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등용문
* * *
“야! 다들 살아 있냐?”
내 발밑에 무언가 꿈틀거리고 있지만
히어로의 기본 소양인 슈퍼히어로 랜딩을 완벽히 끝마친 후
분신과 동생의 안위를 묻는다.
한쪽은 왼팔이 뒤틀려있고, 다른 한쪽은 천장에 달린 쇠사슬 수갑에 매달려 있다.
가관이네. 얼마나 처절하게 싸운 거야 분신 녀석.
“본체, 동생은 지켰다. 적은 섬멸하지 못했다.”
“야, 뭘 하면 팔이 그쪽으로 돌아갔냐? 왼팔이 살짝 따끔하다 싶더니 몸을 막 굴렸네 이자식.”
“적과 정면으로 충돌해서 그렇다.”
“무식한 놈, 그래도 마지막 기술은 꽤 괜찮던데?”
“신체 여건이 온전치 못해 발을 통해서 본체의 화룡점정을 사용했다.”
“기술 이름은?”
“등용문이다.”
크으, 역시 내 분신이다. 내 취향과 정확히 일치하는 작명 센스.
용이 되기 위한 잉어의 여정, 분신 녀석 감성이 풍부하네.
자신의 상황을 대입해서 떠올린 건가.
좋다. 내 기술로 편입해야겠어.
“오빠들 둘이서 얘기하는 것도 좋지만 나 좀 풀어주면 안될까!”
음습한 대화를 하는 우리에게 수갑을 풀어주길 요청하는 안소정.
아직도 안 풀어줬구나.
“미안미안, 야 너는 얘 수갑부터 풀어주고 같이 싸우지 그랬냐?”
“동생의 안전이 우선이다.”
고리타분한 녀석, 최우선 순위는 내가 내린 명령이니 이럴 수밖에.
손날에 강기를 둘러 안소정을 매달아 놓은 쇠사슬을 끊어낸다.
“크아아아아악! 손우진! 죽여버리겠다!!!”
내 슈퍼히어로 랜딩에 짓밟힌 김승연이 다시 일어난 모양이다.
육체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서 맷집 하나는 튼튼해진 녀석.
“본체, 적을 섬멸해야 한다.”
“저 녀석은 나하고 약속한 게 있거든? 여기서 소정이나 지켜.”
“알겠다. 안소정을 지킨다.”
“오빠, 괜찮아?”
급박한 상황이 오니 그 옛날 말투로 돌아온 안소정.
꼴에 컸다고 존댓말 좀 하더니 넌 아직도 어린애다.
“지켜보기나 해.”
내가 힘이 없던 시절에 다짐한 약속이 있다.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족을 지킬 것이다.
그 맹세는 아직도 유효한 약속이다.
내게 남은 소중한 인연을 건드린 녀석이 치러야 할 대가는 상당히 클 것이다.
미쳐 날뛰는 녀석에게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물어봐야 할 것이 있다.
“김승연, 나머지 유일교 교인들은 어디에 뒀냐?”
“나의 과업을 방해하지 마라!”
머리에 피가 쏠려서 녀석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겠는걸.
그저 자신의 변형된 신체만을 믿고 달려드는 놈의 모습을 보면
그동안 별로 싸워보지 못한 티를 팍팍 낸다.
“대화가 통하지 않아도 약속은 지켜주마.”
김승연, 내가 다음에 만나면 다짐육으로 만들어 준다고 약속을 했지.
그 약속 지금 지키러 왔다.
내기를 손바닥 전체에 흘려보낸다.
이 무식한 괴물이 내지른 손아귀를 회피하고 곧이어 내 손이 녀석의 복부에 닿는다.
팔괘 6장 손 (?: )
콰앙!
손에서 발사된 장풍을 맞고 날아가 벽에 꼬라 박히는 녀석.
나이스 샷.
“김승연, 이성이 있을 때 빨리 말해. 교인들은 어디에 두었지?”
“크흐흐흐흐흐...”
벽에 처박힌 채 웃음을 내뱉는 녀석.
그거 한 대 맞았다고 벌써 맛탱이가 가면 안 되는데.
넌 아직 덜 맞았어, 이 새끼야.
“유일교 교인들이 어딨냐고...? 크흐흐흐흐, 내 몸속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겠지.”
인간의 존엄성도 내다 버린 타락한 성직자.
타락해서 괴수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 버린 것인가 아니면
신체의 변화로 마음도 타락한 것인가.
“미카엘이 이 꼴을 보면 통곡을 하겠네.”
“그분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마라!!!”
아픈 곳을 찌르자 울음소리를 내뱉는 짐승 놈.
결심했다. 내가 이 녀석을 죽이는 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다.
사람을 잡아먹은 짐승 놈을 구제할 뿐이다.
“구제불능이네, 성좌의 믿음도 저버린 녀석이 무슨 성좌가 되겠다는 거냐.”
“닥쳐 이 새끼야!”
짐승 한 마리가 벽에서 빠져나와 그 더러운 아가리로 나를 물어뜯으려 한다.
언행도 행동도 짐승 그 자체가 되어 버린 김승연.
다리 한쪽을 들어 횡으로 회전하는 궤도를 그리며 짐승을 가격한다.
흐르는 물결과 같은 세찬 움직임.
녀석의 안면을 오른발로 세게 후려친다.
팔괘 3장 감(?: )
빠직
흐르는 물결이 매섭게 짐승의 안면부를 박살 낸다.
“카아아악...”
뚜욱 뚜욱.
녀석의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피.
인간의 선혈이 아닌, 괴수와 같은 푸른색 피가 흘러나온다.
물결이 도달한 곳은 연못.
상체를 최대한 곧게 세운 채로 한쪽 발을 축으로 삼아 온몸을 회전하며 다리를 뒤돌려 찬다.
팔괘 2장 태(?: )
물길의 흐름을 모두 집중시킨 에너지가 녀석의 체내를 헤집어놓는다.
파앙 파앙 파앙
터져나가는 녀석의 괴물 같은 신체.
“크아아아아악!”
이미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뭐가 그리 분한지 나를 노려보는 한 마리 짐승.
“뭐가 그리 분하지?”
“나를 인간으로 태어나게 한 신을 원망한다! 부모와 만날 수 없는 이 운명도
미칠 듯이 혐오한다!!!”
이를 드러내며 분노를 내뿜는 타락한 성직자 짐승.
“인간도 신성을 쌓을 수 있는 이 세상에서 신만을 원망하기엔 이기적이지 않아?”
“너 같이 재능을 갖고 태어난 놈은 이해 못 하겠지, 위선자 녀석...”
그르릉
상처 입은 짐승이 나를 향해 분노가 깃든 울음소리를 내뱉는다.
정말 끔찍할 정도로 이기적인 놈이다.
과정은 생략한 채 신성을 쌓기를 원하는 이기적인 녀석.
그게 가능했으면 내가 걸어서 천축을 갔다 왔을까.
성좌를 섬겼던 성직자의 모습은 이 괴물에게 한 줌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 이 재능충이 너의 악행을 멈춰 줄 테니 이만 닥치고 죽어라.”
손끝에 벼락을 담아낸다.
파직파직 소리와 함께 사나운 기세를 드러내는 벼락의 기운.
팔괘 5장 진(?: )
벼락을 담은 손이 녀석에게 휘둘러진다.
그 순간
내 앞을 가로막는 지옥의 불꽃.
“뭐 하는 짓이요?”
<열매를 수확할="" 시기가="" 되었다.=""/>
“이 일과 상관없다고 맹세하지 않았나?”
<상관은 없었지,="" 그렇다고="" 이="" 탐스러운="" 배교자를="" 포기할="" 순="" 없다.=""/>
어둠의 권능이 김승연의 몸으로 스며 들어간다.
포기한 건지 일부러 힘을 받아들이는 건지 꾸역꾸역 신성을 먹어치우는 김승연.
그나마 남아있던 인간성마저도 버리고 완전한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진짜 지랄하네, 이래서 악마놈들은 믿을 수가 없어.”
<말하지 않았나="" 원숭이의="" 제자야,="" 악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녀석의 변이가 끝나기 전에 공격하자.
손에 담긴 벼락을 목을 향해 휘둘렀지만.
치이이익
목을 자를 생각으로 휘둘렀지만, 자상을 빠르게 회복하는 김승연이었던 것.
큰일 났네.
놈의 주먹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콰앙!
성좌가 되지 못할 바엔 모든 걸 파괴할 것이다.
퉷.
입안이 터졌는지 입에 고인 피를 뱉었다.
거 새끼 힘 좀 얻었다고 좋아하는 꼴이란.
악마로 다시 태어난 기념으로 머리도 애새끼로 돌아간 거냐.
넝마가 된 상의를 찢어버린다.
“기껏 생각해 낸 것이 자신의 성좌와 적대하는 놈들의 힘을 받아들인 것이냐?”
흐흐흐,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 너를 죽이고 신성을 지닌 모든 존재를 죽일 것이다.
“챔피언 한 명도 버거운 놈이 꿈이 거창하네. 감당할 수 있겠어?”
문답 무용으로 새로 생긴 날개를 자랑하듯 날아오는 놈.
흉악한 손아귀로 나를 찢어발기려 한다.
“신체 스펙 하나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오산이거든.”
머리 옆으로 지나가는 악마의 손길.
우뚝 솟아오른 산과 같이 손바닥 끝 부분으로 녀석의 턱을 올려 친다.
팔괘 7장 간(?: )
“케엑!”
폐공장의 천장을 뚫고 공중으로 떠오르는 악마의 몸뚱이.
헛구역질을 하는 놈을 쉬게 만들지 않는다.
팔괘 1장 건(?: )
하늘로 떠오른 녀석을 추락시키자.
타앗!
천장의 구멍을 향해 공중으로 힘껏 도약한 뒤 두 손을 마주 잡아 손 망치를 만들어 녀석을 찍어 내린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지만 꼴에 악마가 되었다고 떨어지는 도중에도 아가리를 벌려
나를 향해 유황불을 발사하는 녀석.
“가지가지 한다 진짜.”
두 팔에 불의 기운을 남아낸 뒤 팔을 X자로 겹쳐 놈에게 꼬라박을 준비를 한다.
원래는 손에만 기운을 담아야 하지만 급한 걸 어떡해!
팔괘 4장 리(?: )
공중에서 유황불을 뚫고 악마를 향해 돌진하는 생체 미사일.
콰아앙!
두 가슴팍에 X 모양이 예쁘게 새겨졌고 곤죽이 난 악마 녀석.
“흐우! 꼴에 유황불이라고 겁나게 뜨겁네. 흉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크에에에엑... 뭐가 부족한 것이냐 !!! 모든 걸 포기했는데 대체 왜!!!
“자신의 힘도 아니면서 억울한 척 추하게 구는 거 정말 꼴불견이거든.”
다악쳐라!!
전화 한 통으로 맺어진 우리의 악연을 끝낼 시간이다.
“끝내자 김승연, 지옥에 가서 대표에게 안부 인사나 전해줘. 방해해서 고맙다고.”
팔괘 8장 곤(?: )
주먹을 바위와 같이 단단하게 만들어 악마의 복부를 향해 내지른다.
퍼억!
복부에 구멍이 나도 징글징글한 생명력으로 버텨보려 하는 악마 자식.
우웨에엑... 이까짓 거 회복하면 그만...
“안될걸? 그게 마지막이었어.”
녀석에게 주입한 8가지 자연의 기운.
서로 상극의 속성들이 놈의 몸에서 난리들을 피울 것이다.
점점 붕괴하는 놈의 신체. 아무리 악마로 다시 태어났어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교단에서 파문당한 타락한 성직자의 일탈은 이곳에서 마무리가 되는 중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