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그런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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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 앉아 입에 꾸역꾸역 음식을 입 안으로 처넣는 놈.
그런 놈과 대비되게 과자 한 봉지를 몇 분째 먹는 중인 막내.
그리고 이들을 부른 나.
“살림 거덜 내려고 왔냐?”
“형님. 다 힘을 비축하기 위해 이리 먹는 것이요.”
그런 놈을 한심하게 쳐다보는 막내.
옛날의 귀여웠던 막내는 어디 가고 다 큰 아가씨만 남아있다.
“막내야 그거로 배가 차겠냐.”
말없이 음식을 처먹는 돼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서로 간에 볼 장 다 봐서 그런지 서슴없이 돼지놈을 디스하는 막내.
“야! 감히 하늘 같은 오빠한테 손가락질을 하냐!”
화를 내는 돼지에게 검지 손가락 대신 중지 손가락을 보여주는 유정이.
이젠 막내한테도 지는한심한 놈.
티격태격 하는 것이 이제는 정말 친남매 같은 둘.
이것들과 아직도 괴수 사냥을 다녔다면 우리 팀은 가정 내 불화로 해산됐을 것이다.
“사유정 오대혁 그만.”
첫째의 개입에 다툼을 멈추는 둘째와 막내.
유정이의 성격을 망친 것도 모두 이놈의 탓이다.
사람을 어지간히 열받게 해야 말이지.
내가 일선에서 물러선 뒤 대혁이와 둘이서 크립티드 사냥 팀을 꾸려왔던 막내.
내가 있던 시절엔 멀리서 지켜보기만 해서 재밌게 생각했겠지.
막상 상대해보니 대혁이 놈이 얼마나 열받게 하는 건지 깨달은 것이다.
“너희 둘은 안 본 사이에 어찌 사이가 더 나빠졌냐.”
“다 대혁이 오빠 덕분이죠.”
“저년이 날 존중해주지 않소!”
“허허.”
지랄 났다 지랄 났어.
배틀 토너먼트에 참가하기도 전에 팀원 간의 불화로 팀을 해체하게 생겼다.
“대혁이 네가 막내 성격을 망쳐놔서 애가 냉소적인 성격으로 자란 거 아니야.”
“내 편은 한 명도 없구만! 스님한테 모두 이를 거니 두고 보쇼!”
“나이가 몇 갠데 일름보 짓을 하냐 새끼야.”
모질이 새끼 진짜.
그렇게 남매끼리의 다툼이 끝난 뒤 녀석들에게 부른 이유를 알려준다.
“다름이 아니고, 우리 팀끼리 하고 싶은 게 있어서 불렀지.”
“거 형님. 필요할 때만 팀을 찾는 것 아니오?”
비겁하게 팩트로 승부를 보려는 오대혁.
돼지 녀석의 지능이 상승한 건지 아픈 곳을 찌르네.
“이 형이 해준 게 얼만데 부르면 와야지.”
“내 형님께 받은 거라곤 강제로 징용당한 것…”
한층 더 진화한 티타늄 봉을 꺼내 드니 하던 말을 멈추는 놈.
자존심을 챙기기엔 형의 주먹이 더 가까울 것이다.
“얘들아. 이거 나가자.”
동생들에게 어제 봤던 히어로 배틀 토너먼트 개최를 알리는 사이트를 보여준다.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유정이와 대혁이.
“오빠. 최근에 협회에서 징계받지 않았어요?”
“크하하하하! 챔피언이나 돼서 다른 놈들을 이겨 먹고 싶소?”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두 사람.
“아 왜! 재밌을 거 같지 않아?”
“전혀요.”
“이번엔 유정이 말에 동의하오.”
이것들을 어떻게 설득한다.
분명 내게 원하는 것이 있어 튕기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지간한 걸로는 협조해 줄 것 같지 않다.
“각자 뭘 원하는데.”
“밀려 있는 크립티드 전부 처리해 준다고 약속하면 참가할게요.”
“참한 처자 한 명 소개해 주시오.”
이럴 줄 알았다.
각자 원하는 것이 있었으니 절대로 고분고분 수락하지 않은 것이지.
유정이는 자신의 팀이 담당하고 있는 크립티드를 빨리 해결하는 것을 원하고
저 음흉한 돼지 녀석은 이 귀한 기회를 소개팅 하나로 날려 먹으려 한다.
“영악한 놈들… 우선 유정이부터. 몇 마리 남아있는데?”
“중위급 5마리, 상위급 3마리요.”
“그 정도면 너희끼리도 충분하잖아?”
“대혁이 오빠랑 같이 다니는 게 사냥보다 힘들어요.”
“맞는 말이긴 하지. 합당한 이유니깐 들어줄게.”
다음은 돼지 녀석.
내가 순순히 들어줄 리는 없지만 그래도 놈의 수요를 물어보기로 한다.
“네놈은 웬 소개팅 타령이야.”
“그… 형님하고 하예은 양하고 친해 보이던데 쿠에에에엑!”
돼지 녀석이 하예은을 언급하자마자 머리를 쥐어박았다.
미친놈이 분수를 알아야지.
“진짜 양심 더럽게 없다 둘째 오빠는.”
“그냥 이 새끼 말고 다른 팀원 구해서 나갈까 유정아?”
“농담도 못하오!”
추악한 욕망이 다 드러난 것도 모른 채 항변하는 돼지.
유정이 말대로 양심마저 삼켜버린 것이 분명하다.
2층에 하예은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지랄발광을 할 거 같기에
하예은에겐 일부러 나오지도 말라고 했다.
이놈의 반응을 보니 현명한 판단이었던 것 같다.
“넌 살이나 빼고 와. 내가 상대방 여성분한테 미안해서라도 소개하겠나.”
“형님! 이거 다 물살인 거 아시잖소! 내 마음만 먹으면 바로 빼는 것들일 뿐인데!”
“자 그럼 신청한다? 대회 진행하는 날에는 일정 다 비워놓고,”
돼지 주제에 개소리를 하는 대혁이를 무시한다.
다들 동의의 뜻을 밝혔으니 배틀 토너먼트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간만에 히어로 후배들과 재밌게 놀 수 있겠다.
“그런데 형님, 대장 역할이야 형님이 맡는다고 하지만 선봉과 중견은 누가 맡을 거요?”
“선봉은 네가 맡아야지. 중견은 유정이가 맡고.”
“짬대로 합시다.”
“공평하게 돌아가면서 맡던가.”
“팀 이름은 어떻게 하실 거에요?”
가장 중요한 것을 지적하는 유정이.
팀 이름이야 항상 써오던 신 서유기를 사용하고 싶다.
그렇지만 대놓고 대회를 나갈 수는 없는 상황이라 적당히 눈가림 노력은 해야 할 텐데.
“뭐 좋은 아이디어 없냐 다들?”
“오대혁과 아이들로 합시다.”
“원래 쓰고 있던 신 서유기로 해요.”
“안돼. 회장 아재가 자중하라고 했단 말이야.”
“웨스트 트리오로 합시다.”
개무시를 했더니 의외로 쓸만한 팀명을 떠올린 돼지 녀석.
저니 투 웨스트 Journey to West, 서유기의 영어 이름을 따서 만들었나 보다.
“난 나쁘지 않은데?”
“별로에요.”
“형님의 동의로 2대 1이니 웨스트 트리오 확정이군 하하! 내가 이겼다 사유정.”
여동생을 이겨 먹어서 참 좋겠다.
팀 웨스트 트리오.
우여곡절 끝에 팀명을 정했지만 갈 길이 멀다.
우선 유정이의 불만을 잠식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 . . .
“안녕하세요. ”
“…오빠만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 약속은 한 적 없는데.”
빨리빨리 끝내버릴 겸 우리 집 세입자까지 데려온 상황.
유정이는 하예은과의 만남이 처음이라 그런지 낯을 가린다.
“최근에 가르치는 아이라 데려와 봤지.”
“그냥 오빠가 전부 사냥하기 귀찮으니까 그런 건 아니고요?”
“어허.”
현직 최고의 디크립터답게 본질을 잘 꿰뚫어 보는 사유정.
내 의도를 전부 파악해 버렸다.
예리한 녀석.
“안녕하세요. 우진이 오빠랑은 예전부터 팀을 맺어왔던 사유정이에요.”
“…저는 최근에 아저씨한테 사사하고 있어요.”
왠지 둘 사이에서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것 같다.
“천축기행 생각나네. 그때 오빠가 많이 알려줬는데.”
“저도 아저씨랑 저승도 다녀오고 그랬거든요.”
“뭐하냐 너희들.”
인사하라고 소개했더니 자기 경험담을 푸는 아이들.
빨리빨리 일 마치고 대회나 준비해야 하는데 뭐 하는 거야.
“아 참, 그리고 지금은 수렴동 2층에서 살고 있어요.”
“오빠!”
우리 집 세입자의 고백에 화살을 내게로 돌리는 유정이.
“왜?”
“어떻게 혼자 사는 집에 여자를 들일 생각을 해요?”
“난 1층만 사용하는 거 알잖아. 2층은 노는 공간이라 세 내놓은 거지.”
“우리가 집에 왔을 때는 왜 말 안 했어?”
“그야 대혁이 놈이 알면 피곤하잖아.”
꼬치꼬치 따지는 유정이.
이래서 말하기 싫었던 건데 정작 하예은이 밝히는 바람에 더 피곤해졌다.
이게 오대혁 놈의 귀까지 들어간다? 무슨 난리법석을 피울지 모른다.
“제 부탁 하나 더 들어주면 참가하는 걸로 바꿀래요.”
“우리 막내께서 또 뭐가 필요해서 그러십니까.”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면 나도 수렴동 들어가서 살 거야.”
얘가 갑자기 왜 이런다.
천축에서 귀엽던 막내 아이는 어디 가고 오빠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표독스러운 아가씨만 남았을까.
내 인생의 가장 큰 원죄 천축행이 있기에
대혁이나 유정이의 부탁은 정말 힘든 것이 아닌 이상 들어주는 편이다.
그리고 세 명이 다 같이 그만두겠다고 한 것을 동생들만이라도 남겨달라고 부탁을 했던
협회장 아저씨의 요청 때문에 현직에 남아 히어로로 활동 중인 동생들.
내가 동생들에게 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예은이랑 같은 층에서 생활해야 하는데 괜찮겠어?”
오늘 처음 본 사이지만 너희 그렇게 친하게 지낼 것 같진 않아.
“상관 없어요.”
“예은이 너는?”
“저도 상관 없어요.”
“그래. 우선은 크립티드부터 처리하자.”
서로를 향해 웃어 보이지만 웃는 것 같지 않다.
이 무서운 아이들 등쌀에 더 휘둘리기 전에 크립티드나 잡고 빨리 해산해야겠다.
사유정에게 오늘 할 일에 대해 브리핑을 요청한다.
“우선은 제일 가까이 있는 크립티드는 강화도의 리자드맨 부족이네요.”
“리자드맨 주제에 무슨 중위 크립티드야.”
“와이번을 길들인 놈들이라네요.”
이세계에서도 넘어온 말하는 도마뱀 놈들 주제에
자신들의 사촌격인 날아다니는 도마뱀을 사역했다?
나름 자신들의 세계에서 한 끝발 좀 날렸을 것이다.
“가자.”
빨리 끝내버리고 대회 준비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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