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고행길에서 생긴 일
* * *
“좆같은 새끼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네, 이 씨발놈들은!”
상스러운 욕지거리를 내뱉는 한 사내.
성좌 제천대성의 챔피언 손우진이다.
손에는 붉은 피투성이 철봉을 들고 있고 그의 앞에는 고기 육편이 되어버린
크립티드만 존재할 뿐이다.
이젠 일상이 되어버린 폭력의 현장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손우진의 후배들.
석가의 챔피언만이 상투적인 말을 건넬 뿐이다.
“우진이 이놈, 불법을 따른다면 살생에 익숙해지지 말거라.”
“그러기엔 하루도 안 빼놓고 대가리를 들이미는데 어떻게 합니까?”
손우진은 원래도 싫어하던 크립티드를 더 혐오하게 되었다.
한반도를 벗어나 중국으로 들어서는 시점부터 끊임없이 달려드는 괴수들.
대가리를 한땀 한땀 박살 내는 중이지만 이것들은 끝도 없다.
신화 속 백마 대신 일행을 태운 오프로더 자동차.
선봉에서 구름을 타고 천천히 날아가는 손우진.
이 현대판 서유기 팀은 괴수들의 시대에 천축으로 향하는 미친 기행을 펼치는 중이다.
“다음에 형님이 부른다면 내 절대 응하지 않을 거요.”
“오냐. 어떤 일을 하든 내가 두들겨 패서라도 너는 꼭 끌고 가마.”
“이원숭이 놈아! 계급장 떼고 붙어! 더는 못 참겠다!”
“그래, 나도 한동안 사람 패는 맛이 그리웠는데 오늘 돼지 좀 잡자.”
주렁주렁 매달고 있던 철근들을 꺼내 드는 손우진.
얼마나 괴수를 때려잡은 건지 모양새도 제각각 뒤죽박죽의 모습으로 휘어있고
회색빛 철근은 붉은색 피로 물든 지 오래다.
“형님, 어찌 동생의 투정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십니까.”
“지랄하지 마. 진심이었잖아.”
손우진의 무지막지한 철근들을 보고 공손함을 되찾는 정단사자의 후계자.
투전승불과 정단사자의 옛 시절을 빼다 박은 듯 싸우는 모습마저 성좌들과 똑같다.
그렇게 티격태격 싸우는 사형과 사제.
그런 모습을 보고 조용히 웃는 막내.
두 못난 놈을 뜯어말리는 스님.
21세기에 일어나는 천축기행은 그들의 성좌들이 떠나왔던 여행길과 흡사하다.
한동안 크립티드가 등장하지 않자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손우진 일행.
평온을 찾은 그들에게 먼지바람을 몰고 오는 한 무리가 보인다.
“게임 하나 할 사람, 종목은 두더지 잡기다.”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이들을 보며 운을 띄우는 손우진.
“조용히 지나갈 일은 없겠죠?”
순진한 막내는 손우진에게 의미 없는 질문을 건넨다.
“저 뛰어오는 꼬라지 좀 보렴. 퍽이나 호의적이겠다.”
말을 몰며 손우진 일행에게 다가오는 것이 기세가 등등하다.
손우진의 말처럼 좋은 의도를 갖고 달려오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내 일행에게 달려와 주변을 둘러싸는 이들.
그리곤 여기까지 달려온 목적을 꺼내 든다.
“???????出?!”
“저것봐라, 막내야 너는 아직도 이런 세상에서 인간을 믿니?”
“손우진.”
“아니 법사님, 이것마저 말리지 마세요! 저것들이 떠드는 소리가 안 들리십니까?”
성좌의 챔피언들로 이루어진 파티답게 이미 저 도적들이 꺼낸 소리는 다 알아들었다.
가진 것은 전부 내놓아라!
여기서 거부해봤자 그다음 후속타는 안 봐도 뻔한 일이다.
자신들을 개무시한 채 서로 대화하는 이들을 보며 도적 떼의 우두머리는 더욱 더 성내기 시작한다.
“??出!”
“지금 말하는 거 안 보이냐 이 씨뱅할 놈아.”
원숭이의 으르렁거림에 화들짝 놀라는 우두머리.
분명 다른 언어로 말하는 것일 텐데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있다.
“혹시 귀인분들이십니까?”
중국에서 성좌의 챔피언을 부르는 호칭.
두더지 잡기 게임이 시작되려는 상황이다.
대가리가 깨지기 일보 직전인 대장이 재빠르게 손우진 일행의 신분을 확인한다.
“왜 갑자기 저자세로 나오냐?”
“죄송합니다 귀인!”
“이 새끼 이거 눈치는 빠르네.”
“정말 죄송합니다! 귀인을 몰라뵈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빌고 또 빌어야 한다.
대장은 빠르게 머리를 회전시켰다.
오프로더 자동차를 타고 가는 부유층 피난민인 줄 알았건만 최악의 지뢰를 밟은 셈이다.
이 험악한 곳에서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눈앞의 떡밥을 무시하지 못하고 바늘을 물어버린 고기 입장이 되어버린 상황.
바짝 엎드리지 않는 이상 자신들이 살아나갈 방법은 없다.
자신의 눈앞에서 선처를 구하는 두더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손우진.
이내 법사님에게 의견을 구한다.
“이놈들 처분은 어떻게 할까요?”
“살업(??)을 쌓은 이는 없어 보이는구나.”
“흠…”
그나마 마지막 선은 지켜온 걸까.
손우진의 고민이 깊어진다.
대가리를 깰지 말지 수준의 쓰잘머리 없는 고민이었지만.
자신들의 생명이 이들 손아귀에 놓인 것을 깨달은 도적 떼가 흐느끼기 시작한다.
그들이 울건 말건 고민하는 손우진.
“형님! 뭘 그리 고민하십니까? 그냥 적당히 패고 돌려보냅시다.”
“이 단순한 새끼야 기다려 봐.”
고민을 마친 손우진이 도적무리의 대장에게 질문을 한다.
“사람을 죽인 적 있어 없어? 사실대로 말해.”
“사람들의 물건을 약탈한 적은 있어도 함부로 살생을 저지른 적은 없습니다 귀인!”
“그런 놈들이 각박한 세상에서 왜 도적질이나 하고 다녀? 너희도 역으로 털려볼래?”
이제 누가 도적이고 깡패고 피해자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손우진의 심문에 잔뜩 쫄은 대장은 자신들의 사정을 줄줄 읊는다.
“저희도 원해서 이런 짓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귀인! 사실 저희 마을에…”
“아이 씨발! 제발 그만 말해!”
“가만히 있거라 우진아. 계속 말해보시지요.”
손우진의 제지를 뿌리치고 도적들의 사정을 들어보려 하는 석가의 챔피언.
이를 예상하고 만류하려던 손우진이지만 이미 법사께서 선수를 쳤다.
“크하하하! 우리 손형 또 호구 잡히게 생기셨고만! 아이고!”
손우진이 옆에서 기분 나쁘게 비웃는 녀석의 머리를 쥐어박는다.
잘못된 길로 들어선 중생들을 구하기 위한 법사님의 강렬한 의지는 손우진도 말릴 수 없다.
“갈 길이 멀다 멀어…”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대가리부터 깨부숴야 했다고 생각하는 손우진이였다.
. . . . .
도적들의 머리 대신에 이들의 마을을 빼앗은 오크들의 골을 깨부수고 다시 여행길에 오른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
지구는 더이상 인간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다.
개인이 강해진다고 해서 이 밀레니엄 쇼크의 후폭풍을 막아 낼 수 있을까?
손우진은 하루에도 수천 번 고뇌에 시달린다.
“법사님. 이 고행에 의미가 있을까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괴로움이 생긴단다.”
새내기 챔피언의 손아귀엔 놓아주지 못한 것들이 많다.
유년기의 악몽, 떠나보낸 가족들, 이를 위한 복수.
증오스러운 것들을 용서하기엔 이 어린 챔피언은 부처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질릴 때까지 크립티드를 죽여서 미련을 버리라는 말씀이시죠?”
“허허! 이놈을 어찌해야 할꼬.”
개떡같이 알아먹는 원숭이의 행태에 그저 헛웃음을 흘리는 석가의 챔피언.
“의미도 없는 일에 동생들은 왜 끌고 온 건지 쳇…”
그걸 들은 정단사자의 챔피언은 사형의 고뇌에 괜히 볼멘소리를 해 본다.
“그래내가 미안하다 미안해.”
“이 씨부랄 것! 형님이 순순히 사과할 리가 없는데? 정체를 드러내라 새끼야!”
“진짜 이런 미친놈이니 따라왔지…”
자신의 성격은 생각지도 않은 채 아우의 흉을 보는 손우진.
그러고선 이를 조용히 지켜만 보는막내의 의견을 물어본다.
“너는 뭐 불만 없니?”
“힘들긴 한데 오빠들이 싸우는 모습은 언제봐도 재밌어서 지루할 날이 없어요.”
세 명의 악질들.
각자 자신만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이 제자들 덕분에 유일한 정상인의 한숨은 늘어간다.
“우진아,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 하고 싶은 일이 있느냐?”
손우진의 장래에 대한 의향을 물어보는 법사님.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정상적인 세상이 돌아올 것이다.
그때 이 아이들이 정상적인 세상 속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는
삼장의 가장 큰 걱정이다.
“하고 싶은 일이요? 글쎄요… 크립티드가 없어지면 뭐 하고 살지.”
법사의 걱정한 대로 복수 말고는 큰 목표가 없어 보이는 손우진.
그때 아우놈이 자신의 당찬 포부를 밝힌다.
“전음식 평론가가 될 것이오.”
“평론가?”
“형님, 나는 내 고급 입맛을 충족시켜 줄 음식을 찾아다니겠소”
“고급 입맛은 지랄하고 있네. 크립티드도 먹는 새끼가 무슨 고급을 찾고 있어.”
“저를 선구자라고 불러 주시겠소? 식재료에 편견을 가지면 안 된다오.”
“크크, 돌았냐?”
아우의 포부를 가볍게 무시하는 손우진.
하지만 크립티드에 대한 복수 말고는 뚜렷한 목적 없이 살아가는 자신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손우진이었다.
“막내는 장래희망이 뭐냐?”
“저는… 신부요!”
“유일교 신부님?”
“아니요!”
“하하하!
“그래서 형님은 결국 꿈이 무엇이오?”
“…”
웃음을 그치고 한참을 고민하는 손우진.
일행의 모든 주목이 손우진에게 쏠린다.
“나는… 사람들이 그냥 나만 봐도 돈을 적선해 줬으면 좋겠어.”
“허어… 이 어린 중생을 구하소서.”
“크하하하하! 날로 먹으려는 심보가 꿈까지 영향을 미쳤군.”
“오빠, 그래도 그건 좀…”
인생을 날로 먹고 싶다는 손우진의 욕심 가득한 장래희망.
이 꿈을 이루게 된 날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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