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66화 (566/648)

566장: 엽해당

두변이 깜짝 놀랐다.

“그 괴물은 엄청 강하고 위험합니다. 그리고 괴물이 찾는 사람은 나니까, 영주가 동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영주가 죽는다면, 이 영지는 혼란에 빠질 겁니다.”

능매가 말했다.

“효효는 내 학생이고, 우리 취락에서 가장 훌륭한 전사예요. 사형에 처한 것과는 별개로, 효효가 괴물에게 잡혀간 걸 수수방관할 수는 없어요. 만약 두 선생이 실패한다면, 어차피 우리 취락 전체에 재앙이 들이닥칠 거예요. 그리고 여기서 저수지까지 40리가 넘는데, 가는 길에 분명 불사족을 마주칠 거예요. 지금 두 선생의 몸 상태로는 그들의 추격을 따돌릴 수 없을 거예요.”

“불사족은 좀비를 뜻하는 겁니까?”

“좀비는 그중 한 종류예요. 많은 동물도 변이를 거쳐서 끔찍한 불사족 괴물이 되었어요. 두 선생은 몸이 너무 허약해서 40리를 걸어갈 수도 없을 거고요.”

“좋습니다. 그럼 저를 저수지에 데려다만 주세요. 그 괴물은 제가 독대할 겁니다.”

“알겠어요.”

잠시 후, 영주 능매가 오토바이를 끌고 왔다.

“내가 돌아오지 못하고 밖에서 죽는다면, 뇌표를 새로운 영주로 모셔라.”

능매가 명령하자, 한 장정이 큰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풍엽영 안에는 9급 무사가 딱 한 명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능매였고, 뇌표는 이 영지에서 두 번째로 강한 8급 무사였다.

취락 안에 있던 사람들은 떠나가면 다신 돌아오지 못할 전사를 배웅하는 것처럼 장렬하고, 슬픈 마음으로 능매를 배웅했다.

그 괴물은 너무도 강해서, 능매와 이제 막 깨어난 식물인간이 상대할 수 있는 적수가 아니었다.

능매는 취락의 영주로서, 영지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구사일생의 상황인 걸 알면서도 자진해서 나선 것이다.

능매가 오토바이를 타고 종말의 고속도로를 달렸다.

고속도로의 보존 상태는 양호했지만, 도로 양옆에 있던 가로수가 전부 죽고 이상하게 생긴 이계 식물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도로변은 참혹하기만 했다.

길가에는 간혹가다 백골이 있기도 하고, 이미 녹슬거나 망가진 차의 잔해가 있기도 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10리 넘게 달렸을 때, 드디어 불사족과 마주칠 수 있었다.

불사족은 좀비처럼 생겼지만 좀비는 아닌 것 같은 게, 사지가 무척 발달했고 움직임이 민첩하고 재빨랐다.

그것들의 두 눈은 새빨간 색이었는데, 혼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직 본능적인 폭력과 살육만 남은 듯했다.

불사족의 치아도 사람의 것이 아닌 것처럼 날카로웠다.

살아있는 무언가가 지나가지 않을 땐, 불사족은 멍한 눈빛으로 주위를 서성였고, 살아있는 게 지나간다고 느낄 때, 곧바로 소름 돋는 비명을 내면서 날카롭고 긴 손톱을 휘두르면서 달려들었다.

불사족의 달리는 속도는 초속 7, 8미터에 달할 정도로 무척 빨랐다. 이러니 일반인이 불사족을 만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영주 능매가 오토바이에 탄 채로 칼을 뽑아 들었다.

그녀는 오토바이의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대로 칼을 휘둘렀다.

그 순간, 능매를 향해 달려오던 불사족 두 마리의 머리가 댕강 잘려 날라갔다.

두변과 능매는 드디어 저수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오토바이에서 내리기도 전에, 오토바이가 갑자기 조종력을 잃고 댐을 향해 돌진하더니, 그대로 저수지에 빠졌다.

능매는 괴물 때문에 꼼짝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저수지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멈췄는데도 괴물에게 제압당한 것이다.

능매는 오토바이의 반동 때문에 튕겨 나갔지만, 두변의 몸은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땅에 착지했다.

저수지 전체가 특수한 에너지장이었다.

“자기, 왔어?”

괴물이 간드러진 목소리로 두변을 맞이했다.

두변은 테슬라코일 무기를 손에 쥔 채 저수지 댐 위까지 기어 올라갔다.

그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딸 두효였다.

두효는 저수지에 떠 있는 작은 배 안에 조용히 누워있었고, 온몸이 수초로 결박되어 있었다.

저수지의 물은 기이한 초록색을 띠었고, 물속에는 수많은 귀화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그 괴물의 근거지였다.

“내가 왔으니까, 나와서 정체를 밝혀라.”

두변이 외쳤다.

일순간, 주위가 갑자기 어둑어둑해졌다.

저수지의 수면 위에 기이한 안개가 끼더니, 음산하고 창백한 여자가 서서히 물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수초가 엉겨 붙어 산발이 된 검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괴물의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괴물은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배는 임신 3, 4개월이 된 것처럼 볼록했다.

“자기야, 내가 생각을 다시 해봤어. 남자가 실수하는 건 피치 못한 거잖아? 몸이 바람을 피운 건 상관없어. 마음만 날 향하고 있으면 되니까. 앞으로 나한테 잘해. 그럼 다른 사람과 아이를 낳은 건 넘어가 줄 테니까.”

배가 부른 여자 괴물이 두변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초록색으로 빛나는 괴물의 눈빛에는 다정함이 어려 있었다.

“하지만 내 배에는 우리의 아이가 있으니까, 네가 낳은 저 딸은 이제 살 수 없어. 내가 지금 죽여버릴 거야. 앞으로는 우리 셋이서 알콩달콩 잘 살자.”

두변은 아무리 생각해도 괴물이 누군지 알 수 없어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 괴물은 임야소가 아니었다.

임야소는 저런 헤어스타일도 아니고, 저런 눈매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저 괴물이 누구든, 두변은 효효를 구하기 위해서 괴물을 죽여야 했다.

여자 괴물은 꼭 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보았고, 손으로 자신의 불러온 배를 쓰다듬었다.

“자기야, 이 아이는 우리 사랑의 결실이야. 난 자나 깨나 아이를 낳고 싶어 죽겠어.”

괴물의 목소리는 너무도 다정해서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괴물이 충분히 다가왔을 때, 두변이 재빨리 테슬라코일 무기의 작동 버튼을 눌렀다.

파지지직.

인근 십여 미터 범위에 무수히 많은 번개가 내리쳤다.

여자 괴물은 번개를 몇 번이나 정통으로 맞았다.

“끼야아아아!”

괴물이 처참하게 비명을 질렀다.

괴물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이 공중으로 일제히 곤두섰다.

“두변, 어쩜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어? 난 너를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어째서? 난 네가 날 임신시켜놓고 책임지지 않은 걸 원망하지 않았고, 내가 퇴학당할 때도 네 이름을 말하지 않았어.

내가 퇴학당한 뒤에, 너는 내가 소문을 낼까 봐 나를 목 졸라 죽이고, 내 시체를 저수지에 던져버렸지. 난 그때도 널 원망하지 않았어. 네가 현실을 두려워한다는 걸 아니까.

그런데 지금 또 나를 죽이겠다고? 또 날 죽이려고? 넌 정말 잔인한 남자야. 내가 너를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왜 내 맘을 몰라줘?

내가 네 딸을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려야 해!

그 번개로 날 죽이려고 해? 내가 번개를 무서워하지만, 번개에 죽진 않아. 네가 나를 목 졸라 죽인 날에도 천둥 번개가 내리쳤거든. 그래서 내가 번개를 무서워하는 거야. 번개를 볼 때마다 네가 날 죽인 그날이 떠올라서.”

괴물이 팔을 쭉 뻗더니, 한 손으로는 두효를 집어 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 두효의 머리통을 잡았다.

괴물은 이대로 두효의 머리통을 으깨서 죽일 셈이었다.

그때, 두변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 하고 떠올랐다.

두변은 드디어 이 여자가 누군지 기억해냈다.

이와 동시에, 대녕 제국에 있었던 소군 방진이 누군지도 알아차렸다.

“엽해당!”

두변이 소리쳤다.

여자 괴물이 흠칫 놀라더니, 두효를 잡고 있던 손에 스르륵 힘이 빠졌다.

괴물이 다시 사랑이 듬뿍 담긴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봤다. 수초 더미가 두변을 감싸더니 그를 댐 위로 받쳐 올렸다.

두변은 괴물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면서 20여 년 전의 기억을 회상했다.

시간은 두변이 고등학생이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엽해당은 공부를 꽤 잘하던 모범생이었다. 그녀는 수차례 반장을 했었고, 선생님의 말을 제일 잘 듣는 여학생이었다.

엽해당은 그렇게 예쁘장한 외모를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맑고 청아한 분위기가 있었다. 게다가 글솜씨가 뛰어나서 교내나 교외의 신문 잡지에 그녀의 글이 등재되기도 했었다.

당시에 엽해당은 영원한 2등이었고, 1등은 언제나 두변의 것이었다.

두변은 그렇게 노력해서 공부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항상 좋은 성적을 거뒀다.

고등학생 때 두변은 좀 야윈 편으로, 얼굴은 무척 준수했다. 키는 1.75미터 정도로 또래에 비하면 큰 편에 속했고, 고독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풍겼다.

게다가 성적도 좋고, 재능도 있다 보니, 많은 여학생이 그를 몰래 짝사랑했다.

반장 엽해당도 예외가 아니었다.

엽해당은 두변 생각만 해도 부끄러워서 몸이 배배 꼬였고, 남들이 안 볼 때만 두변을 훔쳐봤다.

그녀는 화려한 글솜씨를 발휘해서 두변에게 줄 러브레터를 많이 썼지만, 정작 단 한 통도 건네지는 못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두변은 얼떨결에 반장이 되었는데, 자기가 왜 반장이 됐는지도 알지 못했다.

두변 성격이 무척이나 유별나고, 학생들이나 선생님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아서 인간관계가 원만한 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건 엽해당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두변에게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녀는 반장 자리를 내놓은 뒤, 학생들에게 두변을 뽑아달라고 몰래 부탁했다.

반장을 뽑던 당시, 두변은 또 자신만의 세상에서 별의별 공상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교단에 서서 두변을 반장으로 뽑을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는데, 두변은 머릿속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던 터라, 손을 들라는 말만 대충 듣고 손을 들었다.

두변은 뒤늦게 넋이 나간 표정으로 현실을 자각했다.

‘내가 반장이야?’

두변이 얼렁뚱땅 반장이 된 뒤, 엽해당이 부반장이 되어서 반장을 도왔다.

이렇게 되면, 엽해당은 당당하게 두변과 학급 일 얘기를 하면서 가까이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 기뻤다.

하지만 엽해당은 곧 두변에게 실망했다.

두변의 대답은 영원히 ‘알아서 해!’였다.

그는 반장이 되고도 아무도 상대하지 않았고, 여전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데도 성적은 좋았으며, 매일 정신이 어디로 간 것처럼 온갖 공상을 하면서 살았다.

소년일 적의 두변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전형적인 재수 없는 중2병 소년이었다.

그는 무척이나 무신경했고, 반 친구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본 적도 없으며, 반 친구들의 이름도 대부분 몰랐다.

두변의 유일한 친구는 이소강이라는 소년이었다.

이소강은 공부를 무척 열심히 하는 조용한 학생이었고, 반에선 3등, 학년에선 5등 안에 들었다.

두변에 비하면, 이소강은 전혀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다. 그 아이는 키가 작은 데다 등이 굽었고, 피부가 까맣고 못생겼었다.

그 아이는 열심히 공부하는 것 외에 다른 취미가 없었고, 자존감이 낮고 열등감이 심했다.

이소강이 두변과 친구인 이유는 이 둘이 같은 고아원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이소강은 두변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세 살부터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이소강은 십여 년 내내 두변의 그림자였고, 언제나 조용히 두변의 뒤를 따랐다.

이소강은 두변과 함께 있지 않으면, 의식주도 해결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고아원 출신이기 때문에 학비나 급식비가 무료였고, 학교에서 복지 차원으로 식사 보조금까지 나왔다.

물론, 식사 보조금을 받는다고 해도 두 사람은 간신히 맨밥에 절임 채소로 끼니를 때우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두변이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두 사람의 생계에 여유가 좀 생겼다.

두변은 매달 4, 5편의 글을 각종 잡지에 투고했고, 그 고료로 일정한 수입이 생겼다.

두변은 어차피 허구의 사연을 투고하는 것이니, 자신을 여자 작가로 속인 적도 있었다.

두변이 돈을 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소강도 먹여 살리게 됐다.

이소강은 몇 년 내내 두변을 따라다니면서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숙소에 들어가고, 함께 집을 임대했다.

이소강은 꼭 두변의 꼬리처럼 그를 항상 따라다녔지만, 두변을 귀찮게 하거나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두변은 아침이나 간식을 살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의 서랍은 아침마다 다양한 먹을거리로 채워졌고, 일주일에 최소 열 개가 넘는 초콜릿을 받았다.

두변을 좋아하는 같은 반, 혹은 다른 반 여학생들이 두변의 서랍을 하루도 빠짐없이 채워놓았다.

두변은 여학생들의 간식 공세에 전혀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고, 이소강에게 나눠주기까지 했다.

두변은 언젠가 이소강이 자신을 찾아와서 대뜸 물어봤던 질문을 떠올렸다.

“반장 엽해당이 날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 자꾸 날 쳐다봐.”

당시 두변은 무관심하게 모른다고 대답했다.

참으로 가엾은 이소강이었다.

엽해당이 매일 몰래 쳐다보는 사람은 두변인데, 언제나 두변을 졸졸 따라다니던 이소강은 엽해당이 자신을 몰래 쳐다본다고 착각했다.

두변은 고등학생 때 제대로 된 연애를 하지 않았고, 엽해당이 예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녀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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