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심해 방송
* * *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도다.
언제부터 파이트 오브 히어로즈가 이렇게 된 거지?
이런 건 파오히가 아니야!
“이럴 거면 모든 캐릭터에게 디바인 게이지를 넣어줘야지! 시발 서러워서 살겠나.”
[격겜이라 근접 계열 히어로만 냈으면서 안드리안 추가한 거 오바긴 함]
[그런데 최고 인기 캐릭터이긴 해서 ㅋㅋㅋ]
[돈은 항상 옳다]
내 체력은 이미 반 넘게 까여버린 상황.
상대도 근접에서 나와 개싸움을 시작하면 힘든 것을 아는지 뒤로 대시를 치며
거리를 벌린다.
멀리서 번개를 날리며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안드리안 캐릭터.
사기 캐릭터를 들고서 두들겨 맞은 것이 분했나 보다.
시답지 않은 도발을 해대는 상대방.
거리를 좁혀 보려 하지만 시간 초과로 체력이 더 많았던 상대방의 승리가 선언된다.
쓰러진 손우진을 두들겨 패는 안드리안.
자신이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건지 서슴없이 도발을 아끼지 않는다.
“화가 상당히 많이 났네, 저 친구.”
[저 사람도 스트리머일 텐데 왜 저러지]
[시청자가 없어서 똑같이 방송하는 거를 모르나]
[명령만 내려줘 대장! 고아단 집합할게]
“게임에서 이기면 되죠, 신경 쓰지 마세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역시 대전 게임답게 승부욕이 생기는 게 장난 아니다.
넌 도발을 하면 안 됐어.
분노로 인해 혈액이 머리 위로 쏠리고 눈 주위가 강하게 땅겨지는 게 느껴진다.
내가 파오히에서 절대 질 수 없는 이유.
합법 치트, 생체 치트 화안금정이 켜진다.
이건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생리 현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성좌의 힘을 각성한 지금 예전의 화안금정보다 더 강력해진 상황.
고작 게임에서 흥분한 걸로 능력을 쓰는 게 웃기긴 하지만
꼬우면 챔피언 했어야지.
파이트 오브 히어로즈만 하면 나중엔 결국 화안금정으로 두들겨 패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고아단들이 파오히를 그토록 싫어하는 것이다.
Round 4, Fight!
이제 정말 당해볼 것은 다 당해봤다.
원거리 공격, 디바인 게이지, 게이지를 사용하면 프레임이 달라지는 기술.
격투 게임을 잘하는 방법.
잘 막고 잘 때리면 이긴다는 교과서의 정석과도 같은 이야기.
나는 그 내용을 화안금정의 힘으로 실천할 수 있다.
“잘 보세요. 한 대도 안 맞는 거 보여드릴게요.”
[그게 가능한가요?]
[아무리 피지컬 좋으셔도 힘들텐데]
[시발 이 새끼 켰네 ㅈㅈ]
내 방송을 봤던 녀석만 지금 내 상황을 눈치챘나 보다.
눈치 빠른 새끼.
전판에 나를 두들겨 패서 디바인 게이지도 달달하게 모았겠다
한판만 이기면 된다는 자신감에 찬 놈이 근접전을 피하지 않는다.
그렇게 붙으면 후회할 텐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은지 하단 공격을 하지 않는 안드리안 플레이어.
하지만 나는 놈의 공격을 묵묵히 막아낸다.
어떤 공격도 하지 않고 끊임없이 몰아붙이는 상대방을 포용한다.
“슬슬 답답하니깐 지르겠죠.”
[아니 이게 가능한가]
[아무리 히어로라도 이게 말이 되나]
[손하다 추우진 핵 꺼라]
상단 공격과 중단 공격이 먹히질 않으니 결국 안전한 하단을 지르지만
내 눈에는 너무나도 느릿느릿하게 보인다.
툭!
허무하게 막혀버린 빠른 하단 공격.
딜레이 캐치를 할 수 있지만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
때려보려면 더 때려보라는 듯이 계속 상대방에게 다가간다.
이 기행에 기가 눌린 건지 오히려 도망가는 안드리안.
당황한 나머지 백대시도 헛치는 것이 눈에 보인다.
퍽.
도망치는 상대방의 면상에 잽을 먹여준다.
단순한 잽 한방이지만 이대로라면 전판과는 달리 상대방이 체력 차이로 지게 된 상황.
나는 도망갈 이유도 없기에 자리에 가만히 서 있어 준다.
“이겼네요. 공격 키에서 손 떼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참교육]
[괜히 도발을 해서 ㅋㅋㅋㅋ]
[두려운가? 두려운가? 두려운가? 두려운가? …]
안드리안은 가드를 풀기 위해 잡기 공격도 시도해보지만 소용없다.
잡는 대로 풀어버리고선 상대방이 했던 도발을 그대로 돌려준다.
잔망스러운 몸집으로 빠르게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게임 속 손우진.
그렇게 4라운드는 역시나 시간 초과로 끝나버린다.
“아 파오히 재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래놓고 지면 개빡치겠는데 ㅋㅋㅋ]
[엄마 난 커서 손우진이 될래요! 엄마 난 커서 손우진이 될래요!…]
“너도 참 지극정성이다. 우리 넷밖에 없는데 그걸 해야 속이 후련하니.”
[프로는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해야지]
“그래 네가 전문가고 프로다.”
Final round, Fight!
마지막 경기를 알리는 아나운서의 목소리.
서로 2라운드씩 가져가서 결국 5판 3선승제를 꽉꽉 채운 두 명.
하지만 승기는 내게로 거의 다 넘어왔다.
“마지막 판은 어떻게 이겨드릴까요?”
[손우진 패링으로만 죽여줘요]
[가능할까요]
[아아… 그는 신이다]
“패링이요? 한 번 해볼게요.”
상대방의 공격에 맞춰 패링 키를 눌러야 공격을 흘릴 수 있는 패링 시스템.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바람을 내뿜는 내 팔괘 6장 손은 밸런스 문제상 출시되지 못했는데
안드리안을 출시한 파오히를 용서할 수 없다.
현실의 안드리안에게는 유감이지만 파오히에서 만큼은 정말 꼴보기 싫다.
이 한 몸 희생해서 한 명의 안드리안 플레이어를 접게 만들어 주마.
“내밀었죠?”
급한 나머지 디바인 게이지까지 사용하며 공격하는 안드리안.
신규 캐릭인 것을 자랑하는 건지 콤보 시동기 주제에 정말 빠르다.
하지만 안드리안의 전격이 담긴 주먹을 옆으로 치워내는 손우진.
패링에 성공한 대가는 달달한 딜레이 캐치뿐이다.
복부에 바위와 같은 정권을 박아 준다.
퍼억!
저 멀리 나가떨어지는 안드리안.
사람들이 항상 이론상 킹론상을 떠들어 대지만 그것을 실제로 실천하면
얼마나 멋있는가.
“자신이 없다, 질 자신이 없어.”
[ㅋㅋㅋㅋ 존나 잘하니깐 할 말이 없긴 하네]
[진짜 핵 켜신 거 아니에요?]
[붉은 눈 꺼라]
게임을 포기했는지 움직임을 멈춘 상대방.
나는 대협처럼 속이 바다처럼 넓은 사람이 아니기에 당했던 도발을 또 한 번 보여준다.
슉슉슉.
도발을 가만히 보고 있던 상대방은 갑자기 다가와 공격을 시도해보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
다시 한번 패링에 당하고선 나가떨어진다.
“금태양 아웃!”
Time out.
3판 내내 시간 초과로 끝나버렸다.
내겐 아무 잘못이 없다.
그저 상대방이 먼저 시작했기에 그에 맞춰서 똑같이 따라 해줬을 뿐이다.
손우진의 승리 컷신이 나오기 시작한다.
안드리안을 깔고 앉아버리는 게임 속 손우진.
이래서 무투파가 아니면 안 된다니깐.
성우분이 깐족거리는 목소리와 무투에 대한 자부심을 정말 잘 표현해주었다.
평점을 줄 수 있다면 5점 만점을 주고 싶다.
“오랜만에 하는 파오히 정말 재밌네요.”
[이기면 갓겜 지면 똥겜]
[가드하는 거랑 패링 진짜 멋있었어요]
[시발시발 하면서 게임 했던 사람 누구였죠?]
“누가 게임 하면서 욕을 하고 그랬어? 즐기면서 해야지.”
[너요 너]
띠링!
게임이 끝난 뒤 시청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알림 소리가 울린다.
화면을 확인해보니 메시지 하나가 도착해있다.
아까 전 안드리안 플레이어가 보내온 메시지.
시발놈이 지니깐 핵쓰는 거 봐라 그렇게 게임하면 재밌냐?
“아니, 진짜 분했나 본데? 노빠꾸로 박아버리시네.”
[진짜 화나셨나 봐요]
[근데 이분 정체 모르면 핵처럼 느껴질만 함 ㅋㅋㅋ]
[고로시 마렵네 ㅋㅋ]
억울하게 욕을 얻어먹긴 싫어서 정중하게 답장을 보내보자.
선생님, 저도 방송 중인데 핵을 쓰겠습니까? 인증도 가능합니다
아이디 까보던가?
Mr_son 제 아이디입니다. 5명 보고 있으니 찾기도 쉽습니다
상대에게 아이디를 알려주자마자 내 방 시청자가 급격하게 증가한다.
거의 백 명 넘게 들어온 것 같은데.
손우진에겐 적은 인원이지만 심해에 서식하는 미스터 손에겐 과분한 숫자다.
[여기가 핵쟁이 방송인가요?]
[핵 쓰면 재밌냐 병신새끼야]
[핵 안끄냐 시발럼아 핵 안끄냐 시발럼아 핵 안끄냐 시발럼아…]
[내가 누구? ‘건우방 악질 시청자’ 내가 누구? ‘건우방 악질 시청자’ 내가 누구? …]
[인증도 가능합니다(실제로 한말) 인증도 가능합니다(실제로 한말) 인증도 가능합니다(실제로 한말)]
“아 지랄났네 진짜.”
내가 온전하게 끝내려 했는데 이러기야?
아까 전 시청자가 상대방도 방송 중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선생님도 방송 중이신가요? 제 방에 이상한 분들이 들어오셔서 난리치고 있어요
핑계 대지 말고 빨리 인증하시라구요
선생님, 주소 드릴 테니 보이스톡 들어오세요.
건우라고 하는 인간에게 보이스톡 주소를 보낸 뒤
씹창이 난 방송을 어떻게 할지 고민해본다.
여전히 악질 문구로 도배질하는 사람들.
사실 미스터 손 계정이라 별로 상관은 없는데
잔잔했던 내 방송을 더럽힌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러분 채팅 좀 예쁘게 치실 수 있나요?]
[너는 핵 좀 그만 써주시면 안 될까요?]
[핵 키고 방송하는 게 양심 뒤졌네 ㅋㅋㅋ]
[응 존나 도배할거야~]
2번 참았다.
3번 이상은 부처도 못 참는다고 하던데 중생인 나는 어떨까.
즈그 주인님이 들어오면 얌전해지겠지.
띵!
내가 보내준 보이스 톡 주소로 접속한 안드리안 플레이어.
“안녕하세…”
“저기요, 빨리 프로세스 창이랑 모든 파일들 다 인증해주세요.”
내가 생각해도 정말 많이 참았다고 생각해.
이 정도면 내 시청자들도 이해해 줄 것이다.
“야.”
“네? 지금 저보고 야라고 하신 거예요?”
“그래 너지 누구겠어 이 시발놈아.”
미스터 손은 들어갈 시간이다.
착한 미스터 손에겐 이런 일은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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