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67화 (567/648)

567장: 이소강

엽해당은 두변을 2년 넘게 짝사랑하면서, 두변에게 전하지 못한 러브레터는 쌓여만 갔다.

두변은 그저 매일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써볼까, 그 이야기 속의 완벽한 미녀를 어떻게 묘사할까 같은 생각에 빠져서 살았다.

두변이 구상하는 완벽한 여자 캐릭터는 전부 영화에서 봤던 여자 주인공들의 성격과 미모, 그리고 몸매를 합쳐놓은 캐릭터였다.

그는 엽해당이 자신을 짝사랑한다는 걸 은연중에 느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두변이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갈 때, 학교에 엄청난 추문이 터졌다.

부반장 엽해당이 임신했다는 것이다.

교장과 선생님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말도 잘 듣고, 성적도 좋던 모범생이 하루아침에 임신했다니,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선생님들은 엽해당의 미래를 생각해서 그녀를 임신시킨 남자가 누군지 추궁했고, 엽해당의 부모에게 낙태하라고 권유했다.

엽해당의 부모는 사람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화를 참지 못하고 엽해당을 인정사정없이 때렸고, 그 남자가 누구냐고, 그놈을 당장 때려죽이겠다고 난동을 부렸다.

그런데 엽해당은 아주 완고했다. 그녀는 남자의 이름을 죽어도 말하지 않았고, 절대로 낙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학교는 어쩔 수 없이 엽해당에게 퇴학 처분을 내렸다.

얼마 뒤, 엽해당이 저수지에 뛰어내려서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두변은 마음이 몹시 안 좋았다.

어쨌든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이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도 많이 속상해했다.

담임 선생님은 충격이 너무 커서 며칠 동안 결근을 했고, 교장은 교육부에서 내린 징계 처분을 받았다.

징계의 이유는 교장의 문제 해결 방식이 너무 거칠고, 학생을 너무 극단적으로 몰아세웠다는 이유에서였다.

괴물이 된 엽해당을 바라보던 두변의 눈빛에 연민이 드리워졌다.

두변이 기억하는 엽해당은 예쁘진 않지만, 심성이 착하고, 재능이 뛰어나고, 결단력이 있는 여자아이였다.

두변의 부드러워진 눈빛을 보자, 괴물 엽해당의 눈빛도 다시 다정해졌다.

“자기야, 난 정말 자기를 탓하지 않아. 그때 자기도 너무 무서워서 그런 거잖아. 내가 자기 이름을 말하면, 자기도 퇴학당할 테고, 내 부모님께 죽도로 맞았을 테니까. 자기는 내가 자기의 이름을 말할까 봐 날 죽인 거지? 조금 전에 테슬라코일 무기로 나를 공격한 것도 괜찮아. 자기는 내가 자기를 해칠까 봐 그런 거지? 걱정하지 마. 내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자기를 해치겠어.”

두변이 침착하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엽해당, 난 너랑 러브레터를 주고받은 적이 없어. 너와 어떤 감정을 나눈 적도 없고, 너를 죽인 것도 더더욱 내가 아니야.”

괴물 엽해당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연신 고개를 저으면서 외쳤다.

“아니야, 아니야. 자기가 나랑 러브레터를 2년이나 썼잖아. 우리가 쓴 러브레터 글자수를 합하면 35만 자도 넘어. 우리의 러브레터에는 사랑이 듬뿍듬뿍 묻어났어. 그게 가짜일 리 없다고.”

두변이 물었다.

“그 러브레터들, 나한테 직접 전해줬어?”

괴물 엽해당이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너한테 직접 줄 용기가 없어서 이소강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어. 이소강이 네 유일한 친구잖아.”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다.

두변이 어렵게 입술을 뗐다.

“이소강이 나한테 너를 많이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 중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내준 숙제가 너무 쉬워서 하기 싫었는데, 그때 이소강에게 내 숙제를 대신 해달라고 부탁했어. 필적이 다르면 선생님께서 알아차리시니까 이소강에게 내 필적을 모방하라고 시켰고. 이소강은 중학교 때부터 매일 내 숙제를 대신 해줬던 터라, 내 필적을 완벽하게 모방할 줄 알아.”

괴물 엽해당은 번개에 맞은 것처럼 정신이 혼미했고, 이내 현실을 부정했다.

그러다 엽해당이 광기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니야, 아니야. 나랑 러브레터를 쓴 사람은 틀림없이 너야. 이소강이 아니라고. 걘 키도 작고, 못생겼고, 재능도 뛰어나지 않고, 촌스러워. 걔가 그렇게 절절한 러브레터를 쓸 리 없어.”

두변이 말했다.

“이소강은 널 정말 많이 좋아했을 테니까.”

두변은 엽소당에게 잔인한 질문을 하는 게 괴로웠지만, 그래도 질문을 이어갔다.

“저수지 창고에서 너랑 만나기로 한 날, 이소강이 촛불로 방을 밝히지도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엽해당이 대답했다.

“응. 말없이 나한테 음료수를 줬는데, 내가 그 음료수를 마시고 취했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이소강은 엽소당을 짝사랑했고, 엽소당이 두변에게 주는 러브레터를 빼돌렸다.

이소강은 러브레터를 보고 두변을 뼈저리게 질투했고, 위험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생각은 바로 자신이 두변인 것처럼 위장해서 엽해당과 러브레터를 주고받으면서 연애하는 생각일 것이다.

이소강은 이 위험한 생각을 실행으로 옮겼고, 2년 동안 무려 35만 자에 달하는 러브레터를 주고받았다.

한창 혈기왕성하던 이소강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하면 안 될 짓을 했다.

그는 두변인 척하면서 러브레터로 엽소당을 저수지의 창고로 불러냈고, 음료수병 안에 술을 채워 넣은 뒤에 엽해당과 관계를 가졌다.

엽해당은 그때도, 그 이후에도 자신과 관계를 가진 사람이 두변이라고 생각했고, 아무런 피임을 하지 않아서 임신하게 된 것이다.

두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랑 관계를 가지려고 할 때, 왜 거부하지 않았지?”

엽해당이 당연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너를 어떻게 거절해. 나도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어. 고등학생의 본분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거고, 내가 연애를 하게 되더라도, 고등학생이다 보니까 손잡는 것까지는 되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살았어. 그런데 너를 너무 좋아해서 거부할 생각을 못 했고, 난 술에 취해 있었어. 그때 널 밀어내면, 네가 다시는 날 보지 않을까 봐 겁나기도 했어. 넌 원래도 남들에게 관심이 없으니까. 그날 가졌던 관계는 엄청 빨리 끝났어. 내가 살짝 아프다고 느끼자마자 네가 끝내 버렸고, 넌 나를 거기에 버려둔 채 도망갔어.”

“내가 아니라, 이소강이 도망간 거지. 아무리 어두웠다고 해도, 걔가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내가 아니라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거야? 키만 봐도 내가 걔보다 훨씬 크잖아.”

“몰라. 난 몰랐어. 네가 나한테 저수지 창고에서 만나자고 했을 때, 난 너무 흥분되고, 감격스럽고, 달콤하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어.”

“두 번째로 만났을 때도 이소강인 줄 몰랐단 말이야? 당시에 번개가 내리쳤다고 했지? 그럼 이소강의 얼굴을 봤을 거 아니야. 당시에 넌 내가 널 임신시킨 줄 알았을 텐데, 이소강은 무엇 때문에 위협을 느끼고 널 죽였던 거지? 그날 번개가 내리칠 때, 네가 이소강의 얼굴을 봐버린 거 아니야? 이소강은 네가 놀라서 발버둥 치고, 경찰을 부르겠다고 협박하니까 너를 죽여서 저수지에 버린 건 아니고?”

“난 몰라. 난 아무것도 몰라.”

괴물 엽해당이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아니야, 아니야! 그날 밤에 내가 만났던 사람은 너야. 그 못생기고 촌스러운 이소강이 아니라 너라고. 이 배 속에 있는 아이는 네 아이지, 이소강의 아이가 아니야!”

괴물 엽해당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저수지에 있던 수초 더미가 갑자기 빠른 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사실 엽해당은 두변이 마지막 질문을 할 때 이미 번개가 내리치던 날의 모든 것이 떠올랐다.

두변이 말했던 것처럼, 저수지에서 두 번째 만남을 가졌을 때, 엽해당은 번개가 내리치는 순간 이소강의 얼굴을 봐버렸고, 그래서 이소강에게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엽해당은 괴물이 된 뒤, 고통스러웠던 그 날의 기억을 깨끗이 지우고 아름다운 추억만 간직하며 살았다.

이런 본능은 괴물이나 사람이나 똑같은가보다.

“아아아! 이소강, 이소강은 어디 있어? 내가 너를 갈기갈기 찢어 죽일 거야. 갈기갈기!”

엽해당이 한이 맺힌 목소리로 울부짖자, 물속에서 수많은 귀화와 심하게 부패한 시체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주위 땅에서 무수히 많은 귀신과 새하얀 백골이 무덤 속에서 기어 나왔다.

괴물 엽해당의 능력은 어마어마했다.

아무리 종말을 맞이했다고 해도, 엽해당은 이런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귀신이 됐어야 했다.

엽해당이 이렇게 강한 힘을 얻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엽해당, 네가 어떻게 다시 깨어난 건지 기억해?”

두변이 물었다.

“아니, 몰라.”

두변을 바라보던 엽해당의 눈빛이 창피하고, 부자연스럽게 변했다.

그녀는 두변과 자신이 둘도 없는 연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자신과 절절한 러브레터를 주고받은 사람은 두변이 아니었고, 정작 두변은 엽해당을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민망했다.

엽해당이 두변을 쳐다보지 못하고 말을 이어갔다.

“내가 죽은 뒤에 우리 부모님이 나를 건져 올렸고, 집에서 엄청 떨어진 곳에다 묻어주셨어. 그런데 갑자기 어느 날 내가 깨어났고, 내 머리에 뭐가 하나 생겼다는 걸 알게 됐어. 그 이후에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사람들이 다짜고짜 나를 때리려고 해서 내가 사람들을 죽이고 영혼을 집어삼켰어.”

두변이 또 물었다.

“몇 명이나 죽였지?”

“꽤 많이. 몇천 명은 될걸?”

두변은 이제야 엽해당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알 듯했다.

종말이 도래해서 이계 에너지가 하늘에서 마구 쏟아질 때, 어떤 강력한 에너지가 땅속에 묻혀 있던 엽해당의 뇌에 떨어졌고, 그때부터 엽해당이 강력한 힘을 가진 괴물이 된 것일 테다.

두변으로서는 대녕 제국에서 자신과 대립했던 소군 방진의 정체를 드디어 알게 된 셈이었다.

두세 살 때부터 그림자처럼 자신에게 붙어있던 이소강.

같은 초등학교, 같은 중고등학교, 같은 대학교까지, 이소강은 두변의 꼬리처럼 그를 따라다녔고, 꼭 왕성하게 자란 식물에 기생하듯 살았다.

소군 방진, 즉 이소강은 죽는 순간에도 두변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

그 대녕 제국이 있는 지구에서, 이소강은 유아독존인 데다, 무척 부유하고 잘생긴 소군이었고, 두변은 보잘것없는 환관이었다.

이소강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 두변에게 얕잡아 보일 게 두려웠고, 그렇다고 아예 비밀로 하는 건 통쾌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심하게 두변에게 현대 지구에서 자신을 본 적 있지만, 절대로 자기가 누군지 모를 거라고, 어쩌면 자신의 존재 자체도 모를 거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어서 두변은 또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소군 방진이 세웠던 동방 연합 왕국의 국기에는 용이 새겨져 있었는데, 방진의 소군기에는 해당화가 새겨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제일 끔찍한, 상상하기도 싫은 생각이 떠오르자, 두변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소강은 항상 자신의 이름이 촌스럽다고 투덜댔다.

그는 줄곧 개명하고 싶어 했는데, 두변에게도 어떤 이름이 좋을지 물어본 적 있었다.

그때 두변은 머리 쓰기가 귀찮아서 이소강에게 저리 가라고 손짓했다.

그러다 나중에 이소강이 이름 몇 개를 가져와서 두변에게 어떤 게 좋냐고 골라보라고 했었다.

이융기, 이원당, 이태강.

당시 두변은 책을 읽고 있어서, 대충 이름 하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두변은 자기가 가리킨 이름이 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소강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개명 신청을 하러 나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풀이 죽은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개명하려면 학교에서 증명 서류를 떼야 하고, 그 서류가 있어야만 개명신청을 할 수 있다나.

열등감이 심하고 소심한 그는 학교에 그런 부탁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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