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49화 (549/648)

549장: 이별

대녕 제국의 황궁 안, 두변이 넉 달이 지난 두효를 품에 안은 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바!”

아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변을 바라보다가, 다시 화폭에 그려진 사람을 바라보면서 웅얼거렸다.

“엄마!”

그러더니 혼자 신이 나서 손뼉을 치고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두효는 참 똑똑한 아기였다. 태어난 지 넉 달 만에 아빠와 엄마를 부를 줄 알았다.

두변은 아주 긴 화폭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화폭 안에는 두변의 가족이 담겨 있었다. 의부 이문회, 유모, 영설, 그리고 그 외 모든 사람.

“할부지!”

아이가 이문회를 가리키면서 외쳤다.

“어이구, 잘한다.”

두변은 웃음을 터트렸고, 아기도 해맑게 웃으면서 손뼉을 쳤다.

두변은 계속해서 한 사람 한 사람 정성스럽게 그림을 그렸다.

두변은 밤이 되어서야 붓을 내려놓았다.

한 가족이 긴 화폭에 전부 담겼다.

일찍부터 졸리기 시작한 아이는 예상이 데려가서 재웠고, 진무제 영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회임 4개월 차인 영설도 눈에 띄게 배가 불렀다.

“부군, 지붕 위로 가서 달 구경해요.”

영설 공주가 말했다.

임신 4개월 차 임산부가 지붕 위에 어떻게 올라갈까?

두변이 영설을 끌어안은 뒤, 가볍게 발로 땅을 딛자, 두 사람의 몸이 가볍게 황궁의 지붕 위로 날아갔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은 꼭 둥그런 판처럼 동그랗고 밝게 빛났다.

영설이 두변의 품에 안긴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천 리 밖에서나마 저 아름다운 달 함께 볼 수 있기를’(但愿人長久, 千里共嬋娟). 당신이 쓴 시는 정말 너무 아름다워요.”

두변이 이실직고했다.

“사실 그건 내가 쓴 게 아니에요.”

영설이 콧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당신이 쓴 거 맞거든요? 날 위해 시를 한 수 지어줄 수 있어요? 한두 마디여도 좋으니까, 나만을 위한 시를요.”

두변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우리 사랑 영원히 변치 않으면, 아침저녁 아니 만난들 또 어떠리.(兩情若是久長時, 于豈在朝朝暮暮. - 송나라 진관秦觀의 작교선鵲橋仙)”

“무척 아름답지만, 뭔가 부족해요. 난 시구를 듣자마자 바로 몸이 뜨겁게 달아올라서 침상으로 곧장 가는 그런 뜨거운 시를 원해요.”

영설이 두변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말했다.

“가을바람 영롱한 이슬 내릴 때 한 번 만남이, 인간 세상의 숱한 만남보다 나으리.(金風玉露一相逢, 便勝却人間無數. - 작교선鵲橋仙)”

영설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요. 바로 이런 거요.”

영설이 뜨거운 숨결을 내뱉으며 두변에게 입맞춤했다.

“부군, 나 좀 도와줘요. 오늘 밤엔 달빛 아래에서 사랑을 나누고 싶어요.”

사랑을 나눈 뒤, 영설은 두변의 품에서 곤히 잠들었다.

동이 틀 무렵, 하늘에서 대붕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영설이 잠에서 깼다.

“난 이만 가볼게요.”

두변이 말했다.

영설이 두변을 향해 찬란한 미소를 지었다.

두변은 대붕의 등에 올라탄 뒤, 곧장 남쪽으로 날아갔다.

사흘 뒤.

“준비, 행진.”

두변의 군대는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줄을 맞춰 선박에 올라탔다.

두변의 25만 대군은 광주항, 염주항을 통해 승선하고 있었다.

전호검 10만 자루, 정석 마총 10만 자루도 개조가 끝났고, 1천 대가 넘는 정석 마포도 준비되었다.

두변의 해군이 가진 전열함은 여전히 철갑 전열함 한 대이고, 나머지는 상선(商船)이나 화물선들이었다.

이번 원정전을 치르기 위해선 25만 군대, 식량과 대량 물자를 실어야 하다 보니 대형 선박 200척이 동원되었다. 하지만 대형 선박들은 전투력이나 방어력이 전혀 없었다.

이 함대에서 유일하게 해전을 치를 수 있는 전함은 오직 교룡호 전열함뿐이었다.

25만 대군은 승선하는 데만 꼬박 사흘이 걸렸다.

닷새가 지난 뒤, 25만 대군이 드디어 승선을 끝냈다.

두변이 명령했다.

“전군 출발하라. 동방 연합 왕국을 멸망시키고, 소군 방진을 죽인다!”

“동방 연합 왕국을 멸망시키고, 소군 방진을 죽이자!”

대군이 두변을 따라 외치자, 출정을 알리는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200척이 넘는 대형 선박이 철갑 전열함의 뒤를 따라 위풍당당하게 항해를 시작했다.

같은 시각.

대붕 공군이 함대 위에서 비행하고 있었다.

두변의 해군, 공군, 백여 명 대종사급 강자가 소군 방진을 죽이기 위해서 총출동했다.

이번 결전이 끝나면, 두변과 방진 중 한 사람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동방 연합 왕국.

두회가 소군 방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전하께 병력을 빌려 두변을 토벌하고, 대녕 제국의 광명을 되찾고 싶습니다.”

소군 방진이 손끝으로 시간을 계산해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거라. 영설이든 예상이든, 두변의 여자라면 모조리 생포해라.”

두회가 흠칫 놀랐다.

소군 방진은 결벽증이 있어서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눴던 여인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데?

소군 방진이 말했다.

“내가 거느릴 건 아니고, 아랫사람에게 나눠줄 것이다. 두회, 자네도 명성에 오점이 남는 게 괜찮다면, 그중 한 명을 골라도 좋다.”

두회가 말했다.

“그럼 소신은 영설 공주를 고르겠습니다.”

소군 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한다.”

옆에 있던 방탁도 입을 열었다.

“소신은 옥진 군주를 택하겠습니다.”

소군 방진이 담담하게 말했다.

“허락한다. 탁 옹은 아직 한창인가 보군.”

이때, 누군가가 빠르게 방 안으로 들어와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두변이 이끄는 군대가 동방 연합 왕국을 공격하러 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이 나오자, 두회와 방탁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해군이 얼마나 있다고?”

두회가 물었다.

“전열함이라고는 딱 한 척뿐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전투력이 없는 상선이고요.”

두회와 방탁이 더욱 경악했다.

‘두변이 미친 건가?’

전열함 한 척으로 동방 연합 왕국을 공격하겠다고?

꼴랑 화물선으로?

뇌에 물이라도 들어간 건가?

동방 연합 왕국은 세계 해상의 패주이고, 전함만 수백 척이라는 걸 모르나?

동방 연합 왕국의 무적 함대는 100분의 1의 힘만 써도 두변의 함대를 몰살할 수 있는데?

“그리고 두변에겐 천 마리에 가까운 대붕 부대가 있습니다.”

보고하는 사람이 이렇게 아뢰자, 소군 방진이 말했다.

“그렇군. 성화교의 공군에 모든 기대를 건 것이로군. 기껏해야 대붕이 천 마리뿐인데, 뭘 기대한 거지? 내 전투 계획에는 대붕 부대가 족히 3천 마리가 될 줄 알고 준비했는데? 게다가 그 공군을 파괴할 방법이 무려 세 가지나 있지.

이미 왔으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지.

해군 함대를 집결하고, 총공격을 가해라!

두변의 군대를 전부 전멸하고, 대녕 제국에 상륙해서 대녕 제국을 점령해라.”

“명 받들겠나이다!”

하루 뒤, 항상 전투 준비 상태이던 동방 연합 왕국의 함대가 드디어 출정했다.

200척이 넘는 전함이 위풍당당하게 해상을 누볐다.

두변의 거지 함대는 동방 연합 왕국의 무적 함대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역사상 전투력이 가장 많이 차이나는 해상전이 곧 펼쳐질 예정이었다.

북명검파.

희민지는 바라던 대로 대은구도의 새로운 도주가 되었다.

게다가 희민지는 대종사 열매 아홉 개를 얻었고, 총 13명 대종사의 내력을 흡수했다.

희민지는 더 이상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북명검파의 정점을 찍는 무공 고수가 되었고, 장로회에도 들어갔다.

희민지가 대종사 열매를 아홉 개밖에 못 먹은 건, 그녀의 단전과 근맥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었다.

희민지는 막한처럼 혈맥을 개조하지 않아서 대종사의 내력을 무한정 흡수할 수는 없었다.

희민지는 원정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북명검파 600명이 넘는 대종사급 강자 중, 500명이 넘는 인원이 원정전을 치를 것이고, 나머지 100여 명은 이곳에 남기로 했다.

어디로 원정전을 떠나는가?

희민지는 목적지가 어딘지 몰랐지만, 그렇다고 묻지도 않았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희민지가 들어오라고 말했다.

그녀의 방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놀랍게도 북명종주 영도현이었다.

희민지는 깜짝 놀랐다.

영도현과 그녀 사이에는 아무런 교류가 없었기 때문이다.

희민지의 눈에 영도현은 신과도 같은 존재였고, 우러러보기도 힘든 사람이었다.

희민지가 대은구도 도주 경쟁에서 당선된 것도 수순대로 북명 대장로회의 임명을 받은 것뿐이었다.

“종주 폐하를 뵙습니다.”

희민지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희민지는 영도현이 희대의 감정 사기꾼이며, 대녕 제국의 태후에게 떳떳하지 못한 짓을 한 것에 대해 들은 바가 있지만, 그에 관한 안 좋은 소문은 희민지에게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영도현은 그녀의 마음속에서 언제나 지고무상한 존재였다.

이게 바로 체제의 위력이며, 희민지는 북명검파라는 체제 안에 완전히 녹아든 사람이었다.

영도현이 말했다.

“희민지, 이번 원정전은 참여하지 말아라.”

희민지가 흠칫 놀랐다. 그녀는 이미 북명검파에서 손에 꼽는 절정 고수이니, 이번 원정전에 불참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곳에 남아서 종주 부인을 보호하거라.”

영도현이 말했다.

희민지는 아주 잠깐 동안 움직이지 않다가, 이내 머리를 조아리면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자신이 이곳에 남는 게 무척 의아했지만, 그래도 군말 없이 영도현의 명을 따랐다.

북명검파의 또 다른 산맥의 저택 안.

별거 이후, 영도현은 처음으로 기염염의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갓 태어난 아기는 흔들 바구니에 누워 단잠에 빠졌고, 기염염이 바구니를 살짝씩 흔들고 있었다.

아기가 태어난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아기는 유난히 눈에 띄게 예쁜 이목구비와 또래 아이들보다 건장한 체격을 가졌다.

막 태어났을 때는 온몸이 투명해서 무척 특별했지만, 다른 아이들과 별 차이는 없었다. 두 달이 지난 지금, 말을 할 줄도 모르고, 뒤집기나 기어 다니기를 할 줄 모르지만, 입을 벌리고 웅얼웅얼 소리를 내고, 가까스로 웃을 줄도 알았다.

아기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자세로 자고 있었다.

영도현에게는 아이가 여럿 있는데, 그가 직접 키운 아이는 한 명도 없었고, 아이의 성장을 지켜본 적도 없었다.

심지어 영도현은 예상을 시켜서 자신의 사생아인 운중사를 죽이라고 한 적도 있었다.

영덕제도 영도현의 사생아이지만, 영덕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낮게 탄식한 게 전부이지, 속상하거나 마음 아파하지 않았다.

영도현이 물었다.

“무공 수련을 할 필요도 없이 정석관을 이용해서 남의 내력을 흡수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소?”

기염염이 대답했다.

“이전에 분투하고 노력했던 게 전부 의미를 잃었죠. 무공에 대한 경외심도 잃게 됐고요.”

“난 이만 출전하러 가겠소.”

기염염이 짧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영도현이 작은 상자를 꺼내더니, 탁자 위에 올려두면서 말했다.

“오성 진의 제어 장치를 당신에게 남겨두고 가겠소.”

“그래요.”

기염염이 대답했다.

영도현은 마지막으로 아내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본 뒤, 곧장 문을 나섰다.

한 시진 뒤, 북명검파의 500명 대종사 강자가 승선했다.

그들이 승선한 배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이 배에는 돛이 달렸는데, 항해 속도가 무려 시속 25절이 넘을 정도로 빨랐다.

이 배에는 돛뿐만 아니라, 정석 핵심 동력이 장착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영도현이 뱃머리에 서서 북명검파의 표묘봉을 바라보았다.

500명 대종사급 강자가 탄 배에는 적막만이 흘렀다.

곧이어 아름다운 배가 출항해서 끊임없이 서쪽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북명검파의 무공 고수들이 총동원되었는데, 이들이 가는 곳은 어디일까?

그것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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