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8장: 최후의 운명
성화총교 공중 궁전 깊은 곳의 실험실 안.
십여 명 술사가 두변을 위해 접지술을 진행했다.
이 수술은 지난번의 접두술보다는 훨씬 더 간단하고 수월해서, 불과 2시진 만에 수술은 끝났다.
술사들은 마지막에 실이 아닌 이계의 물질로 두변의 손을 이어붙였다.
수술이 끝나자, 두변의 두 손은 한 번도 잘린 적이 없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정상으로 돌아왔다.
대붕을 기르는 비밀 천갱 안.
천 마리에 가까운 대붕이 모인 가운데, 두변이 성녀 안젤라와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성녀 안젤라는 이번 전투에 참전하지 않는다.
“천운인지 아니면 당신의 능력이 너무 강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회임했어요. 앞으로 난 온 정성을 아이에게 쏟을 거예요. 예외가 없다면, 이 아이가 바로 다음 성화교주가 될 거예요.”
성녀 안젤라가 말했다.
두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 결전이 끝나면, 세계가 바뀔 것이고, 많은 질서가 뒤죽박죽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성화교가 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도 나쁜 일은 아니에요.”
성녀 안젤라가 말했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나랑 체스 한 판 두지 않을래요?”
안젤라가 묻자, 두변은 고개를 끄덕였다.
초가집 안, 두변은 성녀와 함께 체스 한 판을 두었다.
두변은 명상에 들어가지 않고 평범한 사람처럼 체스를 두었고, 결과는 성녀 안젤라의 승리였다.
“몸조심하세요.”
성녀 안젤라가 당부했다.
“건강해요.”
두변도 말했다.
두변이 대붕의 등 위에 올라타자, 대붕이 곧바로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올라갔다.
두변의 뒤로 천 마리에 가까운 대붕이 날개를 펼치고 창공을 날면서, 질서정연하게 동쪽을 향해 비행했다.
천 마리 대붕 부대의 등에는 성화교 공군 기사 외에 대종사급 강자 백 명이 타고 있었다.
성화교는 북명검파와 방진이 짜둔 함정에 빠진 탓에 7할에 달하는 대종사급 강자를 잃었다.
지금 성화교에 남은 대종사는 139명이 전부였고, 39명은 성화총교를 지키면서 세계의 갈라진 균열을 지켜야 했다.
그래서 두변을 따라 결전에 참여할 성화교 대종사는 백 명에 불과했다.
두변은 성화총교를 떠날 때까지도 전투 동원을 명하지 않았고, 그 어떤 연설도 하지 않았다.
그는 성화교 세계의 국왕들이나 성화교의 수십 명 장로도 만나지 않았고, 수백 명 명예 장로가 광장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과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두변은 성화총교에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떠났다.
그는 성화 교황의 황금 장포나 황관도 챙기지 않고, 그대로 성화총교 신전에 남겨두었다.
두변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성화총교 교황으로 여기지 않았다.
천 마리에 가까운 대붕 부대가 질서정연하게 3천 미터 높이의 고공에서 비행했다.
대붕의 몸체는 꼭 전투기와 같아서, 지상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면 마치 전투기 천 대가 하늘을 활주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을 것이다.
거룡은 어디 있을까?
거룡은 너무도 고고해서 수만 미터 상공에서 비행중이었다.
거룡은 대붕과 함께 줄지어 비행하는 것 하찮을 뿐이었고, 그래서 지상에서 아예 보이지 않는 고공에서 비행했다.
이렇게 비길 데 없이 막강한 거룡과 대붕 부대는 시속 천 리의 속도로 대녕 제국을 향해 날아갔다.
하루가 지난 뒤, 짙은 밤이 찾아올 무렵.
방대한 대붕 공군이 대녕 제국에 도착한 뒤, 광서의 산속에 숨어 버렸다.
그 뒤, 거룡이 날개를 펄럭이면서 바닥에 착지했다.
5백 미터가 넘는 체형 때문에 거룡이 마땅히 착지할 만한 곳이 없었고, 지금도 온 골짜기를 온통 뒤덮고 있었다.
거룡은 어찌나 고고한지, 부활한 뒤로 두변과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이때, 거룡이 갑자기 입을 쩍 하고 벌리더니, 무언가를 우수수 토해냈다.
거룡은 무언가를 토해낸 뒤에 다시 수만 미터 고공으로 올라갔다.
두변은 고개를 숙이고 거룡이 내뱉은 걸 주웠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이건, 매마의 혈정체?
아니, 정확히는 악마의 혈정체였다.
악마의 혈정체가, 그것도 주먹 크기만 한 혈정체가 무려 수백 알이 넘게 있었다.
두변이 뛸 듯이 기뻐했다.
이게 무슨 횡재냐!
두변이 지금 가장 부족한 게 바로 악마의 혈정체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매마의 혈정체는 거의 소진되었다.
두변이 더 많은 전호검, 더 많은 정석 마포, 더 많은 정석 마총을 제작하고 싶다고 해도, 매마의 혈정체가 없으면 아무것도 만들 수 없었다.
그런데 거룡이 갑자기 두변에게 악마의 혈정체 수백 알을 선물해 주다니.
1,600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이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니!
하긴, 그 누구도 거룡의 입을 열어보려고 시도한 적이 없었을 테니,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는 건 당연했다.
와르르륵.
두변이 악마의 혈정체 수백 알을 사공엽과 주술사 국사 등의 앞에 쏟아내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세상은 정말 황당해도 너무 황당하고, 불공평해도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닌가?
매마의 혈정체는 정말 진귀하다 못해 온 세상을 뒤져도 찾아낼 수 없는 물건이었다.
게다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매마의 혈정체는 기껏해야 두변이 얻은 주먹 크기의 혈정체가 전부였다.
사공엽과 주술사 국사는 두변이 가진 매마의 혈정체를 극한의 얇기로 잘라서 주먹 크기의 혈정체를 총 1만 조각으로 나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혈정체로는 군대 전체에 정석 장비를 마련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사공엽과 주술사 국사의 꿈은 두변의 모든 군대에 정석 장비를 제공하는 것이다.
대략 계산해보니, 모든 병사가 전호검, 정석 마총을 전부 장착하려면 최소 40만 조각이 있어야 했다.
주먹 크기의 매마의 혈정체로 계산한다면, 최소 40알은 있어야 전군 장비가 가능한 것이다.
두 사람의 꿈은 백일몽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두변이 갑자기 수백 알 혈정체를 가져왔다.
기쁘다 못해 미칠 것 같은 사공엽은 아예 악마의 혈정체 더미 위에 대자로 누웠다.
사공엽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10만 자루 전호검, 10만 자루 정석 마총, 그리고 정석 마포 1천 대를 만들 겁니다!”
두변이 말했다.
“늦어도 2개월 뒤에 군대를 이끌고 동방 연합 왕국을 공격하러 갈 겁니다. 시간이 충분합니까?”
예전에 사공엽과 주술사들이 정석 마포 400대, 1만 자루 전호검을 개조하는 데 꼬박 1개월이 걸렸다.
“정석 마총과 전호검에 쓰이는 정석 장치는 무척 작아서 제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모든 정석 장치 제작의 중요 단계를 제가 해야 했는데, 지금은 절차가 깔끔하게 정리되어서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우리 3천 명 술사, 주술사, 연금사가 총 수십 개의 제조 단계에서 밤낮없이 만들면, 2달이면 충분할 겁니다. 주군, 우리는 2달 이내에 10만 자루 전호검과 10만 자루 정석 마총을 만들 수 있습니다.”
두변 군단의 공업 실력으로는 2달 만에 전호검 10만 자루와 정석 마총 10만 자루를 만들기엔 불가능했다.
그런데 지난번 전투에서 동방 연합 왕국의 화총 15만 자루를 얻었기에, 필요한 만큼 화총을 개조하면 된다.
사공엽과 주술사 국사, 그리고 수천 명 술사, 연금사들이 미친 듯이 업무에 매진했다.
대녕 제국의 조선소에서는 몇만 명이 분주하게 선박을 개조했다.
지금 와서 전함을 만들기엔 시간이 부족하니, 현존하는 대형 선박을 개조할 수밖에 없었다.
교룡호 전열함은 개조를 끝냈고, 원래 있던 화포를 전부 새로운 정석 마포로 갈아 끼웠다.
두변은 제작 공정이 한창 분주한 2달 동안,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시간을 맞이했다.
보름 전, 대녕 제국 섭정왕 두변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진무제 영설도 머지 않아 폐위될 것이고, 동방 연합 왕국이 대녕 제국을 공격할 것이며, 연왕이 대녕 제국의 황위를 빼앗을 거라는 유언비어도 함께 떠돌았다.
하지만 두변은 멀쩡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타나서 세간에 떠도는 유언비어를 잠식했다.
그날은 두변이 의부 이문회와 함께 광서 환관당 학원에 간 날이었다.
광서 환관당 학원은 곧 문을 닫을 예정이었다.
영설이 황실에 더 이상 새로운 태감이 필요하지 않다는 지의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대신 마지막 환관당 학원 학생들은 졸업한 뒤, 예전처럼 대녕 제국의 관청에 근무할 수 있고, 졸업생 배치가 끝나는 대로 각지의 환관당 학원이 문을 닫을 것이다.
두변과 이문회는 학원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밖에서 학원을 바라보았다.
두변이 학원에 다니던 게 벌써 4년 전의 일이지만, 두 사람은 그때의 기억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어쩌면 의부 이문회는 의부로서 하고픈 말이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두변, 드디어 네가 해냈구나. 선황의 소망대로 제국의 중흥을 이루었구나.’ 같은 말들.
하지만 이문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두변의 옆에 서 있었다.
그가 지금 상황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많지 않았지만, 두변이 직면한 문제는 대녕 제국의 흥망성쇠가 아니라, 더 원대한 무언가라는 걸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의부, 안륭 토사부의 저홍엽 장군께서 전투에서 패배하신 뒤로 실종상태입니다. 살아있다고 해도 사람이 안 보이고, 죽었다고 해도 시신을 찾지 못한 상태죠. 그러니까 오늘부터 마음을 쓰셔서 저 장군을 찾아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찾게 되신다면, 꼭 혼례를 올리십시오. 그래야 저홍엽 장군께서도, 의부께도 수십 년 이어온 감정에 대한 결실이 생길 테니까요.”
이문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이문회는 저홍엽을 향한 감정을 애써 무시해왔다.
자신이 환관이기에 처녀인 저홍엽의 혼사를 방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문회는 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명이 있는 사람인지라, 어느 날 갑자기 전사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대녕 제국의 정보부를 관장하고 있지만, 목숨을 희생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대녕 제국에도 더는 환관당이 필요하지 않아졌다.
만약 저홍엽이 살아있다면, 그녀도 벌써 마흔의 나이가 넘었으니, 혼사에 연연할 나이도 아니었다.
그러니 정말 운이 좋아서 수십 년간 이어온 홍연지기를 찾아낼 수만 있다면, 둘이서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
북명검파.
기염염이 영도현과 별거를 시작하면서 다른 산에 있는 저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영도현은 기염염의 저택 문밖에서 아기 기횡(紀轟)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북명검파의 대장로 기천구가 영도현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종주, 두변이 죽지 않았습니다.”
영도현이 몸을 움찔했다.
기천구가 물었다.
“다시 전력을 다해서 두변을 죽이고 올까요?”
영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동방 연합 왕국.
영도현의 다른 사생아이자, 대녕 제국의 연왕이 드디어 목표를 달성했다.
연왕은 황제가 되었고, 연호를 영녕(永寧)으로 정했다.
그는 대녕 제국이 아니라, 동방 연합 왕국에서 망명 조정을 건립했다.
연왕의 조정에서 방탁이 내각 수보가 되었고, 두변의 부친 두회가 내각 차보를 맡았다.
계표표는 두변을 데리고 광서의 군산과 이강(灕江)을 관광했다.
그녀는 회임 때문에 이번 결전에 참여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배를 타고 이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했다.
기분 좋은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부군, 만약 누군가의 발걸음이 너무 빠르면 어떻게 될까요?”
계표표가 물었다.
“아마 그 사람이 지나친 모든 경치가 부광약영(浮鑛掠影: 피상적인 인상. 희미한 인상)이 되겠죠. 자세히 보지도 못하고, 희미한 잔상만 기억에 남고요.”
“나도 부광약영 중 한 명이 되겠네요.”
계표표가 말했다.
두변은 아무 말 하지 않고, 계표표의 볼록한 배를 쓰다듬었다.
계표표가 말했다.
“부광약영이 된다고 해도 괜찮아요. 원래도 나는 이번 생엔 누구와 혼인을 맺을 생각이 없었고, 사내와 마음을 나눌 생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당신과는 백 번도 넘게 밤을 보냈고, 아이까지 생겼으니까 내겐 남는 장사죠.”
계표표가 두변을 바라보면서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군, 손으로 물을 저어서 우리를 뭍에 데려다줘요.”
두변이 손을 노 삼아서 강물을 저었다.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고, 세월은 쏜살같다.
어느새 2달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