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1화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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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화과산 스트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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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나가라고? 미쳤냐? 지금도 안전하게 개꿀 빠는데 뭐하러 나가냐."

[개방장 오늘도 비판/논란 및 문제 문서 늘어나겠네 ]

[개꿀 빠는거 알긴 아네]

[얘는 능력 있으면서 안하는게 ㄹㅇ 악질임]

[ㅋㅋㅋㅋ 원숭이 쉐끼 오늘도 혐성 여전하네]

"아가리 하세요. 여러분들 덕분에 이렇게 편하게 먹고 살지만 히어로 하라는 건 너희도 선 넘는 거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괴수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불쌍하지도 않냐?­>매니저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니 가족이라고 생각해봐라­>매니저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그건 벤 삼촌한테 가서 따져 미친 새끼야! 내가 내 능력 안 쓴다는데 왜 지랄이야."

[ㅋㅋㅋㅋㅋㅋㅋ 엎드려!]

[원숭이 화났다 숨어! ㅋㅋㅋㅋㅋㅋㅋ]

[니가족충이 또..]

[근데 좀 다른 컨텐츠..그런 거 없나? 능력으로 게임 하는 것도 이제 질리긴 함]

사실이긴 하다.

압도적인 피지컬로 게임에서 상대방을 찍어 누르거나 고난도 게임을 클리어하는 모습에 열광하던 시청자들이지만

자극적인 맛을 맛보면 더 자극적인 맛을 원하듯, 아무래도 내 능력의 본래 사용 용도를 보고 싶은 듯하다.

"그래서, 결국 너희가 원하는 건 괴수들 잡고 빌런 때려잡고 히어로 대전 보고 싶은 거잖아."

[그건 맞지]

[그게 재밌긴 해~ ㅋㅋㅋㅋ]

[게임도 적당히 해야 재밌지 죽일 듯이 계속 패는데 이젠 보는 맛도 없음]

[드디어 밖에 나가나?]

[오랜만에 괴수 패는 거 볼 수 있냐?]

"그래,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해 줄게."

딸깍, 딸깍, 딸깍

몇 번의 마우스 클릭 소리와 함께 화면에 나타난 영웅들의 활약을 동영상으로 담아둔 사이트, 미스틱 튜브 줄여서 미튜브에 접속했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걸 해야 프로 방송인이겠지.

[내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지?]

[나]

[진짜 너무 역겨운데 아니 이걸 이렇게 왜곡해서 들어?]

[제발 집에서 좀 나가!!!]

[락]

[진짜 사람 새끼가 아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나]

[락]

[아니 주어 하나 빼 먹었다고 이렇게 빠져 나가냐고 아 ㅋㅋㅋ]

[정신 나갈 것 같아 정신 나갈 것 같아 점심 나가서먹을거같아 정신 나갈 것 같아 점심 나가서먹을거같아]

"와! 여러분이 찾으시는 히어로들 여기 다 있네요. 이번 컨텐츠는 다른 히어로들의 능력이나 괴수사냥 레이드를 리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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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뒤집힌다는 표현이 있다.

천재지변이나 전쟁, 심각한 기후변화 지구 생태계의 파괴 등 사람마다 떠올리는 풍경들이 다를 것이다.

이런 상상들이 무색하게 지구는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현세의 인과가 꼬였다.

지구의 인과율이 꼬여버린 결과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생명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박물관에서나 보던 공룡 화석은 아기 취급을 할 만큼 커다란 괴생명체들이 인간들을 사냥하기 시작하거나

인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이세계 종족들이 지구로 집들이 인사를 하러 온다든가

비교적 평화롭게 살고 있던 인류는 이 반갑지 않은 침입자들을 처리하기 위해 국가적 단위로 힘을 합쳤지만 역부족이었다.

현대 인류의 무기로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소규모로 침입해 오는 적대적인 이세계 종족 정도는 전투기 한 대로도 전멸 시킬 수 있다.

문제는 괴수 크립티드.

크립티드를 감싸고 있는 포스 필드를 효과적으로 뚫을 현대 무기가 없다.

인간의 악의(??) 를 상징하는 현대 인류의 필살기, 핵무기도 크립티드의 진격을 저지하는 데 실패한 지 오래다.

순간적으로 역장을 해체할 순 있지만, 그 정도로는 크립티드를 처리할 유효한 타격은 줄 수가 없고

괴수 하나 잡겠다고 그렇게 쏟아 부었다간 삶의 터전이 박살 나기 때문에 주객전도 이다.

그렇게 절벽까지 몰린 인류는 신들을 찾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집대성인 인류 문명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신을 찾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굽어살피고 있을 거라 믿는, 본인들의 신들을 찾아 울부짖었다.

제발 저 침략자들을 제거할 힘을 내려주세요.

종교,신화,미신,전설 속 존재들에게 빌고 또 빌었다.

한때 믿음이 약해진 인간들이지만 이런 발버둥을 가엾게 여긴 걸까?

그들이 응답해 주었다.

꼬였던 인과율은 신과 인간의 접촉을 더욱 쉽게 만들어 주었다.

경이로운 존재들에게 선택 받은 이들, 인류의 수호자 히어로의 탄생 배경이다.

­그 이후로 히어로들은 인류를 위해 크립티드를 사냥하고, 빌런들로부터 민간인들을 지키는 …

"대체 똑같은 방송을 몇 번이나 틀어주는 거야. 누가 모른다고."

띵!

혼자 먹을 때 밀려오는 적막함이 싫어 틀어 놓았던 티비를 끄고 식사를 마쳤다.

앞서 진행한 컨텐츠는 예상보다 반응이 괜찮았다.

히어로 대전이나 괴수사냥을 초인의 입장에서 평가하고 리뷰해주었더니

자신들이 알고 있던 히어로의 능력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엄마 난 커서 히어로가 될래요! ' 라는 말이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

일반인과 달리 초자연적인 힘을 다루며

크립티드를 제거하고 이런 힘을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하는 빌런과 싸우는 정의의 사자

힘이 전부인 세상에서 동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히어로는 사실상 족쇄와 다를 바 없다.

겉모습을 예쁘게 단장한 개미지옥과 똑같아.

너도 히어로 하고 싶니? 신들에게 헌신하고 인류를 위해 힘을 써 주렴!

많은 돈을 벌고 싶니? 그럼 너는 히어로가 딱이야!

히어로 협회는 온갖 미사여구로 히어로 지망생들을 꼬드긴다.

그 후 신들에게 선택 받은 이들은 괴수 사냥 전선에 투입되고 뺑이를 치는 거다.

협회에 개지랄을 해서 반쯤 탈출한 곳에 다시 기어 들어가라는 악질 시청자들은 인정사정 없이 바로 영구 정지다.

방송에서 좋아하는 게임을 하고 입을 털면 돈이 복사가 되는데 괴물과 싸우러 가는 미친 놈이 어디 있어?

위이이이이잉

여기 있네, 미친 년이긴 하지만.

"왜 전화했냐."

­손 형, 이번만 도와주면 안 돼요? 진짜 이번 건은 오빠 없으면 버거워.

오늘도 또 의미 없는 거짓말로 함께 개미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개미의 구질구질한 꼬드김.

"나 장비도 다 처분한 거 알잖아. 이제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도 없어."

­아 진짜! 여의봉 사가는 미친놈이 어딨어요! 그리고 팔아봤자 부르면 다시 오는 거 알아요.

"내가 팔았다고 하면 판 거지! 트집을 잡아? 아 안해 안해, 기분 나빠졌어 안 가."

­와 진짜 몇 년 전 애새끼 마인드에요 이게? 신님에게 창피하지도 않아요?

"창피하긴 무슨, 우리 원숭이 신부터 지 이름을 '미후왕(美?王)'으로 지었는데, 어떻게 이름이 잘생긴 원숭이 왕 크크큭, 아아아악!"

순간

허공에서 나타나 머리를 바짝 조여 오는 긴고아

골이 빠개질 것 같아!

죽어,죽어요,죽습니다 제발!

최고존엄 천상천하 유아독존 제천대성 투전승불님 제발 잘못했어요 한 번만 기회를!

유일한 신자 죽는다, 원숭이가 사람 죽이네!

없는 존경심까지 깡그리 긁어 모아서 빈 뒤에야 긴고아는 잠잠해졌다.

­진짜 오빠는 그런 반항심 때문에 선택 받은 것 같기도 하고…

"허억허억, 아니 진짜 사이코패스라니깐? 자기가 당했던 물건을 어떻게 대물림을 해 줄 생각을 하지?"

­오빠가 예전 신님과 동급일 정도로 통제 불능이니 그러시지 않았을까요.

"아가리 해 확 그냥, 아무튼 나 방송 때문에 못나가는 걸로 알고 있어. 구라 치지 말고 진짜 큰일 났을 때 불러라."

­어차피 게임만 할 거면서! 그럴 시간에 후배 한번만 도와주는 게 더 생산적 일 거 같은데요?

"아냐 이번엔 게임 안 해, 시청자들이 하도 지랄해서 딴 거 할 거야."

­게임 폐인이 게임 말고 할 컨텐츠가 뭐 있다고 그래요?

"나 히어로들 리뷰 할 거야."

­히어로 리뷰요?

“그래, 히어로 리뷰. 우리방 놈들이 미튜브 하나 틀어주고 분석해주니 좋아 죽더라.”

­근데 공식 방송에서 그런 거 해도 괜찮은 거예요? 문제 생기시면 어떻게 하실려구요.

“그거는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협회장님이 화내실 거예요.

“아저씨는 맨날 나한테 화내는 게 일이야.

­그러지 말고 현장에 나와서 우리 후배들이나…

”어 수신 상태가 안 좋네, 다음에 통화하자.“

띠리링­

방심을 할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그 쪽 방향으로 대화를 유도하는 후배 녀석.

더 듣고 있다간 나도 모르게 홀릴 거 같기에 전화를 끊어버린다.

후배와 전화 통화를 마친 뒤 방송 부스로 돌아와

내일 진행할 콘텐츠를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다.

어떤 주제를 리뷰해야 할까.

시청자들이 주목할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해야 한다.

괜히 재미없는 주제를 선정해서 리뷰 했다간 난리를 피울 것이 뻔한 놈들이다.

나는 미튜브에 올라온 영상들을 하나 하나 확인해 본다.

인기 동영상에는 역시나 상위 크립티드를 팀 단위로 사냥하는 레이드 영상들이 올라와 있다.

가장 흥미진진한 싸움이 상위 계급끼리의 싸움 아니겠는가.

“이거다.”

내일 주제는 레이드 리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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