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18화 (18/106)

〈 18화 〉 스위치 오프

* * *

그리스 금태양은 한국으로 불러들인 지 3일이 지나서야 입국을 했다.

올림포스 최고 성좌의 전령, 그리스 과업 때 이동 수단 역할을 맡았던 아퀼라가

금태양을 등에 태우고 날아오는 것이 보인다.

“Μαλκα 말라까스, 빨리빨리 안 다니냐?”

“하하! 날 위해서 잊지 않고 고향의 말을 해주는군, 형제여.”

“ντε γαμσου 안데 가미수.”

좆이나 까라는 친절한 그리스 인사를 녀석에게 날려준다.

이 자식이 늦은 이유야 뻔하지.

“또 여자 만나느라 늦었지?”

“손우진… 성좌께서 걸어온 위대한 길을 답습했을 뿐이다.”

말은 번지르르 잘한다.

그리스 최고신이 이곳저곳 씨를 뿌린 이유가 무엇인가?

미래에 발생하는 기간토마키아를 막아낼 영웅의 탄생을 위해서이다.

현세에서는 기간토마키아가 일어날 리가 없는데

이 녀석의 씨뿌리기는 그저 과업을 핑계로 자신의 쾌락을 채우는 것뿐이다.

“걸어서 인도를 갔다 온 나도 미친놈이지만, 맨날 여자 만나러 다니는 너도 참…”

사실 성좌의 챔피언은 정신 어딘가가 미쳐버린 인간들을 뽑는 것이 아닐까.

강해지겠다며 크립티드 투성이인 세상에서 '걸어서 천축 속으로'를 찍은 원숭이의 제자.

어린 나이에 묵묵히 12과업을 수행하는 헤라클레스의 딸.

자신의 성좌를 따라서 DNA를 뿌리고 다니는 그리스 금태양.

“트리폴리 시는 복구에 들어갔냐?”

라돈과 전투를 벌였던 그리스 트리폴리 시의 근황을 물어본다.

상당히 깽판을 부린 곳이라 미안하긴 하다.

“얼마나 과격하게 싸웠던지 남아있던 게 없더군, 전투를 보고 있던 성좌들께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그거 미안하게 됐수다.

얌전하게 싸우기엔 상대방과의 체급 차이가 심하게 차이 나서 말이지.

“네가 라돈과 안 싸워봐서 그래, 진짜 피눈물 흘린다.”

“나였다면 멀리서 벼락을 내리쳤을 것이네”

“금방 싸버리는 조루 자식이 얼마나 내리친다고 …”

“조루라니! 대체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것인가!”

그리스 금태양 안드리안의 유물은 천상의 신이 내리치는 벼락, 아스트라페.

주인의 의지에 따라 벼락을 내리치는 유물이지만 출력이 강한 만큼

소모하는 신성의 양도 막대하다.

벼락 한두 번을 내리치고 헉헉 거리던 비실이는 어디가고

우락부락한 금태양만이 남아있는 걸까.

자신의 성좌를 따라서 그리스 마초 금태양이 되어버린 안드리안.

“됐고, 저승에는 어떻게 갈 거야?”

“이번에도 시스터와 브라더, 자네들 둘이서 다녀와야만 하네.”

“너는 왜 못 가는데?”

“자네들이 저승에서 과업을 수행한 후 깨워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하예은과 나만 저승에 보낸다고? 이거 지금 물리적으로 죽음을 선사해준다는 소리인가?

“아니, 알아듣게 좀 말해봐.”

“계획은 단순하네, 형제. 벼락을 통해 시스터와 브라더 두 명을 잠시 뇌사 상태에 빠뜨릴 것이네.”

“아이 미친 새끼야!!! 뭐가 단순하다는 거야 지금!”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섬뜩한 말을 꺼내는 금태양.

자기 일이 아니라고 방법을 짜낸 수준이 도를 넘어섰다.

“뇌사에 빠뜨리면 어떻게 돌아오라는 건데, 너도 같이 빠지던가!”

“그건 불가능하네. 내 벼락은 나에게 피해를 줄 수 없어.”

어처구니가 없네.

어이가 없는 변명이지만 말은 되기에 할 말이 사라진다.

하긴 자신의 벼락에 피해를 본다면 어떻게 주 무기로 사용하겠는가.

“그래서 뇌사에 빠진다 쳐. 어떻게 원상태로 회복시킬 거야?”

그 말을 듣고 품에서 검은색 액체가 담겨 있는 병을 꺼내는 안드리안.

“넥타르를 물에 희석했지, 7대3 비율로 섞어 불멸의 힘을 줄였네. 이름하여 소프트 넥타르.”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해온 게 더 괘씸하네, 이 자식…”

“처음엔 반병을 사용해 벼락 맞은 신체를 회복한 후, 시간이 되면 자네들을 다시 되살릴 걸세.”

이 무식한 작전에 머리가 띵해진다.

“넥타르를 마셔서 죽음에서 돌아온다 쳐도, 나는 뇌사 상태의 자네들을 돌봐야 하네.”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는 그리스 금태양.

“자네들이 뇌사 상태에 빠져있는 동안 멈춰있는 생체 신호는 내가 대신 조종할 것이네.”

“그것참 눈물 날 정도로 고맙네요.”

“하하하! 형제의 심장은 나에게 맡겨 주시게!”

참 고맙다, 금태양 새끼야.

뇌사에 심장 펌프질 대리까지, 이것이 그리스의 풀코스인가?

“하예은의 동의는 받았어?”

“아니? 지금부터 받아야지.”

좋은 소리는 못 들을 거다.

. . . . .

“제정신이에요?”

경멸스러운 눈으로 금태양을 쳐다보는 하예은.

“시스터, 그런 눈으로 보면 내 마음이 아프네.”

“아저씨, 아저씨도 저 계획에 동의하시는 건가요?”

갑자기 화살이 나에게 돌려진다.

사실 죽지 않고 저승에 가는 법을 모르기도 하고, 생자의 저승길은 험난할 것이다.

“그냥 죽어서 저승에 가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

“하아…”

잠깐 아프고 말지 뭐.

살아 있는 자가 저승에 갔다는 이야기는 많지만, 그 끝이 좋지 않았거나

험난한 여정을 떠난 경우가 많다.

“그럼 당분간 몸에 남아있는 모든 걸 비워낸 뒤 만나도록 하지.”

녀석의 배려에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며칠 뒤 다시 만난 우리.

인생의 첫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뇌사라니.

나도 참 다이나믹하게 사는 느낌이다.

“준비는 되었는가 다들?”

죽을 준비는 되었냐고 물어보는 금태양.

죽은 이의 저승길을 위해 시체에 올려두는 돈을 노잣돈이라 한다.

이런 풍습을 토대로 보면 죽었을 당시의 모습 그대로 저승에 도달하는 것 같으니

단단히 무장을 마친 상태로 저승길에 오르기로 했다.

“첫 죽음이 고의 동반 자살이라니.”

“죄송해요.”

“괜찮아, 이번엔 우리 성좌한테 술 한 병 뜯어먹을 테니깐.”

이번엔 제자가 죽게 된 상황인데, 이것마저 안 준다면 난리를 피울 것이다.

“넥타르를 말하는 건가요?”

“응. 신들의 술은 어떤 맛인지 보려고 했는데, 이 금태양이 준비한 넥타르는 원액이 아니더라.”

“어차피 의식도 없는 상태라 맛도 못 보시잖아요.”

“그렇긴 하지.”

“준비되었는가 시스터,브라더?”

까만 선글라스 끼고 등장한 우리 금태양 안드리안.

손에는 흉악한 기운을 풍기는 벼락을 쥐고 있다. 저것이 올림포스 최고의 유물.

“저승에 도착하면 지옥의 뱃사공 카론을 찾아야 하네. 엉뚱한 저승으로 가면 큰일 날 테니.”

“카론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데?”

“뭐 대충 서구적인 외모에 노를 들고 있지 않겠나? 하하하!”

이 새끼가 남 일이라고 막말하는 것 봐라.

“참 도움 되는 조언이네, 고맙다 새끼야.”

“그럼 다들 준비하시게나.”

두 눈에 금화 한 닢씩을 덮어둔다.

저승으로 갈 때 필요한 한 닢,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필요한 한 닢.

“저승에 오래 있을수록 몸과 영혼의 연결은 점점 약해질 거야. 현실의 시간으로

3일 뒤에 깨울 테니 그전까지는 과업을 완료해야 하네.”

“저승의 시간으로 3일 뒤는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데?”

“그런 건 생각하지 말고 빨리 과업을 완수해야지 하하!”

우리가 이놈을 믿고 떠나도 되는 걸까?

동전을 두 눈에 올려둔 지금 상황처럼 앞이 캄캄하다.

금태양 녀석이 내 목숨줄을 쥐고 있는 이상 믿어야겠지.

하예은과 손을 맞잡는다. 저승에서 따로 떨어질 수 있으니 사이좋게 손을 잡는다.

고의적인 죽음이기는 하지만 긴장되는 모양인지 손에 땀이 가득하다.

“예은아, 긴장 풀어.적어도 혼자 죽는 것은 아니잖아.”

“참 위로가 되는 말이네요.”

죽음을 앞에 두고 시니컬한 하예은.

시야는 가려져 있지만 안드리안이 아스트라페에 신성을 모으는 것이 느껴진다.

파지지직­

두 챔피언의 생명을 정지시키기 위해 신성을 최대한 모으는 안드리안.

신의 벼락이 사납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브라더, 시스터! 나만 믿고 오붓한 시간 보내고 오시게! 아스트라페여!!!”

녀석의 부름에 응답하는 하늘.

벼락을 쏠 준비가 되었다는 듯 천둥소리가 울려 퍼진다,

콰아아앙­!

“미친 금태양 새끼야! 너 믿어도 되는 거지! 대답해!”

“이대로 죽게 되면 용서 못해요, 안드리안!”

저승길을 향해 떠나가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발악을 하는 미쳐버린 두 남녀.

“플루토시여! 이 두 사람을 정겹게 맞이해 주시길 하하하하하!”

Τιμωρα του Θεο 신의 심판

사나운 벼락이 우리를 향해 떨어지고 고압의 전류가 몸을 타고 흐르기 시작한다.

온몸을 헤집어 놓는 황금빛 뱀들이 몸의 구석구석을 뜯어 먹는 중이다.

미친 금태양 새끼야!!! 조루라고 놀려서 출력 조절 안 한 것 맞지?

이런 나를 비웃듯이 계속 내려치는 신의 심판.

손을 마주 잡은 하예은의 몸 또한 덜덜 떨리는 게 전해진다.

그렇게 내 인생의 전원이 첫 번째로 꺼졌다.

. . . . .

정신을 차리고 나니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거대한 강줄기.

이것을 강이라 부를 수 있을까? 마치 바다와도 같은 커다란 규모에 질릴 정도이다.

강 속에선 뱃삯을 내지 못해 저승의 강을 건널 수 없는 망자들이팔을 뻗으며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

아비규환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네.

다시 한번 소지품을 확인해 본다.

티타늄 여의 체크, 소환용 두루마리 체크, 주머니에 든 금화 두 닢 체크, 옆에 기절해 있는 하예은 체크.

"예은아, 눈 좀 떠봐."

하예은의 말랑말랑한 볼때기를 가볍게 찹찹 때린다.

찹 찹

생각보다 중독성 있는데.

"일어났어요, 그만 때리세요."

볼을 때리는 내 손을 잡아 버리는 하예은.

아쉽네.

"준비물은 다 그대로냐?"

자신의 소지품을 점검해 보는 하예은.

올리브 나무 방망이, 히드라의 활, 네메아의 사자 가죽, 금화 두 닢.

"네, 죽기 전 마지막 모습으로 저승에 도달하는 게 맞네요."

완벽하네.

"자, 그럼 서구적으로 생긴 뱃사공을 찾을 시간이네."

신을 찾습니다. 이름은 카론, 직업은 뱃사공.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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