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1장: 약탈자 연맹
‘시스템, 내가 구양진경 내공 심법을 내 딸에게 전수해줘도 되나?’
두변이 묻자, 시스템이 켜지면서 대답했다.
‘주인님, 원래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주인님께서 가진 상고 용왕의 정신력이 워낙 고급이라서 내공 심법의 각인과 복제가 가능합니다.’
두변의 전 숙주도 구양진경을 여완완에게 전수해줬다.
물론, 전 숙주는 두변 같은 방법이 아니라, 스스로 구양진경을 익힌 뒤에 여완완에게 조금씩 가르쳐주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럼 구양진경 비급을 복제해줘.’
두변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정보량이 너무 방대해서 소요 시간은 약 보름입니다.’
‘알겠어. 시스템, 난 빠르게 강해져야 해. 지금 내 정신력이 강하긴 하지만, 내 육신은 너무 허약해. 어떻게 해야 내 몸을 빨리 강하게 만들 수 있지?’
‘원래는 육류를 많이 섭취하고, 구양진경을 수련해서 몸을 건강하고, 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주인님께는 상고 용왕의 힘이 있고, 흡성대법도 할 줄 아시니, 남의 기력을 빼앗아서 강해지는 방법도 있습니다.’
‘내가 엽해당의 에너지 정체를 가진 것처럼?’
‘맞습니다. 지금 현대 지구는 이계 에너지 기운이 무척 강합니다. 대부분의 강한 불사족, 여귀, 악마에게는 모두 에너지 정체가 존재합니다. 그러니 그것들을 죽인 뒤에 에너지 정체를 가지시면 됩니다. 그럼 주인님께선 그들의 정신 속성과 공격 방식을 복제할 수 있고, 그들의 힘을 빨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흡성대법도 한계가 있어. 이 기술은 한 번 시전 할 때마다 내 근맥이 망가지고, 장기간 사용하게 되면 아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돼. 가볍게는 반신불수가 되겠지만, 심한 경우엔 주화입마해서 근맥이 다 터져버리지.’
‘아,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주인님께서 가진 상고 용왕의 에너지는 첨단 고급 에너지입니다. 상고 용왕의 에너지는 주인님께서 흡수하는 에너지를 완전히 깨끗하게 정화할 수 있다는 뜻이죠.’
‘상고 용왕의 힘은 거의 뭐 치트키로군?
흡성대법은 부작용이 너무 심해서 대녕 제국에서도 몇 번 안 썼는데, 이걸 현대 지구에서 신통방통하게 쓸 줄은 몰랐군.’
두효가 수련을 끝낸 뒤, 열정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아빠, 이제 아침 먹어요. 그리고 아침 먹고 나면, 같이 밖에 나가서 사람을 모아봐요. 3개월 안에 난호영을 꼭 1천 명 규모로 만들어야 하니까요.”
하루, 이틀, 사흘, 그리고 열흘의 시간이 지났다.
난호영에 있던 두변과 두효는 풀이 죽어 있었다.
두 사람이 근방 몇십 리를 구석구석 다 뒤졌지만 산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종말이 도래한 뒤로 15년이 지났으니, 인간이 아직 살아있는 것도 기적이고, 그나마 살아있는 사람은 각 세력에 소속되어 있을 것이다.
3개월 안에 난호영을 1천 명 규모로 키운다는 건 너무 허황되고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두변은 시스템의 조언대로 열흘 내내 고기를 먹었고, 매일 쉬지 않고 수련한 터라 몸이 많이 회복되었다.
하지만 그는 구양진경으로 흡수한 현기로만 무공 향상을 할 수 있던 터라, 무공 수준은 무척 더디게 올라가고 있었다.
무공 수준을 가장 빨리 향상할 수 있는 건, 시스템의 말처럼 강력한 이계 괴수를 죽이고, 괴물의 에너지 정체를 흡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근방 몇십 리 내에 강력한 불사족이나, 이계 괴수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강력한 괴물 대신 변이 멧돼지와 변이 표범을 두어 마리 죽였다.
변이 멧돼지와 표범은 더없이 영양가 있고 맛있는 음식이었다.
변이 동물은 비록 이계의 에너지 때문에 변이가 일어나긴 했지만, 병균이 있는 불사족도 아니고, 방사능에 오염되지도 않았다.
변이 동물은 살코기도 맛있지만, 무엇보다 체력 증강에 큰 도움이 되었다.
두효는 두변의 회복을 위해서 혼자 산에 올라가서 위험을 무릅쓰고 변이 동물들을 사냥해왔다.
사실 두변이 진정 필요한 건 에너지 정체를 흡수할 수 있는 강력한 괴물이지만, 열흘이 지나도록 강력한 괴물을 한 마리도 마주치지 못했다.
결국, 난호영의 세력 확장이나, 두변의 무공 향상은 열흘 내내 거의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두변은 속으로 매일 외칠 수밖에 없었다.
‘난 진짜 진짜 엄청 강해져야 한다고!’
장소만은 약탈자 연맹의 소교(少校) 직책으로, 무려 11급 전사인 데다 백여 명의 수하를 거느린 여인이었다.
약탈자 연맹은 세상의 종말이 도래한 뒤에 만들어진 세력인데, 온갖 비열하고 더러운 짓을 일삼으며 연맹을 유지해나갔다.
연맹에 소속된 사람은 전부 무공이 강한 악인이었고, 상하관계와 계급이 무척이나 엄격했다.
한 사람의 실력이 곧 그 사람의 지위가 되고, 수하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거느릴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하지만 만약 수하의 무공이 자신보다 뛰어날 땐, 수하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자리를 빼앗긴다.
약탈자 연맹의 사람들은 모두 피로 만들어진 권력을 쥐고 있다고 할 만했다.
장소만도 많은 사람을 죽여왔다.
그러다 그녀 자신이 제 사부를 제 손으로 죽였을 때, 더는 약탈을 업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 장소만은 수하들을 데리고 모험을 하기 시작했고, 아주 위험한 곳에서 사냥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계 에너지가 가장 풍부한 깊은 산림과 대지의 균열을 찾아다니며 사냥을 했다.
사냥의 난이도와 위험도가 높은 대신, 그만큼 수확하는 것들이 희귀하고 유용했다.
장소만은 사냥을 통해 이수의 가죽, 이수 고기, 이수 뼈 등을 얻을 수 있었고, 이 시대에 이런 것들은 전부 보물이었다.
게다가 장소만은 이수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 정체를 수십 개나 얻을 수 있었다.
에너지 정체는 황금이나 백은보다 훨씬 더 값어치가 있는 물건이었고, 이능 무기나 이능 갑옷을 제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에너지 정체를 얻는다고 해도, 태강 제국의 지도층이나 약탈자 연맹의 최고층만 이능 무기와 이능 갑옷을 만들 권한이 있었다.
그러니까 장소만은 에너지 정체를 얻게 되어도 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장소만과 그녀의 수하들은 인생 최대 난제에 부딪히고 말았다.
장소만이 수하들과 함께 사냥하기 위해서 대지 균열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상상 이상으로 기이하고 강력한 이수인 매영체도(魅影剃刀)를 마주치게 된 것이다.
매영체도는 대지 균열에 사는 죽음의 신으로 불리는 것으로, 눈이 없고, 시력이 아닌 파동으로 주위를 파악했다.
이 괴수는 1미터 길이의 몸에 다리 4개와 팔 2개를 가지고 있었다.
몸의 외부는 칼과 창도 안 들고, 심지어 코일 건도 안 들 정도로 강력한 가죽이 있었고, 움직이는 속도가 초속 30미터인 데다, 몸놀림이 매우 민첩했다.
매영체도의 두 손은 그 어떤 칼보다 날카로워서, 사람을 손쉽게 두 동강 낼 정도로 강인했다.
게다가 힘은 또 어찌나 센지, 1미터도 안 되는 체구로 자동차 한 대를 장난감 뒤집듯이 뒤집을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매영체도를 만났다 하면, 죽기 살기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장소만은 오늘이 정말 운수 없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하필 이수 중에서도 제일 희귀하고, 막강한 매영체도를 덜컹 마주치지 않았나.
매영체도는 눈이 없음에도 이동 속도가 빠르고 정확했고, 장소만 일행이 매영체도와 마주치자마자 벌써 30여 명이 죽었다.
장소만은 멈칫거릴 시간도 없이 곧장 뒤돌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뒤에서 수하들의 비명이 들려왔지만, 그 소리를 뒤로하고 이를 악물고 달릴 수밖에 없었다.
매영체도 괴수는 장소만의 수하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있었다.
뒤쪽에 있는 수하들의 희생 덕에, 장소만은 7, 80명 수하를 데리고 간신히 대지 균열의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장소만과 수하들은 백 리를 넘게 도망쳤는데도 멈출 엄두를 내지 못했다.
“소교! 벌써 백 리 넘게 도망쳤으니, 그 악랄한 괴수도 우리를 쫓아오진 못할 겁니다. 앞쪽이 난호영 취락이니, 거기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체력을 회복하는 게 좋겠습니다.”
장소만의 수하 중 상위(上尉) 계급 하나가 말했다.
이 남자가 장소만을 쳐다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장소만의 몸매는 가히 마귀 같은 몸매라고 할 만했다. 장소만은 이계 에너지 때문에 혈맥이 변이되었는데, 강력한 무공을 얻게 되면서 청춘 외모를 유지하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세상의 종말이 도래한 뒤, 장소만의 미모는 영원히 20대에 머물렀다.
게다가 그녀의 무공 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녀의 몸매도 더욱 풍만해지고 화끈해졌다.
약탈자 연맹에서도 그녀를 어떻게 하려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그녀만 보면 다들 침을 질질 흘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장소만은 신변에 위협을 느껴서 어쩔 수 없이 모험 사냥을 하겠다는 이유를 대면서 연맹에서 도망쳐 나온 셈이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연맹에서 그녀보다 직급이 높고 강한 약탈자 소장(少將)이 그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장소만은 여러 가지 이유로 남자에 대한 혐오감이 극에 달했다.
장소만이 남자를 혐오하게 된 최초의 이유는 그녀의 고등학교 첫사랑 때문이었다.
당시 장소만은 체육 특기생으로, 800미터, 1,000미터 달리기가 그녀의 주종목이었다.
장소만은 발육이 빠른 데다 정도가 남달랐고, 얼굴도 예뻐서 학교에서 여신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남들과 다를 바 없었던 사춘기 소녀 장소만은 한 학년 아래의 무척 준수한 남자 후배를 좋아하게 됐다.
남자 후배는 생긴 것도 조각처럼 생겼는데, 온몸 전체에서 뭔가 우울한 분위기를 풍겼다. 성적도 만년 1등인 데다, 다재다능해서 각종 잡지나 신문에 투고를 해서 돈도 벌고, 피아노도 칠 줄 알았다.
아무튼, 그 후배는 어떤 면에서 보아도 모든 여학생이 꿈꾸는 만화 주인공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잘생긴 후배가 갑자기 장소만을 찾아와서 그녀와 연애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소만은 그의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뻤다.
그녀는 후배와 처음으로 밖에서 만나기로 약속했고, 제대로 된 첫 만남에 너무도 떨리고 설렜다. 하지만 첫 데이트 후, 그 만화속 순정남 같던 후배가 악질이라는 걸 바로 깨달았다. 자신의 엉덩이가 까맣다고 바로 퇴짜를 놓았으니까.
대학교에 진학한 뒤 만난 변태 같던 훈련 코치, 그리고 약탈자 연맹에서의 그의 사부 변태까지 겪고 나서는 남자에 대한 모든 환상이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그후로는 남자를 보기만 해도 혐오감이 샘솟게 되었다.
덕분에 장소만은 연애 감정을 한 번도 느끼지 않았고, 매일 수련과 모험에 빠져 살 수 있었다.
“난호영에서 하루 쉬었다 가자.”
장소만이 명령한 뒤, 80여 명의 수하들을 데리고 난호영을 향해 달려갔다.
밤이 되자, 두변은 여느 때와 같이 딸에게 이야기를 해주었고, 두효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곤히 잠들었다.
두변은 오늘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열흘이나 지났는데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만나지 못했고, 상상했던 강력한 이수를 마주치지도 못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한 무리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두변과 두효는 80여 명 사람에게 포위되었고, 십여 자루의 총이 두 사람을 겨누었다.
“이제 이 영지는 약탈자 연맹이 거둔다! 모든 물건을 놔두고 사람만 밖으로 나가라. 나가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죽여주마.”
여인 하나가 두변과 두효에게 말한 뒤, 수하에게 명령했다.
“촛불을 밝혀라. 저들의 몸을 수색하고, 남길 만한 게 있으면 전부 빼앗아라.”
촛불이 밝혀지자, 방 안이 환해졌다.
무시무시한 약탈자 소교 장소만은 두변의 얼굴을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두변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자신의 첫사랑이면서 변태이고, 반평생을 괴롭게 했던 남자?
장소만은 두변이 아직 죽지 않은 것도 놀라웠고,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두변, 그 인간쓰레기, 변태 새끼? 너 오늘 잘 만났다. 죽어라!”
장소만이 소리쳤다.
같은 시각, 장소만의 수하들을 무참히 죽였던 매영체도가 장소만 등의 냄새를 맡고 난호영 취락으로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