 진정한 명계나 진정한 지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강한 존재는 죽은 뒤에 꼭 어딘가로 갑니다.”

그 어딘가가 어디일까.

두변은 그곳에 간 적 있었다.

세계의 갈라진 균열에 지옥의 문이 있는데, 지옥문 너머가 명계와 비슷한 곳이었다.

매마가 그곳에서 세계의 갈라진 틈으로 들어왔고, 갈라진 틈을 통해 지상 세계로 침투했다.

상고 시대 용의 혼백도 그 명계에 있는 건 아닐까?

두변의 생각은 무척 모험적이고 위험했다.

두변은 지난번에 지옥문의 뒤에는 무수히 많은 마귀가 있는 걸 보았다.

지옥의 문에 아주 작은 균열이 생겼을 때, 마귀들은 한 줄기 머리카락처럼 얇은 선으로 변환해서 갈라진 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곳에서 나온 요괴나 마귀들은 몹시 사악하고 강했다.

만약 상고 시대 용의 혼백이 지옥문 뒤편의 명계에 있지 않다면, 두변은 제 발로 죽으러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시 두변은 지옥의 문을 닫기 위해서 죽을힘을 다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지옥의 문 너머에서 쏟아지는 마귀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마귀를 한 마리라도 놓치면 지상 세계에는 재앙이 벌어지는데?

두변은 잠시 고민하다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세계의 갈라진 균열, 지옥의 문 뒤편을 가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두변이 성화교의 공중 궁전으로 돌아왔다.

이 세계에는 3대 균열이 있는데, 한 곳은 북명검파, 한 곳은 성화총교, 그리고 한 곳은 십자회였다.

성화총교의 세계의 갈라진 틈이 바로 이 궁전 폐허의 만 미터 아래에 있었다.

두변은 지금 세계의 갈라진 틈 상공에 서 있었다.

성화교의 균열은 마치 북극 하늘의 오라처럼, 신비한 은하수처럼 기이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대균열의 길이는 약 3만 미터로, 북명검파의 대균열과 비슷해 보였다.

두변은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세계의 갈라진 틈으로 몸을 던졌다.

두변은 다시 한번 시공간을 초월해서 세계의 갈라진 균열, 죽음의 동굴에 도착했다.

두변은 예전의 기억과 아주 복잡한 계산을 거쳐서 좌표를 생각한 뒤, 죽음의 동굴 안을 질주했다.

그렇게 꼬박 몇 날 며칠을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지옥의 문 앞에 도착했다.

거대한 지옥의 문은 태산처럼 크고 단단해 보였고, 늘 그렇듯 문 전체가 지옥불에 활활 불타고 있었다.

이 문이 바로 무수히 많은 마귀가 이 세계에 넘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이다.

이 지옥의 문이 이 세상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이 지옥의 문을 만든 걸까?

이 지옥의 문을 열게 된다면, 그를 맞이하는 건 무엇일까?

이곳에는 산소가 없지만, 두변은 무의식적으로 깊이 심호흡을 몇 번 했다.

그리고 두 손을 뻗어서 거대한 지옥의 문을 열었다.

그는 문을 열자마자 재빨리 지옥의 문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이제 그가 생각하는 명계에 도착했다.

이곳은 두변이 상상했던 것과 달랐다. 무수히 많은 요괴니 마귀가 그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그저 적막이 흐를 뿐이었다.

이곳은 모든 것이 잿빛이었고, 무섭거나 잔인한 게 아니라 그저 적막만 맴도는 곳이었다.

그 많던 요괴 마귀는 다 어디로 간 걸까.

두변은 의아해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며 계속해서 안쪽으로 걸어갔다.

갑자기 바닥이 조금씩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검은 덩어리들이 땅 위로 솟아오르더니 귀혼 괴물로 뭉치기 시작했다.

수백 마리, 수천 마리, 수만 마리!

셀 수도 없이 많은 마귀가 해일처럼 두변에게 몰려와서 그를 에워쌌다.

거대한 악귀가 두변의 앞을 막아섰다.

“하하, 이게 누구야. 구원자 두변 아닌가? 우리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천국으로 가는 길을 놔두고 겁도 없이 지옥으로 오다니, 죽고 싶은 게로군.”

수천, 수만 마리 악귀가 두변을 향해 달려들었다.

바로 그때,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공간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하늘과 땅이 전복할 것만 같은 지진이 일어나더니, 바닥이 쩍하고 갈라졌다. 갈라진 틈에서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용 한 마리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쿠오오!

용의 입에서 뜨거운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무시무시한 녹색 화염!

일순간, 떼거지로 두변을 둘러쌌던 악귀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거대한 용이 굉음과 함께 두변의 앞에 착지했다.

용은 온몸에서 귀화(鬼火)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귀화로 이 용을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

산처럼 거대한 용은 사람이 질식할 정도의 위압감과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역시 이곳에 용의 혼백이 있었구나!’

두변은 크게 기뻐했다.

용은 두변을 빤히 주시하면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다. 나와 함께 지상으로 돌아가자.”

두변이 말하면서 천천히 손을 뻗어서 용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다.

쿠오오오!

그러자 고요하던 용이 갑자기 두변을 죽일 기세로 귀화를 뿜어냈다.

“죽어라. 이 간사한 마귀여!”

거대한 용이 포효했다.

“아악, 아아악.”

기염염은 침상에 누워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그녀의 분만일이 된 것이다.

기염염은 절대 무공 강자이고, 기천구보다 더 무공이 뛰어났다.

그러니 기염염에게 분만의 고통이란 모기에게 물리는 것처럼 아무 느낌이 없어야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녀의 예상과 달랐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뿐만 아니라 기염염의 현기가 끊임없이 유실되고 있었다. 마치 몸속에 구멍이라도 생긴 것처럼 현기 내력이 어디론가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 구멍이 집어삼키는 건 그녀의 현기뿐만 아니라, 그녀의 생기도 함께였다.

기염염이 악을 쓰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가,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니.”

기염염의 옷과 침상의 이불이 땀에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현기가 계속해서 유실되면서, 그녀의 비명도 차츰 잦아들었다.

기염염의 눈빛에 어린 생기가 점점 더 옅어지자, 분만을 도와주던 여인들이 깜짝 놀랐다.

평범한 여자에겐 출산이 무척 위험한 일이지만, 무공 실력이 뛰어난 무도인에게는 위험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절대 무공 강자인 기염염이 아이를 낳으면서 목숨이 위태로워졌으니!

이때, 드디어 아기가 산모의 몸 밖으로 나왔다.

분만을 돕는 여인들이 갑자기 뒤로 물러서더니, 두려운 눈빛으로 아기를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아기의 몸은 오장육부와 뼈대가 보일 정도로 투명했다.

기염염이 허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를 내게 다오.”

여인들의 눈에는 아기가 요괴처럼 보여서, 도저히 아기를 건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 여인이 용기를 내서 투명한 아기를 품에 안은 뒤, 기염염에게 재빨리 안겨줬다.

기염염이 품에 안긴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평범한 아이가 아니구나. 온몸이 투명하고, 오장육부도 평범한 사람과 달라.’

기염염의 체내의 현기가 전부 빠져나간 탓에, 그녀는 아기를 품에 제대로 안고 있을 힘도 없었다.

기염염은 예전에 자신의 몸속에 주입했던 특수한 혈맥도 사라진 게 느껴졌다.

마치 기염염의 모든 현기가 아기에게 응축되어서 아기의 뼈대와 특별한 오장육부가 된 것 같았다.

참 특이하고 기이한 외형을 가진 아기였지만, 얼굴만큼은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자그마하고 보드라운 얼굴은 너무나 귀여웠다.

엄마의 품에 안긴 아기는 눈을 뜨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눈을 뜨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입술을 비죽이더니, 입을 크게 벌리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기는 몸이 투명하다는 것 외엔 평범한 아기와 다를 바 없었다.

예상 선자가 낳은 아기는 겉보기엔 평범했지만, 낳자마자 웃을 줄 알고, 한 달을 채우기도 전에 뒤집기에 기어 다닐 줄 알았다.

기염염이 애정 어린 눈빛으로 아기를 바라보다가, 아기가 젖을 먹을 수 있게 가슴 가까이 끌어안았다.

아직은 모유가 나오지 않는 시기였지만, 아기는 빨리는 게 없어도 울음을 그치고 있는 힘껏 엄마의 가슴을 빨았다.

시간이 지나자, 아기의 투명한 몸이 평범한 아기와 같은 연분홍색으로 바뀌었다.

다른 아기들과 똑같은 피부를 가지게 된 아기는 더더욱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이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체력이 좋은 건지, 엄마의 가슴을 일각 동안 빨고도 입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빨아도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게 답답했는지, 다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기염염의 시중을 드는 어멈 하나가 양젖을 그릇에 담아온 뒤, 아기에게 숟가락으로 양젖을 떠먹여 줬다.

아기는 유모가 떠먹여 주는 대로 다 받아먹었고, 금세 양젖 한 그릇을 비웠다.

그리고는 아직 맛을 음미하는 듯이 입술을 핥더니, 엄마의 품에 기대서 양젖을 기다렸다.

아기는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새로운 양젖이 없자, 그제야 스르륵 잠이 들었다.

엄마의 가슴에 기댄 채 잠든 아기는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기염염은 아기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아이를 낳으면서 자신의 모든 무공을 잃었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진 몰라도 전혀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

기염염은 품에 안긴 아기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앞으로 이 아이가 그녀가 가진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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