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5장: 운명 마왕 二
정토 세계의 황궁에서는 전대미문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여황이 검은 소복을 입고 대단히 비통하게 추도사를 읊었다.
황궁 앞의 광장에 질서정연하게 수만 명이 서 있었고, 황궁 바깥의 허공에도 빼곡하게 수백만 명이 서 있었다.
거의 모든 용예가 그곳에 모였다.
정토 여황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말했다.
“나는 모든 이가 두변를 새로운 황제로 천거하고 선발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담담히 웃어 보이며 자신이 돌아올 때 다시 말하자고 했지. 그런데…… 그는 이번에는 더 이상 돌아오지 못했구나. 나는 심지어 그에게 또 보자고 말할 새도 없었다.
정토 세계를 위해, 이곳에 있는 모든 용예를 위해, 두변은 꿈속 마왕과 동귀어진했다.
사실, 이건 그가 처음으로 자신을 희생해서 세계를 구한 게 아니다. 대녕 제국에서 그는 자신을 희생해서 꿈속 마왕과 동귀어진했지. 단지 그 당시 그는 지구에 몸 하나가 더 있어서 두 번째 목숨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동귀어진한 뒤에 그는…… 더는 세 번째 목숨이 없다.”
거기까지 추도사를 읽은 정토 여황은 곧바로 비틀거렸다.
“이번에 꿈속 마왕이 침입했을 때, 태자는 용예를 배신했을 뿐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한 그는 심지어 꿈속 마왕에게 투항했다. 이번 침입에서 우리 용예는 백구십여 만이 전사했다. 여황인 나는 회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으니, 여기서 나는 정식으로 여황의 자리에서 물러나겠다.
두변 폐하가 없으니, 그럼 새로운 황제는 누구를 선발해야 할까? 우리는 꿈속 마왕과의 대전에서 두변 폐하께 함께 전투했던 전우가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로 용녀 막한이다!
나는 정식으로 내 신성한 한 표를 막한에게 투표하겠다!”
이어서 수상도 한 표를 막한에게 투표했다. 모든 용예 귀족이 전부 표를 막한에게 주었다.
정토 여황이 말했다.
“예전에는 용예 귀족만 투표할 자격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불공평하다. 그러면 구세자 폐하께서 세상을 구한 정신에 위배되니, 모든 이에게 투표할 권한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 있는 정토 세계의 모든 공민(公民)이여, 너희도 전부 신성한 한 표를 투표할 수 있다!”
그 말을 듣자, 그곳에 있는 용예 수백만 명은 완전히 들끓은 뒤에 하나같이 자신의 표를 투표했다.
물론 결과는 여전히 같았다. 용녀 막한은 99퍼센트 이상의 득표율로 정토 세계의 새로운 여황이 되었다.
황궁 안에서 선대 정토의 여황이 막한과 밀담을 나눴다.
“폐하, 경하드립니다. 정토 세계의 새로운 황제가 되었군요.”
막한은 본래 몹시 기뻐야 마땅했다. 대녕 제국이든 말세 지구든, 그것도 아니면 정토 세계에서든 그녀는 항상 높은 자리에 있는 여왕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최강의 정토 세계에서 여황이 되었는데 그녀는 아무런 기쁨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장이 완전히 텅 비고, 혼이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선대 정토 여황이 말했다.
“막한 여황 폐하, 당신은 두변 폐하의 유지를 이어야 해요. 그는 절대로 당신의 이런 모습은 보고 싶지 않을 거예요. 그 외에 나는 당신에게 드릴 말씀이 있어요. 동방 거룡의 시체는 다시 봉인해 놓아야 해요. 당신은 동방 거룡의 힘에서 물러나와서 당신의 본체로 여황에 등극해야 해요.”
막한은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임야소 언니에게 물어봐야 해.”
선대 정토 여황이 말했다.
“당연히 괜찮지요! 임야소 황후를 모셔 와라!”
잠시 후, 임야소가 전당 안에 나타났다.
막한이 말했다.
“언니, 저들이 나더러 동방 거룡의 힘을 내놓고, 거룡의 시체에서 안에서 완전히 나오래. 승낙해야 해?”
임야소가 안쓰러운 듯이 막한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승낙해. 그 힘을 내줘.”
“알았어.”
이윽고 용녀 막한은 곧바로 동방 거룡 안에서 나와서 신생아 같은 용족으로 변신했다.
그러자 선대 정토 여황처럼 꿍꿍이가 깊은 사람도 참지 못하고 흥분해서 온몸이 떨렸다. 이윽고 그녀는 막한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정토 세계와 용예는 당신이 우리 문명에게 크나큰 공헌을 해준 걸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하루 뒤, 수백만 용예가 증인이 되어주며, 막한은 정토 세계의 새로운 여황에 등극했다.
임야소는 새로운 두변궁에 들어가서 혼자서 두변을 위해 상을 치렀다.
이틀 뒤, 정토 세계는 용예 의회를 만들었고, 선대 정토 여황은 의장이 되었다.
정토 세계에서 일어나는 유희에 대해 운명 마왕은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운명 마왕은 지구의 에너지를 미친 듯이 집어삼키는 일에만 흥미가 있었다.
예전에 그는 지구의 중심 안에서만 에너지를 집어삼켰는데 이제는 수많은 촉수가 생겨서 안팎으로 에너지를 집어삼켰다.
지구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속도로 죽음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예전에 두변은 여러 번 분신술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더 이상 분신술을 쓸 수 없었다. 꿈속 마왕에게도 분신술이 효과가 없는데 하물며 운명 마왕에게는 더더욱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의 본체가 정말로 죽었다. 그렇지 않으면 운명 마왕의 눈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정토 여황도 속일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정토 세계에 가기 전에 무엇을 했을까?
신비한 장신구에 법진(法陳)을 쳐놓고, 혼백을 각인해 놓았다. 그런 뒤 연옥탑 제6층을 개조해서 그만 단독으로 존재하는 명계(冥界)로 만들었다.
두변이 완전히 연기로 사라지면 모든 차원에서 그의 존재가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전에 자신에게 작디작은 명계를 만들어놓은 뒤, 신비한 장신구에 혼백의 각인을 새겨둬야 했다.
그렇게 하면 그가 설령 살해당하더라도 그의 혼백은 명계로 돌아오는 길을 알게 되어서 외로운 넋으로 떠돌다가 연기처럼 흩어지지 않게 된다.
이 혼백의 각인은 그가 새겨놓은 기호였다.
그렇게 하면 그가 살해당해서 죽는 그 순간, 그의 혼백은 연옥탑 제6층으로 와서 혼백이 흩어지지 않게 된다.
예전에 태강 대제와 악몽 대제 모두 연옥탑은 여섯 층만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아무도 제6층에 들어갈 수 없으며, 악몽 대제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에 비해 두변은 제6층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곳은 혼돈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으며, 사차원 세계와 조금 유사했다.
두변이 이곳에 있는 혼돈 에너지를 재조합한 뒤로 제6층 연옥탑은 계단이 생겼다.
그 말은 연옥탑이 6층에만 끝나는 게 아니라 7층도 있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두변이 아무리 시도해봐도 제7층에 들어갈 수 없을 뿐 아니라, 계단 하나도 올라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가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연옥탑 제7층으로 통하는 계단은 실제로 밟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지금의 두변은 망령으로 변해서 목에 그 신비한 룬 문자가 새겨진 장신구를 걸고 있었다.
그가 계단으로 향해서 첫 번째 계단 앞에 도착해서 밟고 올라가려고 시도해 보았다.
연옥탑 제7층은 두변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반격할 유일한 기회였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눈앞의 이 미쳐 날뛰는 상황은 여전히 두변이 장악하고 있을까?
그렇다. 이것도 여전히 그의 시뮬레이션과 예측 안에 있었다.
악몽 대제가 모든 힘을 두변에게 전승해준 그 순간, 더할 나위 없이 지혜로운 두 혼백이 미래의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펼치면서, 앞으로의 길을 어떻게 가면 좋을지 추론했다.
이윽고 거의 모든 길이 다 죽을 길, 다 막다른 길로 통했다.
천 갈래 길 안에서 999갈래가 다 죽을 길, 반드시 패배할 길이었다.
유일하게 하나 남은 살길은 너무나 미친 것처럼 보일 뿐 아니라, 자발적으로 죽음을 자초하는 길처럼 보였다.
두변이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그가 악몽 대제의 미래에 관한 점술에 근거해서 수없이 추론한 끝에 얻은 유일한 살길이자, 죽음을 자초하는 듯한 길이었다.
두변이 추론한 바에 의하면 이 계단은 망자의 길이라서 혼백만 지나갈 수 있었다. 게다가 제6층 연옥탑을 거친 뒤에야 올라갈 수 있었다.
만약 이 계단을 정말로 걸어갈 수 있다면 그럼 그가 선택한 이 길이 통한다는 뜻이었다. 그의 추론이 틀린다면 모든 건 끝이 난다.
두변은 첫 번째 계단을 밟아서 올라갔다.
성공했다.
문제없었다.
계단을 따라 두변은 하나씩 위로 올라갔다.
계단의 끝에 서니 앞에 문 하나가 있었다.
그 문을 밀어서 열자, 제7층 연옥탑에 진입할 수 있었다.
정토 여황과 운명 마왕을 없애버릴 모든 희망이 이 제7층 연옥탑에 있었다.
적어도 악몽 대제의 점술과 두변의 추론에서는 그랬다.
두변이 문을 열자, 제7층 연옥탑은 완전히 어둠에 덮여 있었다.
그가 발걸음을 내디뎌 제7층에 진입했다.
그런 뒤 그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이어서 두변의 귀에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랑하는 내 아가야, 엄마가 마침내 너를 만났구나!”
“어머니, 어디에 계세요?”
“여기에 있다. 난 줄곧 네 곁에 있었어.”
다정한 목소리가 두변 가슴 앞의 신비한 장신구에서 울렸다.
두변은 급히 가슴에 건 장신구를 손바닥에 받쳐 들고 물었다.
“어머니, 이 안에 계세요?”
여자가 다정하게 답했다.
“그래. 내가 한 방법은 너와 비슷하단다. 이 장신구 내부에 혼백의 각인을 새기고 명계를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이 나를 죽였을 때, 내 혼백은 순식간에 돌아갈 곳을 찾을 수 있어서 연기로 사라지지 않았지. 게다가 줄곧 내 아이 곁에 있을 수 있었지.”
“어머니, 그럼 평상시에 저를 느낄 수 있나요? 바깥 세계를 느낄 수 있나요?”
두변이 묻자 여자가 답했다.
“그건 불가능하단다. 난 이미 살해당해서 혼백이 이 장신구 안에 붙어 있지만 이곳은 바깥과 완전히 차단된 세계다. 그래서 엄마는 네 옆에 있을 뿐이란다.”
여자의 말에 모성애가 가득했지만 안타까움도 가득했다.
“임야소가 용사가 갇혀 있을 때도 이 장신구를 걸고 있었단다. 용사는 내 영지에 속하기도 해서 나는 꿈속에서 그 아이에게 한 가지를 가르쳐줄 수 있었단다. 물론 그 아이의 꿈속을 조금 교란할 뿐이었지.”
어쩐지 임야소가 용족에 관해 그렇게 많이 알고 있었구나. 그런데 그녀도 자신이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이곳에 오니, 이제야 너와 방해 없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구나. 왜냐하면 이곳은 용옥(龍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곳은 용옥이었다.
두변은 이곳에 막 들어왔을 때, 이곳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전대미문의 충격이었다.
이곳의 공간은 더할 나위 없이 거대했다.
대체 얼마나 클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 연옥탑 자체의 크기를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
그런데 두변에게 더욱 큰 충격을 준 건 이곳에 수많은 용의 시체가 있기 때문이었다.
셀 수 없을 만큼 용의 시체가 있었다.
제7층 연옥탑에는 수만 미터 높이의 거대한 산이 있었다.
그 수만 미터의 거대한 산 위를 수많은 용의 시체가 휘감고 있었다.
용의 시체마다 수천 미터가 넘는 길이라서 얼핏 보면 이건 용의 시체를 쌓아서 만들어진 산처럼 보였다.
대체 누가 이토록 강해서 이렇게 많은 거룡을 죽여버린 걸까?
세상에 이렇게 많은 용족을 죽여버릴 수 있는 존재가 있을 줄이야?
“어머니, 누가 이렇게 많은 용족을 죽였나요?”
두변이 묻자 어머니가 답했다.
“마제(魔帝)다.”
그 말에 두변은 놀라서 숨을 헉하고 들이켰다.
이건 하늘을 거스를 정도로 대단했다.
두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마제 혼자서 이렇게 많은 용족을 죽인 건가요?”
“그래, 왜냐하면 그자는 많은 행성과 차원의 힘을 집어삼켰기 때문이지.”
“용혈 대륙은 마제가 집어삼킨 차원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가요?”
“그런데 걱정 말거라, 얘야. 그자는 이미 죽었단다.”
마제가 이미 죽었다?!
두변도 꿈속 마왕을 통해 그 정보를 얻어서 알고 있었다.
“어머니, 지금 운명 마왕이 지구의 에너지를 미친 듯이 집어삼키고 있는 건 마제를 부활시키기 위해서인가요?”
“그래. 꿈속 마왕, 운명 마왕, 나찰 마왕, 액운 마왕 등 열세 명의 마왕이 미친 듯이 주변의 차원과 세계에 침입한 뒤, 모든 행성의 힘을 집어삼키는 건 그들의 주인을 부활시키기 위해서다.”
그 말은 더욱더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강한 운명 마왕이 고작 열세 마왕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니.
그렇다면 마제는 얼마나 대단한 존재일까?
마제가 부활한다면 최후를 맞는 건 지구뿐이 아닐 것이다.
운명 마왕을 격파해서 마제를 부활시킬 계획을 중단하게 만들려면 반드시 이 수많은 용의 시체로부터 힘을 얻어야 했다.
이게 바로 연옥탑 제7층의 시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