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2장: 눈을 뜨다
꿈속 마왕의 몸이 갈라지는 순간, 그의 몸에서 네 줄기 빛이 갈라 쏘아졌다.
금색, 파란색, 빨간색, 초록색.
4대 매마는 폭발 지점과 꽤 먼 곳에 있었지만, 그들의 몸도 순식간에 한 줄기 혼백이 되어서 몸에서 빠져나갔고, 그들의 혼백조차 완전히 소멸되려고 했다.
이때, 아득한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꿈, 그렇게 성낼 것 없다. 모든 게 다 운명 아니겠는가?”
폭발의 중심에 블랙홀 같은 소용돌이가 생겼고, 시공간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슈우우욱.
블랙홀은 세상의 균열과 꿈속 마왕, 4대 매마의 혼백을 집어삼켰고, 마지막엔 작은 점이 되어서 사라졌다.
하늘에 있었던 모든 게 다 사라졌다.
세상의 균열이 없어졌고, 운석처럼 쏟아지던 악마도 없어졌고, 창공을 뒤덮었던 다른 차원도 없어졌다.
하늘은 다시 평소처럼 파란 하늘에 구름, 그리고 태양이 걸린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이 지구의 모든 게 안녕하고 아름다워졌다.
명계였던 지역은 전부 사막으로 변했다.
기음음, 예상, 계청주와 성화교의 백여 명 대종사가 맑디맑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기음음이 울먹이면서 외쳤다.
“폐하께서 가셨습니다. 폐하께서 우리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신 겁니다. 폐하께서 떠나셨습니다. 모두 무릎을 꿇으십시오.”
자리에 있던 대종사들과 1천 명 마혈 무사가 일제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우리는 이번 전투에서 방관자에 불과했습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폐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수 없었다는 것도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오늘부터,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직도 살아있는 이유는 전부 폐하의 은덕 덕분이라고요.
모두 목숨을 걸고 더욱 강해져야 합니다. 이 세상이 강해져야 해요.
모든 무도인은 수련을 게을리하지 말고, 모든 나라는 온 힘을 다해 문명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모든 나라가 강해져야, 우리 세상이 강대해질 겁니다.
어쩌면 언젠가 폐하께서 돌아오시는 날, 폐하께서 우리가 필요하실 때, 우린 더 이상 치욕스러운 방관자가 되면 안 됩니다.”
북명검파의 표묘봉 위, 기염염이 아이를 품에 안고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다.
“아가, 우리의 선택이 옳았고, 영도현이 틀렸다. 영도현, 난 당신과 이혼하고, 개가할 거예요.”
대녕 제국 황궁 안.
영설이 포동포동한 두효를 품에 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아브바, 아빠.”
두효가 옹알이를 하면서 하늘을 가리켰다.
사공엽, 주술사 국사가 수천 명을 데리고 무릎을 꿇었다.
“폐하께서 가셨습니다. 주인께서 가셨습니다. 우리가 무능해서 이 세상을 보호하지 못했고, 폐하께서는 홀로 목숨을 바쳐 이 세상을 구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폐하를 위해서라도 목숨을 걸고 강해져야 합니다. 폐하를 위해서 강해지고, 궐기해야만 합니다.”
동방 연합왕국 왕성 안.
방청의가 눈물을 주륵 흘렸다.
“떠난 건가요? 나와 자지도 않고 갔다고요?
난 죽지 않을래요. 자결하지 않겠어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다시 아름다워지고, 강해질 거예요.
만에 하나 당신이 나를 다시 보는 날이 온다면, 그땐 당신이 욕정을 참을 수 없도록 만들겠어요.”
21세기 현대 지구 H시, 어느 단지의 유치원 안.
몇몇 학부모는 두효가 아직 교실에 앉아있는 걸 보고 곧바로 장 선생을 불러냈다.
“왜 저 애가 아직도 여기 있는 거죠? 원장님께서 저 아이를 이미 내쫓았다고 하지 않았어요?”
장 선생이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른 유치원을 찾을 시간은 줘야 하지 않겠어요? 착하고 말도 잘 듣는 두효를 억지로 내쫓아놓고, 여기서 마지막 2, 3일을 보내는 게 그렇게 못마땅하세요?”
학부모들이 격노하면서 소리쳤다.
“선생님, 지금 그게 무슨 태도예요? 여긴 사립 유치원이에요. 고객이 왕이라고요. 왕한테도 그딴 식으로 말할 건가요?”
“나는 의학에 견문이 있는 사람이에요. 두효 저 아이는 자기 모친처럼 정신병자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며칠 사이에 발작이 일어나서 다른 아이들을 해친다면, 선생이 그 책임을 질 건가요?”
“아무튼, 우리 아이들은 그 어떤 위협도 받으면 안 돼요. 두효를 당장 내쫓지 못하겠다면, 우리가 떠나겠어요.”
장 선생도 학부모들의 기세에 뒤지지 않고 말했다.
“떠나실 거면 떠나세요.”
십여 명 학부모들이 교실 안으로 몰려 들어와서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떠나기 전, 학부모들은 냉랭한 눈빛으로 두효를 노려보았다.
마지막에 교실에 남은 사람은 두효 혼자였다.
두효는 참고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선생님, 저는 정신병자가 아니에요. 제 엄마도 정신병자가 아니고요. 우리는 아빠를 너무 사랑해서 그래요. 외할머니가 아빠를 훔쳐서 숨겨버렸단 말이에요. 엄마는 아빠를 되찾기 위해서 그랬던 거예요.”
두효가 엉엉 울면서 말했다.
장우함 선생님이 두효를 품에 끌어안으면서 따뜻하게 말했다.
“이모도 알지. 효효는 세상에서 제일 착한 아이야. 효효네 어머니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고, 효효 아버지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이고, 멋있고 잘생긴 아빠야. 다 저 사람들이 잘못한 거고, 저 사람들이 나쁜 사람인 거야.
선생님이 효효 한 사람을 위해서 수업을 하고 싶은데, 어때?”
효효가 눈물을 닦으면서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효는 보통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를 잘 대해주는 사람에겐 한없이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
이런 효효를 보자, 장우함 선생님은 마음이 녹아서 없어질 것만 같았다.
장 선생님이 효효에게 마지막 수업을 하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환하기만 하던 창밖이 순식간에 깜깜해졌다.
뒤이어 땅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이 났을 때처럼 흔들리는 게 아니라, 지구가 호흡을 하면서 떨리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하늘이 실명할 정도의 밝기로 번쩍였다.
영화에서도, 꿈속에서도 본 적 없는 놀라운 광경이 하늘에 펼쳐졌다.
거대하고 낯선 다른 차원이 하늘 전체를 뒤덮었다.
낯설고, 강하고, 기이하고, 신비롭고, 적막한 거대한 차원이 하늘의 태양과 달, 그리고 별들을 가렸다.
다른 차원이 하늘의 구석구석을 차지했고, 지구의 표면 전체를 뒤덮었다. 사람들이 고개를 들면 다른 차원의 도시를 속속들이 볼 수 있었다.
이보다 더 기이하고 끔찍한 광경이 있을까.
곧이어 엄청나게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하늘에 응집하기 시작하더니 몇만 킬로미터 상공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그리곤 균열이 갑자기 찢기면서, 그 사이로 불꽃, 운석, 생물체가 지구로 쏟아졌다.
현대 지구에는 유래에 없는 방대한 운석이 떨어지고 있었다.
수십 개, 수백 개, 수천 개, 수만 개.
기이한 에너지와 기이한 불꽃, 그리고 기이한 생물체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기이한 불꽃은 미국의 펜타곤, 중국의 동방명주, 이집트의 피라미드, 파리의 에펠탑에 떨어졌고, 불꽃이 닿는 즉시 건물 전체, 그리고 근방 몇 킬로미터 이내를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에베레스트산에도 떨어졌는데, 세계 제일 고봉은 그렇게 순식간에 없어졌고, 하늘로 솟구치는 초록색 화염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세상의 종말이 도래한 것이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 누구도 준비되지 않았을 때.
하지만 현대 지구에는 두변 같은 구원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던 부모들은 그 광경을 보고 제자리에 얼어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장우함 선생도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손끝이 차가워졌다.
이때, 두효가 갑자기 소리쳤다.
“아빠, 우리 아빠!”
장 선생 품에 안겨있던 두효가 그녀의 손길을 뿌리치고 곧장 집을 향해 달려갔다.
두효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몰랐지만, 그저 엄마와 아빠의 품에 안겨있고 싶을 뿐이었다.
임야소는 학교에서 해고당했다.
해고당할 때 학교에서 건넨 3개월 치 보상 월급은 합법이고, 임야소가 응당 받아야 할 돈이었다.
하지만 임야소는 올곧고 황소고집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미 식물인간 두변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사무실을 나온 뒤, 임야소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임야소는 이제 이 도시에서 살 수가 없었다.
웹에 퍼졌던 그 동영상 때문에 자신은 이 도시에서 누구나 아는 유명인이 되었고, 남자를 위해 투신자살을 하려는 정신병자가 되었다.
유치원에서도 두효를 내쫓았으니, 두변과 두효와 함께 다른 도시로 거처를 옮겨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임야소에게 더는 돈이 없다는 것이고, 카드빚도 눈덩이처럼 불어 있다는 점이었다.
이사하면서 새집을 구할 때도 돈이 필요하고, 효효를 유치원에 보내는 것도, 남편을 보살피는 것도 돈이 필요했다.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했다.
그녀는 어깨를 짓누르는 압박감에 그저 무력해졌다.
임야소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게 힘을 줘요. 나 정말 못 버티겠어요.”
바로 이때, 세계의 종말이 시작됐다.
이계의 무수히 많은 에너지와 악마가 현대 지구를 덮쳤다.
학교에 있던 모든 선생과 학생들이 교실 밖으로 뛰쳐나와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몇몇 사람은 잊지 않고 핸드폰으로 이 기이한 현상을 촬영했다.
임야소는 그 광경을 보자마자 곧장 핸드폰으로 두효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통신이 완전히 끊긴 터라, 통화 연결음조차 울리지 않았다.
임야소는 하이힐을 벗어던지고 미친 사람처럼 집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효효, 내 사랑, 내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요.
하느님, 제발 부탁이니까, 세계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제가 집에 도착하게 해주세요!
죽게 되더라도, 사랑하는 남편과 딸과 함께 죽고 싶어요!
하느님, 제발! 제 가족과 함께 죽고 싶어요!”
맨발로 달리느라 발바닥은 금방 피투성이가 되었다.
하지만 임야소는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집을 향해 질주했다.
콰광!
그런데 이때, 그녀의 앞쪽 1,000미터 부근에 거대한 화염이 떨어졌다.
자동차, 다리, 빌딩 등, 주위에 있던 모든 게 가루가 되었다.
현대 지구, 어느 평범한 산봉우리 위.
한 사람이 산꼭대기에 서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꽃과 악마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다른 사람과 달리 당황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무척 평온해 보였다.
심지어 그는 이 광경을 더욱 자세히 보려는 것처럼 안경을 천으로 닦았다.
그가 가볍게 손을 옆으로 뻗자,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집에서 이과두주가 날아와 그의 손에 잡혔다.
이어서 그가 다른 손을 뻗자, 이번엔 위스키 잔이 허공을 날아 그의 손으로 들어왔다.
그는 이과두주를 위스키 잔에 따른 뒤, 와인을 음미하는 것처럼 술을 음미했다.
그리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술이군. 운명 시스템, 우리의 계획이 바뀐 거지?”
“그렇다, 숙주. 세계의 종말이 100년 일찍 찾아왔으니, 우리의 계획도 100년 일찍 시작되어야 한다.”
대녕 제국이 존재하는 파생된 지구에서 대폭발이 일어났고, 그 대폭발 때문에 두변은 몸과 혼백을 잃었다.
끝이 없는 무궁한 공허 속, 두변의 혼백은 극도로 세세하게 부서진 작은 부스러기가 되었다.
무수히 많은 두변의 혼백 부스러기가 무궁한 공허 속을 떠다녔다.
이대로 가다가는 두변의 혼백도 다른 사람의 혼백처럼 가루가 되어 날아갈 것이다.
완전한 죽음 말이다.
그런데 한 줄기 황금빛이 아주 약한 빛을 띠면서 나타났다. 상고 용왕의 혈맥의 기운이었다.
세상의 균열, 꿈속 마왕, 그리고 무수히 많은 악마와 동귀어진하기 위해서 상고 시대 용왕은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거의 모두 쏟아부었다.
공허 속에 티끌만큼 남은 용왕의 혈맥이 황금빛을 띠면서 서서히 모이기 시작했고, 마지막엔 촛불처럼 미약하지만 밝게 빛나는 불빛이 되었다.
미약한 황금빛은 허공에서 두변의 혼백 조각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시간은 하루하루 흘러갔고, 미약한 용왕의 힘은 두변의 혼백 조각들을 모으면서 자신의 힘을 두변의 혼백과 결합했다.
용왕의 힘 덕분에 거의 사라져가던 두변의 혼백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모래알 크기가 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그리곤 탁구공 크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두변의 혼백은 어느새 사람의 머리 크기만 해졌다.
상고 시대 용왕의 힘이 9할이 넘는 두변의 혼백 조각을 모은 것이다.
허공에 잔류한 용왕의 힘이 무척이나 미약했지만, 그 힘은 엄청나게 높은 수준의 에너지였다.
화아악!
스러졌던 두변의 혼백이 다시 살아나고, 그의 정신이 깨어났다.
같은 시각, 현대 지구의 어느 낡은 버스 안.
근육이 위축되고, 나뭇가지처럼 몸이 야윈 식물인간 두변이 몸을 움찔했다.
식물인간 두변이 두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