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9장: 운명 마왕 六
그들이 예전에 충성을 바쳤던 정토 여황이 이토록 몰염치하고 악랄한 사람이었을 줄이야?
운명 마왕이 시종일관 답이 없자 또다시 외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운명 마왕이 마침내 부름에 답했다.
“미안, 시간이 없어서. 내 1초는 수억 가치가 있는데 어디 너를 상대할 시간이 나겠어?”
운명 마왕은 몹시 나른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운명 마왕, 두변은 당신에게 치명적인 화근이 아닌가요? 그가 지금 살아서 돌아왔어요. 당신과 내가 연합해서 그를 죽이면 어때요?”
운명 마왕이 하찮다는 듯이 말했다.
“연합이라고? 네 힘은 내가 볼 때 개미와 같은데 내가 너와 연합하기는 개뿔.”
운명 마왕의 말은 끊임없이 선대 여황의 존엄성을 짓밟고 있었다.
하지만 선대 정토 여황의 목소리는 더욱더 요염해서 비위를 맞추듯이 변했다.
“운명 마왕, 당신 곁에 시녀가 하나 모자라죠? 나는 어때요?”
지금 이 정토 여황은 도망칠 생각뿐이었다. 운명 마왕이 정토 세계에 와서 두변을 죽일 수 없다면 자신은 운명 마왕 쪽으로 도망쳐야 했다.
운명 마왕이 말했다.
“좋아. 네가 내 곁으로 도망쳐오겠다면 네가 오는 걸 환영하지.”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많은 용예족이 순식간에 황궁을 포위했다. 그들은 절대로 선대 정토 여황을 도망치게 놔둘 수 없었다.
꿈속 마왕의 말을 듣자 선대 정토 여황은 기뻐하며 즉시 빛 한줄기로 변해 미친 듯이 도망치려 했다.
밖에 수많은 용예가 포위하는 것?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금 그녀는 동방 거룡의 힘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쾅!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빠른 속도로 날아도, 어느 방향으로 도망쳐도 소용없었다. 에너지 벽 하나가 그녀의 길을 막았다.
그녀는 실성한 듯이 두변을 향해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아아악! 네가 재주 있으면 네 어머니를 위해 복수하거라. 몹시 미안하게도 나는 동방 거룡의 힘을 가지고 있다. 나는 불사불멸한다. 너는 나를 죽일 수 없다!”
두변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이 여자는 이미 실성한 상태에 진입했다.
그녀는 정토 태자와 정말이지 비슷했다. 심지어 정토 태자보다 더 악랄하고 몰염치했다.
두변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처참하고, 치욕적이로군.”
이윽고 그는 용의 지팡이에 박힌 거울을 꺼내서 앞에 있는 정토 여황을 비추었다.
잠시 후, 금빛 한 줄기가 선대 정토 여황의 몸에서 동방 거룡의 힘을 무참히 벗겨냈다.
만룡의 왕인 두변으로서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두변이 냉소했다.
“너는 용의 노비에 불과하다. 어디 용족의 힘을 가질 자격이 있나? 간접적으로 그 힘을 통제할 자격도 안 된다.”
정토 여황은 용족의 힘이 쏜살같이 자신의 몸에서 떠난 걸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진정 끝없는 공포에 빠졌다.
그녀는 몸을 웅크리며 두변 발밑까지 기어가서 그의 두 다리를 껴안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주인, 소주인, 저를 죽이지 마세요, 죽이지 마세요! 제발, 당신 어머니를 봐서라도 저를 죽이지 마세요!”
두변이 냉랭하게 그녀를 쳐다봤다.
지금 그녀가 두변의 어머니 얘기를 꺼낼 염치가 있다니.
정토 여황이 울면서 말했다.
“제가 비록 그녀를 배신하고 죽였지만 많은 세월 그녀를 모셨잖아요. 공을 세우진 못했지만 고생한 공은 있다고요.”
두변이 그녀의 아름답고 요염한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너는 참으로 딱하군. 너는 정토 태자만도 못해.”
두변이 무참히 그녀의 살가죽을 찢어버렸다.
단지 이번에는 동방 거룡의 힘이 없으니 그녀는 더 이상 불사불멸하지 않았다. 살가죽을 찢긴 그녀는 더할 나위 없이 고통스러워했고,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워했다.
“아아악!”
피범벅이 된 그녀가 필사적으로 발악을 하며 바닥을 내리쳤다.
“날 죽여줘. 날 죽여. 제발 날 죽여줘!”
그녀가 처참하고 울부짖으며 애걸했다.
두변이 다가가서 손바닥에 에너지를 모아 광검을 만들어서 그녀의 목을 가볍게 잘랐다.
한순간 모든 애걸 소리가 끝이 났다.
선대 정토 여황, 두변 어머니의 노비가 완전히 죽어버렸다.
그녀의 처참하면서도 몰염치한 일생이 끝이 났다.
죽은 뒤 그녀의 몸이 점점 둥글게 오그라들더니 원형을 드러냈다.
뱀, 긴 뿔이 달린 뱀이니, 교룡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녕 제국 차원에서 교룡은 이수들의 생물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었다. 하지만 용족의 세계에서 교룡은 영원히 노비에 불과했다.
그때, 운명 마왕의 목소리가 두변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두변, 이제 너와 나의 결전이 벌어져야겠지?”
두변이 답했다.
“그래.”
“언제 치를까?”
운명 마왕이 묻자 두변이 답했다.
“바로 오늘.”
운명 마왕은 지구에 있는 두변의 궁극적인 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를 없애버리면 지구는 완전히 해방되는 셈이다.
운명 마왕이 말했다.
“내가 정말 바빠서 그러는데 네가 나를 찾아오면 안 될까?”
“좋다!”
“그럼 난 지구의 중심에서 너를 기다리겠다. 생사를 건 결전을 치르자!”
두변은 곧바로 정토 세계를 떠났다. 그는 심지어 고의로 수많은 용예와 만나지 않았다.
그와 용예족의 관계는 같이 곤경에 처할 때 미력한 힘으로나마 서로 도와주는 것보다, 서로 잊고 지내는 게 더 나았다.
지구의 중심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달에 대한 이해보다 더 적을 것이다.
지구의 중심은 최고로 신비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지구의 핵심 중력뿐 아니라, 핵심 전자기장, 핵심 에너지 등등이 작용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 곧바로 지핵(地核)으로 통하는 구멍 하나가 나 있었다.
두변은 그곳으로 끊임없이 깊숙이 들어갔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온도가 점점 더 높아졌다.
두변은 계속 깊이 들어갔다.
3천여 킬로미터나 들어간 뒤, 그 앞은 바로 철과 니켈로 이루어진 지핵이었다.
지핵의 직경은 7천 킬로미터에 달했다. 가장 바깥층에 있는 금속은 반은 고체, 반은 액체인 모습이었다.
두변의 몸이 반은 액체 상태인 금속 속에 쉽게 녹아든 뒤, 지핵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그의 온몸이 곧바로 빛으로 변해서 지구 중심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지구 같지 않고 도리어 태양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시야 안의 모든 게 다 백색에 가까웠고, 섭씨 6천 도의 고온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런 온도에서 금속은 완전히 액체 상태로 흘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놀라울 정도의 압도로 인해 이곳의 철은 여전히 고체 상태였다. 게다가 모든 물질을 뛰어넘을 정도로 더할 나위 없이 강인했다.
그런 곳에는 두변의 빛 형태의 몸만이 깊숙이 들어올 수 있었다.
극도로 강인할 뿐 아니라, 극도로 타오를 듯이 뜨겁고, 또 밝은 그곳, 지구의 중심에서 두변은 운명 마왕을 보았다.
그것은 뜻밖에 큰 문어의 모습이었다. 지구의 중심이 있는 곳에서 촉수를 휘감으며 계속 온 지구의 힘을 필사적으로 집어삼키고 있었다.
정토 세계에서 두변은 운명 마왕의 분신을 보았지만 그건 평범한 남자 모습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진면목은 이토록 추할 줄이야.
운명 마왕이 웃으며 물었다.
“내 추함에 놀랐나? 어쩔 수 없다. 지구의 에너지를 집어삼키기 위해, 나는 반드시 이런 모습으로 진화해야 했으니까.”
게다가 그건 눈이 없었다.
“나는 눈이 없다. 지구의 힘을 집어삼키기 위해서 나는 반드시 가장 필요한 모습으로 진화해야 했다. 눈은 내게 전혀 필요 없었다.
그런데 이건 아름답나?”
운명 마왕이 묻자 두변이 답했다.
“매우 아름답다.”
“그래, 지구는 매우 아름답고, 지구의 중심은 특히나 아름답지! 내가 이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할 무렵, 내 마음은 정말이지 죄책감이 가득했다. 적어도 1초 정도는 망설였다고.”
그것은 두변과 정신으로 교류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입도 없으니까.
두변이 물었다.
“너는 무슨 목표를 위해 그렇게 하는 거지?”
“내 주인인 마제를 부활시키기 위해서지.”
대화를 나누는 순간조차 운명 마왕은 계속 지구의 에너지를 미친 듯이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시간을 아주 조금이라도 낭비하려고 들지 않았다.
“두변, 우리 바둑 한 판 두면 어때?”
두변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윽고 두변은 운명 마왕과 머릿속에서 바둑을 두었다.
운명 마왕이 두변에게 바둑을 두자고 한 건 시간을 끌려고 하는 게 아닌지 의심할 수 있지만, 두변은 그럼에도 그와 바둑을 두었다.
두 사람은 정신세계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중이라서, 바둑판이 한도 없이 커지고 있었다.
짧디짧은 한 시간 뒤에 두 사람은 바둑알을 천 개나 내려놓았다. 그건 이미 정상적인 바둑의 바둑알을 개수를 넘어섰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쏜살같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며칠이 지났다.
두 사람이 둔 바둑은 이미 수십만 알이 넘었을뿐더러, 바둑판도 수백 제곱미터가 넘어가 버렸다.
이어서 두 사람 다 바둑을 두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바둑알을 내려놓고 있었다.
두 사람의 정신세계로 만든 바둑판도 수십 제곱킬로미터, 수백 제곱킬로미터를 넘어섰다.
“내가 졌다!”
운명 마왕은 그렇게 말한 뒤 손에 든 바둑알을 내려놓았다.
“네가 반집 이겼다.”
두변은 그 더할 나위 없이 거대한 바둑판을 바라봤다. 수많은 흑백 바둑알이 수많은 화소(畫素)를 이루듯이 더할 나위 없이 신비롭고 복잡한 도안을 구성했다.
두변이 말했다.
“네가 애초에 질 리 없지. 우리 두 사람의 정신력으로 이 기국은 적어도 수천 년을 더 둘 수 있어.”
운명 마왕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계속 두고 싶지 않아졌어. 안 되나?”
이윽고 그가 손을 가볍게 휘젓자 거대한 바둑판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두변, 너는 연옥탑에 갔다 왔나?”
“그래.”
“너는 용족 만 마리의 힘을 얻었고?”
“아니, 용족 만 마리의 힘을 얻은 게 아니라 그들의 충성을 얻었지.”
“두변, 너희는 곧 제어핵융합의 연구를 완성할 거고, 곧 대형 우주선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러면 어때? 네가 수만 명을 데리고 지구를 떠나서 화성으로 가는 거야. 나는 너희 인류 문명을 놔주고, 너는 지구를 나에게 내어주는 건 어때?”
두변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이 거래가 설마 불공평하다고? 너는 인간 수백만 명이랑 수만 명이랑 무슨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
“별 차이가 없어. 게다가 공평한 거래에 속하지.”
“그럼 우리 거래가 성립한 거야?”
“아니!”
“어째서?”
“널 죽여야만 진정으로 오랜 안정을 찾을 수 있어. 그렇지 않으면 설령 우리가 화성으로 이주한다고 해도 멸망할 시간을 늦추는 것에 불과해.”
운명 마왕이 말했다.
“넌 날 죽이지 못해. 내가 너와 담판을 하는 건 너와 전투를 치르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야. 나는 바둑을 두면서도 지구의 에너지를 집어삼킬 수 있지. 하지만 너와 전투를 치르면 에너지를 집어삼키는 걸 멈춰야 해. 도저히 수지가 맞지 않는단 말이지.
두변, 너에게 마지막으로 물어보겠다. 네 가족과 인간 몇만 명을 놓아주고 너희가 지구를 떠나도록 해줄 테니, 너는 내가 에너지를 집어삼키는 걸 방해하지 않으면 어떠냐?”
“안 돼.”
“기왕 그렇다면 전투를 치를 수밖에!”
순식간에 지구 전체가 떨린 다음에 수많은 촉수가 전부 사라졌다. 운명 마왕이 지구를 쥐고 있던 거대 촉수들을 전부 회수했다.
운명 마왕이 수많은 촉수를 휘두르며, 직경 수만 미터의 몸을 벌떡 일으켰다.
콰과광.
순식간에 지구 전체에 격렬한 떨림이 일어났다.
절반이 넘는 해수면에 사나운 파도가 몰아치면서 해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운명 마왕이 말했다.
“두변, 아무리 네가 용족 만 마리의 충성을 얻어도 너는 여전히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찾아온 사람은 손님인 셈이니, 네가 먼저 시작하거라!”
두변은 용의 지팡이를 꺼냈다.
“멸(滅)!”
그가 명령을 내리자 거울 속 세계에 있는 용족 만 마리가 힘차게 에너지를 뿜어냈다.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에너지가 운명 마왕을 향해 힘차게 폭격했다. 이 한순간 뿜어져 나온 에너지는 핵폭탄 천 발을 넘어섰다.
운명 마왕의 몸에서 순식간에 태양의 만 배가 넘는 밝은 빛이 터져나오더니 그것의 온몸이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와 동시에, 지구의 모든 바다에서 천 미터 높이의 거대한 파도가 치솟아서 지면을 향해 세차게 솟구쳤다.
고작 이 놀라운 일격이 지구의 천지를 급변하도록 만들었다.
짧디짧은 잠깐의 시간이 지난 뒤, 빛이 흩어졌다.
두변은 운명 마왕의 문어 같은 몸이 순식간의 어둠의 그림자로 변한 걸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런 뒤 또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것은 무탈할 뿐 아니라, 심지어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두변은 놀라서 넋이 나갔다.
방금 전에 그가 얼마나 놀라운 일격을 내뿜었던가.
어째서 운명 마왕은 그 힘을 맞고도 무탈할 수 있을까?
운명 마왕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두변, 너는 내 상대가 안 된다고 진작 말했잖으냐.
너는 날 죽이지 못했지만 나를 격노하게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구나. 그 복수로 나는 모든 인류를 죽여야겠다.”
이윽고 운명 마왕이 수많은 촉수를 힘차게 뻗었다.
이번에 그것이 잡은 건 지구의 외피가 아니라 지구의 중심이었다.
그의 촉수가 2천여 킬로미터나 퍼지면서 지구의 중심 전체를 꽉 잡아버렸다.
지구의 중심에서 액체 상태의 금속이 흐르는 게 멈춰버렸다.
지구의 중심이 운행을 정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