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36화 (36/106)

〈 36화 〉 미스터 손

* * *

나이츠 헤븐과의 경기는 당연히 오대혁의 승리로 돌아갔다.

애초에 검을 쓰는 놈들이 벨 수 없는 상대를 만났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결과는 좋지만 그 과정이 심히 유감이다.

예선전을 기상천외한 장기 자랑 시간으로 즐기고 온 녀석.

배치기로 상대방의 장외패를 유도하지 않나, 지방 가득한 배로 검을 잡는 묘기를 부리지 않나, 온갖 기행을 펼치고 돌아온 녀석을 보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덕분에 가장 눈에 띄는 팀으로 예선전을 통과해 본선에 올라왔다.

“좀 정상적으로 싸울 수는 없냐?”

“요즘 히어로는 평범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소.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재롱 한번 피우겠소?”

“넌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평범하지 않아.”

“동감이에요.”

예선전을 지켜봤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놈은 없었다.

적어도 D조에 속해 있던 팀 중엔 빌런 놈들이 없는 모양이다.

일을 저지를 타이밍은 아무리 봐도 본선이 펼쳐지는 그때뿐.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행동을 개시하겠지.

정신없이 싸우는 히어로들과 환호하는 관중들.

관중들까지 눈을 돌리기엔 소모되는 신성의 양이 상당하므로

우선은 히어로들 속에 숨은 놈들을 찾는 데 집중하자.

“대혁아, 나 좀 화나게 만들어봐.”

“왜 쓸데없이 화나게 만들라는 거요? 또 때릴 거잖소.”

“그냥 열 받게 만드는 소리만 하라고, 안 때릴 테니깐.”

“흠… 정말 때리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소?”

“그래, 빨리 아무나 말이나 해줄 수 있겠니?”

“형님이 어긴 약속만 해도 수십 가지인데 내가 어떻게 믿고…”

“아니 빨리 화나게 좀 만들어 보라고!”

돼지 녀석이 말끝을 계속 무는 통에 울화통이 터진다.

급격한 감정의 변화와 함께 안구에 신성이 흘러 들어간다.

“붉은 눈은 켜지셨소?”

“넌 정말 이쪽 분야로는 누구도 이길 수 없을 거야.”

“칭찬 고맙수다.”

내 의도를 알아채서 일부러 열 받는 행동을 자처했을 거라 믿고 싶다.

화안금정이 켜진 지금 본선에 올라온 히어로 팀들을 한둘씩 살펴본다.

그들 속에 들어있는 본질을 꿰뚫어 봐야 한다.

각자 몸속에 품고 있는 고유한 신성이 보인다.

“윽!”

그들 중에서도 밝게 빛나는 신성 때문에 눈이 부신다.

태양처럼 밝게 타오르는 불을 담고 있지만 어딘가 탁한 기운을 풍긴다.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돌아보는 녀석.

씨익 웃으면서 내 화안금정과 비슷한 붉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숨길 생각도 없다 이거냐.”

선글라스를 벗은 뒤 놈을 꼬나본다.

두 쌍의 붉은 눈은 서로를 마주 본다.

이내 내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돌아서는 빌런 놈.

“유정아, 대진표는 나왔니?”

“여기 있어요.”

유정이가 건넨 대진표를 받아보니 우리 팀을 제외한 챔피언 팀 중 두 팀만이

본선으로 올라왔다.

“경기도는 어디 갔어?”

“이변이 발생했어요. 아까 오빠가 바라보던 아이가 경기도 팀을 잡았거든요.”

신성을 봤을 때 보통은 아니겠거니 했지만 챔피언 팀을 잡을 줄이야.

상당한 거물이 참여했는데 왜 아무도 눈치를 못 챘지?

“얘는 원래부터 히어로였어?”

“네. 이름은 홍수아고 담당 성좌는 수르트 님이네요.”

아니다.

만나 본 수르트의 히어로들은 절대로 저런 불길한 신성을 담고 있지 않았었다.

수르트의 신성은 모든 것을 불태우려 하는, 자신마저 집어삼키려는 불과 비슷하다면

저 녀석의 신성은 그런 느낌이 아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신경 쓰이세요?”

“관심이야 있지.”

나쁜 쪽으로 말이야.

. . . . . .

사실상 서울 챔피언 웨스트 트리오랑

전라도 경상도 챔피언들

그리고 경기도 챔피언 잡고 올라온 팀 차일디쉬

홍수아 진짜 미쳤다 나이도 어린데 챔피언 세명 혼자 잡았다

어케 잡았냐 ㅅㅂ

ㅇㅇ: 이번 대회도 또피언들 잔치네

ㄴ 핑쿠: 뭐 매년 그래 왔으니 ㅋㅋㅋ

ㄴ 일레: 이변 없는 이상 맨날 그래왔잖아 ㅋㅋ

ㄴ ㅇㅇ: 홍수아가 미친년이긴 하네

ㅇㅇ: 첫 경기부터 웨스트 트리오랑 차일디쉬가 붙네 손우진 나오냐?

ㄴ ㅇㅇ: 어허 미스터 손인데 손우진을 왜 찾음

ㄴ 빌넣충: 컨셉 진짜 뒤지게 못잡았네 ㅋㅋㅋ 미스터손 ㅇㅈㄹ

ㄴ 고아교주: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고아교주: 미스터 손 뭔가 정감 가는 사람이네요

ㄴ ㅇㅇ: 당연히 느그 주인님이깐요 시발럼아

ㄴ 고아교주: 미스터 손이랑 손우진은 다른 사람입니다

ㄴ ㅇㅇ: 고아단 새끼들 즈그 주인 따라서 컨셉 미쳤네;;

인터넷에서도 역시 이슈가 된 것은 챔피언을 잡은 히어로.

가끔 챔피언에 버금가는 히어로가 나타나는 것이 배틀 토너먼트의 묘미였는데

유망주의 등장, 홍수아로 인해서 경기장은 과열 양상을 띄고 있다.

곧이어 펼쳐질 본선 경기 전에 해설을 이어나가는 중계진들.

“모든 예선 경기가 끝나고 본선에 올라온 4팀이 모두 정해졌습니다.”

“놀랍게도 챔피언 팀을 이기고 올라온 히어로 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토너먼트에서 가장 큰 이슈를 꼽자면 역시 홍수아 양이겠죠.”

“경기도 챔피언들을 홀로 이기고 올라온 홍수아 히어로, 정말 기대되는 유망주입니다.”

본선에 올라온 팀들을 소개하고 있는 중계진들.

역시나 가장 큰 이변인 홍수아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홍수아 선수의 불꽃, 정말 모든 것을 불태웠던 수르트 성좌의 불꽃과 똑 닮아있습니다.”

“과연 다른 챔피언들을 상대로도 활약을 이어 나갈 수 있을지 기대해보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캐스터와 해설자는 유망주에 대한 기대를 부풀려 나간다.

. . . . .

“대회를 중단시키고 급습해서 체포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대회 중단을 주장하는 블랙 요원.

우리가 불리한 입장이다.

놈들의 정체가 들통나는 순간부터 관중들을 향한 무차별 학살을 벌일지도 모른다.

“안 돼요. 놈들이 어떻게 나올 지 모릅니다.”

“챔피언님, 홍수아 히어로가 빌런인 것은 확실합니까?”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내게 한 번 더 확인을 요청하는 다른 요원.

그럴 만도 하다. 히어로 유망주가 사실은 빌런이었으니 말이다.

“예, 확실합니다. 그녀의 신성은 수르트 성좌의 신성이 아닙니다.”

“그렇군요… 저희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사람들의 대피를 준비해두겠습니다.”

“일단은 다른 챔피언들도 있고 하니, 대치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들에게도 전달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곧 일어날 빌런 체포 작전을 준비하러 가는 블랙 요원들.

매년 재미 삼아 참여했던 배틀 토너먼트는 엉망이 되었다.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끼들 작정하고 숨겨 둔 거구만.”

아무리 대회라고는 하지만 챔피언을 이겨 먹은 것은 쉽게 볼 일이 아니다.

어떻게 이런 녀석을 어떻게 협회에 계속 숨겨둔 거지?

­곧이어 본선 제1경기가 시작됩니다. 팀 웨스트 트리오와 팀 차일디쉬는 준비해주시길…

요원들이 준비가 끝났는지 경기 준비를 알리는 안내 방송이 들려온다.

이제는 동생들에게도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말해둬야겠다.

홍수아는 나 혼자서 담당하고 나머지 두 팀원도 빌런 쪽 인물들일 테니

동생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대체 어디 갔다 오시는 거요? 미스터 손은 참 바쁘구려.”

“미스터 손 때려치웠다. 할 말이 있어 얘들아.”

“뭔데요?”

“홍수아네 팀은 빌런 쪽 끄나풀들이야.”

내가 전해주는 깜짝 소식을 듣고도 놀라지 않는 두 사람.

하긴 이런 걸로 놀라기엔 우리 동생들은 겪은 일들이 많다.

“크하하하하! 어째 형님이 참여했는데 조용히 넘어가나 싶었소!”

“오빠는 그러면 빌런 체포 임무로 참여한 거네요.”

“끄나풀을 잡으려고 참여한 건 맞는데 챔피언급 일줄은 몰랐어.”

“어찌하실 거요? 형님이 나서실 거요?”

“그래야지. 너희는 나머지 놈들을 맡아 줘, 그 녀석들도 한통속이겠지.”

“알겠소.”

“알겠어요.”

동생들과 계획을 세운 뒤 경기장으로 입장한다.

맞은 편에는 홍수아와 떨거지들이 우릴 바라보고 있다.

“양 팀의 선봉은 경기장 위로 올라와 주십시오.”

심판의 지시에 따라서 경기장 위로 올라가니 홍수아가 아니다.

“참나… 어이가 없어서.”

“한 수 부탁드립니다.”

기분 나쁜 미소와 함께 내게 인사를 건네는 떨거지 놈.

안 그래도 너희 대장 덕분에 기분이 상당히 더러운 상황인데

도발은 좋은 선택이 아닐 텐데.

“그럼 시합 시작!”

주먹에 불꽃을 두른 채 내게 달려드는 떨거지.

의도가 뻔히 보인다.

어떻게든 내 체력을 갉아먹은 다음에 홍수아 년이 잡아먹겠다는 생각이겠지.

내 공식적인 신분은 챔피언이 아니기에 내 뒤로도 동생 중 한 명은 남아있지만

빌런 새끼들답게 참 치졸한 방식으로 싸우려고 한다.

이미 서로 눈치는 챘기에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전까지는 이득을 보겠다는 거겠지.

“커억!”

바닥에서 솟아오른 여의에 복부를 맞고선 자세가 무너지는 놈.

녀석을 그대로 후려쳐 경기장 밖으로 날려 보낸다.

자신의 동료들 쪽으로 날아간 놈은 기절했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이진우 히어로 장외패! 승자는 미스터 손!”

와아아아!!!

남의 속도 모른 채 환호하는 관중들.

그렇게 소리 지를 때가 아닌데, 조만간 불바다가 될 이곳에서 몸 성히 도망쳐야 할 거다.

“시간 낭비는 하지 말자, 잔말 말고 올라와.”

“그래도 챔피언을 상대하는 건 저도 벅차서 말이에요.”

심판의 지시도 없이 경기장으로 올라오는 홍수아.

“홍수아 선수, 아직 올라오시면 안 됩니다.”

“뒷배는 누구냐?”

“당신 성좌께 큰 유감을 갖고 계시는 분이세요.”

심판의 제지에도 경기장으로 올라와 대화를 이어나가는 홍수아.

“우리 성좌께서 적당히 망나니였어야 말이지. 한둘이 아니야.”

“흑흑. 피해자만 항상 잊지 못하고 영원히 기억하는 거죠.”

손에서 홍염을 피워내는 홍수아.

선홍빛 홍염의 구체를 자유자재로 손에서 굴리기 시작한다.

“이런 게 터졌다간 많은 사람들이 죽겠죠?”

“나한테만 집중해 줬으면 좋겠는데.”

“소원이시라면요.”

내게 구체를 던지는 홍수아.

작은 태양과 같은 구체는 열기와 함께 나를 향해서 날아온다.

여의를 야구 방망이처럼 쥐고선 홍염의 구체를 맞받아친다.

하늘로 날아가는 홍염의 구체, 홈런이다.

콰앙!!!

허공에서 터져 나가는 구체, 그곳에서 쏟아져 나온 화염 줄기들은

다시 나를 향해서 떨어지기 시작한다.

“불꽃놀이에 빠지지 말고 저도 상대해 주세요.”

방심한 사이에 불의 검을 만들어서 내 옆으로 다가온 홍수아.

내 허리 옆으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엿 됐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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