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장: 동태평양으로
두변은 여전히 황궁 꼭대기 층에서 가만히 조언평을 바라봤다. 비꼬는 듯한 표정이랄까.
조언평은 숨이 쉬어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머리가 저릿하다 못해서 두개골이 열릴 것 같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운명 대마주 조언평은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카메라 하나를 빼앗아서 되감기를 했다.
그러자 그는 상황이 일어났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모든 게 너무 빨리 일어났다.
고작 단 한순간, 0.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일어났다.
그의 악마군단 190만이 순식간에 모든 에너지를 방출했지만 제대로 공격을 하기도 전에 태강 제국의 황궁 위에 금황색 태양 하나가 나타났다.
그런 뒤 악마군단 190만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그 순간은 더할 나위 없이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물론 그의 체면을 대단히 구기는 장면이기도 했다.
조언평이 말끝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내버려야 한다고 했는데 결국 적이 그들을 그렇게 죽였으니까.
그는 두변을 도구 취급하며 제대로 한 번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결국 두변이 대군을 전멸하도록 죽여버렸다.
조언평은 너무나 터무니없다는 느낌만 들었다. 이 모든 게 사실이 아니라, 그의 허황된 환상 같았다.
태강 제국 동부 행성의 총독이 거느린 몇만 대군도 온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조언평이 입을 열고 물었다.
“두변, 방금 그 물건은 뭐지? 순식간에 내 백만 악마군단을 없애버린 거 말이다.”
두변이 대답했다.
“건곤멸마 진이다.”
“이렇게 대단한 대량 살상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어째서 사용하지 않은 거지? 악마 사자와 그토록 처참한 전투를 치러서, 너의 인류 군단에 수많은 사상자가 났잖아. 심지어 전투 상황은 절망적인 지경에까지 이르렀었고. 머저리 여왕 막한이 배신하지 않았다면 네 태강 제국은 이미 멸망했을 거다.”
“대단한 살상 무기라면 당연히 가장 중요한 곳에 써야 하는 거 아니냐? 만약 악마 사자에게 이걸 썼다면 내가 어떻게 네 대군을 전멸시킬 수 있겠냐?”
‘전멸이라고?!’
그 단어에 조언평은 심장이 세게 떨린 것 같았다.
그래. 그의 대군은 전멸했다. 모든 악마가 하나도 남지 않고 깨끗이 죽어버렸다.
본래 태강 제국의 도성을 없애러 왔을 때 이렇게 많은 악마 군단을 동원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찍으려고 한 탓에 동반구에 있는 악마 군단을 전부 총동원한 것이다.
그 말은 지금 그는 병사 하나 없는 사령관이 되었다는 말이었다.
그는 더 이상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운명 대마주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두변은 여전히 비아냥대는 눈빛으로 조언평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조언평, 너는 한 번도 주인공을 맡은 적이 없어. 너는 말하기도 하찮은 조연에 불과해. 내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디딤돌 한 조각에 불과하다고. 너는 말끝마다 태강 대제 이소강이 하찮다고 했지만 그는 대녕 제국이란 차원에서 나와 4, 5년이나 결투한 끝에 패배하며 전멸했지. 그에 비해 너는 내 앞에서 고작 반 년도 못 버텼어. 그러니 너는 이소강보다 못한 놈이야! 너도 하찮은 어릿광대에 불과해. 예술적 조예라고는 하나도 없고, 미학적 관점이라고는 전무한 어릿광대. 그러니 예전에 네가 어릿광대 환관으로 분장한 건 아주 정확한 거지. 네가 내심 자기가 어떤 물건인지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 말이 조언평의 가슴에 무자비하게 내리쳤다.
조언평은 숨을 쉴 수 없고, 무언가 무거운 것이 가슴을 끊임없이 누르고 있는 듯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숨을 내쉬면서 그런 답답함과 고통을 제압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우웩!
그는 계속 헛구역질을 했고 결국에는 피를 한 모금씩 연달아 쏟아냈다.
무려 십여 번이나 피를 마구 뿜어냈다.
그제야 조언평의 마음속을 누르던 고통이 점점 풀리면서 그는 침착해졌다.
이윽고 그의 얼굴은 온 세상을 업신여기는 불손한 표정 대신, 냉랭하고, 원망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두변, 내 대군이 전멸했고 난 병사 하나 없는 사령관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들 또 어떠냐?”
두변이 말했다.
“너는 병사 없는 사령관이 되었을 뿐 아니라, 대단한 병신이 되었지. 잘난 척하는 데에 실패해서 오히려 대단한 병신, 대단한 우스갯거리가 되었다!”
그 말에 조언평이 얼굴을 실룩였다.
“그런들 또 어떤데? 적어도 나는 여전히 악마 공작이다. 내 무도 수준은 여전히 너보다 백 배, 천 배는 높다. 네 건곤멸마 진이 몹시 대단하기는 하지만 네가 영원히 그 안에 숨어서 나오지 않을 수 있냐? 네가 날 죽일 수 있겠나?”
그럴 수는 없었다.
조언평이 말했다.
“하지만 네가 태강 제국의 도성을 한 발짝만 떠나도 나는 너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 있다. 네 아내와 딸들을 포함해서, 누가 감히 한 발짝만 내디뎌서 건곤멸마 진의 보호를 벗어난다면 나는 그들을 잡아다가 천 번, 만 번을 짓밟아서 그들이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주겠다!
그게 다가 아니지! 그렇지! 나는 병사 한 명도 없는 사령관이 되었다. 하지만 태강 제국의 도성 밖에는 여전히 수많은 인간이 있다. 나는 쉽게 그들을 몰살시킬 수 있다. 나는 미치광이고, 사람을 죽이며 노는 걸 좋아하지. 하루에 만 명씩 죽이면 되겠군! 그런 나날도 몹시 재밌을 것 같은데 네가 나를 어쩔 수 있겠냐?”
두변은 침묵했다.
“더욱더 중요한 건 여완완과 성화교 성녀 안젤라도 내 수중에 있다. 그들 두 사람도 네 아내지 않으냐? 지금 네가 내 백만 악마군단을 전부 죽여버렸으니, 내가 너에게 어떻게 복수할 것 같으냐? 너는 내가 어떻게 그녀들을 괴롭히고 짓밟을 것 같으냐?
내 곁에는 너와 네 딸의 목숨을 구해줬던 장우함 선생도 있다. 장 선생이 너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었냐? 너는 내가 그녀를 어떻게 괴롭힐 것 같으냐?”
조언평이 악랄하고 흉악하게 웃었다.
그러다가 격렬하게 기침을 몇 번 하고는 또 피를 몇 모금이나 토했다.
“두변, 네 여자들을 구하고 싶나?”
“당연하지.”
“내 운명마궁(命運魔宮)은 동태평양 중심 구역에 있다.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거대한 소용돌이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내 궁전이자, 내 오랜 근거지지. 그곳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 너에게 48시간을 주마.
두변, 너는 날 죽이고 싶지 않나? 너는 세 여자를 구하고 싶지 않나? 우리 최후의 결투를 치르자. 우리 두 사람 중에 단 한 명만 살 수 있다! 네가 이기면 네 여인을 데려가라. 네가 지면 죽어야 한다. 그 세 여인도 너와 함께 죽을 거다. 어떻냐?!”
그 말을 듣고 모든 이가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두변의 무도 수준이 어떻고, 운명 대마주 너의 수준은 어떻냐? 너는 두변의 백 배, 천 배 이상 강하잖아!
그런 네가 두변에게 결투를 하자고 하고, 그것도 너의 근거지에서 결투를 하자고 해?
설령 두변 백 명, 천 명이 있어도 네 상대가 안 되는데? 반드시 죽을 결투에 어떤 바보가 승낙하겠냐?’
조언평이 말했다.
“두변, 기억해라. 너에게 48시간만 주마. 지금부터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48시간 뒤에도 네가 나타나지 않으면 이 세 여인은 나에게 짓밟혀서 사람도 귀신도 아닌 모습이 될 거다!”
이어서 운명 대마주 조언평의 형체가 번쩍이며 사라졌다.
그와 함께 장우함도 사라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두변에게 눈빛을 보내 알릴 수밖에 없었다.
오지 마세요, 오지 마세요. 날 상관하지 마세요!
‘두변, 너에게 48시간만 주겠다. 우리 생사가 달린 결투를 해서 둘 중 한 명만 살아남는다!’
허공에서 여전히 조언평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그의 형체는 흔적없이 사라졌다.
아무도 그가 떠나지 못하게 막을 수 없었다. 그의 무도 수준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이다. 설령 두변 휘하의 모든 사람을 다 집결한다고 해도 그를 붙잡아둘 수는 없었다.
그와 반대로 두변의 사람들은 건곤멸마 진의 보호 범위를 떠나기만 하면 즉시 조언평에게 도살당할 것이다.
두변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내 꼭 간다!”
태강 제국 황궁 앞의 광장.
동부 행성의 총독이 휘하의 5만 대군을 이끌고 일제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총독이 필사적으로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잠시 후 이마 전체가 피투성이가 되어버렸다.
“폐하, 신, 잘못했습니다, 신이 잘못했습니다!
신, 천 번, 만 번, 죽어야 마땅합니다. 신은 너무 두려웠습니다!
신을 죽이셔도 신은 감히 아무런 원망의 말도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청컨대 신의 아내와 자식들, 신의 5만 병사는 용서해주십시오.
폐하, 말세가 온 지 이미 십여 년이나 되어서 인류가 너무나 쇠잔해졌습니다. 모든 인류가 무척 귀중하니, 모든 죄는 신 한 사람이 감당하겠습니다. 저 한 사람을 죽이시고, 나머지 5만 명을 봐주십시오!”
총독의 말을 들은 5만 명은 소리 내어 통곡하면서, 필사적으로 땅에 이마를 찧으며 사정을 했다.
“폐하, 제발 신 한 사람만 죽이시고, 5만 명을 용서해주십시오!”
동부 행성의 총독이 목을 놓아 우는데 그 목소리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처럼 보였다.
그의 뒤에 있는 5만 대군도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을 움직이는 목소리로 따라서 큰소리로 통곡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찧으며 말했다.
“폐하, 총독 대인을 용서해주십시오. 그분도 인류의 미래를 위해 치욕을 참으신 겁니다.”
5만 명이 사정을 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데, 점점 더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만 같았다.
두변이 담담하게 말했다.
“정말이지 비열하고 교활한 놈이로구나. 분명 자신이 구차하게 살고 싶으면서, 5만 명을 굳이 끌어들여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다니. 너는 내가 다수를 책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너는 인간의 수가 몹시 줄어들어서 나머지 모든 이가 다 귀중하니, 분명히 이 5만 명을 모조리 죽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필사적으로 저들을 위해 사정을 하는 척하면서 저들을 감동시켰다. 만약 내가 널 죽이면 이 5만 명은 내심 나를 원망하게 될 테고, 심지어 나와 반목하겠지. 내가 이 5만 명에게 원망을 받고싶지 않고, 이 5만 명의 인심을 거두어들이고 싶으면 나는 널 용서하고 죽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잘 계산했구나. 대단히 교활한 마음씀씀이야!”
두변의 목소리는 몹시 평온했지만 동부 행성 총독은 얼굴이 흙빛이 되어서 몸을 떨기 시작했다.
두변이 말을 이었다.
“내가 모든 인간의 목숨을 몹시 귀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약탈자 연맹의 백만 대군이 날 공격하러 왔을 때, 나는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여섯 원수와 5대 총독이 다 날 배반하고, 태강 제국 도성의 백만 명이 날 버리고 가도 나는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동부 총독, 네가 예전에 날 버리고 간 일로 나는 너를 죽이지 않는다. 네가 암암리에 약탈자 연맹의 대원수와 결탁해서 그가 태강 제국의 새로운 황제가 되도록 시도했지만 나는 그 이유로도 널 죽이지 않는다. 심지어 네가 운명 대마주 조언평에게 투항하려고 한 일로도 나는 널 주이지 않는다. 죽음이 두렵고 살고자 하는 건 매우 정상적인 일이며, 죽을죄가 아니기 때문이지. 하지만 너희는 살기 위해서, 투항하기 위해서 인간 2백만 명을 악마에게 음식으로 바쳤다. 그건 죽을죄다. 용서받을 수도 없는 죽을죄지!”
동부 행성의 총독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바닥에 엎드려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신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2백만 명의 목숨을 바꿔서 5만 명이 구차하게 살아남았다. 그러니 너희 모두는 죽어 마땅하다!”
두변이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여봐라, 태강 제국의 동부 행성의 총독을 맡았던 자와, 그 5만 군대를 전부 처형하라!”
그 말을 듣자, 그곳에 있던 5만 명이 전부 바닥에 주저앉으며 놀라서 오줌까지 싸버렸다.
일각 뒤.
“참수하라!”
태강 제국의 제1원수 이사사가 손을 힘차게 떨어뜨리자, 동부 행성의 총독과 그의 5만 대군이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한 시간 뒤.
두변은 가족에게 작별을 한 뒤, 태강 제국의 도성을 떠나 동태평양으로 향했다. 운명 대마주, 악마 공작 조언평과 마지막 결투를 치르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 중에 단 한 사람만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