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2장: 마제 폐하
두변이 고개를 끄덕이자, 열한 명의 마왕은 그를 더할 나위 없이 충격에 빠뜨려 버렸다.
그들의 큰 손이 용혈 행성의 양쪽을 잡고 힘껏 찢어버린 것이다.
우지직.
더할 나위 없이 거대한 용혈 행성이 무참히 두 개로 찢어져 버렸다.
용혈대륙의 직경은 지구의 여섯 배이고, 질량은 더더욱 지구의 몇 배인지 모른다. 그런 행성을 열한 마왕은 호두를 쪼개는 것처럼 쪼갰다.
용혈 행성이 둘로 찢긴 뒤, 암석 반구(半球) 두 개로 변했다.
열한 마왕은 각자 두 개의 반구 위에 서 있었다.
제1 마왕이 말했다.
“폐하께서는 용혈 행성의 지핵 중앙에 계신다. 가서 그분을 뵈어라.”
두변이 지핵 중심으로 날아갔다.
대략 일만여 킬로미터를 날아가야 했다.
두변은 끊임없이 비행해서 마침내 용혈 행성의 지핵 중심까지 날아갔다.
그곳에 마궁이 있었다.
이 마궁은 상상했던 것만큼 장엄하고 성대해 보이지 않고 몹시 고풍스러워 보였다.
그것은 암석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금속을 사용해서 만들었다. 용혈 행성의 지핵에 있는 금속 말이다.
열한 마왕이 용혈 행성을 두 개로 찢어버려서 이 마궁도 둘로 쪼개진 상태였다.
그때,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열한 마왕이 다시 두 개로 찢어진 용혈 행성을 붙여서 다시 원구로 돌려놓았다.
중간에 있는 마궁도 하나로 합쳐지고 온전한 모습을 되찾았다.
두변은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전방에 마제의 황좌가 있었는데 거대한 형체가 나른하게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의 키는 밖에 있는 열한 마왕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다. 고작 9천 미터라서 산 하나가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검은 윤곽만 남은 상태였다.
단지 그가 앉아있는 모습은 매우 피곤해 보였다. 팔을 왼손으로 지탱하고 주먹으로 자신의 턱을 괴고 있었다.
그가 바로 마제인가.
그는 아마도 모든 항성계의 차원들을 전부 통틀어서 최고로 강한 존재일 것이다.
그런데 두변은 그의 머리에 왕관이 없는 걸 발견했다.
두변은 천천히 마제에게 걸어갔다.
휙, 휙, 휙, 휙.
그와 동시에, 열한 마왕이 마궁 대전 안에 나타났다.
그들은 더 이상 바깥에서처럼 거대하지 않았다. 모두 신장이 마제의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모두가 공손하게 바닥에 무릎 꿇고 엎드렸다.
두변이 뒤돌아서서 물었다.
“이제 지구의 봉쇄를 해제할 수 있나?”
열한 마왕의 시선이 마제를 향했다.
그 거대한 검은 그림자는 아무 소리 없이 조용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폐하.”
열한 마왕이 말을 한 뒤에 자신의 얼굴을 거두어들였다.
이제 보니 그들의 얼굴도 아무런 이목구비가 없는 검은 그림자 한 덩어리에 불과했다. 이제 그들은 얼굴을 되찾았다.
대녕 제국 차원, 태강 제국 도성에 있는 인간, 정토 세계 모두 흥분했다.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온 세계가 또다시 구원받았다.
그런데 그때, 최고로 긴장한 건 막한 여황이었다.
열한 마왕의 얼굴이 사라져서 더는 하늘을 뒤덮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녀는 두변과의 정신 얽힘을 진행해서, 그녀의 머릿속에 좌표를 설정해두었다.
“아이고, 두변에게 얼마나 멀리, 얼마나 오래 날아야 하냐고 묻지 못했네. 4.22광년이면 대체 얼마나 먼 거야?”
막한은 한 좌표를 향해 날아갔다.
이런 순간에 그녀는 고개를 돌려 지구의 모습을 지켜봐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두변이 그녀에게 계속 직선으로 비행하라고 해서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잘못될까봐 걱정되었다.
“태양 세 개, 태양 세 개, 태양 세 개…….”
그녀는 애초에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두변이 하는 말만 기억했다. 세 개의 태양이 보이면 도착한 것이다.
두변은 마제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어째서인지 그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제의 몸이 점점 더 작아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곧 그는 마제의 몸이 작아진 게 아니라 자신의 몸이 커졌다는 걸 발견했다.
곧 두변은 대전의 끝까지 걸어가서 암흑 황좌 앞, 마제의 앞에 도착했다.
수많은 차원을 파멸시킨 자, 유사 이래 최강의 존재 앞에 섰다.
두변은 손을 내밀며 담담하게 물었다.
“마제 폐하, 우리의 결전을 정식으로 시작할까?”
“정식으로 시작하지.”
절정 고수 간의 결투는 한 수만에 승부가 결정된다.
더군다나 이런 차원의 지배자 간의 결투는 또 어떠랴.
이윽고 두변이 검을 뽑자, 마제의 검은 그림자도 검을 뽑았다.
두변이 검을 앞으로 찌르자, 마제의 검도 앞으로 뻗어나갔다.
두 사람의 동작이 똑같았다.
두변의 검과 마제의 검이 끊임없이 가까워졌다.
두 자루의 검 끝이 한 곳에서 부딪쳤다.
두 검의 중간 부분이 갑자기 물결치면서 거울 같은 스크린으로 응축되었다.
스크린 안에는 검은 윤곽의 마제만 있었다. 검은 그림자만 있을 뿐 얼굴이나 사지 등이 없었다.
그런데 두변의 검이 마제의 검과 부딪치면서 그의 얼굴이 점차 드러났다.
비길 데 없이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의 머리엔 어두운 색의 뿔이 달려 있었다.
그 얼굴이 왜 이리도 눈에 익을까?!
두변이 눈을 가늘게 뜨자, 거울 안의 마제도 눈을 가늘게 떴다.
두변이 고개를 기울이자, 스크린 속의 마제도 고개를 기울였다.
두변이 한숨을 길게 쉬자, 스크린 속의 마제 역시 한숨을 길게 쉬었다.
두 사람의 동작이 똑같을 뿐 아니라, 완전히 거울에 거꾸로 비춘 모습이었다.
두변이 손을 뻗어서 정수리를 만지자, 스크린 거울 속에 있는 마제도 손을 뻗어서 자신의 정수리를 만졌다.
두변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안녕, 두변! 안녕, 마제 폐하!”
거울 속에 있는 마제도 입을 열었다.
“안녕, 두변! 안녕, 마제 폐하!”
거울 속의 마제는 바로 두변이었다.
두변이 마궁에 발을 내딛는 순간 마제가 부활했다.
그런데 거울 속과 거울 밖은 조금 차이가 있었다.
거울 속의 두변은 악마였고, 머리에 검은색 뿔이 나 있었다.
거울 밖의 두변은 용족이었고, 머리에 금색 뿔이 나 있었다.
두변이 앞으로 가서 자신의 눈을 보았다.
거울 안의 그의 눈은 검은색이었지만 거울 밖의 그의 눈은 금색이었다.
두변은 용족이면서도 마족이었다.
땡, 땡, 땡, 땡!
갑자기 밖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건 종말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어쩌면 누군가는 최후의 날이 이미 오지 않았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용혈대륙의 멸망은 종말이 아니었고, 지구의 말세도 종말이 아니었다.
지금 울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종말의 종소리였다.
작은 태양이 어두운 황좌에서 떠올랐다.
그건 수많은 용족이 응축되어서 만들어진 작은 태양이었다.
그 작은 태양이 힘차게 터지면서 수많은 황금 용족으로 변해서 흩어졌다.
수많은 용족이 말했다.
“폐하, 저희를 위해 복수를 해주십시오!”
이윽고 수많은 용족이 가장 순수한 황금빛 에너지로 변해서 나방이 등불에 달려드는 것처럼, 두변의 체내로 파고들었다.
그것들은 자신을 완전히 희생해서 모든 힘을 전부 두변에게 건네주었다.
두변이 미친 듯이 소리쳤다.
“안 돼, 그러지 마. 그러지 마……. 너희가 다 멸절되면 이 세상에는 최후의 용족 한 마리만 남는다고. 막한은 바보란 말이다!”
“폐하, 저희의 복수를 해주십시오!”
수많은 용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두변의 체내로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콰과과광.
두변의 체내에서 에너지가 끊임없이 폭발했다.
그의 힘이 미친 듯이 팽창했다.
용족 수십 마리, 수백 마리, 수천 마리가 그의 체내로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열한 마왕도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폐하, 저희의 복수를 해주십시오!”
이윽고 제1 마왕이 암흑의 빛으로 변해서 거울 속의 두변, 즉 마제에게 파고들었다.
제2 마왕도 거울 속 두변 마제의 체내로 파고들었다.
그 마왕들은 용혈대륙을 파멸시키고, 수많은 행성과 차원의 에너지를 집어삼켜서 더할 나위 없이 강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완전히 희생해가면서 집어삼킨 모든 에너지를 거울 속 두변에게 주입했다.
밖에서는 종말의 종소리가 계속 울려 퍼졌다.
땡, 땡, 땡, 땡.
그 종소리는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게 아니라 우주에서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용혈대륙에서만 울리는 게 아니라, 대녕 제국 차원과 지구에서도 울리고 있었다.
수많은 용족이 말했다.
“폐하, 저희의 복수를 해주십시오!”
열한 마왕이 말했다.
“폐하, 저희의 복수를 해주십시오!”
용족과 마왕들이 연달아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신의 모든 힘을 거울 안팎의 두변에게 쏟아부었다.
3분 뒤, 마궁 대전이 마침내 조용해졌다.
수많은 용족이 사라졌다. 그것들은 전부 희생하며 모든 힘을 두변에게 바쳤다.
열한 마왕도 사라지고, 모든 힘을 거울 속의 두변에게 주었다.
땡, 땡, 땡, 땡.
우주로부터 전해져오는 종소리가 계속 울려 퍼졌다.
거울 밖의 두변은 머리에 이미 금색 왕관을 쓰고 있었다. 그건 용족의 왕관이었다.
거울 안의 두변은 머리에 검은색 왕관을 쓰고 있었다. 그건 악마의 왕관이다.
거울 밖의 두변이 눈물을 흘렸는데 거울 안의 두변도 똑같았다.
두변이 손에 신비한 룬 문자가 새겨진 장신구를 들고 소환했다.
“어머니!”
“얘야…….”
빛 한 줄기가 장신구 속에서 나와서 공중에 떠서 더없이 다정하고 자애롭게 두변을 바라봤다.
그녀가 바로 두변의 어머니이자, 용족의 여왕이었다.
두변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또 다른 빛이 장신구 속에서 나와서 공중에 떠서 마찬가지로 대단히 자애로운 눈으로 두변을 바라봤다.
그가 바로 선대 마제였다. 열세 마왕의 주인이자, 수많은 차원을 파멸시킨 강력한 지배자였다.
두변의 어머니는 용족의 여왕이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마제였다.
한참이 지나서 두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 꿈속 마왕은 내 신분을 알았나요?”
마제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운명 마왕은요?”
“그는 더 똑똑하고 이지적이라서 진상을 몰랐지만 어쩌면 어느 정도 추측하고 있었을 것이다.”
땡, 땡, 땡, 땡.
우주에서는 종말을 알리는 종소리가 계속 울려 퍼졌다.
용족의 여왕이 다정하게 말했다.
“시간이 부족하구나. 내 아가야, 용족과 악마의 만 년에 걸친 전투는 다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치러졌다. 자유, 생존, 존엄이지. 어쩌면 이 두 종족은 표현 방식이 달랐는지도 모르겠다. 두 종족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두 같았다. 모두 생존하기 위해, 자유롭기 위해서였지.”
마제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용족이 악마를 소멸하든, 악마가 용족을 소멸하든, 결과는 똑같다는 걸 말이다. 우리가 승부를 내는 그때가 바로 두 종족에게 최후의 날이다. 용족 문명과 악마 문명이 전부 몰락할 것이다.”
용족의 여왕이 말했다.
“악마든, 용족이든, 다 신의 유희에 불과하단다.”
마제가 말했다.
“일단 유희가 끝나면 바로 멸망의 날이 돼서 우주에서 종말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단다.”
용족의 여왕이 말했다.
“그래서 나와 네 아버지가 서로 사랑해서 너를 낳았다. 모든 용족과 악마가 모든 에너지를 너에게 바쳤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네가 종말의 종소리에서 도망치는 것이다. 네가 최후에 생존, 자유, 존엄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종말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모든 용족과 악마는 전부 멸망한다. 왜냐하면 신의 유희가 끝났기 때문이지. 하지만 네가 살 수만 있다면 모든 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마제가 말했다.
“살아라. 내 아가야! 강인하게 살아남아라. 끝내 신의 뜻을 이기고, 그들의 손아귀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서 최후에 그들의 머리를 매섭게 밟아버려라!”
“모든 용족을 위해 복수해주렴!”
“모든 마족을 위해 복수해다오!”
“얘야, 지금 너는 이미 신의 힘에 무한히 가까워졌다.”
종말의 종소리가 멈췄다.
이윽고 두변의 어머니, 용족의 여왕이 순식간에 연기로 사라지며 혼백이 흩어졌다.
두변의 아버지, 마제도 연기로 사라지며 혼백이 흩어져버렸다.
용족 여왕의 혼백과 마제의 혼백을 포함한, 모든 용족과 악마를 죽여버리면서 신의 유희가 끝났다.
하지만 두변은 죽지도, 연기로 사라지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용족일 뿐 아니라 마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두변이 계속 앞으로 걷자, 거울 속의 두변도 앞으로 걸었다.
두 사람은 완전히 한 곳에서 융합했다.
거울이 사라졌다.
모든 마족의 힘을 함유한 두변과 모든 용족의 힘을 함유한 두변이 한곳에서 완전히 융합했다.
그는 이 차원들에서 유사 이래 나타난 최고로 강력한 종이 되었다.
모든 용족을 훨씬 뛰어넘을 뿐 아니라, 모든 마족을 훨씬 뛰어넘었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뛰어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