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55화 (555/648)

555장: 죽어라, 소군

적군의 대부분 화포는 엄폐호와 성벽의 포좌 구멍에 숨겨져 있었지만, 참호와 성벽의 엄폐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평범한 암석으로 만들어진 엄폐호와 성벽으로 어떻게 음속 5, 6배의 속도로 날아오는 포탄을 막을 수 있을까.

엄폐호와 성벽은 종잇장 찢기듯이 순식간에 뚫려버렸다.

왕성의 하늘과 땅이 뒤흔들렸다.

소군 방진의 20대 초특급 마포가 전부 망가졌고, 수십 대 초특급 중포도 전부 부서졌다.

남은 천여 대의 일반 화포도 3분의 1에 달하는 화포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북명검파 대장로 기천구가 외쳤다.

“반격해라. 어서 반격해. 모든 화포의 포구를 하늘로 향하게 두고 공격해야지!”

대원수 방천파는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갈 지경이었다.

일반 정석 마포로도 하늘을 향해 포탄을 발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포탄의 궤적이 완전히 바뀌어서 조준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그리고 유효 사거리도 지면 발포보다 훨씬 더 줄어든다.

“방공 속사포는 언제 도착하느냐?”

방천파가 소리쳤다.

왕성에는 원래 방공 속사 마포가 없었지만, 요 며칠 사이에 동방 연합 왕국의 술사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속사 마포를 만들어 냈다.

매마의 혈정체를 다 썼다 보니, 술사들은 어쩔 수 없이 일반 마포에서 혈정체를 뜯어내서 속사 마포에 장착했다.

“도착했습니다.”

방천파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실험실에서 갓 나온, 이제 막 다 만들어진 방공 속사 마포 9대가 도착했다.

“두변의 대붕 공군을 조준하고, 모조리 다 죽여버려라!”

수석 술사가 큰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방공 속사 마포가 도착한 시간이 너무 늦었고, 이제 조준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대붕 공군은 이미 방공 속사 마포가 등장한 순간에 격광 조준을 했다.

방공 속사 마포를 끌고 나온 술사들은 조준 장치에 손을 올리기도 전에, 포체에서 무척 익숙한 붉은 점을 발견했다.

대붕 공군은 정확하게 속사 마포 9대를 조준한 뒤, 곧바로 발포했다.

슉, 슉, 슉, 슉!

바로 다음 순간, 이제 막 실험실에서 나온 방공 속사 마포 9대가 모조리 파괴되었다.

“발포하라!”

두변이 계속해서 명령을 내렸다.

대붕의 등에 타 있는 천여 명 마혈 무사가 정석 마포를 어깨에 짊어지고 미친 듯이 발포했다.

슉, 슉, 슉, 슉.

화려한 유성우가 한 번, 또 한 번 하늘을 가르고 왕성에 떨어졌다.

비대칭 전쟁이 무슨 뜻이냐고?

이런 게 바로 비대칭 전쟁이다.

거대한 거룡이 없다고 해도, 두변은 여전히 화려한 일전을 펼쳤다.

동방 왕성의 철옹성 같던 방어진지가 두변의 공격에 완전히 짓밟히고, 대붕 공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보다 더 화려한 학살이 있을까.

동방 연합 왕국의 멸망을 알리는 종이 드디어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직 진 게 아니다!”

동방 연합 왕국 대원수 방천파가 큰소리로 외쳤다.

“두변의 대붕 공군도 포탄을 다 쓸 때가 온다! 하늘의 새 따위가 이 왕성을 점령할 순 없다. 우리에겐 무적 곤륜노 무사들이 있고, 신식 보병총을 장비한 신총 군단이 있다.

모두 조금만 버텨라. 우리는 절대로 지지 않을 것이다.”

슉, 슉, 슉, 슉.

그 동안에도 두변의 대붕 공군은 하늘에서 쉬지도 않고 폭격을 쏟아부었다.

천 발이 넘는 포탄이 뜨겁게 닳아 오른 채 왕성에 꽂혔다.

아쉽게도 유탄은 벌써 다 썼고, 지금 폭격에 쓰이는 건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 실심 포탄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동방 연합 왕국의 방어선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모든 엄폐호에 구멍이 났고, 모든 화포가 부서졌다.

특히 초특급 마포와 초특급 중포는 산산조각이 나다 못해 가루가 될 지경이었다.

길이가 무려 80리에 달하는 왕성 성벽에도 수십 개의 커다란 구멍이 났다.

하지만 방천파의 말이 맞았다.

두변의 공군 공습은 포탄이 부족해서 멈추게 되어있다.

대붕 공군은 반 시진 내내 미친 듯이 폭격을 하다가, 포탄이 다 떨어져서 공습을 끝냈다.

이어서 벌어질 전투는 육지전이었다.

“우리에겐 아직 15만 곤륜노 무사와 15만 신식 보병 군단이 있소이다.”

왕궁 안, 내각 수보가 영녕제와 방계 대신들에게 말하면서 의지를 다졌다.

그들은 일생에 거쳐 쌓아온 부와 권력, 그리고 가문의 부귀영화까지 동방 연합 왕국에 걸었다.

방탁 등도 자신들의 근간은 여전히 대녕 제국임을 믿었다.

동방 연합 왕국의 조당에는 자신들이 설 자리가 없었고, 동방 연합 왕국에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할 방법은 대녕 제국으로 돌아가는 것밖에 없었다.

대녕 제국으로 돌아가서 동방 연합 왕국에게 양질의 저가 상품을 제공하고, 또 반대로 동방 연합 왕국에서 수출하는 저자본 공업 제품을 매입해야 했다.

그렇게 되면 소군은 전 세계의 돈을 쓸어 모을 것이고, 대녕 제국도 동방 연합 왕국의 최대 원산지이자 시장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두변을 죽이지 못하면, 영녕제와 방탁은 대녕 제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두고 보시오. 두변의 군대가 곧 난관에 봉착할 겁니다. 거룡도 두변을 버렸고, 대붕 공군도 포탄이 다 떨어졌소이다.”

“두변의 육군은 동방 연합 왕국 육군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칩니다. 우린 이길 수 있소이다.”

“폐하, 동방 연합 왕국은 필시 두변을 죽일 것이고, 우리는 분명히 대녕 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방계 대신들은 지금 상황을 애써 무시하면서 자기 최면을 걸 듯이 말했다.

쿵, 쿵, 쿵, 쿵.

두변의 25만 육군이 드디어 왕성 밖에 도착했다.

동방 연합 왕국 왕성에 설치된 모든 화포가 파괴되었으니, 두변의 육군은 아무런 위협 없이 행군할 수 있게 되었다.

25만 대군이 수십 개 방진(方陣)으로 칼같이 대열을 맞추고, 질서정연한 발걸음을 내디디며 왕성을 향해 걸어갔다.

대군은 꼬박 9시간을 걸어서 30리 떨어져 있던 왕성에 도착했다.

두변이 명령하자, 대군은 곧바로 막사를 마련하고, 참호를 만들었다.

내일 아침이 밝아올 때, 최후의 결전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날 밤, 두변은 대붕 공군에게 다시 왕성 공습 명령을 내렸다.

이번 대붕 공군의 목표는 대규모로 적군을 죽이는 게 아니라,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두변의 대군이 집결했다.

“대군, 공성하라!.”

두변이 명령하자, 25만 대군이 위풍당당하게 동방 왕성을 향해 전진했다.

2,000미터.

1,500미터.

표령 도주가 말했다.

“전투가 이제 우리의 박자에 맞춰지나 봅니다.”

북명검파 대장로 기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젠 우리가 나설 차례지요.”

표령 도주(소목지의 사부)와 기천구는 전장 지휘관은 아니지만, 강대한 무인 군단과 함께 왕성 안에 있었고, 두변이 이끄는 대종사급 강자들과의 전투를 기다렸다.

두변의 육군이 어디 숨지도 않고 거들먹거리며 다가오는 걸 보자, 군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내각 수보 방탁도 흥분해서 손이 떨려왔다.

“저 멍청한 두변이 드디어 죽겠군!

전장의 천칭이 이제 우리 쪽으로 기울 차례요. 이제 두변의 군대는 우리의 파멸적 공격을 받을 것이오!”

뭐,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동방 연합 왕국은 이미 전호검을 만들어 냈고, 신식 보병총까지 장비해서 화포 없이도 충분히 두변의 육군을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보병총 준비!”

방천파가 큰소리로 외치자, 동방 연합 왕국의 15만 신식 보병총 군단이 일제히 총을 들고 조준 자세를 취했다.

신식 보병총은 장전하는 과정이 무척 편리했다.

1분에 총 10번의 사격을 할 수 있었고, 1만 5천 명이 연속적으로 일제 사격을 하게 되면 두변의 군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그동안에도 두변의 육군은 계속해서 전진했다.

성벽까지 1천 미터.

800미터.

방천파는 두변의 육군이 500미터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곧바로 사격 명령을 내리기 위해 기다렸다.

신식 보병총은 천 미터까지 사격할 수 있지만, 실제로 위력이 있는 유효 사격 범위는 500미터 정도였다.

그런데 성벽까지 800미터 남았을 때, 두변이 손을 높이 치켜들고 외쳤다.

“정지!”

곧이어 두변이 명령했다.

“준비!”

백여 명 군관이 동시에 손을 치켜들었고, 병장들이 일사불란하게 총 10만 자루를 꺼내 들었다.

“총 들어!”

두변이 명령하자, 10만 육군이 총을 들었다.

이건 신식 보병총이 아니라, 지난번 대전에서 얻은 동방 연합 왕국의 후장 수발총이었다.

엄밀하게 따지면, 후장 수발총은 구식 화총의 범위에 속한다.

동방 왕성 안.

방천파, 방탁,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두변의 군대가 총을 들어 올리자, 흠칫 놀랐다가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저건 우리가 예전에 쓰던 후장 수발식 화총이잖아?’

‘옛날 옛적의 총 아니야? 줘도 안 쓰는 걸 주워다 쓰는군!’

‘두변이 지금 저 화총 따위로 동방 왕성을 공격하겠다는 거야?’

두변의 군대는 800미터 밖에서 총을 들고 조준 자세를 취했다.

무려 800미터다.

후장 수발총의 유효 사격 거리는 300미터가 넘지 않는데, 두변이 800미터 거리를 두고 자신들을 조준하고 있으니, 방탁 등은 두변의 행동이 무척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줄 세워서 총격전을 치르는 놀이를 하고 싶은 거냐? 그래, 어디 한 번 놀아보자!’

대원수 방천파가 소리쳤다.

“두변 놈에게 우리의 신식 보병총의 위력을 보여주자. 보병총, 조준하라.”

동방 연합 왕국의 15만 육군이 신식 보병총을 들고 두변의 군대를 조준했다.

신식 보병총도 800미터 거리를 두고 사격을 할 수는 있지만, 명중률과 위력이 크게 떨어진다.

하지만 아무리 위력이 약해도 낙후된 화총보다야 몇 배나 더 강할 것이다.

방탁 등이 모르고 있는 게 하나 있다면, 두변의 화총은 전부 정석 마총으로 개조되었다는 점이다.

정석 마총은 3천 미터 밖까지 사격이 가능하고, 유효 사격 거리는 1천 미터가 넘었다.

두변의 10만 육군이 정석 마총을 쥐고 조준을 끝냈다.

동방 연합 왕국의 15만 육군도 신식 보병총으로 조준을 끝냈다.

두 군대는 800미터의 간격을 두고 흐트러짐 없는 방진 대열로 서 있었다.

“사격!”

“사격하라!”

두변과 방천파가 동시에 명령을 내렸다.

바로 다음 순간, 기이하고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슉, 슉, 슉, 슉.

두변의 10만 자루 화총에서 파란빛이 쏘아졌다.

10만 발의 총알이 초속 1,200미터의 속도로 쏘아졌고, 이는 음속의 3배 수준이었다. 게다가 정석 화포처럼 총알이 쏘아지는 그 순간부터 뜨겁게 달아올랐다.

10만 발의 총알이 전광석화의 기세로 동방 연합 왕국의 대군을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푹, 푹, 푹, 푹.

총알은 동방 연합 왕국 병사들의 몸을 그대로 관통했고, 병사들의 몸에 큰 구멍이 나면서 사방에 피가 튀었다.

동방 연합 왕국의 빽빽하던 대열은 꼭 우박에 맞은 보리처럼 일순간에 좌르르 쓰러졌다.

뒤이어 동방 연합 왕국의 병사들이 신식 보병총으로 쏜 총알도 두변의 병사들을 죽였다.

두변의 육군 중 천여 명이 쓰러졌다.

신식 보병총이다 보니, 800미터 간격을 두고도 어느 정도 살상력이 있었다.

두변의 군대에선 천여 명이 쓰러졌지만, 동방 연합 왕국 군대에선 만여 명이 쓰러졌다.

정석 마총은 유효 사격 거리가 놀라울 정도로 멀고, 위력도 엄청난 데다 명중률까지 뛰어났다.

이 장면을 본 방천파는 눈앞이 깜깜해지고 머리가 새하얘졌다.

그는 도저히 자신이 본 것을 믿지 못했다.

‘정석 마총이야? 두변이 정석 마총을 무려 10만 자루나 장비했단 말이야?’

‘매마의 혈정체가 얼마나 희귀한데, 저놈은 어디서 저 많은 혈정체를 구한 건데?’

왕궁에 있던 방탁은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발포하라!”

두변의 군대는 5초에 한 번씩 일제 사격을 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붉은 탄환은 폭풍우처럼 동방 왕성을 휩쓸었다.

동방 연합 왕국의 육군이 대규모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동방 연합 왕국의 육군이 두변의 군대와 실력이 엇비슷한 것처럼 보였지만, 수십 차례 사격 세례가 끝난 뒤, 동방 연합 왕국의 신식 보병총 군단은 눈 깜빡할 사이에 시신 군단이 되어버렸다.

“모두 엎드려!”

방천파는 이 정도 규모의 사상자를 감당할 수 없었는지, 동방 연합 왕국 육군의 용감함을 버리고 모든 병사들에게 숨거나 엎드리라고 명령했다.

‘원거리 화력에서 두변의 상대가 안 된다면, 이제 남은 건 냉병기 전투뿐이지.

두변의 군대는 공성전을 치를 게 분명하다.

성벽이 이미 허물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성 안으로 쳐들어올 것 아닌가?

그때가 되면 15만 곤륜노 무사가 저들을 학살하겠지.’

방천파가 빠르게 속으로 계산했다.

두변의 전호검을 방어할 수 있는 절연 중갑으로 무장한 15만 곤륜노 무사는 다시 무적이 되었다.

방천파의 계산이 틀리진 않았다.

만약 근접전이 시작된다면, 두변의 25만 대군은 15만 곤륜노 무사에게 도살당할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