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39화 (39/106)

〈 39화 〉 힘의 대가

* * *

뚫린 가슴은 원래대로 복구 되었고

박살 났던 심장도 검사 결과 멀쩡히 뛰고 있다는 소견을 받았다.

크게 무리해서 피로가 누적되었기 때문에 의식을 잃은 것이지

홍수아에게 박살 났던 심장도 정상이기에 퇴원을 요청했다.

병원에 누워 있어봤자 할 일도 없고 심심하잖아.

“챔피언, 아무리 그래도 경과를 지켜보시는 것이 어떨지…”

“갑니다.”

“그것참…”

나를 말리는 의사를 뿌리치고 퇴원 수속을 밟았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병원 밥을 먹으면 더 약해지는 느낌이라 더 있을 수가 없다.

퇴원 절차를 마치고 오자 기다리고 있는 일행들.

동생들과 화과산 입주민들이 마중을 나와 있다.

“차는 누가 끌고 왔어? 대혁이냐?”

“본인 말고 끌고 올 사람이 누가 있겠소. 얼른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그놈의 밥 타령은… 가자 가.”

주차장으로 이동하던 도중 입구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 인간들이 보인다.

우리를 발견하고선 들고 있던 녹음기와 카메라를 들고 다가오는 놈들.

“아니, 저 새끼들은 내가 깨어난 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아저씨가 잠들어 있던 동안에도 저렇게 기다리고 있었어요.”

“에이… 홍수아 년 때문에 미스터 손은 괜히 집어 던져서.”

미스터 손 신분을 유지했다면 사람들이 나였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모르는 체하면 그만이겠지만 경기 진행 도중에 선글라스를 벗어 던져

내 얼굴을 노출했기 때문에 이제는 잡아뗄 수도 없다.

“유정아, 그냥 단체로 환술 걸어버리자.”

“어떤 식으로요?”

“내가 아직 깨어나지 못한 걸로 인식하게 만들어.”

“손우진 씨! 이번 배틀 토너먼트에서 홍수아의 정체를 어떻게 밝히신 겁니까!”

“홍수아의 정체를 아시고 계셨던 것 아닙니까?”

“알고 있었다면 왜 이런 참사를 방관했는지 해명해주십시오!”

그 전날의 지랄 맞은 내 성격을 그새 까먹은 건지 또 달려드는 승냥이 무리들.

내가 봤을 때는 히어로보다 기자가 더 용감한 것이 분명하다.

아니면 기억력이 심히 나쁘거나.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주차장으로 가서 털어놓겠습니다. 다른 분들에게 민폐잖아요.”

피리를 불어 쥐를 유인하듯 기사를 쓰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한 사람들을 유인한다.

주차장까지 따라 나온 기자들.

보는 사람도 없고 기자들 뿐이니 유정이에게 신호를 보낸다.

“제 동생 유정이가 할 말이 있답니다.”

“여기 좀 봐주세요.”

유정이가 꺼내든 항요장이 붉은빛을 내뿜기 시작하자 그걸 바라본 기자들의 눈이 맹하게 풀린다.

“오빠는 아직 회복 중이니 계속 입구에서 기다리세요.”

­알겠습니다…

뭔가에 홀린 듯 터벅터벅 입구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기자들.

다른 사람들이 인식을 흩트려 놓을 때까지 의미 없이 기다릴 것이다.

“이건무슨 마법이에요? 사람들이 마치 언데드가 된 것 같아요.”

유정이의 환술이 궁금했는지 항요장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엘레나.

“사실 유정이는 흑마법사야.”

“헉! 정말요?”

“아니 거짓말이야.”

“우진님은거짓말쟁이에요!”

이 순진한 깐프를 놀려 먹는 일은 언제나 해도 재밌다.

. . . . .

­끼익! 끼익!

주인이 돌아오자 격하게 반기는 원숭이들.

평소보다 더 살갑게 반기는 것 같다.

이 녀석들, 이렇게 친근감 있는 녀석들이 아니었는데 뭔가 바라는 게 있나?

“얘네가 갑자기 왜 이런데.”

“그러고 보니 아저씨가 싸우고 있을 때 막 소란을 피운 적이 있어요.”

예은이의 말을 들어보면 역시 이번에 계약한 기아스가 원인인가 보다.

우선 우리 성좌님을 먼저 만나봐야겠다.

“예은아, 키는 있지?”

“네. 갖고 왔어요.”

수렴동은 나와 함께 출입하거나 내가 만든 특별 현관 열쇠, 내 신성을 불어넣은 열쇠가

있어야만 출입할 수 있기에 예은이에게 하나 만들어 주었다.

“난 성역에 다녀올 테니깐 너희는 먼저 올라가 있어.”

일행들을 수렴동에 보낸 뒤 우리 원숭이 신의 성역에 입장한다.

나를 반기는 원숭이 신의 석상.

근엄한 표정으로 근두운을 탄 채 여의봉을 쥐고 있는 모습은 너무 미화한 것 아닌가.

“저 왔습니다.”

<네 놈이="" 나부터="" 찾아온="" 것을="" 보아하니="" 꽤="" 급했나="" 보군=""/>

“어차피 다 보고 계셨잖아요.”

<그래, 고작="" 그런="" 놈한테="" 멍청하게="" 구멍이="" 뚫리는="" 것까지="" 다="" 봤지=""/>

“진짜! 그 자식이 비정상적으로 강했는데 제가 어떻게 합니까!”

<어디 스승한테="" 큰="" 소리야!=""/>

서늘한 금속이 머리에서 느껴진다.

오자마자 또 긴고아형이라니, 너무한 것 아닌가!

“끼에에에에에엑!!!”

<후… 사태가="" 심각한="" 것도="" 모르는="" 우매한="" 제자="" 놈을="" 어찌할꼬=""/>

진지한 어조로 나를 꾸짖는 스승님.

평소와는 달리 긴고아형을 마친 뒤 우쭐한 태도를 보이지도 않는다.

널브러져 있는 내게 스승님이 질문을 건네온다.

<우진이 네="" 놈,="" 기아스가="" 어떻게="" 발동했는지="" 기억하느냐?=""/>

“…의식이 희미한 상황에서 그냥 영화 대사를 읊었는데 기아스가 반응했어요.”

<주술은 입에서="" 나오는="" 말에서="" 비롯되고="" 말은="" 현상을="" 불러오지=""/>

“쉽게 좀 얘기해주세요.”

<넌 인간이="" 만들어낸="" 가상의="" 나,="" 이="" 몸="" 손오공의="" 말을="" 통해서="" 주술을="" 성사="" 시켰다=""/>

인간이 만든 영화 속 손오공의 말을 인용해서 맺은 기아스.

그 대사가 현상을 불러오고 현상은 얼스터의 주술, 기아스를 발동한 것이다.

<가상의 본인은="" 결국="" 어떻게="" 되었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인간의 신분과 속세의 인연을 포기하고…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결국 넌="" 힘을="" 쓸수록="" 제2의="" 제천대성이="" 될="" 운명이라는="" 소리다=""/>

……이거 생각보다 좆 됐네.

기아스의 제약 때문에 속세와 인연이 끊기게 생겼다.

제천대성의 힘을 사용하면 할수록 점점 속세의 연결고리가 끊긴다.

기아스가 발동되고 나서 신성에서 느껴진 이질감의 정체는 이것이었나.

인간으로서의 신성이 점점 성좌의 신성으로 변해가던 것이었다.

“스승님! 제가 제천대성이 되면 어떻게 됩니까?”

<어떻게 되기는,="" 네놈도="" 성좌가="" 되면="" 이리로="" 등선해야지=""/>

“맨날 상계는 지루하다고 불평불만만 하시고 저만 관음하시잖아요!”

싸움의 부처라고 불리는 우리 성좌가 상계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제자의 전투를 항상 관음하는 것으로 대리만족하는 악질 성좌가 내 스승님이다.

“그리고 칠대성은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알다시피 상계의="" 성좌들="" 중에서도="" 인과율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존재한다=""/>

“왜 하필 칠대성 전원이 변질한 거죠?”

<모르지. 인과율이="" 뒤틀려="" 본성이="" 다시="" 튀어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환장하겠네.

홍수아 년만 있다면 족친 뒤 힘을 쓰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홍수아의 뒤에는 대요괴 출신 성좌들로 이루어진 칠대성이 있는 상황.

분명 이번이 끝이 아니라 내 신성을 빼앗고자 계속 덤벼들 것이다.

기아스 없이 버티기엔 역부족인 상황인데 사면초가이다.

“스승님도 가만히 있지 말고 저 좀 도와주세요!”

<못난 놈.="" 천계에="" 도움을="" 줄="" 성좌를="" 찾아볼="" 테니="" 기다리고="" 있거라=""/>

“스승님!”

석상에서 신성이 떠나간다.

나를 두고 다시 상계로 올라 가버린 원숭이 성좌.

“인생 시발…”

힘의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사용자를 파멸로 몰아넣는 기아스의 시동이 켜져 버린 이상 현재로서는

스승님을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성역을 나오고 수렴동 저택으로 돌아왔다.

거실에는 일행들이 티비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고 있는 일행들.

“오셨어요?”

나를 반기는 후배 하예은.

“형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오고 있소 하하!”

남의 속도 모르고 웃어대는 돼지 녀석.

“이게 웃을 일이야 대혁 오빠?”

철없는 둘째 놈을 타이르는 막내 사유정.

“표정이 어두우신데 괜찮으세요 우진님?”

내 근심을 알아챘는지 걱정하는 엘레나.

그래도 헛살지는 않았나 보다.

이렇게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역시 난 성좌가 되기 싫다.

이들을 두고선 상계로 올라갈 순 없다.

“아냐, 아직 피로가 덜 풀렸나 봐. 배고프지? 밥이나 먹자.”

요리하기도 귀찮아서 즉석식품 위주로 식사를 마쳤다.

대혁이 놈은 유정이를 지키기 위해 힘을 얼마나 쓴 건지

음식을 쓸어 담고 있지만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려면 한참 멀어 보인다.

아니, 돼지 시절이 원래 모습이 아니라 현재가 원래 모습이긴 하지.

식사를 마치고선 갈 준비를 하는 동생들.

“이만 가보겠소 형님. 푹 쉬시오.”

“저는 짐 챙겨서 다음 주에 올게요.”

“짐을 왜 챙겨? 너 여기 와서 들어와서 살려고 그러는 것이냐?”

“신경 끄세요.”

한시라도 티격태격을 멈추지 못하는 우리 동생들.

그래도 내 요구를 들어준 것이 기특하다.

“둘 다 수고 많았고 이번에 도와줘서 고마워.”

“저도 가볼게요. 사실 오빠가 상태만 확인하고 귀찮게 하지 말고 빨리 돌아오라 했거든요.”

동생들과 엘레나는 내게 작별 인사를 한 뒤 집을 나섰다.

예은이와 남아 나머지 뒷정리를 시작한다.

“아저씨, 홍수아의 정체는 알려주실 수 없는 건가요?”

정리를 하면서 내게 홍수아의 정체를 물어보는 하예은.

“흠… 홍수아는 그러니깐, 변질한 성좌의 챔피언이야.”

“변질한 성좌요?”

홍수아에게 들은 얘기를 예은이에게 설명해준다.

성좌 또한 밀레니엄 쇼크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예은이는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빌런들이 모시는 악신들이 아닌 정상적인 성좌가 변질했다고 하니 충격을 받을 만도 하다.

“영웅신께도 넌지시 알려드려, 영향을 받은 성좌가 꼭 칠대성 만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깐.”

“네. 꼭 알려드릴게요.”

그렇게 뒷정리를 마친 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기아스의 영향으로 쓸데없이 튼튼해진 몸은 수면을 원하지 않는다.

“지랄 날 게 뻔하긴 한데 방송 좀 해야 하나.”

우리 성좌께서 해결책을 들고 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오랫동안 쉬었기 때문에 방송은 하고 싶다.

하지만 홍수아 건으로 어그로까지 끌려서지금 틀었다간 개판이 날 확률은 백 프로다.

이럴 땐 역시 뻔뻔하게 나가도록 하자.

나는 왁스와 선글라스를 다시 챙겨오기로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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