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4장: 재회
기씨가 말했다.
“다, 당신은 죽은 거 아니었나요?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당신은 이미 죽은 거 아니었나요?”
한참이 지났는데도 그녀는 시종일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변의 얼굴을 바라봤다.
비록 두변의 얼굴이 크게 바뀌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말하자면 깁니다. 그런데 어째서 북명검파 안에 한 사람도 없이 텅 빈 겁니까?”
기씨의 표정은 두변을 더욱더 의혹에 빠지게 했다.
‘한 사람도 없다고? 북명검파가 텅 비었다고?’
그녀는 정말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기씨가 말했다.
“나는 몰라요. 아들이 다섯 살이 된 뒤, 난 이 석실로 들어와 폐관을 하고 있어요. 북명검파의 오성 진을 지키기 위해서요.”
아들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맞아요. 당신의 아들. 두백(杜陌)이라고 해요. 천부적인 자질이 대단히 뛰어난 아이죠.”
두변은 눈 앞의 여인을 바라봤다.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여전히 심금을 울릴 정도로 아름다워서 기껏해야 이제 막 서른을 넘은 것처럼 보였다.
단순히 외모만 보면 두변이 그녀보다 더 나이가 많은 것처럼 보였다.
두변이 말했다.
“아이가 겨우 다섯 살인데 어떻게 아이 곁을 떠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이 석실에서 폐관을 하는 건 영도현을 위해 절개를 지키려는 겁니까?”
“아니, 당연히 아니에요. 나는 예전에 영도현을 몹시 사랑했지만 그가 소군 방진에게 허리를 굽힌 뒤로, 그는 영혼을 잃어버렸어요. 더는 내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어요. 최근 10년 동안 내가 이 석실 안에서 폐관하게 된 이유는 누군가 나를 가둬두고 유배를 시키는 셈이죠!”
두변이 그 말에 놀라서 물었다.
“가뒀다고요? 유배요? 북명검파에서 누가 당신에게 벌을 줄 수 있습니까? 어째서 당신에게 벌을 준 겁니까?”
“새로운 북명종주가요. 내 아들 두백이 몹시 나를 애틋하게 여겨서 무도 발전이 지체되었어요. 새로운 종주가 그를 제자로 거뒀는데 그 애가 빨리 독립하고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나를 이곳에 유배시키고 가둬두고 철저하게 아이와 단절시켰죠.”
“새로운 종주가 누굽니까?”
기씨의 눈빛이 어딘지 복잡하게 변했다.
“방청의예요.”
두변은 너무나 의아했다.
방청의라니?
자신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미모를 훼손했던 그 여인이?
불과 몇 년만에 북명검파의 종주가 되었다고?
그건 너무나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가 북명검파의 종주가 되었을 때 무공은 어땠나요? 용모는 회복되었나요?”
“용모는 회복되지 않았지만 무공은 극도로 강해서 영도현이 가장 강했을 때를 뛰어넘었어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15년 전에 두변이 마지막으로 방청의를 만났을 때, 그녀는 기껏해야 2품 무사에 불과했다.
고작 5년 만에 그녀가 1품 무사, 준종사, 종사, 대종사를 넘어서서 무존이 되었다고?!
이게 무슨 귀신이 곡할 일일까?
그건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신은 이 석실에 갇힌 뒤에 발생한 모든 일을 다 모르고 있는 겁니까?”
“몰라요.”
두변이 그녀를 한참을 바라본 뒤 물었다.
“나와 나가겠어요?”
기씨가 다가와서 두변을 살짝 포옹한 뒤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나는 여기에 있는 게 제법 좋아요.”
“아들이 걱정되지 않아요?”
“그 애는 무사해요. 나는 느낄 수 있어요.”
두변은 그녀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바라본 뒤 석실을 떠났다.
석문이 또다시 굳게 닫혔다.
기씨는 계속 안에서 갇혀 있는 걸 택했다.
두변은 해저를 떠나서 바다 위로 떠올랐다.
이 세계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우선 악마가 이 세계에 침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눈앞의 이 세계는 정상적이고 깨끗했다.
그런데 북명검파에는 어째서 아무도 없었을까?
방청의는 어떻게 그토록 강해졌을까?
마음 가득히 의문을 품은 채 두변은 끊임없이 물결을 밟고 서쪽으로 향했다. 대녕 제국의 경성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인 건 그가 천 리나 되는 해역을 마구 질주했지만 배 한 척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건 더욱더 이상했다.
북명검파의 영역을 벗어나면 바다 위로 배들이 바쁘게 오가는 게 정상이었다. 각양각색의 해상 무역을 하는 배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역을 하는 큰 배든 작은 배든 한 척도 볼 수 없었다.
이 세계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두변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시 후, 하늘에 흑점 하나가 나타났다. 그건 몹시 높게 날고 있었는데 가까워질수록 흑점이 점점 더 커졌다.
두변은 바닷물에 들어가서 하늘에 있는 그것을 관찰했다.
그 물건이 머리 위를 날아갔을 때, 두변은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건 뜻밖에도 더할 나위 없이 거대한 비행선이었다.
500미터 이상의 길이에, 150미터 너비, 50미터 높이의 비행선이었다.
이 세계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고작 15년이 지났을 뿐인데 비행선이라니.
이윽고 더욱더 무시무시한 장면이 나타났다.
그 비행선이 앞에 있는 무인도를 향해 발포하기 시작했다.
콰광!
비행선이 발사한 건 포탄이 아니었다.
에너지 광구(光球)로, 속도가 더할 나위 없이 빨라서 적어도 음속의 수십 배를 넘어섰다.
그 대형 에너지 광구가 무인도에 맞았지만 폭발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그다지 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무인도에 있던 모든 것이 싹 평지가 되어버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암석으로 울퉁불퉁하던 무인도는 암석들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진짜로 평지가 되어버려서 콘크리트로 만든 광장보다 더 평평할 뿐 아니라 매끈해졌다.
그 비행선의 에너지포의 전투력은 너무나 대단했다.
두변은 그 장면을 보고 머리가 쭈뼛 섰다.
이 세계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방청의가 5년 만에 무존의 경지에 오른 데다가, 이렇게 강한 비행선이 나타났다고?!
현대 지구에도 이렇게 대단한 비행선은 없는데?
이어서 그 비행선은 또 다른 목표를 조준하기 시작했다. 이번 목표는 수백 리 밖에 있는 작은 섬이었다.
그건 두변의 정신력이 탐색할 수 있는 범위 밖의 것이었다.
몇 분 뒤.
슉!
또 대단한 에너지 구체 하나가 힘차게 쏘아져 나왔다.
두변이 그 에너지 구체의 속도를 대체로 계산해보니 대략 음속의 60배에 가까웠다.
고작 몇 초 뒤, 그 강한 에너지 광구가 2백 리 밖에 있는 작은 섬에 적중했다.
또다시 더할 나위 없이 밝은 빛이 터져 나왔지만 여전히 별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런 뒤, 2백 리 밖에 있던 그 작은 섬에 있던 모든 것이 마찬가지로 평평하게 깎여버렸다.
두변은 이 세계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갑자기 강한 에너지가 해수면 전체를 쓸어버리듯 훑었다.
그리고 잠시 후, 두변은 꼼짝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비행선은 너무나 강했다. 두변이 바다 밑에 숨어있는데도 스캔할 수 있을뿐더러, 그를 고정시켜 버리다니.
이윽고 비행선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진 뒤, 에너지포 수십 대가 두변을 조준했다.
“낯선 이는 즉시 모습을 드러내고 항복해라. 그렇지 않으면 가차없이 사살하겠다!”
두변은 물 위로 떠오르면서 두 손을 높이 들어 자신에게 적의가 전혀 없다는 뜻을 드러냈다. 만일에 대비하기 위해, 두변은 자신의 얼굴을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바꾸었다.
잠시 후, 대형 헬기 크기의 비행기가 비행선에서 날아오더니 해수면 위에 착지했다.
병사 네 명이 비행기 안에서 걸어 나왔다.
그 병사 네 명은 검은색 특수한 갑옷을 입고, 손에는 몹시 낯선 모양의 총을 들었다.
총구 네 개가 동시에 두변을 조준했다.
“낯선 이여, 당신은 체포되었다. 반항의 행동은 조금도 하지 말아라. 그랬다가는 가차 없이 사살하겠다!”
두변이 말했다.
“나는 아무런 적의도 없다!”
그중에 병사 한 명이 다가와 수갑 모양의 물건을 꺼내서 두변 손에 채웠다.
수갑의 어떤 버튼을 누르자, 갑자기 전광(電光)이 번쩍였다.
이건 에너지 수갑인가? 이렇게 고급 물건이 있을 수 있어?
이어서 두변은 그 소형 비행기 안으로 끌려갔고, 곧 거대한 비행선의 갑판 위에 착지했다.
“내려!”
이윽고 네 사람은 두변을 끌고서 거대한 비행선의 내부에 진입했다.
그 비행선의 내부는 두변이 상상했던 것과 달랐다. 컴퓨터 스크린 같은 것이나 전기 회로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았다.
비행선의 내부는 몹시 거대해서, 안에는 각양각색의 비행체가 가득 놓여 있었고, 각각의 비행체마다 소형 에너지포가 장착되어 있었다.
비행선 안에서 병사들이 한 줄씩 줄지어서 걸어갔다.
두변은 작은 감방 안으로 보내졌다. 금속 의자에 앉았고 다리가 곧 묶였다.
선두에 있는 병사가 말했다.
“낯선 이여, 조금만 기다려라. 우리 장군께서 돌아와 널 심문할 것이다!”
아무리 에너지 수갑을 찼더라도 손쉽게 벗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두변은 그렇게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장군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는 이 세계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었다.
몇 분 정도를 기다리자, 서른 즈음의 여자가 들어왔다. 단발머리에 늠름한 자태를 뽐내는 그녀는 몸에 딱 붙는 위풍당당한 갑옷을 입고 있었다.
“장군!”
“장군!”
소형 감옥 안에서 병사 세 명이 일제히 인사를 했다.
이 여자가 뜻밖에 장군이란 말인가?
그녀는 두변 앞에 앉아서 번쩍이는 듯한 눈빛으로 두변의 얼굴을 훑어본 뒤 냉랭하게 물었다.
“낯선 이, 네 신분을 말해라. 어째서 너는 우리가 훈련하는 해역 안에 나타난 거지? 제국은 이미 보름을 앞당겨 이 해역을 비우면서 어떤 이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았다.”
어쩐지 그래서 바다에서 배 한 척도 볼 수 없었군. 이제 보니 훈련 중이었나 보군. 어쩌면 신식 무기를 실험하는 건지도 모르고.
다만 그녀가 말하는 제국은 대체 무슨 제국일까?
“너는 어떤 세력의 사람이지?”
그 여장군이 냉랭하게 물었지만 두변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장군이 냉소하며 말했다.
“입을 열지 않겠다? 제국의 포로로 잡힌 자 중에 입을 열지 않은 사람은 지금껏 한 명도 없었지. 가서 정신술사들을 불러와라!”
“예!”
여장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 하나가 대답했다.
잠시 후, 연로한 노인 네 명이 도착했다. 그들은 마로 된 옷감의 장포를 입고 있었다.
여장군이 말했다.
“이 포로의 입을 열게 하세요.”
정신술사 네 명이 대답했다.
“문제없습니다!”
이윽고 그중 한 명이 금화 하나를 꺼내서 두변 앞에 있는 탁자 위에서 힘껏 빙그르르 돌렸다.
이어서 그 정신술사 네 명이 손을 동시에 뻗어서 두변의 머리 위에 올리고 강한 정신력을 내뿜었다.
그들이 방출한 정신력은 실로 만만치 않았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쉽게 정신 방어가 무너졌을 것이다.
그런데 두변은 그때 눈을 크게 뜨고 탁자 위에서 빙그르르 돌고 있는 금화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금화에 찍힌 인물의 얼굴이 몹시도 익숙했다. 그건 바로 자신의 얼굴이었다.
자신의 얼굴이 금화에 찍혀 있다니, 그건 무슨 뜻일까?
그와 동시에, 밖에서 빼곡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강력한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대단한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그 사람 곁에는 적어도 대종사급 고수 십여 명이 있었다.
문이 열리고, 절세미녀인 소녀가 밝은 노란색 갑옷을 입고 감방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의자에 앉아 있던 여장군이 벌떡 일어났다. 문을 지키던 병사 두 명도 순식간에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곁눈질도 하지 않았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여장군이 인사를 올렸다.
눈앞의 이 절세 미소녀가 황태자라고?
게다가 그 소녀는 조금 익숙한 얼굴이었다. 소녀는 나이가 많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아름다웠다. 특히 두 눈에 총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 외에 또 한 가지, 그녀는 누군가를 몹시 닮아 있었다.
이 제국의 황태자는 감방 안에 있는 두변을 보더니, 총기 넘치는 눈이 순식간에 동그래졌다.
이윽고 소녀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눈물이 그녀의 큰 눈에 모이기 시작하더니, 정교한 입술도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나서 그녀가 갑자기 달려오더니 두변의 목을 꼬옥 껴안았다.
“아버지! 부황!”
이번엔 두변이 더 놀라고 말았다. 분명히 제 얼굴을 바꿨다. 눈앞의 이 총기가 가득한 미소녀가 뜻밖에 자신을 알아볼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