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천계??
* * *
천계로 올라와 태상노군을 찾아가라.
내가 스승님께 들은 한 마디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본인은 때리고 부수고 망치는 쪽이 전문이지
신성을 섬세하게 다루는 것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며
이쪽의 전문가, 태상노군을 찾아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양심도 없으시지.”
지금이야 같은 천계 소속이라고 쳐도 이 태상노군 어르신은
스승님이 부린 깽판의 최대 피해자 아닌가.
틈만 나면 최고 신선이 빚은 선단을 빼먹지를 않나, 스승님을 처형하기 위해
팔괘로에 집어넣었더니 더 강해져서 돌아와 천계를 뒤집어 놓지를 않나.
기껏 들인 시종들은 스승님의 시련에 필요하다며
관세음보살께서 데려가 대요괴 금각은각 형제로 변이를 시켜 놓았지
나중에는 스승께서 찾아가 억울하게 죽은 오계국 왕을 살려내야겠으니 사람을 살려내는 단약을 달라고 어거지를 써서
태상노군께서는 결국 단약을 주고 만다.
물론 마지막은 스승님의 선한 마음씨를 이해해 준 것이긴 하지만
우리 스승과 엮여서 좋은 꼴을 보지 못한다 라는 걸 증명하는 산 증인이시다.
이래도 스승의 서천행에 도움을 준 것을 보면 어르신이 얼마나 인격자인지 알 수 있다.
“천계 방문은 굉장히 오랜만인데.”
단 한 번.
수련을 끝마치고 정식으로 챔피언이 되었을 때 스승님은 나를 천계로 데리고 온 적이 있었다.
인간의 몸으로 성좌들을 직접 마주했던 그 날.
그 압도적인 신성과 존재감을 내비치는 성좌들 사이에서 고개도 들지 못했는데 말이지.
“지금은 얼굴이라도 볼 수 있겠지.”
하예은의 과업을 도와 저승의 왕, 하데스를 만났었던 일을 떠올려보면
이제는 성좌와 대면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문제는 천계에서 태상노군 어르신을 어떻게 찾느냐인데.
우리 스승님 말로는 천계로 가는 열쇠는 이미 주었으니 알아서 찾으라고 한다.
서비스가 참 엉망이다.
우웅
“알았어, 가자 가.”
자신이 활약할 차례임을 알고선 나를 보채는 여의.
이놈이 없으면 천계에 도착할 수 없으니 군말하지 않고 화과산 봉우리로 올라간다.
“가는 길 까먹은 건 아니지?”
우웅!
“알았어, 알았어.”
자신을 믿지 못하냐며 강력하게 항의하는 여의 녀석.
녀석을 살살 달랜 뒤 화과산 봉우리에 있는 제단에 꽂아 넣는다.
“안전 운전 부탁한다.”
우우웅
하늘로 솟아오를 준비를 하는 여의.
이녀석이 왜 이렇게 서두르는 지 알겠다.
태상노군께서 여의봉을 만들기도 했지 참.
자신의 부모를 만나러 가는 것이 기쁜지 손에 전해져 오는 진동은
여의가 얼마나 흥분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늘어나라 여의.”
슈우우우응!
매달린 나를 데리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여의봉.
얼마나 빨리 늘어나는지 벌써 화과산 봉우리가 까마득하게 보인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 사이로 빠져드니 기온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천천히 좀 가! 얼어 뒤지겠네!”
몸에 서리가 낄 때쯤 호신강기를 둘러 얼어붙은 몸을 녹여낸다.
집에 가는 길이라 신이 났는지 이놈의 여의가 탑승객을 생각지도 않고 미쳤나.
퍼엉!
구름 속을 빠져나오자 지상과 기운이 달라진 것이 느껴진다.
정갈한 신성의 기운이 떠다니는 이곳.
천계??다.
고행을 통해 선인이 되거나 천계의 물건을 들고 와야만 출입할 수 있는 이면 세계,
여의봉은 스승님이 준 천계행 열쇠가 맞았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지만 그것 역시 옛말이다.
스승님과 함께 천계에 왔을 때는 시간 개념이 지상과 달라
현실에선 몇 년 정도 지나가 있을 줄 알았건만 그것도 아니란다.
밀레니엄 쇼크 이후 천계의 시간 역시 현실 세계와 똑같아졌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실시간으로 인간들을 관음하는 성좌들이 많아진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 눈앞에 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구름 위에 세워진 거대한 하늘의 궁전.
천계의 지배자, 상제의 천하궁이다.
“오랜만에 봐도 어마어마한 대문이구만.”
사실 출입은 지랄맞게 힘들면서 몸가짐은 단정히 해야 하고
이리저리 지켜야 할 것도 많은데 궁궐만큼은 왜 검소하지 않은 건지 의문이지만
상제를 소리 내어 욕할 수는 없기에 속으로만 생각한다.
“멈춰라 인간. 어떻게 인간이 천계까지 왔지?”
“음? 이 녀석 인간도 아니고 선인도 아닌 요상한 기운을 갖고 있는데?”
원숭이와 닭 대가리를 달고 있는 병사들이 나를 막아선다.
천계의 문지기인 12지신 놈들이군.
“야. 거기 원숭이 놈, 이리콤.”
“원숭이 놈이라니! 무엄한 녀석! 나는 12지신의…”
“이리콤.”
“대체 이리콤이 뭔 뜻이냐!”
“이리로 컴come, 이리로 오라고. 글로벌 시대에 이리콤도 모르냐?”
“이이익! 감히 인간 주제에!”
내게 들고 있던 봉을 휘두르는 천계의 문지기.
놈의 봉과 내 여의봉이 부딪힌다.
기아스로 제천대성의 힘을 받아들인 나는 문지기의 봉을 쉽게 받아낸다.
원숭이 놈이 눈치가 있다면 이 봉의 정체를 안다면 슬슬 기어야 할 거다.
“…네 놈, 들고 있는 무기는 대체 어디서 난 것이냐?”
“이놈을 왜 인간 놈이 들고 있을까요?”
우웅
알아서 기라는 듯 존재감을 어필하는 여의.
스승을 닮아서 그런지 명예욕과 권력욕이 엄청난 녀석답다.
“크윽… 모든 원숭이들의 왕, 미후왕美?王 님의 후계자분을 뵙습니다.”
“흐흐, 거 처음 봤으니 모를 수도 있지요.”
내게 고개를 숙이는 천계의 문지기.
그는 천계의 문지기 이전에 원숭이다.
모든 원숭이의 정점에 서 있는 미후왕의 후계자를 무시할 순 없는 일이다.
“신? 공! 어찌 천계의 문지기가 인간에게 고개를 숙일 수 있는가!”
닭 대가리를 달고 있는 병사 놈이 원숭이 놈을 나무란다.
이에 원숭이는 자신의 전우 닭 대가리를 저지한다.
“유? 공, 이분은 투전승불의 후계자분이시라네…”
“헉! 그 개망나니의…”
날개로 황급히 자신의 부리를 틀어막는 닭 대가리.
자신보다 상급의 존재를 후계자 앞에서 욕보였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아아, 걱정마세요. 사실을 말한 것 뿐이니 뭐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 스승님이 엄청난 개망나니이긴 하지.
이건 세상도, 모든 선인들도, 본인도, 제자인 나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첫 만남보다 한층 더 유해진 태도로 내게 방문 의도를 물어보는 문지기.
역시 가는 말이야 고와야 오는 말도 곱지.
“저… 인간 분이 천계에는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스승님이 호출하셔서 올라왔습니다. 인간의 신분으로 온 점은 미안하지만
지금 제 몸 상태가 인간도 아니고 선인도 아닌 상태라서요.”
내 말을 듣고선 나의 신성을 살펴보는 두 문지기.
신성을 살펴보고 나선 고개를 주억거린다.
“확실히 미후왕 님의 신성과 많이 닮아있군요.”
“인간의 범주를 초월하긴 했는데 참 애매한 상태 같습니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고자 태상노군 어르신을 찾아뵈려 하는데 가능합니까?”
천계의 문지기지만 이들의 실력은 절대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천계의 문지기란 상제 본인이 엄선한 십이지신들이 담당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태상노군 어르신을 찾아 왔다라… 알겠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손우진입니다.”
“예. 손우진 공 확인했습니다, 출입을 허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갑시다. 신 공.”
이 넓은 천계를 찾아다닐 필요도 없겠다.
뭐하러 나 혼자 돌아칠까, 여기 좋은 길잡이가 있는데.
“예?”
“가자고요. 천계 방문은 이로써 두 번째인데 제가 어르신의 거처를 어찌 알겠습니까?”
“그걸 왜 제가 안내해야 하는지…”
원숭이 놈, 더럽게 까탈스럽네.
다시 내 뒷배를 거들먹거려야 따라오려나.
“흠… 요즘 스승님께서 고민 하나가 있으십니다.”
“갑자기 웬 투전승불 님 얘기를…”
“세상의 원숭이들이 자신을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 것 같다며 소집 한 번 해야 하나 고민하시더라구요.”
“흐윽!”
“그래도 제가 제자 된 처지에서 한마디 건네드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진 선생! 제가 안내하겠으니 제발 왕을 말려주십시오!”
“허허, 이거 신 공의 도움을 이리 쉽게 받아도 되는 건지…”
“내게 안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오! 내 이리 부탁하겠소, 우진 선생!”
“하하하! 신 공께서 그리 간절히 말하시니 제가 어쩔 수 있겠습니까? 가시죠.”
“크흐흑…”
권력이 최고다 이 말이야.
네가 선택한 왕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 . . . .
“궁궐들이 참 멋지네요. 이런 궁들은 대체 누가 지었습니까?”
“하급 선인 중에서 목공에 소질이 있는 이들을 골라 궁궐을 짓게 했습니다.”
기껏 고행을 통해 상계로 올라왔더니 하는 일은 궁궐 짓기라니.
자연지기를 다루는 일인 만큼 나무를 다루는 것 또한 식은 죽 먹기일 테지만
신선도 참 못 할 노릇이네.
천계마저도 하급자에게 짬을 때리는 곳이라니.
알고 싶지 않았던 어두운 부분을 들춘 것 같다.
“이곳입니다.”
으리으리한 궁궐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정원.
마치 신선들이 산다는 무릉도원을 그대로 재현한 것 같다.
“여기에 어르신께서 거주하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크흠, 금로동녀 님, 은로동녀 님 계십니까!”
정원 입구에서 크게 소리 지르는 원숭이 문지기.
이내 정원에서 외모가 똑같이 생긴 쌍둥이가 우리 앞으로 마중을 나온다.
“상계의 문지기께서 무슨 일이신지요?”
금빛 머릿결을 지닌 아이가 의중을 묻는다.
“태상노군 어르신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은빛 머릿결을 지닌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선 경계의 눈초리로 대한다.
“당신… 그 사람의 기운이 느껴져요.”
하하! 시작도 전에 밉보이게 생겼네.
상계에선 대체 어떤 존재이십니까? 스승님
이름을 듣거나 기운을 느끼고서는 호의적인 인물이 하나도 없다.
“그럴 수밖에요. 안녕하십니까, 투전승불의 제자 손우진입니다.”
“…이 염치 없는 족속들 같으니, 우리를 그만 가만히 내버려 둬! 언니!”
“지긋지긋한 원숭이 놈!”
이마에서 뿔이 솟아나고 성인의 모습으로 점점 자라나는 쌍둥이.
전설 속 대요괴, 금각대왕과 은각대왕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아니, 여왕이라고 해야 하나.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있다.
금각은각 자매였군.
“아니, 난 제자라고! 스승님의 이름이무슨 PTSD 발동 버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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