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1장: 불경한 말
네 사람은 끊임없이 북쪽으로 비행했다.
태평양 전체를 지나니, 아래 해수면 위에 떠있는 얼음이 점점 더 많아지고, 빙하가 점점 더 많아졌다.
설마 정토라는 곳이 북극에 있는 걸까?
네 사람은 계속 북쪽으로 비행한 뒤 북극의 중심에 도착했다.
아래로는 온통 눈과 얼음뿐이요, 위로는 잿빛 하늘이었다.
수백 리를 더 날아가던 두변은 갑자기 이상한 점을 느꼈다.
전방의 하늘에 거대한 투명 보호막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직경이 천 킬로미터가 넘는 비눗방울이라고 할까.
휙, 휙, 휙.
임야소, 용예족 남자는 두변과 막한을 데리고 그 비눗방울을 통과했다.
눈앞의 세상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또 다른 세계인 정토에 진입한 것이다.
눈앞의 정토는 악몽 제국보다 수백 배나 큰 데다, 수백 배 더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이곳은 거대한 공간이었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번화한 대도시였다.
수많은 화려한 집이 공중에 떠있는데 집들이 다 몹시 커서 웬만하면 천 미터가 넘었다.
고전과 판타지의 결합이라고 할까.
모든 집, 광장, 화원, 심지어 호수까지 다 공중에 떠있었다.
두변이 꿈속에서조차 상상할 수 없는 번화한 도시였다.
악몽 대제는 천여 년 전에 악마 일족이 용혈대륙을 없애버리려고 했을 때, 모든 용예족이 힘을 모아서 정토 하나를 만들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악마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을 만든 다음에 용예족 중 뛰어난 수만 명이 이 정토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고.
천여 년에 지난 지금, 정토에는 천문학적인 인구가 번식해 있었다.
임야소 등은 두변을 데리고 번화한 공중의 성으로 깊이 들어갔다.
황궁 안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간 그들은 마지막으로 웅장한 전당에 도착했다.
임야소가 말했다.
“수상 각하, 용혼 소지자 두변을 데려왔습니다.”
“데리고 들어와라!”
안에서 청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두변과 막한은 전당 안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수십만 권이 넘어 보이는 책이 질서정연하게 공중에 떠있었다.
수상 대인은 은색 장포(長袍)를 입고 손에 깃펜을 쥔 채 무언가를 쓰는 중이었다.
두변과 막한이 들어온 걸 보고도 그는 고개를 들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장장 삼십여 분이 지난 뒤, 마침내 글을 다 쓴 그가 책을 닫고 손을 살짝 휘두르니, 그 책이 자기가 있어야 할 위치로 날아갔다.
수상 대인이 그제야 고개를 들어 두변을 쳐다봤다.
수상이 손을 탁자 위로 휘두르자, 3D 영상이 나타났다.
영상은 두변과 조언평의 결투 과정을 자세히 재현했다. 최후에 두변이 꿈속 마왕의 일장에 맞아 혼백이 흩어질 때까지.
그 장면을 보고 두변의 눈썹이 크게 실룩이면서 더할 나위 없이 분노했다.
이제 보니 말세 지구에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꿈속 마왕만 똑똑히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정토의 용예족들도 똑똑히 볼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대로 수수방관만 하고 있었다?
수많은 인류가 도살당하도록 내버려두면서?
조언평이 백만 악마 군단을 거느리고 태강 제국의 도성을 공격할 때, 그의 백만 악마가 인간 2백만 명을 먹어버렸을 때, 정토의 용예족들은 그 장면을 똑똑히 지켜볼 뿐 나서서 도울 뜻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수상이 물었다.
“지금 몹시 분노하고 있나? 분노는 무능의 표현이 아닌가?”
“정토는 한 번도 지구의 인류를 구하려는 뜻이 없는 게 맞습니까?”
“두변, 어째서 당신들이 그토록 약한지 알고 있나?”
“상세히 듣고 싶습니다.”
“인류가 쓸데없는 감정을 버리고, 낡은 패턴을 버릴 수 있을 때가 돼서야 진정으로 다른 차원이나 별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네. 시간은 얼마나 귀중한가. 특히 당신들 인간의 수명은 그토록 짧은데, 대부분의 시간을 무용한 감정에 낭비하고 있다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모르겠군. 그러니 장장 수천 년이란 시간이 지나도 당신들은 저급한 문명의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한 거지. 그런데 그렇게 저급한 문명을 가진 인간을 우리가 구하는 게 또 무슨 쓸모가 있겠나?
당신은 몹시 행운이라 할 수 있지. 두변, 본래 당신은 정토 세계에 들어올 자격이 없지만 당신 몸에 용혼(龍魂) 낙인이 있기 때문에 고등 문명인 정토 세계에 진입할 수 있는 거라네.
당신과 이쪽, 막한은 우리 정토 세계에서도 특수한 인재로 여기기 때문에 들여보낸 것이네. 우리 정토 세계는 어떤 실험을 진행해야 해. 용족 재생 실험이지!
용족 재생이라는 건 글자 그대로 완전 새로운 문명의 힘을 사용해서 상고시대 용족을 다시 부활시킨다는 거지. 그런데 두 사람은 체내에 용혼의 각인이 찍혀 있으니, 우리가 실험을 진행할 최고의 대상이지.
물론 그 실험은 미지수가 가득해. 지금까지 여전히 이론 상태에만 있어서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지. 일단 실패하면 당신들은 완전히 죽는 거네. 모든 세계와 모든 차원에서 죽는 거지.”
“우리에게 거부할 권한이 있습니까?”
“전혀 없지. 당신들 인간은 실험할 때에, 고릴라의 의견을 물어보나?”
“지금 지구에서는 태강 제국이 몹시 위태로운 상황인데, 내가 당신들에게 군대를 출동시켜서 도와달라고 하면 당신들은 분명히 거절할 게 맞습니까?”
정토의 수상이 담담하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하하, 우리는 꿈속 마왕과 정전협정을 맺었지. 꿈속 마왕과 모든 악마를 한꺼번에 없애버릴 절대적인 확신이 없는 이상, 우리가 전쟁의 발단을 시작하는 건 불가능해. 이른바 당신이 말한 태강 제국은 없어져도 그만이야. 어차피 그런 저급 문명은 아무런 가치도 없으니까.”
“그럼 당신들은 꿈속 마왕이 악마 대군을 거느리고 정토 세계로 쳐들어올지 걱정되지도 않습니까?”
“허허, 우리 정토의 에너지 보호막은 지고무상한 차원의 법칙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악마도 넘어올 수 없지. 악마 대군은 영원히 정토 세계 안으로 들어올 수 없어. 그렇지 않았다면 천여 년 전에 정토 세계는 이미 파멸되었지 않겠나.”
“꼭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꿈속 마왕이 정토 세계에 쳐들어오게 되면 모든 건 이미 늦어버립니다.”
“내 반드시 한마디 알려줘야겠군. 우리 문명은 당신들보다 한 등급 이상이나 뛰어나지. 나는 당신이 태강 제국의 황제이며, 파생된 지구 차원에서도 동방 연합 제국의 황제라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정토 세계에서 당신은 고작 실험 대상일 뿐이고, 교배권을 누릴 수 없는 차등 공민일 뿐이야.”
두변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교배권이라뇨?”
“문명의 발전을 위해서, 가장 뛰어난 후손을 번식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부패한 감정으로 혼인하는 제도를 버려야 했지. 전적으로 유전자라는 시각에서 교배와 번식을 진행해. 그래야 무용한 생명이 대규모로 태어나지 않을뿐더러, 정토 세계의 자원을 낭비하지도 않으니까.”
“그럼 임야소는요? 그녀에게도 교배권이 있습니까?”
“그녀는 몹시 뛰어난 자라서 교배권이 있지. 우리는 이미 그녀에게 가장 뛰어난 수컷 유전자를 짝지어줬어. 곧 그들이 교배 번식의 의무를 이행하게 될 거야.”
두변이 물었다.
“그럼 내게는 어째서 교배권이 없습니까?”
“당신에게 비록 용혼의 낙인이 있지만 저등한 종족이니까. 그래, 내가 당신에게 허락한 만남의 시간이 다 끝났군. 여봐라, 두변과 막한을 실험실로 데려가서 용족 재생 실험을 시작해라!”
이어서 용예 무사 두 명이 앞으로 나와서 두변과 막한의 혼백의 빛을 실험실로 데려가려 했다.
두변이 갑자기 물었다.
“임야소는 어딨습니까? 그녀를 불러주세요. 그녀와 이야기해야 합니다.”
수상이 미간을 찌푸렸다.
“두변, 그녀는 예전엔 당신의 아내였지만 지금 당신은 그녀의 교배권을 얻을 수 있을 리 없네. 모두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게.”
“반드시 그녀를 만나야 합니다.”
수상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알았다. 그럼 딱 10분이다!”
어떤 작은 방, 두변과 임야소가 마주 보며 앉았다.
“날 기억해?”
두변이 묻자 임야소가 말했다.
“기억해요. 당신은 내 약혼자였고, 우리는 뼛속까지 서로 사랑했어요. 나는 당신이 무엇을 물을지 알고 있어요. 나는 내 교배권을 이행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는 꿈속 마왕과 담판을 해서 딸 두효를 정토 세계로 넘어오게 만들 거예요. 물론 그러려면 내가 충분히 공을 세워야 하겠죠.”
“그럼 지상의 다른 인류는?”
임야소는 침묵했다.
“그럼 우리의 감정은?”
“감정은 고등 문명에서 방해가 될 뿐이에요.”
두변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 말은 우리가 정식으로 끝났다는 건가?”
“당신에게는 관계가 종결되었다는 의식적인 느낌이 필요하다면, 확실히 그렇다고 말할게요.”
“당신은 내가 저들에게 끌려가서 용족 재생 실험을 하는 걸 알고 있나?”
“알고 있어요.”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군.”
임야소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지며 말했다.
“알고 있어요.
두변, 낡은 것을 깨뜨리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세울 수가 없다고 했어요. 당신에게 충고 하나 할게요. 감정의 얽매임을 내려놓고 자신의 강함에 집중하세요. 그래야만 모든 문명을 구할 수 있어요. 내 말은 여기까지예요. 실험 잘해요. 그럼 이만!”
“악몽 대제는…….”
두변이 그 이름을 말하자, 임야소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멈춰요. 그분은 내 의부예요. 당신이 내게 그분에 대해 말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딸 두효 일도 꺼내지 말아요. 다 소용없어요. 모든 건 지나갔고, 우리는 끝났어요.”
두변은 침묵했다.
“당신은 어쩌면 내가 기억을 잃어서 우리 사이의 감정을 잊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명확히 알려줄게요. 지금 내 머릿속에서는 모든 게 똑똑히 기억나요. 난 그 기억들을 읽으면서 몹시 슬프다는 생각은 해요. 심지어 내 어머니에게 내 죽음으로 압박했을 때도 나는 내 자신이 너무나 연약하다고 생각했어요. 여자는 독립을 해야만 스스로 강해질 수 있어요. 경제적인 면이나 능력적인 독립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독립도 포함해서 말이에요.
이제, 내 설명이 충분한가요?”
“충분해.”
“만약 당신이 너무나 여자가 필요해서 그런 거라면 막한을 선택해도 되잖아요. 지금 당신은 신체가 없어서 나는 심지어 특수한 에너지를 사용해야만 빛으로 된 당신의 형체 윤곽을 볼 수 있어요. 그에 비해 당신과 막한은 서로의 존재를 알아볼 수 있잖아요. 당신들에게는 서로가 더 유일한 사람일 거예요.”
말을 끝낸 뒤 임야소는 곧바로 방에서 나가려 했다.
“잠깐!”
두변이 그녀를 불러세웠다.
“왜요? 내 말이 아직도 분명하지 않았나요? 두변, 당신은 무언가를 얻을 수 있으면, 잃을 수도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나요?”
“당신들의 정토 여황 폐하를 만나도록 도와줄 수 없어? 중요한 일을 상의하고 싶은데.”
임야소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정토의 등급은 삼엄해요. 당신은 여황 폐하를 만날 수 없을 거예요.”
“매우 중요한 일이야.”
“시도는 해보죠. 하지만 희망을 갖지는 말아요.”
이윽고 그녀는 곧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
한 시진 뒤.
두변은 정토 여황 폐하를 만났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보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양쪽 사이에는 에너지 병풍이 놓여 있었다.
“여황 폐하, 정토 세계에는 점술사가 있습니까?”
두변이 묻자 정토 여황이 담담하게 말했다.
“만약 네가 구원자 같은 말을 하고 싶다면 되었다. 미래에 관한 점술은 우리가 악몽보다 더 정확히 알고 있다.”
악몽은 당연히 악몽 대제를 가리킨다.
“정토 세계와 꿈속 마왕은 서로 불가침 계약을 맺었습니까?”
“알려줄 수 없다.”
“어떻게 해야 당신들이 군대를 출동해서 태강 제국을 구해줄 수 있습니까?”
“불가능하다. 우리는 너희 인간처럼 무료하지 않아. 멸절이 임박한 원숭이들을 구하러 갈 시간이 없다.”
“당신들은 용족 부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요?”
“그렇다.”
“당신들은 용예족이니, 당신들 몸에 용혈이 흐르고 있겠죠. 당신들은 새로운 용족을 부활시키려 하면서 내게는 왜 이토록 불경하게 대합니까? 당신들은 분명히 내 몸에 상고 용왕의 혼백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용족을 부활시키려면 애초에 내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정토 여황이 말했다.
“너희 인류인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너희 지구 인류의 선조는 원숭이가 맞나?”
“맞습니다.”
“그럼 너희 인류는 원숭이를 숭배하나?”
크나큰 불경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