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25화 (25/106)

〈 25화 〉 스승과 제자

* * *

야외 방송에 필요한 방송 장비를 몇 개 챙겨 연무장으로 향한다.

하예은이 케르베로스 건틀릿에 익숙해질 때까지 어울려 줘야 하니

간단하게 여의봉 한 개도 챙겨둔다.

“그런데 아저씨는 수련 장면을 보여줘도 상관없으세요?”

“그게 뭐 크게 상관이 있나?”

“그래도 전술이 노출되잖아요.”

“그걸 보고 대처할 수 있는 놈이면 이미 한 가닥은 하는 놈이란 거지.”

그 정도로 예습을 해 올 정도면 노력이 가상해서 인정해 줄 것이다.

얼마나 이기고 싶으면 방송까지 찾아봤을까.

연무장에 도착한 뒤 우리의 모습이 비치도록 캠을 설치한 뒤 방송을 재개한다.

여의봉에 팔꿈치를 기댄 후 삐딱한 자세로 카메라를 쳐다본다.

“게스트 하예은 양과 함께 진행하는 교육 방송 시간입니다.”

내 옆에 서서 카메라를 향해 어색하게 손을 흔드는 하예은.

평소 나에게 대하는 태도와 달리 조심스럽다.

아직도 대중에게 진정한 자기 모습을 숨기는 거냐.

[강사님 태도가 너무 불량하네요]

[남자 강사님은 안 나오셔도 될 거 같은데]

[카메라 밖에서 나레이션만 해도 되는데 나가주실?]

[남자 강사님 좀 쳐내주시겠어요?]

“연습 대련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 시청자들의 눈높이 맞춤 교육으로 저 손우진이

이론 수업을 진행하겠습니다.”

[개무시를 하네 ㅋㅋㅋㅋ]

[열받네 ㅋㅋㅋ]

[고아단이 개ㅈ으로 보여?]

[ㅈ같은 놈들이긴 하잖아 ㅋㅋㅋ]

[팩트 그만.]

애초에 성실하게 활동하는 현직 히어로들이 내 방송을 볼 리가 없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방송을 하는 이상 기초부터 알려주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방송을 보던 이들 중에 히어로가 탄생하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고.

“자 다들 아가리 하시고. 우선 여러분은 초인들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인지해야 합니다.”

검은색 빛을 머금은 여의봉을 대충 허공에 휘둘러 한 폭의 그림을 그린다.

검은색 구름과 인간의 형상이 생명을 부여받은 듯 움직이기 시작한다.

“히어로와 빌런 상관없이, 초인들의 힘의 근원은 신성.”

구름이 한 줄기 빛을 내리쬐고 빛을 받은 인간은 의기양양한 자세를 취한다.

“초인들이 사용하는 모든 이능의 힘은 결국 신성에서 출발하는 셈이지.”

이내 단순하게 생긴 검은빛 인간이 손에서 화염, 전기, 냉기를 뿜어댄다.

여의를 한 번 더 작게 휘적여서 조그만 검을 만들어주자

무기를 집어 든 녀석이 검강을 둘러 휘두르기 시작한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오러, 마나, 기, 내공, 이런 모든 에너지는 결국 신성을 활용한 형태야.”

[오오오...]

[야매로 가르칠 줄 알았는데 전문적이네]

[도술 진짜 개쩌네]

[결국 신성을 얼마나 보유했는지가 중요한 거네]

“맞아. 전투에 필요한 기량도 중요하지만, 초인의 정체성.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힘을 사용하려면 막대한 신성이 필요해.”

내 말이 끝나자마자 신나게 능력을 사용하던 이 작은 초인은

신성을 모두 사용한 것처럼 헉헉거린다.

“무투와 강림의 차이는 내가 맨날 떠들던 얘기니깐 너희도 잘 알겠지.”

휴식을 취하는 놈을 여의로 찍어 누르자 두 명으로 늘어난다.

“많이들 오해하는데 무투는 성좌에게 아무것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야.”

두 명의 초인에게 빛을 내리쬐는 검은 구름.

한 놈은 이내 능력을 사용하지만 다른 한 놈은 주먹을 몇 번 내지른 뒤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초인이 된다는 건 신성을 담는 그릇을 부여받는 거로 생각하면 편해.”

[이 집 설명 잘하네]

[원숭이쉑 은근 잘 가르치는데?]

[ㄹㅇ 히어로 아카데미 강사 했어도 괜찮았을 거 같은데]

[얘 성격에 하겠냐고 ㅋㅋㅋ]

[그건 맞지 ㅋㅋ]

아무리 그래도 히어로 짬밥 먹은 지 얼마나 되었는데 이 정도 설명도 못 하겠는가.

나를 개무시하는 시청자들의 아가리를 봉할 시간이다.

“학생분들 지방 방송 끄세요. 밴 때리기 전에.”

[­틀­]

[­틀­]

[지방 방송이 뭔데 틀딱아 ㅋㅋ]

[언어 사용에서 쉰내가 나네요]

[위에 틀 거리는 놈들도 죄다 틀딱들임 ㅋㅋㅋㅋㅋ]

하루도 조용히 지나가는 일이 없는 나와 고아단.

잠깐의 투덕거림이 지나간 뒤 다시 수업을 진행한다.

“강림형 히어로는 물이 가득 차 있는 그릇을 부여받지만, 그에 비해서 무투형 히어로는

빈 그릇만 받는 셈이지.”

어디서 꺼냈는지도 모르는 짐을 챙겨 떠나가는 미니 무투.

미니 강림은 신나게 능력을 사용 중이다.

“강림은 초인이 된 시점부터 강력한 힘을 사용한다는 강점이지만 그만큼 보유한 신성을

늘리는 것이 쉽지 않지.”

“널리 활약해 성좌의 총애를 다시 받는 상황이 오거나

막대한 신성을 보유한 크립티드의 사냥, 신성이 담겨 있는 유물을 획득하는 것 말고는 힘들죠.”

내 강의를 가만히 지켜보던 하예은이 자신도 뭔가 해야겠다고 압박감을 느꼈는지

한마디를 거든다.

“오오, 하예은 강사님. 그러면 무투는 어떤 강점을 지니고 있나요?”

“무투는 빈 그릇을 받았지만, 온전히 자신의 신성을 채울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에요.”

그렇다.

강림이 고행을 수행해 봤자 소용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미 그릇을 성좌의 신성으로 채운 이상 자신의 신성은 그곳에 스며들지 못한다.

그에 비해 무투는 온전히 자신의 신성을 쌓아 올리기 때문에

성좌가 내린 고행을 수행하며 성장해 나가는 슬로우 스타터라 할 수 있다.

“하예은의 말대로 무투의 장점은 인간 스스로 신성을 쌓는 것에 있어.”

물론 아무것도 없는 뉴비 시절엔 엄청난 고생을 해야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빌런들은 어떻게 신성을 쌓음?]

[빌런도 무투 강림 나눔?]

[빌런 새끼들이 수행을 하겠냐]

“그 새끼들도 결국 초인이니 본질은 같아. 다만 인류에게 적대적인 성좌를 위해

반인륜적인 행위를 하고 힘을 받는 것뿐이지.”

자신의 강함만을 추구하거나 애초에 또라이인 놈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보이는 족족 족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놈들이 빌런이다.

“초인학개론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고, 히어로들의 연습 경기나 감상해.”

히어로에 대한 대략적인 개요는 알려 줬으니

시청자들이 환장하는 피 튀기는 싸움의 시간이다. 물론 연습 경기라 그럴 일은 없지만.

“준비는 됐나요? 하예은 강사님.”

“아직도 그 컨셉 계속 유지하고 있으신가요…”

“뭐 그런 셈이죠. 강사님을 위한 연습 경기이니 먼저 오세요.”

한쪽 손에는 여의를 쥐고 나머지 손을 까딱거려 하예은을 도발한다.

까딱까딱.

올 테면 와보라는 전형적인 도발.

“흥!”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던 하예은이지만, 건틀릿에 묶여 있는 쇠사슬을 던져

내 여의를 휘감은 뒤 끌어당기려 한다.

케르베로스와의 전투를 통해서 상대의 허를 찌르는 법을 잘 배웠다,

그러나

“그 정도로 당황할 짬은 아니지.”

몸에 힘을 빼 끌어당기는 힘에 몸을 맡겨 하예은에게 날아간다.

우리가 마주칠 때쯤 여의에 힘을 주어 땅에 박아 넣은 뒤 회전력을 이용해서

하예은에게 돌려차기를 선사한다.

퍼억­!

나머지 팔을 이용해서 터프하게 내 공격을 막아내는 하예은.

그 후 내 다리를 잡아서 반대편으로 날려버린다.

날아가기 전 여의를 뽑은 후 날아가는 방향을 향해 던진다.

그리곤 화과산 잔나비들의 우두머리답게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켜

잔망스러운 몸놀림으로 여의 위에 발끝으로 착지해준다.

“케르베로스한테 배운 게 많은가 본데?”

“아저씨한테는 역시 통하지 않네요.”

[뭐임 시발?]

[뭐가 지나간 거야 지금 ㅋㅋ]

[괜히 초인이 아니네 ㅋㅋㅋ]

[체술로만 싸우는데 클라스 지리네 ㄷㄷ]

첫 번째 탐색전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공격해온다.

나야 하예은의 연습 상대를 맡고 있을 뿐이니 적절하게 방어만 해주도록 할까.

하예은이 케르베로스의 앞발을 닮은 유물로 공간을 찢어버리려는 듯

발톱을 세워 나에게 붉은 참격을 날려 보낸다.

이건 맞으면 조금 아프겠는데.

바람의 기운 팔괘 4장과 화염의 기운 팔괘 6장을 섞어서 방어한다.

팔괘극권 열풍.

붉게 타오르는 내 손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풍이 나를 보호한다.

치이이이익­

이빨을 들이대며 찢어발길 듯이 날아오던 붉은 참격은

열풍으로 생성된 방어막에 막혀 녹아내린다.

“이거는 좀 감정이 섞여 있는 공격처럼 보인다.”

“힘든 기색도 없이 막아내셨잖아요.”

나에 대한 믿음이 엄청나구나.

이런 무지막지한 공격도 믿고 날릴 정도로 말이야.

“나쁘진 않아. 그런데 참격을 좀 더 예리하게 만들 필요가 있어 보이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직 숙련도가 부족한가 봐요.”

“격투술은 이미 능숙하니, 쇠사슬을 자유롭게 다루는 법과

참격의 절삭력을 높이는 연습에만 집중하면 괜찮을 거 같아.”

케르베로스의 건틀릿을 활용하는 법을 지적해 준 뒤

잊지 않고 다른 조언도 해준다.

“그리고 말이야, 너의 유물은 그게 끝이 아니니깐 너무 완벽하게 사용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어.

하예은이 보유하고 있는 무장만 해도 올리브 나무 방망이, 히드라의 독화살,

케르베로스의 건틀릿, 네메아의 사자 가죽 등 다양한 유물을 지니고 있다.

”상황에 맞게, 상대에 맞춰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너라면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강박감에 빠지지 말고 주어진 여건을 활용하라는 거죠?“

”그래그래.“

역시 우등생은 다르다.

내가 하예은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 쓸데없는 소리를 내뱉는 시청자들.

[고위급 히어로가 해주는 일대일 과외 존나 부럽네]

[사교육 시장 나갔으면 때돈 벌었다 ㄹㅇ]

[ㅋㅋㅋㅋ 진짜 히어로 아카데미 취직 좀 하실?]

[밸런스 게임 오지네 뛰어난 재능에 개같은 성격]

”안 해 새끼들아. 채팅창에 히어로 협회 첩자 새끼들 천지네 이거.“

[협첩 누구야!]

[난 아님 ㅋㅋ]

[저도 아님 ㅋㅋ]

[여기가 첩자촌이에요 첩자촌.]

내가 다신 방송에서 교육 방송 콘텐츠를 하나 봐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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