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그런 사람 아닙니다
* * *
리자드맨.
크립티드로 구분하자면 두 종류의 리자드맨이 존재한다.
밀레니엄 쇼크 이전 간간이 도시 전설로만 전해지던 파충류 인간.
그리고 이세계에서 넘어 온 파충류 계통 수인족.
와이번을 길들였다고 하는 것을 보니 이세계에서 넘어 온 놈들인가 보다.
협회는 왜 강화도를 점령한 놈들을 왜 가만히 두었을까.
현장 책임자 유정이에게 이유를 물어보자.
“그냥 폭격으로 날려버리면 안 돼? 와이번이야 그렇다 치고 나머지 놈들은 싹 쓸려나갈 텐데.”
“섬의 주민들이 인질로 붙들려 있어서 그럴 수는 없어요.”
“허어, 요즘도 강화도에 사는 인간들이 있었냐.”
크립티드의 등장 이후 서울의 희소가치는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일단 협회도 수도에 있고 성좌의 챔피언이나 히어로들도 수도에 모여 있는 상황.
협회의 히어로 할당제로 지방마다 지역을 지키는 대표 히어로 한 명씩은 있는 상황이지만
이 제도가 있기 전까지는 아비규환으로 지방에서 탈출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내 경우 우리 성좌께서 알 박아 둔 화과산 덕분에 좋든 싫든 서울에서 살아야 하지만.
강제로 서울의 대표 챔피언을 담당하고 있는 상황이긴 하다.
이게 무슨 말이냐, 내가 초상위 크립티드에게 지는 순간은 서울의 몰락을 의미한다.
나라의 모든 히어로들이 모이면 어찌어찌 막아낼 수는 있겠지만 그때 가서는
최초 방어선인 나는 무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편히 쉬지 못하고 수련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정진하는 것이다.
“주민들 몇 명이 억류되어 있는데?”
“듣기로는 10가구 정도가 리자드맨에게 노예 상태로 억류된 상황이에요.”
“죽이거나 먹지 않은 게 용하군.”
노예로 삼은 것은 어느 정도 지능이 있다는 소리인가.
하긴 지성 없는 도마뱀이라면 와이번 정도의 개체를 길들일 수 없었겠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저씨?”
“우선 대화 먼저, 말이 통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나온다면 코드 브레이크로 간다.”
코드네임 브레이크.
간단하다, 적대적으로 나오는 순간 녀석들의 골은 박살 날 거다.
“그럼 가자.”
입김을 불어 넣자 생성되는 구름 뭉치들.
“거기 두 명 등 좀 보여줘.”
“네?”
익숙한 듯 등을 내게로 돌리는 유정이와 다르게 깜짝 놀라는 하예은.
내가 생각해도 오해할 만한 언행이었다.
“아하, 예은양은 처음이라서 모르겠구나.”
“아니 내가 다짜고짜 말한 게 잘못이지.”
“그게 무슨 소리예요? 처음이라니?”
“구름에 타려면 근두운 술법을 걸어야 하는데 하늘을 나는 술법이다 보니 안전하게 신체를 접촉해서 거는 것이 효과적이거든.”
이상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말이 길어진다.
유정이 녀석 알고 있으면 같이 말 좀 해주지.
“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두 아이의 등에 손을 올리곤 도술을 읊는다.
과거 미디어로 인해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내가 타고 다니는 구름은
도술로 소환하는 구름일 뿐 유물이나 이런 것과는 관계가 없다.
핵심은 근두운술.
몸을 한없이 가볍게 만들어 구름에 올라탈 정도로 만드는 술법이다.
“몸이 엄청 가벼워졌어요.”
“조심해. 날아가면 술법이 풀릴 때까지 떠다녀야 하니깐.”
근두운 술법은 처음 겪어보는 하예은은 이 술법이 신기한가 보다.
구름에 올라탄 후 출발할 준비를 하자 떡하니 옆자리로 오는 사유정.
“네 건 저 옆에 소환했잖아.”
“강기 두르기 힘들어요. 오빠는 한 번에 두를 수 있잖아.”
또 옆을 보니 자신의 구름을 내 구름과 합치려고 하는 하예은이 보인다.
“예은아. 그런다고 합쳐지는 구름이 아니야.”
“유정 언니 말처럼 다 같이 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네요.”
둘 사이의 호칭은 또 언제 정리했냐?
기껏 소환한 구름을 뭉친 뒤 셋이 옹기종기 모여서 타고 간다.
뭐 하는 짓인지.
. . . . .
쉬익
도마뱀 아니랄까 봐 겁나게 쉬익 쉬익 소리 내는 리자드맨들.
하늘에서 온 이 침입자를 경계하는 듯하다.
무기를 든 채 우리와 대치하는 리자드맨 부족.
그 뒤로는 무장한 와이번 무리가 그 특유의 파충류 눈빛으로 우릴 꼬나보고 있다.
“히어로 협회에서 나왔습니다. 불법 체류 이세계인들이 우리 국민을 억류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는데 사실입니까?”
“대화한다. 인간.”
오.
생각지도 못한 소득인데.
유창하지는 않아도 대화를 시도해보려는 리자드맨 우두머리 녀석.
“그래서, 왜 이 땅을 점령하고 있냐? 세금은 내냐 너희들.”
“우리. 갈 곳 없다. 이곳은 처음 도착한 낯선 땅.”
“원래 주민들은 어쨌는데?”
“그들. 우리의 노예. 약하다. 강한 자의 권리다.”
강화도 주민들에게서 언어를 배웠나 보군.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고등종족인 것은 확인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원시적인 풍습을 지닌 듯하다.
힘의 논리를 주장하는 리자드맨 놈들을 제압할 방법은 똑같이 억눌러주면 그만.
계급장 걸고 뜨는 것뿐이지 뭐.
“네 놈이 무리의 우두머리냐?”
“그렇다.”
“족장 자리를 걸고 싸우자. 내가 이기면 네 녀석들 모두 내 지시에 따르고, 진다면 나도 노예로 기어 들어갈께.”
“좋다. 검은 비늘 부족. 명예로운 도전 거절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쉽게 풀리네.
끽해야 와이번 때문에 중위급으로 판정받은 리자드맨 놈들이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결투를 받아들이다니.
강화도의 리자드맨 부족, 잘 먹겠습니다.
“우진 오빠 혼자서 싸우려고 그러지?”
“너희까지 나설 일이 있냐. 그냥 리자드맨인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대기하고 있을게요.”
등에 메고 있던 거대한 전투 도끼를 꺼내든 족장 녀석.
사실 맨손으로 싸워도 내가 이기겠지만 이건 전사로서의 결투.
녀석의 투지를 존중해주기 위해 여의봉을 꺼내 든다.
“그런 조그만 막대 약하다.”
“그건 붙어보고 나서 판단해라.”
도마뱀놈이 민간인들만 만나봐서 감이 안 잡히나 본데 너보다 거대한 놈들을
사냥하고 다녔던 인간 백정이 1세대 히어로다.
쉬익
파충류 특유의 경고음을 내며 내게 달려오는 리자드맨 족장.
그 거대한 전투 도끼를 휘두른다.
파공음 소리와 함께 나를 향해 날아오는 거대한 도끼.
그 기세는 좋으나 신성도 갖추지 못한 생명체는 절대 초인을 이길 수 없다.
깡!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지만 내 손에 있는 여의는 그대로이다.
“말도 안 되는. 인간이 어떻게.”
“내 차례네, 이 악물어라.”
밀레니엄 초기 인간이 느꼈던 그 공포감을 이 크립티드 녀석에게 그대로 전해준다.
무슨 짓을 해도 뚫을 수 없던 그 무력함.
신성으로 만든 호신강기와 부딪힌 녀석의 도끼는 주인의 손길을 벗어나 땅에 꽂힌다.
“크아아악!”
놈의 복부에 박힌 여의봉.
현대의 기술력이 집약된 티타늄 합금은 맨몸으로 버티기엔 버거울 거다.
배를 부여잡고 쓰러진 전 족장.
“이것들아, 새로운 족장 환영식은 없냐?”
쉬이이이익!!!
족장이 쓰러진 것을 확인한 놈들이 전투 태세를 갖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입으로 명예 찾는 새끼들치곤 정말로 명예로운 놈들은 없단 말이야.”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유정과 하예은도 내게로 다가온다.
“유정이는 리자드맨들을 담당하고 예은이는 와이번 담당해.”
“네.”
“네.”
자신의 유물을 꺼내 드는 사유정.
우리 스승님의 무구, 여의봉과 컨셉이 겹친다는 이유로
유정이의 성좌께서 기존의 유물을 인간들이 각색한 월아산의 형태로 다시 만든 유물.
항요장(???)이다.
항요장을 땅에 찍어 누르는 유정이.
크립티드의 포스 필드를 해체하는 현직 최고의 디크립터.
그녀의 전문 분야는 환술 쪽이다.
“날아든다.”
“예은아 눈 감아라.”
유정이의 한 마디에 불길한 붉은 빛을 내뿜는 항요장.
그 빛을 본 리자드맨 녀석들은 동공이 풀린 상태로 무기를 떨어뜨린다.
이윽고 무언가 자신들을 향해 날아든 것처럼 허공에 손을 휘적거리며 난리를 피운다.
“어떤 환영을 보길래 저러는 거죠?”
“나방.”
달려드는 지구의 괴생명체에 혼비백산 중인 리자드맨들.
겹눈에 털북숭이 생명체가 날아드는 것도 호러인데 그 날개에는 기괴한 눈 모양 무늬마저 박혀 있어서 그런지 유정이의 환술이 더 잘 먹힌 것 같다.
“예은이 너도 소환 준비해.”
“네 아저씨.”
와이번을 연습 상대로 삼아 하예은의 소환술을 시험해 본다.
곧바로 케르베로스 건틀릿을 장착하는 하예은.
지옥견을 부르기 위해 모든 신성을 팔에 집약시킨다.
중위 등급이긴 하나 상대방의 심상치 않은 신성을 느꼈는지 와이번은 자신들의 주인을 내팽개치고 도망가려 한다.
그러나 케르베로스의 건틀릿에서 뻗어 나온 쇠사슬이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도망치는 와이번들을 옭아매는 쇠사슬.
이윽고 하예은의 뒤로 명계의 문이 열린다.
크와악!
잔뜩 쫄아버린 녀석들이 애처롭게 포효를 내뱉어 보지만.
상반신만 튀어나온 명계의 문지기 앞에선 한낱 도마뱀이 될 뿐이다.
컹!
케르베로스는 우렁찬 울음 소리 한 번을 내뱉곤 다시 명계로 돌아가 버린다.
지옥의 문지기를 마주한 와이번들은 이미 기절한 상황.
“어때?”
“하아 하아… 신성을 너무 많이 소모해서 힘들어요.”
“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 부른 것도 잘한 거야.”
이렇게 강화도 리자드맨의 반항은 싱겁게 끝이 났다.
. . . . .
“정말 감사합니다. 챔피언 님! 사실 이대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저 녀석들 생긴 것만 그렇지 생각보다 이성적이더라고요.”
억류되어 있던 강화도 주민들을 풀어 준 뒤 리자드맨 녀석들을 한 대 모았다.
“우린 어떻게 되는가. 인간. 크악!”
“어디 새로운 족장님한테 버르장머리 없이 인간 인간 거리고 있어!”
꿀밤 한 대를 맞고 나서야 존칭을 사용하는 전 족장 녀석.
“족장.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일단은 이곳 주민들을 보호하면서 지내. 인간이라고 핍박하지도 말고 먹지도 마, 족장의 명령이다.”
“말이 통하는 생명체. 먹지 않는다. 그건 야만스러운 일.”
“그런 놈들이 결투에서 졌다고 다 같이 덤벼들어?”
“그렇지만 족장 너무 강합니다.”
“앞으로 너는 부족장이야. 네가 책임지고 나머지 놈들을 통제해.”
“알겠다요.”
전 족장 녀석이 리자드맨 언어로 쉬익 거리며 내 뜻을 전하자 새로운 족장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자신들을 손쉽게 제압한 우리를 보고선 그들의 힘의 논리에 의해 나를 따르기로 했나 보다.
놈들은 전혀 야만적인 종족도 아니고 인간에게 적대적인 놈들도 아니라
처분은 보류하였다.
협회가 알면 기겁을 하겠지.
화과산 깐프, 강화도 리자드맨.
내가 책임져야 할 이세계 불법 체류자들이 늘어난 상황.
“오빠는 예전부터 사서 고생이네요.”
“크립티드라도 지성체잖아. 떠도는 중생들을 외면할 수는 없지.”
“그게 아저씨의 장점인데 유정 언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봐요.”
“그래도 내가 예은양 보다는 오빠에 대해서 더 잘 알지 않을까?”
두 세입자의 텃세 싸움에 끼인 나.
그냥 둘 다 나가서 살라고 하고 싶지만 두 명을 적으로 돌릴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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