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10화 (10/106)

〈 10화 〉 광신도

* * *

라돈을 상의도 없이 화과산에 들여온 문제 때문에 협회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 드래곤은 안 물어요! 라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물지는 않고 약간의 화염만 뱉는 정도인데 왜들 그리 호들갑인지.

히어로 협회에 불려가는 일은 히어로 초창기 시절부터 수도 없이 많았지만

유기동물을 주워서 불려가는 것은 처음이다, 아 유기 깐프 건이 한 번 있구나.

공중에서 날아온 8톤 트럭 급 쇠몽둥이를 맞고도 잠시 기절만 한 녀석인데

그런 녀석을 수도에 데려왔다고 하니 걱정이 들었나 보다.

그렇다고 다시 돌려보낼 생각은 없다.

///////

“그래서 고위급 크립티드를 화과산으로 데려온 이유가 뭐라고?”

“자택 경비원이 필요해서요.”

하아...

협회 안에 울려 퍼지는 한숨들.

이 사람들 그리스에서 벌였던 전투를 보고선 잔뜩 쫄아 있는 게 분명하다.

“손우진, 감당할 수 없는 힘은 재앙과 다름없다.”

우리 어르신, 나이가 들더니 겁이 많아지셨네.

현역으로 활동하실 땐 이런 양반이 아니었는데.

세월이 무상하다.

“아니 협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뭡니까! 히어로의 권익을 보장해주고

히어로가 인류의 수호에 집중할 수 있게 서포트 해주는 곳 아닙니까.”

“애완동물 하나 못 키우게 하는 것은 권익 침해입니다!”

“나라의 수도를 하루 만에 파괴할 수 있는 드래곤을 애완동물 범주에 넣는 미친놈은

너밖에 없을 거다, 이 천둥벌거숭이 자식아!”

어후, 이제야 제 성격 나오네.

협회장이 되어서 사람이 재미없어지더니 이게 본래 모습이지.

“협회장님, 고정하세요.”

나를 째려보곤 버럭버럭 화를 내는 협회장을 말리는 비서 아가씨.

할아버지의 혈압을 걱정하는 참된 손녀이다.

그런데 이거 부정 인사 아닙니까? 비서 자리를 왜 손녀에게 내준 거야.

“제가 산책도 시키고 목욕도 시키고 밥도 주고 잘 키울게요, 네?”

“야!!!”

손녀도 모자라서 협회 직원들도 아재를 뜯어말리기 시작한다.

아재가 화를 낼 때마다 휘청이는 사람들.

내가 봤을 땐 이 양반은 아직 정장을 입을 때가 아니야.

다시 현장으로 나가도 크립티드 골을 부수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이다.

“흐흐흐, 성격은 여전하시네. 알겠어요. 장난은 여기까지 하고.”

“후...망할 원숭이 놈, 빨리 대책이나 말하고 나가라. 너 때문에 골이 다 아프다.”

“헤라 여신과 계약을 했어요. 잠들지 못하는 용에게 수면을 선물해 주었기 때문에

그 녀석 하루종일 잠만 자고 있습니다.”

“만약 일이 뒤틀렸을 때 네놈이 통제할 수 있겠냐?”

“뭐, 겁나게 수련해야죠. 이번 출장으로 아직 부족하다는 걸 느꼈어요.”

“허! 집에서 뭘 하는지 모르던 놈이 출장 한 번으로 다시 한 번 호승심이 생긴 모양이군.”

떡밥을 까는 거 다 보이거든요, 아재.

어딜 다시 끌고 가려고 준비 중입니까.

“그래도 전장으론 안 돌아갑니다.”

“기대도 안 한다 새끼야.”

거짓말.

애완 드래곤 사태를 해명하고 집에 돌아가기 전

협회장 아저씨와 짧은 담배타임을 갖도록 했다.

마지막 스퍼트를 달리시는 건가?

“거 건강에도 안 좋은 거 왜 그렇게 피우십니까,”

“나보고 담배 좀 끊으라고 했던 놈들 나보다 빨리 뒤져 나갔다.”

칙­!

불을 붙인 뒤 크게 한번 빨아드리는 아재.

“아주 악담을 퍼부으시네! 누가 끊으랬나.”

“후우­, 그래서 요즘은 뭐 하고 지내냐?”

“뭐 똑같죠. 방송하고 놀고먹고 쉬고, 누구 때문에 개고생을 하다 왔지만.”

“성좌께서 오죽 답답하고 걱정이 들었으면 그랬을까.”

걱정? 내 성좌와 걱정이라는 단어는 공존할 수 없다.

새내기 시절부터 아득바득 기어 올라왔던 과거를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리는데.

수련,사냥,고행,수련,사냥,고행… 3패턴 일상을 보내던 시절은 정말 끔찍했다.

나만의 작은 감옥 긴고아가 있는 이상 도망도 칠 수 없었고.

“우진아, 밀레니엄 쇼크 이전 세상의 기억은 남아있느냐?”

갑자기 옛 시절을 언급하는 협회장 아재.

“뭐, 희미하게 남아있긴 하죠.”

뛰어노는 친구들 장 보러 가시는 어머니 퇴근하시는 아버지 고소한 치킨 냄새

붙잡은 부모님의 손 놀이공원 소풍 티비 속 만화영화 내 동생 하영이

박살 난 자동차 부모를 찾는 어린아이의 울음 괴수의 포효 하늘을 바라보며 울부짖는 사람들

개천 섬광 신들의 목소리 내려오는 천사들 그리고 죽음.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요.”

“그러냐.”

아저씨가 내뱉은 담배 연기가 허공에서 흩어져간다.

연기처럼 희미해지는 옛 기억들.

거지 같은 세상에서 열심히 살았다.

단지 그것 뿐이다.

담배를 비벼끄는 아저씨.

“방구석에 처박혀서 그 스트리퍼인지 스트로우인지만 하지 말고, 히어로 본분을 잊지 마라.”

“스트리머요 아재, 이거 불로소득입니다. 입만 열면 돈이 들어온다고요.”

“그거나 이거나 새끼야. 에휴, 내가 현역이면 널 계속 끌고 다녔을 건데.”

“협회장에서 제발 내려 오지 말아 주세요.”

간다­, 내 등을 한번 쾅 치고 내려가는 아저씨.

진짜 힘은 더럽게 쌔다.

어떻게 저런 사람을 잘도 불러 협회장을 시키는 건지.

현장 히어로들에겐 인재의 손실이다.

옛 생각에 잠겨있던 영향인지 걸어서 집에 가기로 했다.

가끔은 걷고 싶은 날이 있는데 오늘이 그날인가 보다.

협회 정문을 향해 걸어나가는데 나를 막아서는 한 인물.

“오랜만이네요 챔피언 님! 신이 당신과 항상 함께하시길!”

아잇 씻팔.

///////

지구의 인과율이 꼬인 밀레니엄 쇼크 당시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인 건 괴수 크립티드이다.

그다음으로 인간을 학살한 존재는 누구일까?

놀랍게도 성좌다.

사건 당시 유일신의 심부름꾼. 신의 전령이라 불리는 천사들이

지상으로 내려와 크립티드를 몰아내고 인간들을 구하는 일이 있었다.

신을 찾던 종교인들은 그 사실에 매우 감격했는지

자신들의 신이 응답하였다! 신이 우리를 굽어살피신다!

신이 인간들을 버리지 않았다고 열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의 전령을 보내고 직접 등장하지 않은 유일신의 존재를 두고

각 종교계에서는 그분이 자신들의 신이라고 주장하는 언쟁이 발생하더니

서로의 종교를 헐뜯고 비난하고, 끝에 가서는 서로에게 테러를 저지르는 짓을 감행했다.

인간의 존망이 달린 상황에서 자신들의 아집을 위해

그런 이기적인 개지랄들을 떤 것이다.

그 추악한 작태와 삐뚤어진 신념에 신이 노한 것일까?

인간들을 구원하던 천사들은 돌변해서

자신들의 신자들을 징벌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본인의 독실함을 증명할 수 있는가?

­증명할 수 없다면 목숨으로 사죄하라.

피의 숙청이 벌어진 뒤 신을 위해 봉사하고

인류의 재건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만이 남은, 우둔한 신도들의 피로 세워진 통합 종교.

유일교만이 천상의 성좌 천사들이 인정하는 종교로 공인되었다.

아마 다른 성좌들의 개입이 없었다면

천사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구 신도들을 죽여나갔을 것이다.

이 사건 이후로 성좌들이 현실에 개입하는 것은 금지된 거로 기억한다.

피로 얼룩진 종교 유일교, 그곳의 이단 심문관

그리고 과거 고아들을 거둔 유일교 교단 내 보육 시설에서 만난 여동생.

“안소정.”

이 녀석 발랄하게 인사하는 것 치고는 몸에 밴 피 냄새가 지독하다.

“어디서 또 괴수들 때려잡다 왔냐?”

“신께서 만드신 세상을 어지럽히는 괴수놈들은 용서하지 않아요!”

“그러냐, 근데 너 다쳤냐?”

“아니요? 그런 사도 놈들에게 당할 리가 있나요!“

괴수 크립티드 사냥을 나갔는데 왜 사람의 피 냄새도 섞여 있는 걸까?

나는 알고 싶진 않아요.

“기특하네. 그럼 열심히 해라, 간다잉.“

아무렇지 않은 척 빨리 빠져나가려 하지만.

“앗, 챔피언 님 잠시만요. 좋은 말씀 있는데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아니, 그게...”

“왜 신께선 인간이 신성을 쌓을 수 있게 권능을 내리신 걸까요?

그건 바로 수천 년 간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믿어온 저희 유일교 신자들을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우리 인류는 지금 어려운 시기에 직면해 있지만

같은 신 아래에서 함께 모여 하나로 뭉쳐 서로 돕고 사랑하는...”

나왔다.

안소정 필살기 무지성 매크로 포교하기.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지만껄끄러운 이유가 이거다.

성좌를 좋아하다 못해 광기마저 느껴지는 저 사랑.

내가 마주하기엔 너무 부담스럽다.

“저기 소정아, 다른 볼일은 없니? 내가 좀 바빠서...”

“아! 좋은 말씀을 전해드리려다 본래 목적을 깜빡했어요.”

”챔피언님, 교단 내 비리를 조사하는 데 도움을 주실 수 있을까요?”“

”교단 내 일은 외부인이 간섭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이번 건은 제가 단독으로 조사하고 있어요.

다른 형제자매 분들과 공유하기엔 아직 조심스러워서요!”

그런 걸 이제 외부인이 되어버린 나에게 말해도 되나?

“최근 교단 내 실종 사건이 발생했는데...”

“야! 아직 도와준다고 말도 안 했어! 왜 바로 시작하는 거야!”

“하지만 저 혼자 해결하기엔,알겠어요 오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돌아서는 안소정.

저저 계속 챔피언이라고 부르다가 자기가 아쉬운 입장이니 바로 오빠 소리를 입에 담는 거 봐라.

얼굴 보기 힘든 오빠에게 삐진 것인지 챔피언이라고 선을 긋더니 바로 태세 변환이다.

여동생 특.

자기 아쉬울 때만 오빠다.

“휴...”

대놓고 나 들으라는 식으로 한숨을 쉬는 녀석.

힘든 시절을 같이 보낸 아이를 매몰차게 거부하기엔 양심에 찔린다.

영악한 녀석.

“아 알았어! 도와주면 될 거 아니야.”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 안소정.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역시 오빠밖에 없어요.”

여동생들은 항상 필요할 때만 부른다.

약아빠진 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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