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8장: 돌아온 두변
방진이 일그러진 황관을 자신의 머리에 썼다.
쾅.
세상이 뒤흔들렸다.
하늘에서 흩날리던 파란색 눈발이 검정색으로 변했다.
“이건 마왕의 황관이다.”
소군 방진이 눈을 지그시 감더니, 다시 번쩍 눈을 떴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동자에는 무한한 공허함만 담겨 있었다. 그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저 비유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마왕의 황관이라는 뜻이지.
아, 두변. 너도 매마의 존재를 알지? 이 세상에 매마 네 마리가 들어왔는데, 그게 누군지 알고 있나?”
소군 방진이 흥미롭다는 얼굴로 물었다.
두변의 표정이 굳었다.
“세계 종말의 전투라. 너는 우리 500명 대종사가 너의 100명 대종사와 결전을 치를 것이라고 생각하겠지?”
방진이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아니지, 아니야. 그건 아이들이 투닥거리는 싸움에 불과해. 아 참, 우리에겐 천하제일 고수 영도현도 있어.”
방진이 영도현을 향해 예를 갖추자, 영도현도 방진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답례했다.
“천하제일 고수 영도현, 내 편에 서줘서 정말 고맙소. 나와 두변, 두 사명의 주인 중에 나를 택했지. 정말 고맙소.”
방진의 말에 천하제일 고수 영도현이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다음 순간, 소군 방진이 갑자기 손을 영도현의 머리 위로 얹었다.
“크오오오오!”
갑자기 마귀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리더니, 방진의 손에서 검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영도현이 순식간에 미라로 변했다.
천하제일 고수이자 북명검파의 종주 영도현이, 그렇게, 죽었다.
“4대 매마, 이제 본모습을 드러내고 이들을 마음껏 집어삼켜라!”
소군 방진이 두 팔을 벌리자, 그의 뒤에서 검은빛이 하늘로 솟구쳤다.
현대 지구의 어느 단지 안.
“꺄르르르.”
집 안에서 두효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언제나 구석에 앉아서 혼자 조용히 있는 두효가 이렇게 환하게 웃는 건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두효는 오늘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아빠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엄마 최고! 우리 엄마 최고!”
효효는 욕조 안에 앉아서 거품 목욕을 하고 있었다.
임야소가 효효를 간지럼 태울 때마다 효효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엄마는 정말 대단했다.
혼자서 나가자마자 아빠를 집으로 데려왔으니 말이다.
당연히 임야소는 보통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60층 빌딩의 꼭대기에서 모친에게 두변을 돌려주지 않으면 뛰어내릴 거라고 협박했다.
분명 임야소는 고집이 아주 센 딸아이고, 임야소의 모친은 하는 수 없이 두변이 있는 곳을 알려줬다.
임야소는 그날 바로 휴가를 써서 두효를 유치원 장 선생님 댁에 맡겨둔 뒤, 천 리 길을 달려서 두변을 데려왔다.
임야소는 다시 두변을 만난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채 엉엉 울었다.
두변은 요양원에 들어간 게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 맡겨진 것인데, 그 사람이 다시 두변을 농촌에 있는 한 가정집에 맡겼다.
두변 재단에서는 두변을 맡긴 사람에게 한 달에 일정 금액을 주기로 했지만, 돌고 돌아 농촌 가정집에 지급되는 금액은 그 돈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두변은 짧은 며칠 사이에 벌써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그는 돼지우리 같은 곳간에 홀로 누워있었고, 온몸에 자신의 대소변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욕창이 온몸 곳곳에 심하게 나 있는 건 차치하고, 무엇보다 심각한 건 두변의 식도가 화상을 입었는데, 식도에 심한 염증이 생긴 것이다.
두변을 돌보던 사람들이 죽이 다 식기도 전에 뜨거운 죽을 두변의 식도에 쑤셔 넣은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가 며칠 사이에 이렇게 학대당한 걸 본 임야소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 집의 모든 가구를 때려 부쉈다.
그리고는 돈을 던지고 두변을 데려왔다.
두변은 병원에서 보름 정도 치료를 받았고, 다시 상태가 안정되자 그제야 집으로 돌아왔다.
임야소의 모친은 두변의 고아원 원장, 그리고 변호사와 함께 두변의 집과 차를 팔았고, 그 돈으로 재단을 만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재단을 관리하는 사람이 변호사였고, 재단의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고아원 원장이어서 임야소가 돈을 꺼낼 수가 없었다.
두변이 보름 동안 병원에 입원한 입원비는 임야소가 지금껏 힘들게 적금한 돈을 깨서 지불했다.
적금까지 깨고도 쓸 돈이 없자, 임야소는 카드빚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두변을 집으로 데려오자, 두효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임야소는 병원에 병균이 많겠다는 생각에 우선 딸아이부터 목욕시켰다.
“엄마, 많이 아파?”
효효가 자그마한 손으로 임야소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임야소의 한쪽 볼에 퍼렇게 멍이 남아 있었다. 바로 모친이 때린 흔적이었다.
임야소가 빌딩에서 뛰어내리겠다면서 모친을 협박한 뒤, 모친에게서 직접 두변의 주소를 받게 되었을 때, 모친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딸의 따귀를 몇 대 올려쳤다.
그리고 두변을 집으로 데려올 때, 임야소는 사랑하는 남자가 곧 죽을 모양을 하고 있고, 온몸에 변이 묻어있고, 욕창이 난 걸 보고 가슴이 찢질 듯이 아팠다.
임야소는 두변을 병원에 입원시킨 뒤, 곧장 모친을 찾아가서 따졌다.
두변을 아예 죽이려고 했던 거 아니냐고.
하지만 임야소의 모친에게 두변의 살고 죽는 게 중요할까.
그녀는 정말로 두변을 짐짝처럼 내다 버린 것이 맞았고, 그 짐짝을 받은 사람이 두변을 어떻게 하든 그건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친은 두변이 죽으면 재단 기금의 일부가 두변이 살던 고아원에 기부되고, 나머지는 재단을 운영하는 변호사에게 넘겨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임야소는 화를 참지 못하고 모친에게 인간이 그렇게 인간성이 없어선 안 된다고 질책했다.
자존심이 강한 모친은 딸에게 인간성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뚜껑이 열렸고, 임야소의 뺨을 있는 힘껏 수차례 때렸다.
임야소는 모친에게 맞아서 입술이 터지고, 코피도 나고, 얼굴에 멍까지 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모녀지간의 연을 끊었다.
흔히들 말하는 절연 수준이 아니라, 법적으로 모녀 관계를 끊었다.
법학 박사 출신인 모친은 바로 그날 모녀 관계를 끊는 협의 초안을 작성했고, 곧바로 서류에 서명한 뒤, 임야소에게도 서명하라고 했다.
“안 아파.”
임야소가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두효를 바라보다가 코끝으로 두효의 코끝을 비볐다.
임야소가 다정하게 말했다.
“우리 아가가 있으면, 엄마는 하나도 안 아파.”
“아빠도 있어.”
두효가 해맑게 웃으면서 외쳤다.
임야소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부모의 연을 끊었으니, 이제 임야소에게 남은 건 두변과 딸뿐이었다.
“그래. 아빠도 있지. 우리 셋이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자.”
임야소가 두효를 씻긴 뒤,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그녀는 평소처럼 두변의 성인 기저귀를 갈고, 그의 엉덩이를 깨끗하게 닦아준 뒤, 허벅지 안쪽에 어린이용 로션과 파우더를 발랐다.
허벅지 안쪽은 피부가 워낙 약해서 간혹 기저귀 때문에 긁혀서 상처가 나기 때문이다.
그녀는 두변의 팔다리를 안마해준 뒤, 마지막 10분을 이용해서 천천히 두변에게 유동식을 먹여줬다.
두변을 다 돌봐주었을 무렵, 때마침 두효가 유치원에 갈 시간이 되었다.
“아빠, 유치원 다녀올 테니까, 집에서 얌전히 있어야 해.”
두효가 보기 드물게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말했다.
임야소가 두변의 코끝에 입맞춤하자, 두효도 엄마를 따라 아빠의 코끝에 입맞춤했다.
문을 나선 뒤, 임야소가 두효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네다섯 명이 타고 있었는데, 임야소와 두효가 타자마자 엘리베이터 안에 정적이 흘렀다.
사람들은 머리를 살짝 숙여서 인사를 했지만, 이상한 눈빛으로 임야소를 쳐다보았다.
임야소가 빌딩 꼭대기에 서서 두변을 돌려달라고, 안 그러면 뛰어내리겠다고 울부짖던 장면을 누군가가 영상으로 찍어서 웹에 올렸다.
그저께부터 이 영상이 갑자기 화제가 되더니, 그 짧은 영상이 각종 포털 사이트의 메인에 걸렸다.
네티즌들은 임야소의 이름과 신상을 찾아냈고, 두효에 관한 정보도 찾아냈다.
임야소가 한 남자를 위해 빌딩에서 뛰어내리겠다고 소동을 부린 걸 H시 시민 전체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임야소 모녀를 쳐다본 것이다.
불편한 침묵이 엘리베이터 안을 채웠고, 임야소가 건물을 나오고 두효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길에도 곱지 않은 시선이 두 사람에게 꽂혔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임야소의 등 뒤에 대고 수군거리거나 손가락질하기까지 했다.
유치원에 도착할 때쯤, 한 중년 여성이 장 선생님을 붙잡고 따지고 있었다.
“장 선생님, 임야소라는 사람이 정신병이 있어요. 영상을 보니까 아주 악을 쓰면서 뛰어내리려고 하던데요. 그리고 그 여자 딸 두효도 좀 이상해요. 우리는 아이들을 그런 비정상적인 엄마를 둔 딸과 한 반에 있게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당장 두효를 퇴출하세요.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누구도 책임질 수 없다고요.”
“맞아요. 저번에 두효 걔가 우리 아들의 얼굴에 상처까지 냈잖아요. 다음에 칼 들고 사람을 찌를지 누가 알아요?”
“맞아요, 맞아. 그 모녀 정신이 정말 이상하다니까? 유치원에서 두효 그 아이를 내보내세요. 안 그러면 우리가 유치원을 옮길 테니까.”
학부모 몇 명이 장 선생님에게 씩씩대면서 언성을 높였다.
장 선생님은 속상해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지만, 학부모들의 기세에 밀리지 않고 큰 소리로 말했다.
“두효는 아주 똑똑하고 말도 잘 듣는 아이예요. 어머님들의 자식들이 두효를 계속 괴롭혀온 건 알고 계세요? 저는 절대로 두효를 내보내지 않을 거니까, 옮길 거면 차라리 어머님들이 옮기세요.”
장 선생님은 결혼 후 2년 동안 아이를 얻지 못했고, 결국 불임 판정을 받았다.
누구보다 아이를 원하던 그녀는 예쁘고, 귀엽고, 똑똑하고, 가엾은 두효를 진심으로 아끼고 챙겨줬다.
임야소가 두변을 찾으러 집에 없는 동안 두효는 장 선생님 댁에서 지냈는데, 두효는 정말 말을 잘 듣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장 선생님은 두효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았다.
하지만 학부모들이 너무나 이기적이게 임야소와 두효를 욕하고 상처를 주자, 장 선생님은 앞뒤 가리지 않고 이성적이지 않은 말을 내뱉고 말았다.
아마 이 행동 때문에 원장에게 불려갈 것이다.
학부모들은 장 선생님의 말을 듣고 더욱 화가 났다.
어떤 학부모는 그 자리에서 핏대를 세우며 삿대질을 했고, 원장 사무실까지 쳐들어가겠다고 난리를 쳤다.
그때 임야소가 두효의 손을 잡고 유치원 안으로 들어왔다.
난리를 치던 학부모들이 갑자기 잠잠해지면서 길을 비켰다.
이게 바로 소문이 이와전와(以訛傳訛: 거짓말에 거짓말이 섞여 자꾸 거짓으로 전해짐)되는 위력일까.
임야소가 사랑하는 남자를 되찾겠다고 목숨으로 모친을 위협하는 건 그럴 수 있는 일이다.
나름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 아닌가.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서 두어 마디씩 얹다 보니, 빌딩에서 뛰어내리려는 여자가 어느새 정신병이 있는 사람이 되었고, 온갖 정신병에 관한 극단적인 사건을 갖다 붙이면서 그 여자를 격리 병동에 가둬야 할 정신병 환자로 취급했다.
10분 뒤, 임야소는 유치원 원장 사무실에 불려갔다.
“두효는 아주 똑똑하고 말을 잘 듣는 아이예요. 우리 유치원 선생님들이 두효를 참 좋아하죠. 하지만 학부모들의 압박이 너무 거셉니다.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점, 양해해주세요.”
원장이 어렵게 입을 열면서 임야소에게 하얀 봉투를 건넸다.
“이건 이번 학기 학비예요. 그리고 나머지 돈은 정신적 손해배상 비용이고요. 어머님, 두효를 위해서 다른 유치원을 알아봐 주세요.”
원장이 말을 끝내자, 임야소가 차분하게 봉투에서 지폐 몇 장을 꺼냈다.
“이번 학기가 아직 2달 남았으니까, 2달 치 학비만 가져갈게요. 나머지는 필요 없어요. 아 참, 우리 딸이 오늘 하루는 유치원에 남아있어도 되죠?”
원장이 서둘러 대답했다.
“그럼요, 당연하죠. 어머님께서 다음 유치원을 찾을 때까지 사흘을 드릴 테니, 그 사흘 동안은 얼마든지 있어도 됩니다.”
장 선생님이 두효를 데리고 반에 들어갈 때, 아이들은 시끌벅적하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두효네 엄마가 정신병이라서 나더러 두효랑 놀지 말래.”
“우리 엄마는 두효도 정신병이 있을 수 있대. 나를 다른 유치원으로 보내시겠다던데?”
장 선생님은 또 한 번 울컥하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람들이 임야소를 정신병자로 낙인찍은 건, 바로 그 동영상의 제목 때문이었다.
‘정신병자 미녀가 남자를 위해서 투신하는 영상!’
그래서 사람들은 사실관계를 따지지도 않고, 바로 임야소를 정신병 환자 취급을 하는 것이다.
“조용, 다들 조용. 한 마디만 더하면, 다 받아쓰기 벌 받을 줄 알아!”
장 선생님이 엄격하게 말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찬바람을 맞은 매미처럼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두효, 네 자리에 가서 앉으렴. 두효는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제일 멋진 아이야.”
장 선생님이 다정하게 두효의 눈높이를 맞추면서 말했다.
두효는 눈시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지만, 눈물이 흐르지 않게 어금니를 꽉 깨물고 울음을 참았다.
두효는 자기 자리에 앉은 뒤에도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우리 엄마는 정신병자 아니야. 정신병자 아니라고!
두효는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팠지만, 절대로 울지 않았다.
장 선생님은 두효의 눈시울과 입 모양을 보다가, 결국 몸을 돌리고 눈물을 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